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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266화 (266/373)

학사재생 266화

제 266화

“이 빌어먹을 놈들아! 사라졌다! 사라졌다고!”

동시에 정상 자락 조금 더 아래에 머물러 있던 이들 중 작은 소녀가 다급한 목소리를 외치며 뛰어 올라온다.

아마 그녀도 두 사람과 같은 사건을 알아챈 탓일 터였다.

“백택, 이게 가능한 일이야?”

여인의 질문에 사내가 부채를 펼쳐 입가를 넓게 가리며 고개를 젓는다.

“교라고 불러주시지요. 제가 직접 고른 이름이 있는데 굳이 다르게 불러주실 건 뭐랍니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빨리 대답해줘.”

“천하의 제갈량을 당황스럽게 할 정도의 일이라…… 후후. 분명 상식 혹은 논리 아니,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은 기적입니다.”

“어찌 된 일인지 연유는 봤어?”

“저도 너무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했던지라…….”

그사이, 두 사람에게 다가온 소녀가 벅찬 숨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헉, 헉. 대체 어떻게 된 일인 게냐? 갑자기 멸망시(滅亡時)가 당겨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사라지다니! 이건 기적이라고밖에…….”

“맞습니다. 문제는 기적의 원인을 알아야 한단 거지요. 이건 우리가 그동안 포기하고 있던 모든 것에 대한 희망입니다.”

여인, 제갈량이 차가운 음성으로 답하며 백우선을 꺼내 들었다.

“마지막에 확인했을 때 제자가 주변에 있었습니다.”

백교가 그답지 않게 망설이는 음성을 흘린다.

그럴 만도 한 일이었다.

희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건 조금 더 먼 미래의 이야기다.

이토록 갑작스럽게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는 예상도 못 했으며, 막아낼 것이라고는 더욱 상상도 못 했다. 세 사람이 다소 무리를 해가면서까지 이 자리에 모이게 된 이유 또한 만일을 대비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정말 그 아이가?”

제갈량도 믿기지 않아 되물었지만 정황상 가능성이 낮지는 않았다.

“황가 놈의 아들이 무섭도록 성장한다고 들었지만…… 사실이라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로구나. 바로 만금장으로 향하자꾸나.”

신아가 제자리에서 펄쩍 뛰며 기쁜 눈빛으로 말한다.

다소 어리광스러워 보이지만 그 심정을 이해 못 할 둘이 아니었다.

희망 하나 없던 세상에 생각 외의 기적이 찾아왔다.

“문제는 지금 천리안(千里眼)과 천리행(千里行) 모두 과부하입니다.”

“갑자기 멸망시가 당겨져 이곳까지 모두 함께 온다고 무리해서 마구 사용했지 않습니까?”

백교가 산 아래 위치한 곤륜의 도사들 다음으로는 제갈량과 신아, 마지막으로는 자신을 가리킨다.

“그러면 설마 여기서 안휘까지 걸어가야 한단 거야?”

제갈량이 창백한 안색으로 물었다.

“어쩔 수 있나요?”

백교가 부채로 입가를 가리며 웃음을 흘린다.

“나 아무 준비도 안 하고 그냥 뛰어나왔는데?”

“우리라고 뭐 다를 것 같으냐?”

신아 역시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뭐, 축지도 있는데 오래나 걸리겠습니까. 옷이야 필요하면 사고, 주변 풍경이나 구경하며 느긋하게 가보지요. 사라질 뻔했던 세상이 멀쩡히 남았으니 또 운치가 다르지 않겠습니까? 후후후.”

“속 편한 소리 한다.”

“이래서 사내들이란…….”

잠시, 서로의 눈을 마주 본 신아와 제갈량이 세차게 고개를 돌린다.

“자, 어쨌든 출발해봅시다. 이런 일일수록 빠른 게 좋으니까요. 오랜만에 제자를 볼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대는군요. 후후.”

웃음을 흘린 백교가 산 아래를 향해 걸음을 내디딘다.

“저, 저……!”

“고얀 놈!”

다시 한 번 시선을 마주친 두 사람이 콧방귀를 뀌며 걸음을 동시에 뗀다.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시선이 또 한 번 서로를 향할 수밖에 없다.

“짜증 나!”

“누가 할 말을! 어린 게 콧대만 높아서는!”

