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재생-226화 (226/373)

학사재생 226화

제 226화

2. 금의위무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고작 며칠 사이 황준우 아니, 서강은 무과의 시험에 급제한 인물이 되어 금의위 위사로 발탁되었다.

“이름은?”

“서강.”

금강각(金强閣).

금의위 위사들이 머무는 거처로 다가간 황준우의 말에, 정문을 지키던 위사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황녀 마마의 추천으로 들어왔다는 애송이가 바로 네놈이구나.”

“애송이는 아니고. 보는 눈이 없다면 그리 비칠 수도 있겠지만.”

쓰고 있던 죽립을 살짝 들어 올려, 명백하게 비아냥대는 정문의 위사와 마주한 황준우의 입가로 조소가 떠오른다.

“건방진 놈이! 예가 네놈이 떠돌던 낭인 바닥과 똑같다고 생각하는 게냐!”

과연 금의위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속도로 발검한 위사가 순식간에 황준우의 등 뒤를 점했다.

하나 더 이상 발걸음을 떼지도, 팔을 내뻗지도 못한다.

언제인지도 모르게 뽑혀져 나온 황준우의 검이 위사의 목젖 바로 앞에 닿아있는 탓이었다.

“……!!”

“요즘 금의위는 무공 실력이 아니라 혓바닥을 얼마나 잘 놀리냐로 뽑는다고 하더니, 과언이 아니었군.”

놀라는 위사를 향해 비릿한 웃음을 보인 황준우가 검을 거두고는 앞으로 걸어나간다.

완벽하게 등을 보인 그 자세에 분노한 위사가 붉은 얼굴로 일갈을 내질렀다.

“이놈!”

진한 살기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등을 향해 떨어지는 검에는 타오르는 듯한 강기가 확연하게 솟아오른다.

황준우는 그를 여전히 돌아보지 않았다.

먼저 나선 위사와 황준우의 대화를 바라보던 또 다른 금의위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손을 뻗는 순간, 타오르는 강기가 황준우의 정수리 위에 맞닿은 듯했다.

그와 동시에 붉은빛의 기운이 폭발하듯 주변으로 터져 나갔다.

“……!!”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를 붉은빛의 기운이 타오르는 듯한 강기를 집어삼킨 이후 경악한 두 눈을 한 위사의 검마저 잘라 버린다.

화려한 붉은빛의 기운과 강기의 충돌이 끝난 금강각 주변으로 손잡이를 잃은 검날이 떨어졌다.

“…….”

침묵이 흘렀다.

“형편없어.”

여전히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콧방귀를 뀐 황준우가 그 적막을 깨고는 앞으로 걸어나간다.

금강각 정문에서 그를 바라보던 금의위 위사가 빠르게 황준우의 앞으로 다가갔다.

“대단해, 석 조장을 완전히 압도해버렸구먼. 내 이름은 마필일세. 자네가 속할 팔(八)조 조장이나, 그냥 편하게 마 조장이라고 불러주게.”

웃는 얼굴로 말하는 그를 바라보는 황준우의 눈이 가늘게 휜다.

“그러지, 마 조장.”

“음…….”

그러라고 하였지만, 곧장 해내는 황준우를 보며 마필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성정이 다소 오만하군. 황녀 마마가 기대하시는 것은 알겠지만 이래서는 주변과 어울리기 힘들 텐데…….’

무공 실력 하나만큼은 금의위무를 펼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사실은 잘 알겠다.

하나 금의위무에 참가할 자격을 얻는 것은 또 별개의 일이다.

자연스럽게 시선에는 걱정이 묻어났다.

“부탁 하나 하지.”

금강각의 문을 열기 전,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는 마필을 향해 황준우가 말을 건넸다.

“앞으로는 더 이상 이런 식으로 날 시험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굉장히 불쾌하거든.”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마주한 황준우가 다시 한 번 웃음을 보였다.

그 순간 마필의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두 눈을 파고드는 섬뜩한 기운은 심장까지 전달된다. 상상도 못 할 어마무시한 무언가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이 사내…….’

