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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208화 (208/373)

학사재생 208화

제 208화

묵묵히 마기를 가다듬고 있던 장량은 부대의 최전방에서 시작된 변화에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선공이라고?’

무림맹과 군부 연합군은 큰 수세에 몰려 있는 상황이었다. 또한 이미 천마신교의 군대에게 겁을 먹기도 했다.

‘남천맹이 왔군!’

한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눈과 귀를 닫고 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또 다른 변수가 될 위협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장량은 재빨리 막사를 벗어나 전장의 정면을 노려보았다.

‘뭐야? 고작 해봐야 백도 안 되지 않는가?’

그 수는 적다 못해 미약하다.

헛웃음마저 나올 지경이다.

하나 그들 하나, 하나가 보여주는 무위는 그야말로 경악을 토하게 한다.

고작 삼십의 파도가 수천을 넘는 천마신교의 군세 정중앙을 막힘없이 가로지르고 있다.

무림맹과 군부 연합군의 정예 병력이 돌파할 때보다도 몇 배는 빠른 속도였다.

“이게 무슨…….”

그 정면, 제법 익숙한 얼굴의 청년을 확인한 장량이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그 어린놈이 남쪽의 무신이었던가!”

무인으로서 그에게 최초로 죽음을 느끼게 했던 자.

진시황릉의 악몽을 떠올린 장량이 이를 빠득 갈았다.

당시를 생각하니 아직도 등골이 서늘했지만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오냐, 잘됐다. 네놈은 대계의 큰 적이니 이참에 죽여주마.”

금강저를 한 손에 쥔 대마술사의 몸이 허공으로 높이 떠오른다.

딸랑, 딸랑.

소매를 떨치자 방울 소리가 전장 전체에 깊숙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전장 이곳저곳에 숨어 있던 마술사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함정을 꼭 한 번만 사용하라는 법은 없었다.

“옴 마니…….”

주문을 외기 시작한 마술사의 눈이 어둠으로 물들 때였다.

“그렇게 훤히 보이는 곳에 있으면 안 죽여 버릴 수가 없잖아.”

섬뜩한 음성이 귓가에 울려 퍼졌다.

벼락처럼 떨어진 예기를 느낀 순간에 재빨리 회피를 시도했지만 몸의 일부가 허망하게 사라지는 것만은 막을 수 없었다.

“크, 크아악-!”

핏물이 쏟아져 나오는 오른 어깨를 부여잡은 장량의 눈이 떨렸다.

“네놈이 어찌……!”

“뻔히 보이게 하늘로 떠올라서는 무슨 말이야.”

“그럴 리 없다. 그럴 수 없어. 어찌 네놈이…….”

장량은 계속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대책 없이 허공으로 날아오른 것이 아니었다.

장량이 머무는 막사와 그 주위로는 마술사들이 자랑하는 은폐의 장막이 펼쳐져 있었다. 아무리 천안을 가지고 있다 하여도 꿰뚫어 볼 수 없는, 신선들조차 눈앞에서 보고 지나치기가 일쑤인 그 어둠을 꿰뚫고 황준우가 검을 휘두른 것이다.

“부정한다고 현실이 바뀌는 건 아니야. 어쨌든, 알아서 나서줘서 고맙다.”

황준우의 검이 또 한 번 번뜩인다.

동시에 장량의 몸이 모래알처럼 변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호오…… 이런 식으로 움직였던 건가.”

그를 확인한 황준우의 눈이 반짝 빛났다.

여선위와의 싸움에서 몇몇 읽을 수 없던 움직임의 정체가 밝혀진 까닭이다.

실질적으로 육신을 마기로 변화시켜 이동시키는 술법은 가히 대(大)라는 명칭이 아깝지 않을 만큼 놀라운 마술(魔術)이었다.

일반적인 무공이라는 틀 내에서는 황준우의 경지에 이르러서도 감히 사로잡을 수 없는 수준이다.

“내가 굳이 술사들한테까지 무공만 사용해야 할 이유는 없지.”

하나 황준우가 지난 시간 갈고 닦은 것은 무공만이 아니었다.

반쯤 열려 있던 상단전이 개방되고, 정신에 새겨 넣은 팔괘가 공명하기 시작한다. 그중 건괘(乾卦)를 꺼내 들어 하나의 거대한 빛줄기로 형상화시켜 수왕검을 쥐지 않은 왼 손에 휘감아 거칠게 휘두른 순간이었다.

