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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210화 (210/373)

학사재생 210화

제 210화

“저 빌어먹을 양아들 놈을 찔렀다고?”

동탁은 미간을 크게 찌푸렸다.

마왕의 상식으로도 여포의 무(武)는 가히 불가해에 가깝다.

그를 홀로 막아선 것만 하여도 놀라울 지경이거늘 어느 순간 쫓아가서는 어깨에 검을 박아 넣었다.

믿을 수 없게도, 격전 속에 성장하는 천재란 것이 실제로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크흐, 크흐흐…….”

입가로는 웃음이 흘렀다.

너무 기쁜 나머지 앙천대소를 터트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혀끝으로 입술을 핥는 동탁의 마음속에는 탐심(貪心)이 가득 찼다.

“저런 괴물이라면 가히 내 지배의 권능을 모두 할애해서라도 손에 넣을 가치가 있지 않은가.”

말은 그리했지만 실제로 권능을 펼치는 데 모든 힘을 쏟을 필요도 없을 터였다.

동탁이 가진 지배의 권능은 그야말로 마왕의 격에 맞는 무시무시한 힘이다.

아무리 대단한 고수라 한들, 엄청난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쉽게 벗어날 수 없다.

특히 업보(業報)의 율에 의하여 악업(惡業)을 많이 쌓은 자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대다수의 강호인이란 늘 어쩔 수 없이 악업을 쌓으며 살아간다.

“네놈의 살업(殺業)이 얼마나 되는지 기대되는구나.”

웃음을 흘린 동탁이 손을 크게 휘젓자, 격전을 벌이던 여포가 뒤로 크게 물러나 그의 옆에 섰다.

몸 전체에 열기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한참이나 승부에 몰입하던 황준우가 미간을 크게 찌푸렸다.

“뭐하는 짓이야. 한참 즐거운데.”

“흐흐, 세상만사 즐거운 일이란 것이 어디 이뿐이겠느냐. 더 즐거운 것도 가득하거늘. 강압적으로 시도할 수도 있겠지만, 네놈이 쌓은 무에 대한 찬사의 뜻으로 기회를 주마. 어찌, 이 몸의 밑으로 들어올 생각은 없느냐?”

찌푸려졌던 황준우의 미간이 더욱 크게 일그러졌다. 하나 곧 입가로는 조소가 흘렀다.

“내가 살다 보니까 말이야. 음, 그러니까 네놈까지 보면서 깨달은 것이 생겼는데 뭔 줄 알아?”

“흐으…… 글쎄다.”

“시체 좋아하는 뚱땡이 치고 나랑 잘 맞는 놈이 하나도 없다는 거지. 그러니까 얌전히 죽어라. 미친 마왕 자식아.”

황준우의 신형이 제자리에서 번쩍이며 사라졌다.

마왕의 좌를 선사 받으며 제법 육체능력이 강화된 동탁으로서도 쫓을 수 없는 움직임이다.

하나 결국에는 막힐 수밖에 없다.

그의 바로 옆에는 어찌 됐든 무력이라는 측면에 있어 고금을 통틀어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삼국의 무신이 자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푸흐흐, 결국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택하겠다면야, 어쩔 수 있겠느냐.”

눈앞에서 번뜩이는 검날을 보면서도 여유롭게 웃음을 흘린 동탁의 손이 번쩍 들어 올려졌다.

동시에 남천맹의 군세에 의하여 이리저리 휘둘리던 불사군대가 미친 듯이 전방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

갑작스러운 병력의 움직임에 황준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되도록 피해 없는 싸움을 만들고 싶었지만, 이리된다면 결국 대 부대 간의 전쟁이 또다시 벌어질 수밖에 없다.

“무슨 수작이야?”

갑작스러운 동탁의 행동 변화에 흘린 말이지만 답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피와 어둠, 그리고 공포는 마왕의 힘이니…….”

예상외로 제법 친절하게 답한 동탁의 손길이 황준우의 어깨 위로 닿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반응을 하고자 하였지만 여포가 그를 쫓는 움직임이 끈질겨 결국 틈을 내주고 만 것이다.

“어디 한 번 네 밑바닥을 보자꾸나.”

동탁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검은 기운이 끈적끈적하게 황준우의 신형 전체를 휘감았다.

“……!!”

갑작스럽게 온몸이 무력해지는 감각에, 머리가 아찔해지는 것을 느낀 황준우의 몸이 휘청였다.

