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재생 229화
제 229화
현재 황준우가 풍혁기의 전인으로 알려지며 또 다른 금의위무의 후보로 은근슬쩍이나마 떠오르고 있는 마당이니 있을 수 없는 일도 아니다.
“위치는?”
“승천문을 통과하면 안내인이 나타날 거라고 했네.”
수상한 냄새가 풀풀 난다.
“안 나가서 우리에게 불리할 것이 있나?”
“딱히 없네. 적어도 아직까지는…….”
“한데 조장이 굳이 나한테 이야기를 전한 이유는?”
아무래도 의심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필이 헐레벌떡 뛰어와 소식을 전한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였다.
“혹시나…… 백균 부장이 자네를 지원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네. 예전부터 백균 부장이 은연중에 대영반을 많이 따랐다는 소문도 있고 말일세.”
“흐음…….”
만약 백균이 호의를 가지고 이런 수상한 일을 벌었다면, 마필의 말이 옳을 터였다.
황준우가 풍혁기의 제자라는 소문이 금의위 내에서 공공연히 돌고 있는 마당이니 말이다.
하나 만약 백균이 악의를 품고 있다면 이건 분명한 함정이다.
“위험할 수도 있지만, 도박은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네.”
마필이 진중한 눈빛으로 황준우에게 말한다.
“틀렸어.”
“위험하지도 않고, 도박도 아니란 거지.”
설령 악의를 가지고 있다 하여도 바뀔 것은 없다.
황준우는 죽립을 더욱 눌러쓰고는 앞으로 나선다.
“가 보자고.”
마필이 빠르게 그 뒤를 쫓았다.
늦은 시간 삼엄한 경계가 펼쳐진 승천문을 나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나 방법이 없는 것 또한 아니다.
특히 금의위의 경우에는 쉽게 나설 수 있는 변명거리가 있었다.
“소란을 피우고 있는 무림인을 제압하라는 임무를 받았네.”
“진시(辰時) 이전에는 들어오셔야 합니다.”
“시간이 충분히 필요한 임무네.”
“오늘은 임무를 받은 분들이 많군요.”
살짝 찌푸린 인상으로 고개를 끄덕인 관병이 쪽문을 열어 주었고 두 사람은 탈 없이 승천문을 지나쳤다. 황실 수호가 주요 임무인 금의위가 도시까지 나와 임무를 수행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하나 또 전혀 없지도 않다.
관병들 수준에서 처리가 되지 않는 어려운 또는 복잡한 일을 비롯하여 무림인이 연관된 경우에는 금의위가 나서기도 한다.
마필을 비롯한 대다수의 금의위가 급한 일로 바깥에 나가게 될 때에는 그러한 경우를 상정하여 말한다.
물론 그 말이 대다수 거짓임을 관병들도 안다.
다만 서로가 사람인 것을 알다 보니 어느 정도 눈치껏 묵인해주는 것이다.
황실 수호라는 임무를 띤 탓에 궁 바깥으로는 거의 나오지 못하는 금의위다.
아무래도 이렇게 야밤에 외도를 하는 경우가 제법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실 관병의 입장에서도 금의위 위사에게 잘 보여 두어 나쁠 것이 없었다.
운이 좋아 무공 한 수라도 전수받으면 고마운 일이고, 기본적으로 이런 때를 대비하여 위사의 직책이지만 말단 관병들까지 존중하여주니 상부상조가 되는 셈이다.
“금의위가 좋긴 좋군. 사실 하루에 근무시간 자체는 얼마 안 되잖아.”
승천문을 지나 조금 더 걸어나간 황준우가 말했다.
“근무시간은 짧지만 매일 스스로를 단련해야지. 금의위는 언제나 황궁 내 최강이라는 이름을 잃어서는 안 되지 않나.”
“수련이야 굳이 시키지 않아도 무인이라면 매일 해야 되는 일이니까 말이지.”
“자네는 타고난 무골인가 보군. 매일 수련을 한다는 것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거늘.”
사실 마필의 경우 황준우가 근무에 나설 때는 보았어도, 수련하는 모습을 자주 보진 못하였다. 하나 이상하게 생각지는 않았다. 황준우의 경지는 절정고수인 마필이 보기에도 범상치가 않았다.
