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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148화 (148/373)

학사재생 148화

제 148화

사람 하나가 간신히 앉을 수 있는 작은 동굴 안.

그 틈새에 사내 하나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긴 머리에 가려져 인상 하나 쉽게 파악할 수 없는 그는 마치 생명이 없는 듯 조금의 미동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런 그의 손가락이 먼저 움직인 직후, 두 눈이 부릅뜨였다.

“쿠엑! 쿨럭, 쿨럭!”

붉은 피를 한 웅큼 쏟은 후 거친 기침을 토하는 사내가 자신의 몸을 양팔로 감싸며 부르르 떨었다.

“제길, 제기랄…… 빌어먹을 곤륜의 도사 놈들! 그리고 그 개자식!”

거친 욕지기를 내뱉는 사내의 검은 눈에 분노가 타오른다.

아른거리는 얼굴은 신아와 황준우다.

뜨겁기만 한 그 열기는 쉽게 가라앉지를 않았다. 고통에 잠긴 채 바닥에 드러누운 사내의 눈이 몇 번이고 타 버릴 듯 뜨겁게 달아올랐다.

“크윽, 크후우…….”

하나 죽지는 않는다.

그런 상태로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사내는 간신히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두 눈에 들끓던 분노는 어느덧 가라앉았다. 고통이 몸을 덮칠 때에는, 다른 생각으로라도 그 아픔을 줄여야 했다.

하나 몸이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한 지금에 있어 분노라는 감정은 무의미했다. 오히려 위험했다.

“진력(盡力)을 담은 인형이 당한 탓에 마력(魔力)의 손실이 너무 크군. 내상도 못해도 반년은 회복해야 될 수준이고…….”

침착하게 자신의 상황을 둘러본 사내의 입에서 자조의 웃음이 흘렀다.

“큭큭. 반백년에 가까운 시간을 이를 갈았다고 자부했거늘 꼴이 우습구나, 장량.”

사내, 대술사 장량은 스스로를 탓했다.

진시황릉 탐사에서부터 함정의 준비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오차는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 자체가 자만이었다. 천하에는 아직 그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일이 더 많았다.

이번 실패는 오만의 대가라고 보아야 했다.

“천마는 어찌 되었을까?”

살아 있을 확률은 낮다.

그가 보았던 청년 고수는, 믿기 힘들지만 인간의 몸을 한 신인(神人)이었다. 아무리 용중호의 재능과 무공이 높고, 그의 천마신검이 명력을 갖춘 무구라고 한들 압도적인 차이를 좁힐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잃은 것이 너무 많다.

“결론적으로 천마는 죽어야 했다. 하지만 아직은 필요한 일이 더 많았거늘…….”

이를 가는 장량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분노는 불필요하지만 후회와 반성을 통한 미래의 준비는 필요하다.

또한 이번 대계에서 잃은 게 많은 만큼, 얻은 것 역시 존재했다.

그가 바닥을 기던 바로 옆자리, 흙먼지를 가득 묻힌 고서가 보인다.

항산마서.

신아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위험한 책을 쥔 장량의 손에서 옅은 마력이 흘러나왔다.

짧게 운용하는 것조차 괴로웠지만, 그만큼이나 항산마서의 육망성이 가득 차오른 모습이 그에게 쾌감을 전해 주었다.

“아주 조금만 더 채우면…….”

목표했던 대계는 이루어진다.

그렇게만 된다면 지금까지의 실패를 모두 되돌릴 수 있다.

“참자, 참고 또 인내하는 거다.”

그가 오래토록 해 왔던, 익숙한 일이다.

하니 견딜 수 있다.

반백년에 가까운 시간에 비하자면 고작 반년 따위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었다.

두 눈을 감고, 다시 가부좌 자세를 취한 장량의 숨결이 거칠게 흘렀다.

짙은 어둠이 그를 감쌌다.

‘드디어……!’

지하의 동공 속.

몸을 웅크리고 있던 사마정이 붉은 눈을 빛냈다.

방금 전, 그토록 꼬리를 찾아 헤매던 활협단의 실체를 잡았다.

