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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231화 (231/373)

학사재생 231화

제 231화

황실은 오로지 존귀해야 한다. 이미 황궁 내의 불온한 움직임이 그 명확한 주체를 흔들고 있음이 풍혁기의 눈에 들어온 탓이다.

백균 역시 그 흐름을 일부나마 느끼고 있던 차였다.

그러던 중, 풍혁기가 암살당했다.

믿기지 않는 소식에 백균 역시 개인적으로 흔적을 쫓았지만 명확한 증거가 보이지 않았다.

북경 한복판에서 벌어졌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일 처리가 너무나 깔끔하다.

백균은 자연스레 이 일에 황궁이 관련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연결고리는 무호.’

심증이지만, 확신에 가까웠다.

백균은 우연히 얼마 전부터 무호가 동창과 접촉하고 있음을 목격했다.

정황상 풍혁기를 살해한 암살범들이 모두 도주하였거나, 살해당했다는 사실도 믿기 힘들었다.

늙었다 하여도 풍혁기는 풍제다.

거기에 더하여 금의위 내에서 공공연히 그 다음가는 실력자라고 불리는 무호가 함께 있었는데 모두 놓쳤다고? 애초부터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한 사실이 너무나 어이없이 묻힌 데에는 권력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 또한 분명했다.

‘빌어먹을 놈.’

풍혁기는 그를 제법 아꼈지만 백균은 그의 눈에 비친 야망을 알았다. 욕심을 느꼈다. 언젠가 반드시 사고를 칠 것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설마 그 형태가 자신을 믿어주던 풍혁기에 대한 배신일 것이라고는 예측지 못했지만 말이다.

때문에 스스로 대영반이 되고자 마음먹었다.

풍혁기의 암살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서도, 황실의 균형을 수호해야 하는 금의위로서도 무호라는 인물이 대영반이 되는 것은 최악의 경우다.

‘쉽게 질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무호는 분명 강하다.

괜히 무공 실력으로 금의위 내 이인자를 지칭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하나 백균 역시 자신이 보이지 않은 비장의 수를 모두 사용한다면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이는 달리 말하여, 승리할 자신이 있는 것 또한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칫해서 실수하면 모든 것이 망가지게 된다.

백균이 황준우를 보며 망설이게 되는 데에는 바로 그런 이유가 있었다.

그로서는 힘들지만, 황준우라면 분명히 이긴다.

무공 실력만큼은 이미 충분할 만큼 증명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망설이게 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개인적인 악감정이다.

어쩔 수 없다고는 하여도, 존경하는 스승의 제자를 사칭한 황준우가 호의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가능만 하다면 어떤 식으로든 보복을 해야지만 속이 풀릴 것 같다.

“다시 생각해도 열 받는군.”

잔잔한 눈빛을 한 황준우를 보니 절로 혀 차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너무 그러지 말라고. 막상 내가 네게 미운 짓만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내 눈에는 미운 짓밖에 보이지 않는군.”

이를 뿌득 가는 백균의 눈에 다시 한 번 불길이 솟았다. 본래 백균은 이런 감정적인 면모를 다스리지 못하는 편이었다. 도저히 안 되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도 무작정 밀어붙일 때가 많다. 덕분에 풍혁기가 곁에 있을 때에는 많이 야단을 맞기도 했다. 제자인 백균이 아닌, 무호가 다음 대영반으로 지목된 이유 역시 이와 같았다.

아마 풍혁기가 있을 때의 백균이었다면, 한번 분노한 순간 상대가 안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황준우에게 무작정 달려들었을 터였다.

하나 풍혁기가 떠난 이후 백균도 스스로가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느꼈다.

마치 부모의 품을 떠난 어린아이처럼, 스스로 껍데기를 깨기 시작한 것이다.

“네놈도 대영반이 되고 싶겠지?”

“뭐…… 일단은.”

“가벼운 마음으로 넘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결코 가볍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잔잔한 황준우의 눈빛은 어떠한 말을 내뱉을 때에도 떨림이 보이지 않았다.

그 침착함이 묘할 정도로 기분 나쁘다고 생각한 백균이 혀를 차며 물었다.

“칫, 하나만 묻지.”

“……?”

“네놈에게 대영반이란 단순히 황녀 마마를 위한 자리에 불과한 것이냐?”

