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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263화 (263/373)

학사재생 263화

제 263화

동시에 뽑아 든 검이 황석후의 심장을 노리고 무섭게 날아들었다.

허공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낸 흑표가 그 앞을 막아섰다.

동시에 진무영의 주변으로 두 자루의 검날과 강기를 머금은 손바닥이 쫓아왔다.

콰과광-!

폭음이 울려 퍼지는 순간 뒤로 물러난 진무영의 입가로 미소가 흘렀다.

“굉장하군요. 이들이 정말 고작 상가의 호위무사란 말이지요.”

가면 아래 입가로 흐르는 핏물을 손등으로 훔친 흑표는 말이 없었다.

대신하여 그 뒤에 선 황석후가 무서운 얼굴로 입을 연다.

“내 맹주가 이토록 예의 없는 사람인 줄 몰랐구려.”

“우리 서로에 대해 너무 몰랐던 것 같군요. 후후.”

“그러게 말이오.”

그 순간, 진무영이 외쳤다.

“궁왕, 의선! 무신의 어머니를 먼저 찾으세요!”

고개를 끄덕인 두 사람이 포위망을 뛰어넘어 만금장 내부로 달려든다. 동시에 진무영의 검이 다시 한 번 황석후에게로 향했다.

이번 역시 흑표의 검이 그를 막아선다.

안색은 한층 더 창백해지고 참지 못한 핏물이 입 바깥으로 흘러넘쳤지만 지면을 딛고 선 다리에는 흔들림이 없다.

“만금장엔 참 대단한 사람이 많습니다.”

진무영이 웃음을 보였다.

동시에 얼굴을 굳힌 황석후가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적매와 청송은 두 사람을 쫓게!”

황석후의 말에 진무영을 포위한 채 협공을 가하려던 사대호위 중 둘이 빠르게 등을 돌린다.

“그건 안 되죠.”

웃음을 보인 진무영이 두 사람을 향해 기운을 쏘아 내려는 순간이었다.

“멈춰라!”

황석후의 거친 외침과 함께 진무영의 몸이 우뚝 섰다.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목 끝으로 백학의 검이 다가왔다.

턱 끝자락에 핏물을 남기며 공격을 피한 진무영의 얼굴에 당황감이 피어났다.

“이건 뭐죠? 방금 분명…….”

이후 시선은 멀리 달려나간 적매와 청송을 향하였으나 뒤늦은 후다.

“내 장담컨대 맹주는 이곳에서 더 이상 내 집 안으로 한 발짝도 들어설 수 없을게요.”

“흐음…… 과연 그럴까요.”

입술을 핥은 진무영의 눈이 매서워졌다.

‘만금장주에게 특이한 능력이 있는 건 분명 변수군요.’

게다가 주변을 호위하고 있는 네 명의 가면 쓴 무인들 역시 생각 이상의 실력자들이다.

오칠과 담소청이라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일의 성패가 꽤나 희미하게 변해버렸다.

‘시간은 내 편이 아닌데 말이죠.’

황준우라는 인물에 대해 누구보다 깊이 연구하고, 생각했다. 때문에 지금 그가 없는 판을 만들어 내었지만 그리 여유가 많지는 않다. 무엇보다 황준우라는 인물의 무력을 함부로 잣대 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아차 하면 또 성장해버리시니 원…….’

조금 쫓았다 싶으면 멀어지고, 다시 쫓으려 하여도 하염없이 앞서 나간다.

근처라도 다가갈 수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힘든 방법을 택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아쉬운 일이다.

자연스레 웃고 있는 눈에 조급함이 깃들었다.

“이미 상황은 만들었고, 한번 최선을 다해 봅시다. 다행히도 제가 이런 상황에 꽤나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 말과 함께 진무영의 주변으로 붉은빛과, 푸른빛의 강기가 가시처럼 피어오른다.

강기가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포위의 최전방에 서 있던 이들의 무기에서 강기가 솟아나며 진무영이 쏘아낸 강기를 막아선다.

카가강-!

푸부북-!

때를 맞춰 강기를 쳐내는 소리와, 늦거나 막아내지 못하여 누군가의 육신이 꿰뚫리는 소리가 동시에 들려온다.

사방으로는 순식간에 혈향이 치솟았다.

“이놈!”

거친 음성을 내지른 흑표가 진무영에게로 뛰어들었다.

“직접 와주면 더 고마울 따름이지요.”

진무영이 웃음을 보이며 흑표의 머리를 내리치는 순간 백학의 검이 등을 찔러온다.

꽤나 잘 맞춰진 합격술이다.