마필의 생각이 정리되기도 전 금강각의 문이 열렸고, 갑작스럽게 금의위에 합류하게 된 새로운 인물의 소식에 호기심을 기울이고 있던 금의위 위사들 모두의 시선이 황준우에게로 향했다.

그 중, 유달리도 적의가 가득 담긴 시선.

금강각 이 층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들과 잠시 눈을 마주친 황준우의 입가로 미소가 떠올랐다.

“낯설지 않은 기분이야. 금의위 생활은 아주 재밌겠군.”

열렸던 금강각의 문이 닫혔다.

금강각의 이 층.

자신을 따르는 부장, 조장들과 함께 금강각의 문을 열고 들어선 사내를 바라본 무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서강이라고 했던가?”

“예. 십 년 전 무과시험에 급제하였으나 어째서인지 입관하지 않고 바깥세상을 떠돌았다고 하더군요.”

“혁 부장은 그 말을 믿나?”

“그럴 리가요. 황녀가 급하게 만든 가짜 인형이겠지요. 어찌 뒤를 조금 알아볼까요?”

“아니, 됐다.”

조소를 보인 무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 영악한 황녀가 쉬운 단서를 남겼을 리가 없지 않느냐.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느니, 곧 있을 금의위무에 만전을 기하는 게 좋겠지.”

무호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주연하가 무슨 생각으로 금의위에 새로운 인물을 집어넣었는지는 모르나 헛된 일에 불과하다.

‘고작 낭인 출신 무인 하나가 금의위무를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만약 그리 보았다면 주연하는 정말 큰 착각을 했다.

금의위에 대해서 정말 바깥에 알려진 정도밖에는 모른다는 뜻이다.

결국 무엇도 바뀔 것은 없다.

‘나는 대영반이 된다.’

‘승상이 될 것이다.’

주먹을 움켜쥐는 무호의 눈에서 야욕이 타올랐다.

“여기가 자네가 머물 곳일세.”

방은 이름 높은 금의위 위사가 머무는 곳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초라했다.

화려한 장식 하나 없는 것은 물론, 공간도 협소하며, 그 흔한 목침대조차 보이지 않았다.

“조금 그렇지? 그래도 참게. 바깥에 있는 다른 병사들은 제 방 하나도 없으니 말이야.”

마필이 조금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쁘지 않아.”

황준우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주억이고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다소 협소하고 초라하지만 상관없었다.

한동안 제법 화려하게 살아온 만큼 어색해진 풍경이지만, 한때는 이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도 생활했었다.

못 버틸 것도 없다.

사실 무인에게는 발 뻗고 잘 자리와 자신의 무기, 그리고 연무장만 있다면 장소는 어떻든 상관없는 것이 당연했으니 말이다.

“하긴, 낭인이라고 했지.”

마필은 그런 황준우의 모습이 거친 낭인 생활 덕이라고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짧게나마 느낀 거친 기세에 저도 모르게 몸이 긴장하고 있던 탓일 터였다.

“들어와.”

황준우가 그런 마필을 향해 말했다.

“마마께서 내게 전하라 한 이야기가 있었을 것 아냐?”

“아, 그렇지.”

황준우의 말에 마필이 고개를 주억였다.

확실히 어떤 이야기든 바깥에서 떠들 종류는 아니었다.

방문이 닫혔다.

그렇다고는 해도 완전히 조용한 것은 아니었다.

주변에서 수련 혹은 휴식을 취하는 금의위 무사들의 기합 소리 혹은 잡담 소리가 웅성대듯 들려온다.

“우선 현재 금의위 상황에 대해 설명해 주겠네.”

자연스럽게 마필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혹시나 말이 새어나가서 좋을 것은 없을 테니 말이다.

하나 곧 마필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변이 조용해졌어.’

조금쯤 정신을 사납게 하던 잡소리가 순식간에 모두 꺼졌다.

마치 세상과 단절된 것 같은 기묘한 기분.

마필은 이와 같은 현상을 단 한 번 겪어본 적이 있었다.

“풍막?”

화등잔만 해진 시선에는 경악이 담겼다.

“비슷하지만 달라. 뭐, 참고해서 만든 건 사실이지만.”

“이럴 수가! 자, 자네는 대영반께서 남긴 후인(後人)인가?”

