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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187화 (187/373)

학사재생 187화

제 187화

동탁이 연 주지육림의 축제는 끔찍했다.

피와 살이 흐를 듯 넘쳐났고, 교성이 주변을 가득 메웠다.

때로는 비명도 울려 퍼졌다.

마교의 고수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 서로를 탐하고, 또 탐하여, 결국에는 인육을 뜯고 피를 마셨다.

“위대한 유일의 마왕이시여! 이 종의 깊은 마음을 이리 알려 보려 합니다!”

인차의 위에 올라, 주변으로 몰려든 여인들을 품에 가득 안고 있는 동탁의 앞으로 한 중년인이 뛰어올라 제 한 팔을 베어 동탁에게 건넨다. 아직까지도 따뜻한 기운이 가득 느껴지는 팔을 바라보는 동탁의 눈에는 짙은 웃음이 감돌았다.

“그 마음을 잘 받았도다. 네 피와 살은 이 몸과 함께 하나가 되어 살아갈 터니 그야말로 만생의 영광일지어다.”

“오오, 만생의 영광이로다!”

자신의 팔이 생으로 집어 삼켜지는 모습을 보며 감격의 눈물을 흘린 중년인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물러난다. 장량은 동탁의 곁에 서 물러나는 중년인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천하의 괴종(怪宗)도 마왕의 지배를 벗어날 수는 없는가.’

괴종은 오대마종 중에서도 가장 극악한 성격을 지닌 인물로 유명했다.

그에게는 인육을 먹는 것도, 동남동녀의 정혈을 빨아 마시는 것도 어색한 일이 아닐 정도였다. 괴종의 마공은 이와 같이 모두 끔찍한 방법으로 쌓아 올린 것이었으니 말이다.

‘아니, 어쩌면 괴종이기에 더욱 강하게 마왕의 지배를 받는 것일 수도 있겠지.’

마왕의 본질은 악(惡)이다. 순수한 심성의 소유자에게는 권능이 통하지 않는 것을 보아, 악에 가까울수록 더욱 큰 영향을 받는다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팔각마서가 내게 있어 다행이다.’

장량은 이마 위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순수한 심성을 지닌 자가 아님에도 마왕의 권능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것은 현재 마왕을 만들어낸 매개체인 팔각마서를 보유하는 것뿐이다.

소환된 마왕은 황천의 법도에 따라 약속된 계약이 이행되기 전에는 팔각마서를 강제로 뺏을 수도, 소유주를 처단할 수도 없다.

물론 그 이후의 미래는 끔찍할 터였다.

대다수의 마왕은 팔각마서의 소유주를 경계한다.

심각할 경우 증오하기까지 한다.

어찌 보자면 그를 해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무기를 가진 이니, 언제까지고 지켜볼 리가 없는 것이다. 아마 지금 무심한 듯 보이는 동탁이라 해도 다르지 않을 터였다.

세 번의 해가 지고, 뜨기를 반복하는 동안 더욱 더 많은 피가 흘렀다.

시체가 생겨났다.

마왕 동탁이 그리 바라거나, 스스로의 충정을 보이기 위한 광신도들이 만들어낸 참사였다.

“그만. 됐다, 됐어. 이쯤이면 충분하다.”

그때가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난 동탁이 손을 들어 말했다.

무언가에 홀린 듯, 미쳐서 연회를 즐기던 모두의 움직임이 멎었다.

“시간을 오래 끌었으니, 이제 약속을 이행해야겠지. 그렇지 않은가?”

동탁이 고개 숙인 장량을 곁눈질로 보고는 웃음을 흘렸다.

“그저 마왕의 뜻대로 하소서.”

장량은 동탁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약속이 이행되기 전까지 그 역시 마왕의 심기를 굳이 거스를 생각은 없었다.

“내 뜻이 곧 네 뜻이니 아무렴. 준비를 해보자꾸나. 일어나라. 나의 종들아. 아직 이 몸께서는 너희들에게 긴 잠을 허락하지 않았다.”

마왕 동탁의 언령이 다시 한 번 천마신교 본단을 흔들었다.

유독 검은 하늘이 울음을 토하듯 그르렁거리는 천둥을 토해냈다.

그리고 죽은 자들이 일어났다.

산 자들의 눈에서 죽음의 공포가 사라졌다.

마왕 동탁의 권능은 죽음조차 압도해 버린 것이다.