그쯤 되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직접 몸을 움직이는 수련보다, 정신수양이 더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아는 탓이었다.
“하긴, 그리 열심히 수련하였으니 그런 실력을 갖추었겠지.”
부럽다는 듯 황준우를 흘긴 마필의 시선이 정면으로 향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백의무복을 입은 중년인 하나가 당당한 보폭으로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다.
“백균 부장 밑에 있는 이십육조의 장욱 조장이로군.”
마필이 작게 속삭였다.
평소 입고 다니는 금의위의 황금무복은 아니었으나 얼굴은 선명히 기억하고 있는 덕이다.
“마 조장과 서강, 맞나?”
“맞다.”
답을 한 측은 황준우였다.
눈매를 찌푸린 장욱이 그런 황준우를 노려본다.
“네놈은 위사가 조장에게 예를 표해야 한다는 사실도 못 배웠나.”
“그쪽이 내 조장은 아닌 것 같은데?”
“…….”
할 말이 많은 듯 입술을 떼었다, 붙였다를 몇 번 반복한 장욱이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따라와라.”
차가운 목소리에서 은은한 분노가 전해져온다.
“굳이 자극할 것까지는 없지 않았나?”
조금씩 멀어지는 그의 등 뒤를 따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걷던 마필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못 느꼈나?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불쾌한 기운을 잔뜩 뿌리고 있었어. 좋게 말했어도 시비는 걸었을 거야.”
“하나…… 자칫하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 아닌가?”
“걱정할 필요 없어. 얕보일 필요는 더더욱 없고. 조장.”
“백균인가 암균인가 하는 놈 따르는 녀석들 다 합친 것보다 내가 강해. 물론 본인까지 포함해서. 겁먹을 이유 없잖아?”
황준우의 목소리는 제법 컸다.
놀란 마필이 정면을 바라보았고, 장욱이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하나 뒤를 돌아보는 일은 없었다.
돌아온 것은 조소 섞인 콧방귀뿐이다. 앞으로 걸어나가는 보무는 여전히 당당했다.
“자, 가 보자고.”
“자네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은 마필의 입에서 한숨이 쏟아져 내렸다.
장욱이 두 사람을 안내한 곳은 북경의 어두운 골목 사이에 위치한 작은 유흥가였다. 어두운 북경을 밝히기에는 너무나 흐린, 작은 빛만을 띄워 올린 황준우가 주변 풍경을 감상하듯 바라보며 웃음을 흘렸다.
“특이하군.”
기녀도 있고, 술을 마시는 사내도 있다.
유흥가라면 당연한 풍경이다.
하나 그 어디에도 문은커녕 창문조차 없다. 굳이 문이라고 한다면 골목길을 몇 번이고 지나쳐 마주했던 좁은 틈새뿐일 터였다. 이래서야 유흥가라기보다는 어두운 골목 사이에 만들어진 제법 큼직한 야외 기루 하나라고 보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대다수가 금의위일세.”
마필은 다른 의미로 놀란 듯했다.
“그래? 다들 무공 한 수는 하는 것 같더라니.”
황준우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 사이, 앞으로 나선 장욱은 정면의 가장 넓은 공간에 앉아 홀로 술병을 들어 올리고 있는 인물을 향해 공수를 취한다.
“부장께서 명하신 대로 두 놈을 데려왔습니다.”
장욱의 말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눈과 코를 덮어, 입과 하관만을 확인할 수 있는 기이한 가면을 쓴 그는 인기척도, 장욱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쉴 새 없이 술을 마셨다. 굳이 그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에서 함께 술을 마시고 있는 이들 역시 잠시 황준우 등을 바라보았지만 곧 시선을 돌리고는 술병을 입에 밀어 넣었다.
“저놈도 특이하군.”
피식 웃은 황준우가 등을 돌렸다.
“그만 가지. 조장.”
“상대가 대화할 생각이 없어 보이지 않나.”
황준우는 그 말과 함께 망설임 없이 골목길을 빠져나가려 했다.
“거기 서라. 건방진 애송이 새끼야.”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강기의 칼날이 황준우의 발끝 바로 앞으로 떨어졌다.
“네놈이 서강이냐?”
“그러는 너는 백균이고?”
고개를 돌린 황준우의 시선에, 앉은 자리에서 검지만을 들어 올리고 있는 백균이 보였다.