“무슨…….”

황준우는 당황했다.

지금 동탁의 몸에서 펼쳐지는 것은 무공도, 술법도 아니었다.

그보다 상위의 무언가가 제멋대로 황준우를 억누르려 하고 있었다.

의지를 빼앗고 강제하려 한다.

“누구…… 마음대로……!”

이를 악문 황준우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전신에서 핏줄이 가득 일어나며 동탁의 손을 떨쳐내려 한다.

그 결과, 거칠게 손을 휘둘러 동탁을 떨어트린 황준우가 숨을 몰아 내쉬었다.

“후욱…….”

“호오, 과연. 그 와중에도 스스로의 의지를 발하였는가. 놀랍구나, 놀라워.”

동탁은 진심으로 감탄한 표정이 되어 제 손과 황준우를 번갈아 보았다.

한 번 발동된 지배의 권능에서 이토록 빠르게, 그리고 쉽게 벗어난 이는 현재까지는 눈앞의 황준우가 처음이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바뀔 것은 없었다.

“이미 이 몸의 마력이 네게 주입되었다. 한번 엮인 마왕과의 악연은 질긴 법이지.”

동탁의 손 끝자락에 실처럼 이어진 검은 기운이 황준우의 전신을 휘감아 어깨와 머리 위로 솟아오른다.

그 실 가닥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손아귀에 휘어 감아 부여잡은 동탁의 눈에서 이채가 터져 나왔다.

“호오…… 네놈, 생각보다 마성(魔性)이 짙구나. 혹시 협의니 뭐니 하여 업을 크게 덜은 괘씸한 경우일까 걱정했거늘…… 대체 얼마나 많은 살인을 저지른 게냐. 고작 그 나이에 쌓을 수 있을 수준이 아닌 것으로 보이거늘.”

“닥쳐.”

입술을 깨문 황준우의 신형이 다시 한 번 앞으로 뛰쳐나왔다.

목 끝에 닿는 섬뜩한 감촉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동탁의 앞을 다시 한 번 여포가 막아선다.

“이렇게까지 하고도 움직일 수 있다고? 이만한 악업을 쌓고도? 아니, 오히려 살업이 너무 짙은 탓인가?”

홀로 중얼거리던 동탁이 눈을 부릅떴다.

무언가를 크게 깨달은 듯 경악한 그가 황준우를 보며 떨리는 음성을 흘렸다.

“네놈, 다음 마왕의 좌였느냐?”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돼지 놈아.”

“푸흐흐…… 후흐흐흐, 이 무슨 행운이란 말인가?”

황준우의 거친 음성과 함께 이어지는 공격에도 동탁은 여유롭게 웃음을 흘렸다.

아니, 이번에야말로 앙천대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 네놈만큼은 꼭 내가 가져야겠다!”

마침 불사군대와 연합군 간의 전쟁이 시작되는 기척이 느껴졌다.

피가, 분노가, 공포가, 절규와 비명이 여포를 강신시키며 많은 힘을 사용했던 동탁의 정신을 충족히 채워주었다.

“굴복하라!”

검은 기운이 폭발하듯 황준우의 전신을 감쌌다.

“으아아-!”

비명이 전장 곳곳으로까지 크게 울려 퍼졌다.

불사군대가 남천맹 연합군을 무시한 채 돌진하여 연합군과 정면 격돌을 벌였다.

중심을 꿰뚫어 단숨에 후미까지 잡았으나 적의 수뇌라 할 만한 이들을 몇 잡지 못한 남천맹 선발대는 이를 악물며 다시 적의 중앙을 향해 돌진했다.

이동하는 전장을 쫓는 남천맹 선발대는 지치지도 않는, 무적의 군단과도 같아 보였다.

“적이 죽지 않는다면, 우린 불패(不敗)한다! 싸워라, 싸워서 승리를 쟁취하라!”

단숨에 중앙을 꿰뚫어, 연합군 진영 측에 합류한 서문지언이 소리치며 기운을 폭발시켰다.

순식간에 정면에 있던 천마신교의 불사군대 중 수십이 가루가 되어 흩어진다.

우내십존 중 그 누구도 흉내 내지 못했던 경악할 만한 위용이다. 심지어 그뿐만이 아니었다.

적진을 휘젓느라 온몸이 피로 젖은 남천맹의 정예 선발대 모두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불사군대의 무인이 가루가 되어 쓰러져 나갔다.