“……!!”

강시술 따위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절대적 권능은 경악을 벗어난 공포였다.

수염 끝에 핏방울을 가득 매단 동탁이 장량을 향해 말했다.

“지금부터 마군(魔軍)이 진격하여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다.”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손쉽게 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천하가 그리 녹록하지만도 않겠지.”

오만하고, 방자해만 보이던 동탁이 턱을 쓰다듬으며 조심스럽게 말한다.

장량은 이상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본래 동탁은 호방한 듯 보이나 겁이 많은 인물이다.

또한 권능은 섬뜩할 정도로 위대하나, 육신은 그 영역에 미치지 못한다.

만약을 대비한 조심성 정도는 내비칠 것이라 생각했다.

“어찌하오리까? 우리 마술사들이 육(肉) 영(靈)을 다해 뜻을 따르겠나이다.”

원한다면 고기 방패라도 되겠다.

장량의 진심에 묘한 웃음을 지은 동탁이 손을 내저었다.

“아아, 그 마음은 이 몸을 감동시키나 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 그대는 지금부터 하비, 백문루(白門樓)로 향하라.”

“백문루……?”

의문을 표하던 장량이 눈을 부릅떴다.

작금 강소의 서주(徐州) 인근에 위치한 삼국시대 천혜의 요새.

그를 장식하는 가장 큰 이름이 뇌리에 벼락처럼 스쳐 지나간 탓이다.

인중여포(人中呂布).

봉선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무대가 바로 백문루였다.

어찌 먼저 죽은 동탁이 그를 알았는지 의문이 떠올랐으나, 곧 지워진다.

황천의 지식이란 삶과 죽음의 경계로 나눌 수 없는 것.

동탁이 그의 죽음을 안다고 하여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 그곳에서 못된 양아들 놈의 작은 흔적이라도 찾아오도록 하여라. 단지 그 흔적만으로도 몸의 기억은 일깨울 수 있을 터니…… 그것만으로도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듬직하지 않겠는가?”

장량은 그제야 동탁의 모든 생각을 이해했다.

동탁은 권능을 통해 죽은 여포의 육신을 현세에 일으키려 한다.

절로 침이 삼켜졌다.

삼국의 무신 여포라 함은 혼이 없다 한들 신(身)만으로 천하제일을 논하기에 부족함이 없으리라.

지배라는 절대적 권능을 가진 마왕의 곁에 선 무신 여포 봉선.

동탁이 이끄는 마왕군의 파죽지세(破竹之勢)가 벌써 장량의 눈앞에 떠올랐다.

천하의 그 누구도 마왕군을 막지 못할 터였다.

곤륜의 도사도, 무림의 고수도 두렵지 않다.

“따르겠나이다.”

어떻게 해서든 여포의 흔적을 찾아낸다.

그리 결심하며 사라지는 장량의 모습을 보며 동탁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었다.

“큭큭큭, 온연한 마의 시대라…… 그대의 소원은 참으로 바람직하도다.”

흡족한 듯 혀끝으로 입술을 축인 동탁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뻗었다.

“자, 그러면 우리도 할 일을 해야지. 가자꾸나. 나의 종들아!”

소리 없는 함성을 지른 마군이 중원을 향해 진격했다.

허공을 가득 채운 빛무리의 너머.

한 치 앞도 알아볼 수 없는 어둠에서 귀를 기울이던 소녀가 몸을 떨었다.

빛이 완전히 사그라지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 소녀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헉, 헉……!”

거친 숨을 내뱉는 그녀의 곁으로 다가온 청년이 물 양동이를 내민다. 그를 훔치듯 빼앗아, 한입 가득 담아 물을 몇 번이고 벌컥벌컥 삼켜 댄 여아는 거칠게 양동이를 내팽개치며 아랫입술을 깨문다.

곁에서 그를 지켜보는 청년, 신일의 얼굴에는 절로 걱정이 어렸다.

“스승님…….”

“결국…… 결국 대마술사가 일을 치렀구나. 유계의 마왕이 지상에 강림하여 움직이기 시작했어.”

낌새를 눈치챈 것은 얼마 전이었다.

초대천마가 전설의 무공으로 천산의 봉우리를 나누고 더욱 높게 일으켜 만들었다는 전설을 가진 신강의 십만대산에 어느 순간 어둠이 가득 찼다.