기껏 건넨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 마필이 물었고, 황준우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랬군. 그랬었어!”

작은 오해가 생겼지만 나쁘지 않다.

황준우는 여전히 입을 닫은 채 그의 감탄을 지켜보았다. 현재 그가 풍혁기의 제자로 보일 수 있다면 그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탓이었다.

‘연하가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는 했지만, 앞일은 모르는 거니까. 배신할 수 없을 만한 이유를 잔뜩 만들어 두는 일은 좋지.’

다소 과하게 무공 실력을 보이고, 기세를 보인 것도 그 때문이다.

당장은 주연하를 돕고 있는 마필이라지만, 제 목에 검이 들어오면 태도가 변할 수도 있다. 하니 황준우가 결국 금의위의 정상에 설 것임을 의심치 않게끔 보여주어야 한다.

혹시라도 흔들릴 수 있는 마음을 확실히 다잡는 것이다.

“자네가 정녕 대영반의 후계자라면 내 걱정이 모두 무의미하겠군. 해낼 수 있어.”

주먹을 움켜쥔 두 눈동자에는 희망이 가득 차오르는 듯했다.

“아, 내가 너무 흥분했었군. 미안하네. 정말 기대 이상의 일이라.”

“괜찮아.”

황준우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 했더라.”

“현재 금의위 상황. 그리고 금의위무까지 남은 시간. 준비해야 할 일.”

“아아, 맞아. 작금의 상황부터 말해 주려 했지.”

다소 흥분한 것 같던 표정을 가라앉힌 마필의 시선이 진중해졌다.

“현재 금의위는 따지자면 총 세 개의 조직으로 분할되어 있다고 볼 수 있네.”

“그렇지. 대영반께서 제자리에 계실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인데…… 고작 며칠 사이에 이게 무슨 꼴인지.”

“흠…….”

“알다시피 그중 제일 세력이 강한 측은 무호 부장을 따르는 무호 파(派)일세. 대영반께서 사라진 지금 그의 무공 실력은 명실상부 금의위 제일. 게다가 따르는 이들 중에는 같은 부장급인 혁진오도 있네.”

“부장 하나당 조장 열이 배정된다고 했던가?”

“그렇지. 하니 무호 부장을 따르는 금의위 숫자만 이백은 된다고 봐야 되는 걸세.”

따지자면 금의위 조장이 일반 병사 체계에 있어 십부장, 부장의 경우 백부장이라 볼 수 있었다.

“우리 금의위 전체 인원이 오백을 조금 넘으니, 절반에 가까운 이들이 무호 부장을 지지한다고 볼 수 있네.”

“어째서 절반이 되지?”

오백 중 이백.

확실히 가깝다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남은 삼백의 인원이 월등히 많다.

어찌 보자면 절반과는 거리가 멀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게, 나머지 삼백 중 또 과반수에 해당하는 이백, 그러니까 두 명의 부장이 중립파에 위치한 탓일세.”

“중립파?”

“대영반의 자리에 누가 오르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지. 금의위의 임무는 황제 폐하의 보호, 나아가 황실 수호일세. 한데 얼마 전 폐하께서 승하하실 때 누구도 곁을 지키지 못했지. 자연스러운 병사(病死)라는 이야기도 있으나, 흉수가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은 상황 아닌가?”

“대충 이해할 것 같군.”

그런 상황에 대영반마저 암살당했다.

황실을 수호하는 최고의 무력대라는 금의위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자괴감까지 느껴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쓸데없는 권력 다툼에 끼어들기보다는 폐하와 대영반을 지키지 못한 일에 대한 회개와, 다소 나약하게 보일 수 있는 금의위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그분들의 생각일세.”

“사실상 진짜 금의위를 위하는 인물들이라 봐야 되겠군.”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분들이지.”

“흠…….”

신음을 흘리는 황준우의 눈빛이 가라앉는다.

머릿속에는 현재의 상황이 확실히 정리되어 간다.

말이 중립파이지, 그런 성정을 가진 이들이라면 금의위가 쓸데없는 사건으로 시끄러워지는 것은 원치 않을 터였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