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재생 227화
제 227화
결국 중립파는 가장 분란 없이 금의위가 통합되는 길, 정황상 대영반에 가장 가까운 인물의 편에 서게 될 것이다.
“결국 중립파까지 합치면 무호에게 사백인가. 자신만만할 법도 하군.”
이백이 사백으로 증가하며, 절반을 아득히 압도하는 숫자가 되었다.
현재 금의위 제일이 분명한 무공에, 금의위무의 후보로 첫째에 뽑힐 지지율.
사실상 다음 대영반으로서 확정되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마지막 하나는?”
“백균 파일세.”
묘한 쓴웃음을 흘리는 것이 그 역시 황녀의 편은 아닌듯했다.
“백균. 어떤 인물이지?”
“나도 잘은 모르네.”
“잘 모른다고?”
“귀천하신 대영반께서 직접 부장으로 선출하셨으나, 딱히 특출한 모습을 본 적은 없네. 직접 나서는 일도 적었고 말일세. 다만, 백균 부장이 아주 오래전부터 무호 부장을 싫어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네. 딱히 금의위 일에도 관심이 없어 보이던 그가 무호 부장의 독주를 보다 못해 다음 금의위무에 나선다고 선언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지.”
실제로 드러난 것은 없지만 풍혁기가 아무런 연유 없이 부장의 자리를 내어주었을 리는 없다. 또한 금의위 제일이라는 무호에게 도전장을 내민 만큼 감추고 있는 한 수가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터였다.
“이번 금의위무는 두 사람이 치르게 되리라는 의견이 거의 확정적이네. 금의위무에 참가하기 위한 최소 자격인, 위사 팔십 명의 지지는 어찌 됐든 둘 모두 충족할 테니 말일세.”
“그렇군. 만약 거기에 내가 껴서 금의위무에 참가하는 후보가 셋이 되면 어떻게 되지?”
“아마 자네와 백균 부장이 먼저 대결을 하고, 이후 승리한 측이 무호 부장과 마지막 승부를 겨루게 되겠지. 또한 그 승부가 하룻밤 이상 길어지게 되면 더 많은 금의위 위사의 지지를 받는 측이 대영반으로 결정되네.”
더 많은 지지를 받는 만큼 주어지는 혜택이다.
앞으로 금의위를 이끌 대영반을 뽑는 자리인 만큼 당연한 권리로까지 느껴졌다.
“흠…… 팔십 명이라.”
황준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조장은 중립 파인가?”
“맞네.”
“한데 마마의 편을 드는군.”
중립파에 속한 부장들은 괜한 분란을 원하지 않는다.
작금 마필의 행동은 스스로 존경한다고까지 말한 그들의 뜻에 완전히 반하는 일이었다.
“나는…… 마마에게서 빛을 보았네.”
“보통 천자께서는 하늘의 뜻을 타고난다고 하지 않나? 내가 처음 마마를 보았던 날 느꼈던 그 충격, 비추던 휘광은 마치 그 하늘의 뜻 같았네. 이 분이라면 우리 대 명을 가장 밝은 길로 이끌어 줄 수 있을 것이다. 확신을 한 게야.”
황준우로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금의위 팔 조장 마필이 주연하를 몇 번이나 보았을까?
가까이서 보기는 했을까?
아마 모두 힘든 일이었을 터다.
기껏 해봐야 멀리서 말 한두 마디를 섞었을 확률이 높았다. 한데 그의 눈빛에는 기이할 정도의 열망이 가득 느껴졌다.
그가 무엇을 보았는지는 모른다.
다만 주연하가 보인 위엄에 크게 감화되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사람이란 정말 알 수가 없단 말이지.’
작은 행동, 표현, 말투로 상대에게 이토록 큰 감정을 전달하고는 한다.
주연하 본인은 그를 자각하고 했을까? 아니면 무의식중에 발현된 본능일까? 어느 쪽이든 그녀가 군주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저도 모르게 황준우의 입가로 옅은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적어도 되도 않는 녀석을 밀어붙이는 건 아니어야지.’
자그마치 황제다.
친우라 한들 자격이 없는 이를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일 만한 자리가 아닌 것이다.
“자네도 나와 비슷한 것을 느꼈지 않나? 그분을 더 가까이서 지켜보았지 않은가?”