‘하나…….’

손에서 검을 놓은 진무영이 몸을 돌려 손바닥을 내질렀다.

폭음과 함께 흑표와 백학, 두 사람 모두 핏물을 쏟으며 물러난다.

한 손은 공중에 떠오른 검을 향해 내뻗고, 반대편 손바닥은 백학을 향해 길게 내지른 진무영이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역시, 저도 제법 강하다니까요.”

압도적이다.

만금장 내에서 내로라하는 고수인 흑표와 백학, 두 사람의 합공으로도 진무영의 옷깃조차 스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분명한 현실이었다.

“자, 우선 우리 학 가면부터 정리해봅시다. 준비되셨지요?”

백학을 향해 내민 진무영의 손에서 피어오른 강기가 열 십(十)자를 그린다.

흑표에 비해 한층 더 창백한 안색으로 핏물을 쏟고 있던 백학은 재빨리 몸을 날리려 하였지만 심각한 내상이 발목을 사로잡았다.

걸음이 꼬이고 몸이 휘청인다.

눈앞으로 십자 모양의 강기가 다가온다.

“물러가라!”

다시 한 번 황석후가 일갈을 내질렀다.

동시에 허공을 수놓던 열십자의 강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

또 한 번 눈을 부릅뜬 진무영이 황석후를 바라보았다.

“언령(言令)? 말이 됩니까?”

“…….”

황석후는 말없이 진무영을 노려본다.

침묵의 대치가 이어졌다.

진무영 역시 쉽게 움직이지 않고, 황석후와 만금장의 무사들 역시 숨을 쉬며 눈을 빛낸다. 그 모습을 날카롭게 바라보던 진무영이 웃음을 흘리며 자세를 풀었다.

“뭐 좋습니다. 새삼 무신께서 누굴 닮았는지 잘 알 것 같은 기분도 들거든요. 후후. 어디 한번 해볼까요? 소개하죠. 승상의 상징, 의천검입니다.”

그 이름을 읊는 순간, 지독한 불안감을 느낀 황석후의 입술이 달싹였다.

“안 됩니다. 더 이상은……!”

흑표가 황석후를 향해 고개를 내젓는다.

그러는 사이 진무영의 주변으로 붉고 푸른 강기의 안개가 자욱하게 생성되었다.

닿는 것만으로 살을 에고 사람의 몸을 분시할 위력적인 안개다.

“자, 몇 명이나 죽을 때까지 참으려나요?”

음산한 진무영의 목소리와 함께 안개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더 이상 한 발자국도 뗄 수 없을지어다!”

참지 못한 황석후가 일갈을 내질렀다.

의천검의 안개가 반항하듯 공명을 토한다.

하나 그뿐.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언령에 묶인 진무영의 걸음이 완전히 멈춘 것이다.

“사라져라!”

팔을 거칠게 휘두른 황석후가 다시 한 번 외친 순간에는 안개가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검을 앞으로 세운 채 걸어나가던 진무영의 얼굴은 완전히 굳은 채였다.

“장주님.”

황석후를 바라보는 흑표의 얼굴에 무거운 걱정이 어렸다.

진무영을 경계하면서도 공포를 느끼고 있던 만금장 무인들 역시 놀라운 시선으로 황석후를 바라본다.

“난 괜찮소.”

짧게 말하는 황석후의 입가로 붉은 실선이 흐른다.

그 모습을 확인한 직후 흑표가 몸을 날렸다.

백학 역시 검을 휘두른다.

그 짧은 시간, 놀랍게도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던 진무영의 몸이 반응한다.

“크악-!”

“아악-!”

흑표와 백학 두 사람의 입에서 참을 수 없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입으로는 피 분수가 솟아났다.

“쿨럭!”

황석후 역시 식은땀을 흘리다 견디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무너진다.

“하하하, 굉장한 힘이지만 대가가 만만치 않은가 보군요!”

흑표와 백학 두 사람이 더 이상 제자리에서 일어서지도 못하는 모습을 확인한 진무영이 가는 눈으로 주변을 훑어보았다.

‘역시 곤란하다니까요.’

갑작스럽게 진행된 사건들에 놀랐지만 누구도 흔들리지 않는다.

눈동자에는 다소 공포가 어려 있지만, 다들 황석후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가득하였다.

빠른 시간 내에 황석후를 잡아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꽤나 많은 피를 보겠어요.’

어쩌면 오늘 만금장에 시체의 산이 쌓이고 피의 강이 흐를지도 모를 일이다.

화르륵-!