다소 흔들리던 백균의 눈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황준우의 의중을 꿰뚫어 보겠다는 듯 직시하는 시선이 강렬하게 전해진다.

거짓을 전할 필요는 없을 터였다.

“부정하지 않겠어.”

황준우가 고개를 주억였다.

동시에 백균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금의위에게 있어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균형이다.”

“알아. 자주 들었거든. 영감한테.”

“네놈은 스승님을 제법 잘 안다는 듯 이야기하는구나.”

“인연이 없지는 않으니까.”

“그렇겠지.”

백균 역시 설마 안면 한 번 없이 풍신공을 척척 펼쳐 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혹시 진정한 대영반으로서 일해 볼 생각은 없는 것이냐?”

“그러니까 그쪽 부장 말은 황실의, 황실을 위한, 황실에 의한 대영반이 될 생각이 없냐는 거지?”

“그렇다. 무릇 대영반이란…….”

“미안, 생각 없어.”

“빌어먹을 놈!”

욕지기를 내뱉은 백균의 손이 거칠게 내뻗어졌다.

그를 한 걸음만 옮겨 가볍게 피한 황준우가 웃음을 흘렸다.

“성격이 급하구먼.”

“젠장. 한 대라도 칠 수 있다면 덜 답답할 텐데.”

“나중에는 후회할걸.”

“그럴 일 없다.”

거친 콧김을 내뿜는 백균을 보며 웃음을 흘린 황준우가 등을 돌렸다.

“어쨌든, 그럼 이제 할 말은 끝난 거지?”

“네가 생각만 돌린다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다.”

“미안, 거짓말은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걸 이번 교훈으로 또 뼈저리게 배워서 말이지.”

어깨를 으쓱한 황준우가 백균에게서 멀어진다.

“후회할 게다!”

“그럴 수도 있겠지.”

대답은 가벼웠다.

마치 제 일이 아니라는 듯 말이다.

“빌어먹을!”

거칠게 욕을 내뱉은 백균은 다시금 술병을 집어 들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번갈아서 보던 마필이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황준우의 뒤를 쫓았다.

황준우와 마필이 함께 자금성으로 향한다. 늦은 밤, 북경의 거리는 조용하다. 그 어둠 속 적막 아래, 두 사람 사이로도 제법 긴 침묵이 흘렀다.

마필의 눈에서는 연신 망설임이 소용돌이쳤다.

몇 번이고 입술을 달싹이고 닫기를 반복한다.

어느덧 두 눈에 거대한 승천문이 보인다.

“욕심이 과했던 거지. 미안. 마 조장.”

그때, 먼저 입을 연 측은 황준우였다.

“자네……?”

“더 쉬운 방법으로 마마를 돕고 싶었어. 그뿐이야.”

담담한 듯, 하나 수줍게 말하는 황준우의 옆모습을 바라보는 마필의 눈이 호선으로 휘었다.

“자네…… 이제 보니 제법 귀여운 면도 있구먼.”

“미안하지만 난 그쪽 취향 아니야.”

“누구는 취향이라고! 난 결혼해서 부인이랑 아이도 있는 몸이야! 혹여라도 이상한 소리는 하지도 말게!”

제자리에서 펄쩍 뛰는 마필을 향해 웃음을 보인 황준우가 놀란 시선을 보인다.

“결혼도 했었어?”

“당연한 것 아닌가. 금의위 중에는 가족을 가진 사람들도 많네.”

“한데 모두 금강각에서 생활하잖아?”

“기본적으로는 그렇지. 금의위는 언제나 황실을 제일 우선시해야 되니…… 그래도 칠 일에 한 번쯤은 집에 다녀오는 편일세.”

가족의 얼굴을 떠올렸는지 마필의 입가로 흐뭇한 웃음이 떠올랐다.

“집은 가까운가 보지?”

“바로 이 근처일세.”

“근처라고?”

다시 한 번 놀란 황준우의 물음에 마필이 고개를 주억였다.

“아무래도 언제든 황궁으로 복귀할 수 있는 거리에 있어야 하니까 말이지.”

“허…….”

결국 집에 들른다 한들, 황궁의 소환이 있다면 곧바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금의위도 쉽지만은 않구먼.”

“자네는 금의위가 아니라는 듯 말하는구먼.”

“그러게.”