“아마도.”
웃음을 감추지 않은 황준우가 고개를 주억였다.
“웃을 줄도 아는군.”
“그러게.”
황준우가 아닌 서강을 연기하기 위해 보이던 모습들이 짧은 시간 제법 무너졌다.
하나 여전히 이 자리에 있는 그는 서강이어야 한다.
빈틈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
“그래서, 마 조장을 제외하고 나를 도울 수 있는 이들이 몇 명 정도 있지?”
“그게…… 원래는 조장 다섯 정도가 더 있었네만…….”
마필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있었지만?”
“모두 그냥 시대의 흐름을 따르자며 중립파에 완전히 의탁했네.”
“그래서 설마 마 부장 혼자만 남았다는 건 아니겠지?”
금의위무에 참가하기 위한 최소 자격.
금의위 위사 팔십 명 이상의 지지.
마필의 조원 열 명이 모두 동의한다 하여도 한참이나 거리가 먼 이야기다.
“혼자는 아니고, 조장 하나가 더 있네.”
“…….”
“또…… 잘 찾아보면 황녀 마마를 동경하는 위사 하나, 둘쯤은 더 있을 수도 있네.”
“그만.”
잘해 봐야 스무 명 내외.
그 숫자를 머릿속에 각인한 황준우가 턱을 쓰다듬었다.
금의위무에 참가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무호 혹은 한 수를 감추어둔 백균이 나서도 그가 패배할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육십이나 부족하다라…….”
만일의 오차에 대비한다면 적어도 팔십은 더 있어야 한다.
“못해도 부장 하나를 이쪽으로 끌어들여야 된단 건데…….”
“계획은 있네.”
“자네는 대영반의 전인 아닌가.”
분명한 오해지만, 이용할 수 있다면 그도 좋다.
실제로 황준우는 풍신공을 익히지 않았지만 풍혁기의 무공을 어느 정도 흉내는 낼 수 있었다.
무엇 하나 가리지 않고 모든 자연지기를 다룰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중립파 부장 분들 역시 아직 그분을 잊지 못하고 계시네. 자네가 나서서 그분의 전인임을 밝히면 의외의 좋은 결과가 찾아올 수도 있어.”
처음 황준우가 풍혁기의 제자라고 착각했을 때, 마필의 얼굴이 들떴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흐음…….”
황준우는 다시 한 번 턱을 쓰다듬었다.
“그럴까?”
눈빛에는 의혹이 떠오른다.
“확신하네. 그분들의 지지를 얻게 되면 금의위무 후보에 오르는 것은 따 놓은 당상이야!”
“뭐, 해보지.”
어차피 밑져야 본전.
그렇게 생각한 황준우가 몸을 일으켰다.
“나는 더 이상 금의위가 복잡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헛소리나 지껄일 것 같으면 썩 물러가라.”
엄숙한 얼굴을 한 중립파 부장, 적호는 두 사람에게 명백한 축객령을 내렸다.
자연스레 황준우의 시선이 마필을 향했다.
“큼큼. 적호 부장은 본래 조금 고집이 센 인물일세. 애초에 나와 인연이 얼마 없기도 하고 말이야. 조문영 부장께서는 평소 나를 많이 아끼셨네. 충분히 이야기를 들어주실 게야.”
호언장담을 한 마필을 따라, 두 사람은 조문영의 방으로 향했다.
적호의 방도 그랬지만, 확실히 부장의 방은 일반 위사와는 달랐다. 마찬가지로 무슨 장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더 넓고 편안한 분위기랄까. 가볍게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에도 의미가 있었다.
“……그렇게 된 겁니다.”
제법 길었던 마필의 이야기가 끝이 나고, 조문영의 시선이 황준우를 향했다.
“서강이라고 했던가?”
“그렇다.”
“……!!”
놀란 마필이 황준우를 보고는 팔을 크게 내저었다.
눈앞에 있는 조문영은 금의위 부장들 중에서도 최고령자다. 가장 오래도록 풍혁기를 옆에서 따랐으며, 그만큼이나 다른 금의위 위사들이 보내는 신뢰도 깊었다. 만약 그에게 무공의 재능까지 있었다면 무호는 다음 대영반을 꿈도 꾸지 못했을 터였다.