때마침, 황씨 일가가 머무르는 소향원 인근에서 피어오르는 불길을 본 진무영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자연스레 황석후와, 만금장 무인들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생각보다는 일이 잘 풀릴 듯 보입니다.”

들으란 듯 읊조린 진무영의 시선이 황석후를 향했다.

“자, 이제 제가 장주님을 넘어 저 안으로 들어갈 생각인데, 어찌 막으시겠습니까?”

“무림맹주…… 쿨럭, 쿨럭.”

거친 기침을 토하는 황석후의 눈 아랫가에 짙은 어둠이 몰려든다.

“아니면 함께 가시렵니까? 후후후.”

그를 즐기듯 여유로운 웃음을 흘린 진무영이 양팔을 넓게 펼치는 순간이었다.

“……!!”

짙은 어둠 속에서 번쩍 피어오른 손이 단숨에 진무영의 옷깃을 잡아당긴다.

삽시간에 모습을 나타내며 진무영의 품에 안기듯 양팔과 다리를 두른 이는 사마정이다.

다급한 외침이 황석후에게로 전해진다.

“자네는……?”

“어서 달아나십시오! 장주님! 살아남으셔야 합니다!”

목소리에 간절함이 배인다.

진무영은 그런 사마정을 묘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며 입술을 다셨다.

“서왕. 목숨이 아깝지 않은가요?”

“닥쳐라! 이 미친놈아! 감히 예가 어디라고 검을 뽑고 들어왔단 말이냐!”

“흐음…….”

옅은 신음을 흘리는 진무영의 눈에 은은한 분노가 떠올랐다.

“숨만 죽이고 살아간다면 평생을 보장해준다고 했을 텐데요. 왜 계속 나서서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는 걸까요.”

“흐흐, 말이 많구나. 그렇게 죽이고 싶다면 어서 내 등 뒤로 검을 찔러 넣어라. 물론 그렇게 된다면 네놈도 무사할 순 없겠지. 혹여 너 역시 죽음이 두려운 것이냐?”

“설마요.”

실소를 흘린 진무영이 고개를 젓는다.

“이렇게 매달린다고 해서를 저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우스워서 말이지요.”

“……!!”

갑작스럽게 피어오르는 격통에 사마정의 눈이 부릅뜨였다.

검이 아닌 가시 강기.

허공으로 떠오른 그 일부를 사마정의 왼쪽 가슴에 박아 넣은 진무영이 잔인한 웃음을 보였다.

“강기라는 게 꼭 크고 길게만 만들 필요만은 없지 않습니까?”

“크으으…….”

“아주 오래전 일입니다만. 분명 죽고 싶지 않다고 빌었잖아요? 무릎 꿇고 꼴사납게 엉엉 울었지 않습니까. 한데 이제 와서 왜 스스로 죽음을 재촉하는지 이해가 안 될 일입니다그려.”

웃음을 그린 진무영이 가벼운 손짓으로 눈빛이 꺼져가는 사마정의 몸을 밀어낸다.

마치 쌓인 먼지를 털어내듯 미련 없는 모습이다.

양팔과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으로 허망하게 떨어지는 사마정을 내려다본 진무영이 고개를 내저었다.

“기껏해야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게 최선인데 말이죠. 정말 어리석기 그지없습니다.”

더 이상 그를 향한 미련은 남지 않았다는 듯 다시금 황석후를 향해 시선을 돌린 진무영이 말했다.

“자, 이제 더 이상 방해할 사람은 없어 보이네요.”

이후 천천히 첫걸음을 떼려 한다.

“갈 수 없…….”

발목을 붙잡은 사마정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이어졌다.

“와, 정확히 심장을 노렸는데 아직 안 죽었나요?”

진무영이 놀라운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고는 미간을 크게 찌푸렸다.

“정말 이쪽하고 관련되어서는 유쾌한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놈이나, 저쪽이나 질기기만 해서 너무 귀찮아요.”

진무영의 손이 움직이며 허공으로 떠오른 의천검이 사마정의 목과 직선으로 섰다.

“이만 이야기의 마무리를 지읍시다.”

“그래, 이제 마무리하자.”

화답하듯 크게 격양된, 사나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정면,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붉게 달아오른 얼굴의 사내를 바라본 진무영의 이마 위로 식은땀이 흐른다.

입가로는 헛웃음이 흘렀다.

“어…… 이건 계산에서 너무 벗어났지 않습니까.”

“네 계산은 방금 끝났어. 이제부턴 받은 대로 돌려주는 내 계산만 남았지.”

사내, 황준우가 지면을 박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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