거대한 빛줄기가 그물의 형태가 되어 이제 막 인간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하던 장량의 몸을 단숨에 뒤덮는다.

“……!!”

놀란 장량이 다시금 마술을 부려 모래와 같이 변하려 하였으나, 그물 속에 갇힌 그의 몸은 빛을 내며 변화를 거부했다.

“이건…… 도술도 아니고 선술도 아니거늘 대체 무슨…….”

혼란에 빠진 장량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으며 제 몸을 가둔 빛의 그물을 한 손으로 잡아당긴다. 하나 빛의 그물은 그를 거부라도 하듯 강렬한 빛을 번뜩이며 오히려 장량을 몰아세울 뿐이었다.

“천라(天羅)의 술. 이쪽 방면도 이제 제법 늘었거든.”

“천라의 술? 그런 술이 있던가?”

“글쎄. 궁금하면 저승 가서 염라대왕한테 직접 물어보시던지.”

검이 번뜩였고, 장량의 목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장량의 시신이 허망하게 바닥으로 떨어지고, 천라의 술을 거둔 황준우가 다시 전장을 향하려 할 때였다.

시신으로부터 검은 연기가 흘러나와 하늘로 치솟는다.

등을 돌려 그 모습을 확인한 황준우가 조소를 지었다.

“역시 한 번으로는 안 된다는 말이지.”

그렇다면 이번에야말로 돌아올 수 없을 때까지 죽이면 된다.

결심한 황준우가 움직이려는 순간, 거대한 기운이 내려앉듯 주변을 두들겼다.

전장에 변화는 없었다.

하나 무언가 큰 이변이 생겨났다.

“팔괘술이 정말 많이 늘었더구나. 두 번째는 내 차례다. 진짜 네 몫도 슬슬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으니, 부탁하마.”

전장 곳곳에 숨은 마술사들을 처리하던 신아가 황준우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눈을 가늘게 뜬 채, 무겁게 내려앉은 기운의 시작점을 찾은 황준우가 고개를 주억였다.

“확실히, 저쪽이 더 설레네. 금방 다녀올게.”

“말처럼 해주면 좋겠구나.”

서로를 바라보며 웃은 두 사람이 등을 돌리고는 멀어졌다.

고작 삼십의 인원으로 천마신교의 군세 정 가운데를 뚫고 들어가 학살을 시작한 남천맹 무인들 모두가 보았다.

불안한 느낌을 주던, 정체 모를 마두(魔頭)를 홀로 제압하는 무신의 모습, 그 위용.

잔뼈가 굵다 못해 두터운 서문지언의 가슴마저 두근거리게 하는 전투였다.

화려한 검격이 번뜩였고 빛의 그물이 적을 뒤덮었다.

천하의 무신이 아니면 누가 그런 신위를 보일 수 있을까?

“우리는 승리한다! 무신이 우리와 함께한다!”

“와아아-!”

서문지언의 외침에 다시 한 번 함성이 터져 나왔다.

여유가 남아있던 상황이었지만 그 기세에 더욱 불이 붙었다.

짧은 시간 내에 일천에 가까운 천마신교의 마인들이 학살되었다.

그 전장의 중심, 처음으로 전쟁을 겪는 황서연 역시 떨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전쟁은 무섭고 두렵다.

이 한가운데에 와서야 자신이 얼마나 오만한 말을 했는지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사방을 가득 채운 살기.

튀어 오르는 피.

적과 검만이 그녀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었다.

전장, 그 자체가 그녀를 잡아먹을 듯 달려들고 있었다.

자칫 그 압박감에 무너질 것 같을 때에도 황서연은 이를 악물었다. 스스로가 무인이 되겠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어설픈 짐만은 되고 싶지 않았던 탓이다.

하나 전장이라는 괴물은 시도 때도 없이 그녀의 마음을 집어삼키려 하였고, 짧은 순간 분명 휩쓸리듯 거기에 무너질 뻔했다. 무인이 아닌 광기에 사로잡힌 전사로서 전쟁에 뛰어들려 하였다.

그를 붙잡아준 것이 황준우의 모습이었다.

무신이라 외치는 서문지언의 목소리였다.

눈을 뜨고 주변을 보니 그녀와 같이 광기와 맞서며 무인으로서 전투를 하는 동료들이 보였다. 경호와 홍산도 그녀의 등 뒤에 바싹 붙어 있었다.