“자신만만해 보이는 모습이 보기 좋군. 젊을 때의 혈기란 것이 난 싫지만은 않아. 또한 나 역시 황녀 마마에 대해 꽤나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편일세.”
“하면……!”
마필이 반짝이는 눈으로 조문영을 바라보았다.
“하나 나 역시 적호와 같은 답변을 줄 수밖에 없을 것 같군. 각자의 사정으로 개인적 열망을 쏟아내는 것까지 막을 생각은 없으나, 부장인 나마저 중심을 잃을 수는 없는 일이야. 금의위란 본디 언제나, 어디서 그 무엇보다 황실을 우선시해야 되는 법일세.”
황제도 아니고, 황자도 아니다.
황실 우선.
중립파라는 위치답게,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 수 없다는 뜻이다.
“마음속 응원밖에 건네지 못해 미안하네.”
그렇게 조문영은 흐릿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배웅하는 조문영을 뒤로하고는, 문을 닫고 방 밖으로 나온 마필이 헛기침을 흘렸다.
“크흠…….”
“변한 것이 없군.”
“음, 음.”
“아니지, 변한 게 있긴 하군. 여기저기 정보를 흩뿌리고 다닌 셈이지.”
물론 딱히 중요한 정보는 아니다.
황준우가 풍혁기의 전인이라는 소문이 퍼져나간다면 오히려 다른 기회가 올 수도 있는 일이다. 여전히 그를 그리워하는 위사들이 황준우를 향한 지지를 보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마필의 입장에서는 정말 예상도 못 했던 경우라고 할 수 있었다.
“……미안하네.”
“뭐, 미안할 것까진 없고.”
이쪽도 제법 놀리는 재미가 있다.
덕분에 저도 모르게 본성이 튀어나오려던 것을 억지로 억누른 황준우가 턱을 쓰다듬었다.
“금의위무가 시작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이제 보름 정도…….”
“얼마 남지 않았군.”
팔십이나 되는 인원의 지지를 모으기에는 확실히 짧은 시간이다.
마필의 얼굴에는 자연스레 짙은 그늘이 드리웠다.
“역시 부장 하나를 끌어들이는 게 제일 빠른 방법인데…….”
중립파 부장들의 심지는 결코 휘지 않을 것이 눈에 보였다.
표현법은 조금 다르지만, 결국 두 사람 모두 차라리 부러지는 것을 택할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하지? 더 이상 떠오르는 방법이 없네.”
암담한 얼굴로 발을 동동 구르는 마필을 보며 저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한 황준우가 어깨를 두드렸다.
“뭐, 너무 걱정 말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야지. 우선 하던 일이나 계속하자고.”
“하던 일?”
“여기저기 나에 대한 정보를 뿌리고 다니는 일 말이야.”
“하지만 그건…….”
보통 정체란 어둠 속에 감춰져 있을수록 유리하다.
마필이 가진 상식이란 것은 그러했다.
하나 이번 일에 있어서만큼은 이미 말한 바 있듯, 전혀 경우가 달랐다.
알려져서 좋을 일도 있다.
일단은 그 반응을 지켜보자.
예상외의 큰 효과가 발휘되어 순식간에 위사들의 지지를 끌어 올릴 수 있다면 또 다른 기회라는 틈이 생기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최대한 힘내서 소문내 보는 게 좋을 거야.”
“아, 알겠네. 하면 그동안 자네는?”
“무공수련.”
황준우의 무공이 범상치 않아 보였으나, 상대는 금의위 제일고수 무호다.
그리고 실력을 감춘 것 같은 백균도 있다.
적어도 마필의 상식에 있어 이런 상황은, 만전을 기하기 위한 준비라면 응원해야 될 일이었다.
“힘내게!”
양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는 그를 보며 가볍게 손을 내저은 황준우가 멀어진다.
“좋아, 그럼 나도 힘을 내볼까.”
마필은 최선을 다해 소문을 내기 위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필을 떠나보내고 방 안으로 들어선 황준우의 품속에서 적안서가 뛰어나왔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를 사마정에게 전달해.”
황준우는 적안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다.
하나 적안서는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다.
또한 사마정은 적안서와 대화가 가능했다.
설령 적안서가 죽게 되더라도 적에게 흘러나가는 정보는 무엇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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