고개를 끄덕이는 황준우를 지그시 바라본 마필이 다시 한 번 웃음을 흘렸다.

“어쨌든, 사과라도 해줘서 고맙네. 따지자면 내 잘못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야.”

“그래도 부추긴 건 나니까.”

“후후. 정말 생각도 못 했네. 다소 딱딱해 보이는 인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음…….”

“생각해보면 인상에 비해 말도 많은 편인 듯하군. 하하, 재밌는 친구야. 자네.”

“크흠.”

그렇게 잡담을 떠는 사이 두 사람은 어느덧 승천문 앞에 도달했다.

나올 때 보았던 관병이 열어준 성문을 지나, 금강각으로 돌아가는 길 역시 유쾌했다.

다음 날부터 황준우와 마필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괜한 헛소문을 만들어내 난감한 상황도 겪어보았으니, 이번에야말로 정공법을 펼치기 위함이다. 우선 마필은 아는 지인들을 만나 최대한 설득에 나섰다. 주로 주연하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진 이들 위주였다.

황준우는 금의위 수련에 함께 참가하여 유대감을 높였다.

황녀가 꽂아준 낙하산, 조용한 은거 생활, 제법 뛰어나다는 무공 실력 등 황준우에 대한 소문에 흥미를 가지고 있던 이들의 시선과 관심이 단숨에 모여들었다.

때때로, 황준우가 풍혁기의 제자라는 소문에 흥미를 가지고 접촉하는 인물들도 있었다.

물론 황준우는 그 사실을 부인했다.

대신하여 유대감을 높이는 한편, 다른 금의위들의 무공에 가벼운 조언을 해주었다. 마치 지나가듯, 참견이 아닌 흘리는 말들로 동료들의 성장을 도운 것이다. 그로 인해 성취를 얻은 금의위들은 자연스레 황준우에게 호감을 내비쳤다. 무인에게 있어 무공에 도움을 준 인물은 은인이라 하여도 부족함이 없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시간은 그렇게 쏜살같이 흘러, 금의위무를 며칠 안 남긴 시점에 이르렀다.

그동안 황준우와 마필의 정공법은 제법 효과를 발휘했다.

생각보다 빨리, 또한 많이 금의위무에 황준우가 나설 수 있게 지원하겠다는 이들이 늘어났다.

마필의 평소 인맥과, 황준우의 활동이 늘어난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은 주연하에 대한 인상이었다.

왕녀에서 황녀, 차기 황제 후보로까지 급부상한 그녀에 대한 소문은 궁 내에 무성했다.

그중에는 좋지 않은 종류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경악과 존경, 호의에 가까운 부분이 많았다.

특히 한때나마 황제의 자리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그녀가 보여주었던 위엄은 많은 금의위 위사들의 마음에 남아 있었다.

힘든 시기인 지금도 무너지지 않고 제자리에 버티고 있는 그녀를 동정하는 시선도 있었다.

그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물론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금의위의 근본에 충실하며 흔들림을 보이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특히 조장급 이상의 인사들은 그러한 경향이 강했다.

아무래도 일반 위사처럼 쉽게 움직임을 보일 수 없는 입장인 것은 당연한 부분일 터였다.

그렇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인원의 지지를 받았다 한들 여전히 황준우가 금의위무의 후보로 뽑히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애초에 총인원 오백 중, 무호와 백균 측의 단단한 지지층인 삼백을 제외한 나머지 중립파 이백에서 인원을 모으는 일이었으니 더 힘든 일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금의위무를 며칠 안 남겨둔 어느 날.

“어, 일이 재미있게 될 수도 있겠는데?”

방으로 들어와 적안서를 통해 전해지는 소식을 확인하던 황준우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천조회가 영감의 암살에 무호가 연관되었다는 증거를 찾아냈어.’

이는 어차피 예정된 일이었다.

황궁 내도 아니고, 바깥에서 벌어진 일.

천조회가 그 흔적을 쫓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황준우가 재미있다고 생각한 부분은 다름 아닌 얼마 전 백균이 그 정보를 사 갔다는 것이다.

아마 백균은 지금쯤 혹은 늦지 않은 시일 내에 이 소식을 접할 터였다.

“어떻게 될까?”

의문은 머지않아 해결되었다.

금강각 내 거친 폭음과 함께 백균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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