다소 시끌벅적한 이들의 걸음이 안휘, 소주를 향했다.

하루 밤낮이 넘는 시간 동안 공중에 떠올라 가부좌를 취하고 있던 황준우의 몸에서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났다.

이어서는 황준우가 입고 있던 옷이 잿가루가 되어 흩날리더니, 살이 타는 냄새와 함께 거죽이 일어나고는 새살이 돋아난다.

그 모습을 바로 옆에서 멍하니 지켜보던 달기의 두 눈에 독심이 어렸다.

“난 멍청하게 뭘 보고만 있는 거야! 지금이 아니면 언제 기회가 있겠어?”

달기의 손끝으로 붉은 기운이 날카롭게 솟아오른다.

“평생 너 같은 괴물한테 잡혀 있을 줄 알고!”

거칠게 외친 달기의 손이 황준우의 머리를 반으로 쪼갤 듯 무겁게 떨어졌다.

마기와, 빛이 부딪치며 마치 종이 울리는 것 같은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악-!”

귀가 찢어질 것 같은 고통에 인상을 찌푸린 달기가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구른다.

그렇게 반각.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달기가 두 눈에 커다란 눈물방울을 매단 채 몸을 벌떡 일으킨다.

“뭐야! 대체 뭔데!”

답답하다는 듯 소리를 지르며 아랫입술을 강하게 깨문 달기의 전신에서 붉은 기운이 팽창하기 시작했다.

“이젠 나도 몰라. 너 죽고, 나 죽더라도 진짜 끝을 볼 거야.”

팽창한 기운은 여섯 꼬리 위로 붉은 귀화(鬼火)가 되어 응어리진다.

“어디 한 번…….”

여섯 꼬리 중 하나에서 응어리진 귀화를 한 손에 잡아챈 달기가 팔을 크게 휘두르려는 순간이었다.

“너 뭐 하냐.”

눈을 번쩍 뜬 황준우가 말을 건네 온다.

“히끅!”

팔을 휘두르던 자세 그대로 몸을 굳힌 달기가 헛구역질을 삼켰다.

“왜, 기회다 싶어서?”

도리도리.

달기의 고개가 빠르게 좌우로 왕복운동 한다.

“음…….”

그를 다소 관심 없게 바라보고는 몸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빛을 갈무리한 황준우가 천천히 지면으로 내려선다.

‘칠단공? 팔단공?’

우주를 보고, 새로운 세계를 깨달으며 경지의 벽을 한층 뛰어넘었다.

따지자면 무공으로서는 한층 더 성숙했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다만 천조신공은 무공이지만 살아 있는 생물과 같았다.

하나로 완성된다기보다는 새로운 배움을 더할수록 그것을 먹고 자라난다.

깨달음을 얻었을 뿐, 새로운 배움을 통한 익힘의 확장은 없다.

‘천조신공은 아직 칠단공이라고 봐야겠군.’

하나 무엇이라도 어울리는 옷을 입힌다면 팔단공의 영역으로 곧장 넘어갈 수 있을 듯했다.

이미 정신과 육체는 그에 걸맞은 수준으로 넘어선 상태였으니 말이다.

‘오히려 과하지.’

진무영이 만들어낸 우주의 단면, 검은 동공의 힘은 가히 세계 멸망을 불러올지도 모를 만큼 위험하고 강력했다. 물론 모두 성장했을 경우의 가정이지만 기본적으로 바위 하나의 크기만으로도 황준우에게 진땀을 흘리게 한 수준인 것이다.

그 엄청난 힘을 통째로 삼켰다.

모두 내공 혹은 자연지기로 변환하여 배출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우주가 가진 힘은 그 괘가 달라 쉽지가 않았다. 결국 황준우는 그 힘을 차차 소화하기로 결심하며 단전 아래에 딱딱한 형태로 봉인시킬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은 조심해야겠어.’

무리해서 힘을 쓴다면 봉인된 우주의 단면이 멋대로 바깥으로 뛰쳐나오려 할지도 모른다.

당연하지만 그 힘을 몸에 품고 있는 황준우는 더 이상 벗어날 수도 없이 그 내부로 말려 들어갈 터였다.

긍정적인 부분을 뽑자면 이 현실이 나쁜 상황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조금씩이지만 내가 사용할 수 있게끔 분명히 소화되고 있으니까.’