무너진 지하 동공에서 튀어나온 독고문을 쫓은 덕이다. 진무영을 보았고, 오칠을 보았다.

또한 의식을 잃은 주고치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혈안서들이 전해 주는 이야기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조금 더 깊숙이 파고들어 보자.’

움직이는 독고문을 혈안서 등에게 뒤쫓게 명한 결과, 또 다른 인물들과의 만남도 볼 수 있었다. 그중에는 정말 믿기지 않는 인물도 여럿 있었는데, 그 모두가 활협단의 선원들이었다.

‘활협단, 정말 어마어마하구나.’

더, 더 깊이.

돌아오는 혈안서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마정의 눈에 의욕이 불타올랐다.

정황상 활협단의 실세는 진무영인 듯했다.

이번 일에 실수가 있었던 듯도 하지만, 여전히 모두가 그를 따른다.

‘진무영.’

사마정은 그를 알고 있었다.

하나 깊게는 모른다.

‘무당파의 수재.’

천재라 불리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제일수재라고 불리지도 않는다. 적당히 묻어 가는 듯 행동하지만 실제는 그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당장 무당제일고수라 불리는 검선이 가장 총애하는 제자도 바로 진무영으로 알고 있었다.

‘놈이 많은 열쇠를 쥐고 있다.’

사마정은 또 한 번 혈안서를 풀었다.

위험한 접근이었으나, 다행히 아직까지는 들키지 않았다.

조금 더 할 수 있다.

욕심을 부렸고, 화가 닥쳤다.

‘들켰어!’

천장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기세가 그를 쫓는다.

혈안서들이 위험을 알리는 행동에 사마정은 빨리 땅속으로 파고 들었다.

생각보다 더욱 빠르고 놀라운 진무영의 반응에 심장이 크게 박동했다.

‘잡혀선 안 된다!’

만약 잡혀서 당할 것 같으면 차라리 자결하리라.

황준우에게는 미안한 말이었지만, 다른 정보를 토해 내는 것보다는 그 편이 훨씬 나았다.

그리 결심한 사마정의 뒤를 진무영의 기가 빠른 속도로 쫓았다.

지하를 통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땅속에서 살아온 사마정 못지않다.

아니, 오히려 더 빠르다.

‘알려진 것보다 몇 배는 뛰어난 고수!’

진무영의 실체를 알게 된 사마정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우내십존을 뛰어넘는 또 하나의 절대고수.

과거의 칠야무신을 떠올리게 하는 위협적인 기세다.

어느덧 진무영의 기세는 그의 바로 등 뒤까지 쫓아와 있었다.

사마정은 이를 악물며 지상으로 솟구쳤다.

마지막 발악과 같은 움직임.

옷깃을 스친 진무영의 손끝이 그의 살을 한 웅큼 뜯었다.

피가 왈칵 쏟아졌지만 첫 번째 손길로부터 벗어난 사마정이 지상으로 올라섰다.

“흐으…… 흐으…….”

휑한 공터.

갑작스러운 대지진이 있은 후, 황궁의 병사들이 물러난 영역이다.

마지막 희망을 위해 지상의 사람들 사이로 몸을 숨기려던 사마정이 입술을 깨물었다.

불쑥, 손을 뻗으며 솟아난 진무영과 눈을 마주친 순간에는 최후를 직감했다.

“흠…… 어째서 쥐가 제 뒤를 쫓는 거죠?”

진무영은 여유로워 보였다.

그런 그의 눈앞으로 벼락같은 두 자루 검이 떨어지는 것도 순식간이다.

“흑아의 검을 받아라!”

“백아가 휘두르는 정의의 검이다!”

사마정이 갑작스럽게 지하로 파고드는 탓에, 지켜보고 있었으면서도 어찌할 바를 모르던 흑백쌍노의 등장이었다.

“안 돼!”

사마정이 기겁하여 목소리를 높였다.

두 사람은 분명 무림에서 내로라하는 뛰어난 고수다.

황준우가 감시라는 명목하에 사마정의 호위로 붙여 준 인물들.