여전히 가면을 쓴 채고, 한 손으로는 또다시 술병을 들어 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크으……. 건방지게 한낱 위사가 부장의 허락도 없이 술자리를 떠나려 한단 말이냐.”
술 한 병을 짧은 시간 내에 모두 삼킨 후, 입가 가득 묻은 물방울을 훔친 백균이 사납게 웃어 보인다. 기세는 순식간에 유흥가 내부를 지나쳐 황준우를 찌른다.
“아, 금의위 부장이었나? 쓰고 있는 가면이 어디 절에서 봤던 흉악한 놈들이랑 닮아서 마귀 좋아하는 변태인 줄 알았지.”
“서강?”
마필이 깜짝 놀라 낮은 목소리를 흘렸다.
그가 아는 황준우는 다소 도발적인 언사를 보이곤 했지만, 이 정도까지 과격하지는 않았다. 누가 보아도 지금 그의 모습은 상대를 도발하고 있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 상대가 금의위 부장이라는 것이다.
황준우는 평범한 위사에 불과하고 말이다.
따지자면 하극상에 속하는 일이다.
“내가 이 자리에서 네놈 목을 쳐도 할 말이 없겠구나.”
“할 수 있다면. 다만 영문도 모르고 다짜고짜 살기부터 뿌리는 놈한테 그냥 죽어줄 생각은 없는데.”
황준우가 허리춤에 있던 검 두 자루를 뽑아 들었다.
동시에 여기저기서 술을 마시며 웃고 즐기는 것만 같던 사내들도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각자의 병장기를 잡는다.
신속하고 정확하다.
아닌 척하면서 계속해서 두 사람의 대화에 날을 곤두세우고 있었다는 뜻이다.
“흐…… 그만, 그만. 우선 진정들 하고. 서강 네놈에게 묻지. 요즘 전 대영반의 제자라고 설치고 다닌다며?”
“내가 말한 건 아니고.”
황준우의 시선이 마필을 향했다.
자연스레 백균의 시선도 그를 따랐다.
“서, 서강은 풍막을 보였소. 내가 아는 무인들 중 풍막을 펼치시는 분은 오로지 대영반뿐이었소.”
백균이 코웃음을 쳤다.
“풍막?”
비스듬히 앉아 있던 백균의 신형이 단숨에 황준우와 마필의 앞에 나타났다.
그 신속할 정도의 움직임이 마치 바람과 같다.
황준우의 눈이 반짝 빛났다.
‘이 녀석……’
동시에 세 사람의 주변으로 강기의 막이 둘렸다.
세상과 사람이 단절된 듯 조용한 적막이 찾아왔다.
야밤의 서늘한 온도에 길들여진 바람조차 그들의 주변으로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이런 것 말인가?”
“어, 어떻게…….”
입가 가득 비웃음을 보인 백균이 손을 내저었다.
주변의 소리가 들려온다.
야밤의 차가운 기온 역시 세 사람의 몸으로 돌아왔다.
“이럴 수가……. 어찌 백균 부장이 풍막을 펼친단 말이오?”
“뻔한 것 아닌가?”
백균의 시선이 마필을 지나쳐 황준우를 향했다.
“그야 내가 그분의 진짜 제자이기 때문이지.”
“뭐, 무슨…….”
마필이 경악을 토하며 황준우와 백균을 번갈아 보았다.
“보아하니 마 조장 측은 아무것도 모르고 이용당한 것 같군. 황녀에 대한 충성심도 좋지만 너무 과해. 제 눈을 가린 손도 못 본 것 아닌가?”
백균이 웃음을 보이며 몸을 휘청거렸다.
그의 신형이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 술병을 들어 올린 것 또한 순식간이다.
“바람은 무엇보다 빠르고, 예리하다. 또한 바람은 무엇으로도 무너트릴 수 없다. 하기에 풍신은 무적(無敵)이다. 서강, 황녀가 보낸 신입 위사. 네놈은 풍신공을 익히지 않았다. 한데 그분의 제자를 가장했다라. 대체 정체가 뭐냐? 대답 여하에 따라 이 자리에서 즉결 처분을 결정하겠다.”
“흠…….”
짧은 신음을 흘린 황준우가 턱을 쓰다듬는다.
입가로는 실소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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