아마도 황준우가 우주와의 조화를 이룬 덕일 터였다.

말했듯 이 힘은 내공도, 자연지기도 아니었다.

‘우주기(宇宙氣)라고 불러야겠지?’

그런 힘을 조화에 이르자마자 가득 집어삼켰다.

마치 내력처럼 몸에 담아 버린 것이다.

깊은 깨달음과 함께 찾아온 새로운 영역으로의 발돋움, 그로 인한 육체의 각성(覺醒)이 아니었다면 아마 이대로 몸이 터져 버렸을 것이다.

‘첫 탈태환골(奪胎換骨)인가.’

세간에는 탈태환골이란 무인이 일정 이상의 경지를 이룩할 때마다 벌어지는 일로 알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사실은 조금 달랐다.

탈태환골이란 육체 즉, 그릇을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때문에 이미 육체가 자신이 이룬 경지의 무공을 소화할 수 있게끔 성장해 있다면 불필요한 과정.

오히려 탈태환골이란 자연스럽지 않은 강제적인 수단에 속해 있었다.

육체가 아직 감당할 수 없는 힘을 견뎌내기 위한 생존 방향의 진화를 하는 셈이다.

언제나 무공의 경지가 이르기 전에 그릇의 준비를 끝내 놓았던 황준우에게는 불필요했던 일이다.

하나 우주기를 몸에 담아내는 일 만큼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다소 무리한 과정이라 좋지 않게 봤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확실히 호재로군.’

아마 탈태환골을 하지 못했다면 몸에 가둔 우주기를 영영 소화하지 못한 채 살아가야만 했을 터였다. 어쩌면 평생을 몸 안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물을 안고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는 셈이다.

한데 탈태환골을 이루며 그런 위험으로부터 벗어났다.

강압적인 과정이기에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이 없는 건 아니지만 작금 황준우의 입장에서는 분명 호재로 작용한 셈이었다.

‘부작용으론 역시, 일단 기를 느끼는 게 어색하단 게 문제네.’

갑작스러운 육체의 성장은 몸의 감각을 오히려 둔하게 만든다.

오히려 경지가 오르기 전보다 자연지기를 조율하는 것과 느끼는 일.

양측 모두가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팔괘술을 펼치려 해보니 마치 처음 익혔을 때처럼 엉망진창이다.

‘한동안은 팔괘술도 봉인이군.’

거기다 마지막, 그릇인 육체의 감각도 너무나 생소하다.

다행히 이 부분은 큰 걱정이 되지 않았다.

계속해서 움직이다 보면 육체는 금방 익숙해진다.

중요한 것은 기를 느끼고 사용하는 감각이다.

“좋아.”

대충 현재 자신의 상황을 파악한 황준우가 짧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 재빨리 꼬리에 떠올렸던 귀화, 여우 불을 지운 달기가 눈웃음을 그렸다.

“어때? 인간, 도사, 마왕을 통틀어 최초로 우주를 삼켜 본 기분은?”

“나쁘지 않아. 조금 불편하기는 하지만.”

“불편해?”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으니까.”

달기의 눈이 반짝 빛난다.

“그렇다고 해도 꼬리 여섯 달린 여우 사냥 정도는 쉬울 것 같은데…… 궁금하면 한번 해볼래?”

“아니. 난 하나도 안 궁금한데. 원래 여우는 호기심이 별로 없어. 헤헤.”

여섯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어설프게 웃는 달기를 바라본 황준우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머리 굴리지 마. 어차피 조만간 넌 봉인될 처지니까 말이야. 대충 일도 마무리됐으니 곤륜 도사들을 불러 봐야지.”

한쪽 팔에 휘감겨 있는 무형(無形)의 밧줄이 건재함을 확인한 황준우가 말하자 달기의 얼굴과 꼬리가 축 처진다.

“…….”

“시무룩한 척해도 소용없어.”

“척이 아니라 진짜 시무룩한 건데.”

“시끄럽고. 괜히 나서지 말고 다시 사라져. 집도 살펴보러 가야 하니까.”

가볍게 말한 황준우가 허공으로 뛰어오른다.

“꺄아악-! 예고라도 하고 움직이라고!”

방심하고 있었던 듯, 밧줄에 끌려 공중으로 붕 떠오른 달기가 비명을 내지른다.

물론 황준우의 입장에서야 전혀 배려를 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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