“아가씨!”

“아직 적이 많습니다!”

두 사람의 응원이 더해지자 끔찍하게 물들려던 마음이 힘겹게나마 다잡히는 기분이었다.

검을 움켜쥔 황서연은 맑은 눈으로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지지 않겠어.”

이를 악물고, 스스로가 정한 무인의 길을 걸어 나간다.

거대한 동공에 누워 눈을 감은 채 양손을 내뻗고 있던 동탁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의 눈앞으로는 절규, 분노, 공포와 광기 등 무수히 많은 음(陰)의 감정이 하나로 뒤엉킨 기운을 잔뜩 집어삼킨 채, 흉측하게 끓어오르는 관 속의 시체가 있었다.

그 시체가, 마치 살아 있는 인간처럼 스스로 몸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끓어오르는 검은 기운은 마치 살아 있는 벌레처럼 움직여 조금씩 몸을 파고들었다.

[……이……곳은…….]

눈과 코, 입, 오공 중 무엇도 알아볼 수 없는 검은 형상의 일부가 쩌억 하고 벌어지며 괴이한 음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살아 있는 것이 아닌, 죽은 자의 목소리다.

한쪽 귀를 기울여 그 음성을 들은 동탁의 입가로는 미소가 번졌다.

“성공이로다. 크흐흐.”

두 눈을 가리는 어둠을 억지로 치워낸 시체의 시선이 웃음을 흘리는 그를 바라본다.

[동…… 탁…….]

“오냐. 그래. 나다. 네 양아버지 동탁이시다.”

어둠으로 들끓는 몸에서 거대한 기세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구구구-!

단지 그뿐으로 지하 동공이 크게 떨리며 울음을 토했다. 무거운 기운이 지상까지 번져 나가며 하늘을 놀라게 한다.

[죽인…… 다.]

서늘한 음성과 함께 쏟아질 것만 같던 기운은 갑작스럽게 모두 흩어졌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자신의 양손을 바라본 검은 기운을 휘감은 인영의 눈이 동탁을 향했다.

“크하핫! 뭘 그리 놀라느냐. 지금 네 인계의 육신은 이 몸이 마련한 것. 설마 아무런 대비도 없이 네놈을 불러 왔을 것이라 생각한 게냐. 여포 봉선이여! 결국 너는 죽은 뒤에도 이 몸의 충실한 종일 뿐이다. 푸하하!”

큰 웃음을 토하는 동탁의 말에 인영, 여포의 손끝이 떨렸다.

기운은 몇 번이고, 또 몇 번이고 폭발할 듯 동탁을 향해 솟구치다 사라진다.

[과…… 연…….]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여포가 불쾌한 표정을 얼굴 가득 떠올리려 했다.

하나 완전히 동탁의 지배하에 놓인 육신은 그 뜻조차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쓸데없는 의지는 필요 없다. 네놈은 먼 과거와 같이 그저 시키는 대로 짖으라면 짖고, 따르라면 따르면 될 뿐이다.”

[죽인…….]

분노하는 여포의 머리 위로, 동탁의 거대한 손이 떨어졌다.

쿠구구궁-!

동시에 지하동공을 뒤흔드는 마기가 또 한 번 출렁였다. 거칠게 반항하던 여포의 움직임도 어느 순간 멎기 시작했다.

[으으으…….]

괴로움에 신음을 흘리던 여포의 머리 위로 회색빛 혼백이 떠오르고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들끓던 검은 기운 역시 가라앉았다.

그 속으로부터 나타난 얼굴은 분명 천마, 용중호의 얼굴이었다. 하나 그 얼굴도 잠시일 뿐, 곧 괴이한 소리와 함께 용중호의 얼굴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새로운 얼굴이 떠올랐다.

“흐음…… 오랜만에 보는 아들 얼굴인데, 기억은 잘 나게 해줘야지 않겠느냐.”

이때가 되어서야 흡족한 듯 손을 놓은 동탁이 한 걸음 물러섰다.

“아차, 중요한 것을 빼 놓을 뻔했군.”

방금 전까지 여포의 육체가 누워 있던 관의 아래쪽에서, 두터운 방천화극을 직접 꺼내 들어 건넨 동탁의 눈이 빛났다.

“지상으로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 어리석은 삼국의 무신이여.”

그 말에 화답하듯, 이지를 잃은 여포의 눈에서도 검은 흉망이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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