하지만 상대가 너무 나쁘다.

“귀찮네요.”

신형이 흐릿하게 갈라졌지만 진무영의 목소리에는 전혀 떨림이 없었다.

오히려 어느덧, 흑백쌍노의 등 뒤를 점하고는 검을 뽑아 들고 있다. 놀란 흑백쌍노가 재빨리 껑충 뛰어 거리를 벌렸다.

다행히 진무영은 조급하지 않았다.

“흑백쌍흉까지…… 대체 누굴까요. 이거 점점 궁금해지는데…….”

궁금하다는 듯, 세 사람을 번갈아 보는 진무영의 눈에 언뜻 광기가 엇비쳤다.

‘위험하다.’

사마정은 직감했다.

사로잡히게 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진실을 불게 될 것이다.

아직은 세상에 알려져서는 안 될 일.

사마정은 다시 자결을 결심했다.

“흑백쌍노, 도망치시오!”

또 한편으로는, 두 사람을 살리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막 굴러가기 시작한 천조회를 위해서라도 두 사람의 생존은 필수였다.

“어딜!”

그런 사마정의 의도를 눈치챈 진무영의 검이 벼락처럼 흑백쌍노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애초부터 물러날 생각을 하고 있지 않던 두 사람이 힘을 합쳐 강기를 뽑아내며 진무영의 검을 받아 낸다.

강기가 실린 검과, 강기가 실리지 않은 검이 부딪쳤는데 오히려 손해를 본 측은 흑백쌍노였다.

“쿠엑!”

“쿨럭-!”

핏물을 쏟는 두 사람을 서늘한 시선으로 내려다본 진무영이 머리카락을 쓸어 올린다.

“여러분들한테 묻고 싶은 게 많답니다. 그러니 이 자릴 벗어나려고 하지 말아요.”

짙게 웃는 그의 시선이 다시 사마정을 향했다.

“쥐가 주인을 모신다라, 생각지 못한 이야기네요. 과거에도 칠야무신을 배신했으니, 한 번 더 어렵지는 않겠죠? 어서 말해 보세요. 누굽니까? 누가 당신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죠? 솔직하게 말씀하시고, 이제라도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면 살 수 있습니다. 당신, 살고 싶잖아요?”

저벅, 저벅.

질문을 하며 다가오는 진무영의 걸음은 느리다.

언제든지 사마정을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

“으으…… 서왕은 안 된다!”

“흑아가 서왕 지켜야 한다!”

흑백쌍노가 검을 지팡이 삼아 몸을 일으키려 하였지만 쉬워 보이지 않았다.

생각지 못한 두 사람의 열의에, 다가오는 진무영을 보며 잠시 얼었던 사마정의 눈이 오히려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래, 그랬지. 난 배신자였지.”

자결을 결심했어도,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에 몸이 얼어 책임을 다하지 못할 뻔했다.

어느덧 얼굴에는 평온한 미소가 어렸다.

“하지만, 두 번 다시 그러지 않기로 결심했다.”

사마정의 몸속을 감돌던 내기가 들끓기 시작한다.

곧 있으면 서로 충돌하여 폭파하며 단숨에 그를 죽음으로 내몰 것이다.

“……!!”

진무영이 눈을 부릅뜨며 몸을 날렸지만, 그보다 더 빠른 손길이 있었다.

“누가 이렇게 멋대로 죽어 버리라고 했어?”

우우웅-!

황금빛 기운이 사마정의 전신을 감싸며, 멋대로 날뛰려던 내력이 가라앉는다.

고개를 돌린 사마정의 두 눈시울이 붉어졌다.

“잊지 말라고 했지? 넌 끝까지 살아남아서 빚을 갚아야 돼. 그러니까 쉽게 죽을 생각 하지 마, 사마정.”

차가운 음성.

서늘한 기세.

하나 앞으로 나서는 등은 듬직하기 그지없다.

“당신은…….”

스르릉-!

“만금장 소장주 황준우. 우리 구면이지?”

날카로운 울음을 흘리는 수왕검을 뽑아 든 황준우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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