낌새를 느낀 곤륜의 도사들 몇몇이 그 연유를 찾으려 하였으나 짙은 어둠은 한 치의 길도 보여주지 않았다. 신아 역시 몇 번의 시도 끝에 이제야 그 목소리의 일부를 들은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얻은 것이 작지만은 않았다.

“마왕 동탁…….”

“도, 동탁입니까?”

신일이 긴장된 표정으로 묻고, 신아가 고개를 주억였다.

“시간이 없다. 신일아. 어서 문주께 보고하고 곤륜의 산문을 모두 걸어 잠가야 한다고 전하여라. 지금의 우리는 마왕군과 대치할 수 없으니…….”

신아의 머리 위로 자연스럽게 하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드디어 녀석이 빚을 갚을 때가 된 것 같구나.”

시대가 크게 역동하기 시작했다.

5. 천하격동(天下激動)

하오문까지 모두 정리한 이후, 남궁호량과 사마정에게 뒤처리를 맡긴 황준우는 만금장으로 돌아왔다. 본래 기가 드센 여화이의 콧대를 납작하게 눌러 놨으니 두 사람의 주도하에 일이 마무리되어도 별 탈은 없을 터였다.

따지자면 오히려 탈은 집에 있었다.

“서연이가 가출했다고요?”

황준우의 물음에 서시가 웃는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가출이라니. 단지 그 아이도 스스로의 여정을 하고 싶어 하여 보낸 것뿐이지.”

“참고로 나는 허락하지 않았다.”

옆에 앉은 황석후가 살짝 토라진 얼굴로 말한다.

“저도 허락할 수 없는데요?”

황준우가 재빨리 거들며 서시를 바라보았다.

하나 서시는 입가를 손으로 가린 채 여전히 미소만을 흘릴 뿐이다.

“언제까지 우리가 감쌀 수만은 없는 일이잖니. 그 아이도 이제 성인이고 하니 스스로의 길을 알아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단다.”

“세상이 얼마나 험한데 스스로의 길을 알아보라고 그리 멋대로 보내버린단 말이오.”

“맞아요, 어머니. 서연이가 무공을 제법 배웠다지만 세상은 엄청 험하다고요.”

“그만, 그만. 두 사람 다 그만. 이이도 한동안 조용하더니 준우가 이야기 꺼내니 또 그러네. 두 사람은 남자라서 어떨지 모르지만, 제 생각은 다르다고요. 여자 아이라 하여 온실 속 세상만 보고 살 필요는 없는 것 아니잖아요?”

“그렇기야 하지만…….”

황석후가 고개를 주억였다.

“오히려 지금 이렇게 세상 경험을 해두는 게 그 아이한테도 도움이 될 거예요. 그리고 결국 혼자 보낸 것도 아니잖아요?”

서시의 말에 황준우가 황석후를 바라본다.

“끙…… 너무 걱정이 돼서 대표두께 부탁해 몰래 뒤를 따르도록 하였다.”

“그건 잘하셨네요.”

황준우가 조금 안도한 한숨을 내쉬었다.

여선위라 하면 황준우도 인정하는 진짜 고수 중 하나다.

게다가 오랜 시간 표행으로 인해 강호 경험도 많으니 황서연을 잘 지켜줄 수 있을 터였다.

“안 되겠네요. 아버지, 위치 알고 계시죠? 저도 이리로 오고 있는 경호랑 홍산한테 서연이 쫓아가라고 해야겠어요.”

생각 같아서는 황준우 본인이 가고 싶었지만, 아직 정의회 문제로 처리할 것이 남았다. 또한 심적으로 서시의 말대로 스스로 해낼 줄도 알아야 된다는 말에 동의하고 있는 부분도 적지 않아 있기 때문일 터였다.

때문에 황준우는 경호와 홍산이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택했다.

그것도 하지 않는다면 걱정에 밤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과보호라니깐…….”

서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지만 두 사람은 단호했다.

“내 딸이지 않소.”

“내 여동생이니까요.”

그리하여 경호와 홍산은 결국 집 근처에도 와보지 못하고 행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아주 잘하셨습니다. 이제 정의회는 완전히 우리 손아귀에 떨어진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황준우가 도착하기 전, 이미 사마정을 통해 소식을 전해 듣고 있던 전왕이 기쁜 얼굴로 말했다.

“아, 그리고 이번 일은 속전속결이 생명이라 생각하여 이미 정의회에 서신을 보내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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