도저히 쓰러트릴 수 없을 것 같던 적들이 농부의 낫에 걸린 갈대처럼 쓸려나간다.

뒤를 이어서 쏟아져 나온 남천맹 무인들 역시 지치지 않은 표정으로 힘을 내며 싸워나간다.

그들 모두가 처음 선발대와 같이 홀로 적을 가루 낼 수 있는 실력자는 아니었으나, 하나 된 마음은 기대 이상의 위용을 보였다.

한 사람이 목을 베면 다른 사람이 다리를 벤다. 다리를 베는 사람만으로 부족하면 어깨를 베는 사람이 추가된다.

그야말로 열 손으로 한 손을 막더라도 필사적으로 싸우는 그들의 모습에, 짙어지는 패색(敗色)에 사기가 밑바닥까지 떨어졌던 연합군 전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혼자가 안 되면 둘, 둘이 안 되면 셋, 그것으로도 모자라면 다섯, 여덟이 힘을 합쳐서 적을 베면 된다.

투기를 불태우는 남천맹 무인들의 모습이 모두의 가슴에 장작을 던져 넣었다.

거기다 불씨를 일으킨 것은 다름 아닌 무림맹주 운백이었다.

“싸워라, 동도들이여! 무림의 평화는 언제나 누가 지켜왔는가!?”

“무림맹!”

“강호의 안녕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무림맹!”

“남천맹 애송이들에게 강호의 용사가 누구였는지를 알려주자!”

평소에 비해 몇 배나 더 불타오르는 듯한 무림맹 수뇌들의 합창에 이어 기세가 더욱 크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여전히 적들은 두려웠다.

힘이 달렸고 너무나 무서웠다.

하나 마음속에 절망이라는 단어만은 새기지 않았다.

모두가 하나 된 듯 승리를 향한 집념을 불태울 때였다.

“끄아아악-!”

전장을 뒤흔드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누군가는 그 엄청난 크기의 음성에 놀랐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음성에 실린 힘에 경악을 토했다.

그리고 몇몇 이들은 목소리의 주인을 떠올리며 비명을 내질렀다.

“오빠!”

“도련님이 맞죠!?”

전장이라는 괴물에 맞서 마음을 다잡고 싸워나가던 황서연이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바로 뒤편, 황서연을 보좌하듯 검을 휘두르던 경호가 물었다.

“저도 주공의 목소리라고 느꼈습니다.”

홍산마저 동의했다.

세 사람은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오빠가 위험해.”

“도련님이…….”

말도 안 된다.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 일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천하의 황준우가 비명을 토한다고?

걱정과 함께 불안이 마음속에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만약 도련님이 진다면…….”

경호의 작은 읊조림에 떨리는 손길로 자신의 왼쪽 어깨를 몇 번이고 두드린 황서연이 고개를 내저으며 크게 소리쳤다.

“그럴 리가 없잖아!”

“아가씨?”

“그럴 리가 없다고! 경호 아저씨, 우리 오빠 몰라?”

“아, 알죠.”

“패배할 리 없어. 죽을 리 없어. 쓰러지지 않아. 적이 불사라면, 우리 오빠는 무신이라고!”

붉은 눈가 끝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황서연이 검을 강하게 움켜쥔다.

그를 조금은 놀란 눈으로, 새삼스럽게 바라본 홍산이 고개를 주억였다.

“맞습니다. 주공은 무신이시지요.”

“나 따위는 너무 약해서 어떻게 해도 도움이 안 될 정도로 무지막지한 무신이니까. 그러니까, 믿자.”

“아가씨…….”

전장을 휘저으며 탁하게 물든 황서연의 입술 아래로 선홍빛 핏물이 흘렀다.

적의 것이 아니다.

황서연이 스스로 입술을 깨물어 배어 나온 본인의 피다.

“믿어주는 일밖에 할 수 없는 내가 너무 싫다. 그래도, 여기서 우리가 쓰러지면 안 되니까. 가서 짐만 되는 건 더 말도 안 되니까. 이기자. 오빠도 이길 테니까.”

“알겠습니다.”

경호가 감격한 눈으로 고개를 주억였다.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준다.

어쩐지 모르게 감정이 벅차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지만 참아냈다.

“우리는 우리의 승리를 도련님께 선물해야죠.”

세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한데 엮여 단단한 마음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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