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재생 268화
제 268화
곧장 사마정의 장례가 치러졌다.
규모는 크지 않았다.
황석후를 비롯한 만금장의 식솔들, 그리고 남천맹의 요직이라 할 수 있는 인물 모두를 합쳐 열 명 내외의 사람이 조촐하게 모인 게 전부였으니 말이다.
하나 모인 사람의 수가 적다 하여 슬픔의 무게가 가벼운 것만은 아니다.
평소 그와 자주 마주하지 못했던 이들을 비롯하여, 정황상 대화를 많이 할 수밖에 없던 전왕까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얼굴에 그늘이 졌다.
특히 한동안 그의 양팔과 다름없이 살아왔던 흑백쌍노가 크게 슬퍼했다.
“으허엉!”
“이 고얀 놈! 어린놈이 더 먼저 가면 어째! 으어엉!”
차갑게 식은 사마정의 양손을 하나씩 꼭 잡은 두 사람은 쉬지 않고 장장 두 시진이 넘게 오열을 토했다.
어찌나 울었는지 마지막으로 사마정을 관에 넣고 덮을 때에는 함께 숨이 넘어갈 듯 보일 정도였다.
한때 무림의 흉살로 이름 높았던 두 사람이지만 마음에 가진 정이 적지는 않았나 보다.
그럴 만도 했다.
황준우를 만나 새 삶을 살게 된 두 사람은 모두 마음속 어딘가에 가지고 있던 열등감을 벗어던졌다. 다소 문제가 있던 뇌의 증상 역시 제법 치료가 되었다. 자신들이 해왔던 일들이 어찌나 끔찍한지 깨닫고, 후회와 반성도 하였다. 그리하여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다행히 남는 이들이 몇 있었다.
그중에서도 사마정은 두 노인과 제일 가까웠다.
과거의 삶을 후회, 반성하고 있다는 점도 닮았으며 하는 일도 같다.
직접적으로 말은 안 하였지만 사마정에게 가진 마음이 가벼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두 형제에게 있어 사마정은 새로운 가족과 다름없었을지 모른다.
“끅끅.”
사마정을 땅에 묻고 돌아서는 길에도 두 사람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주인, 저 건방진 놈 못 살리는 겁니까? 죽으면 정말 끝인 겁니까?”
백노가 말도 못 하고 울음만 토하는 사이 황준우에게 다가온 흑노가 붉어진 눈으로 물었다.
“주인은 무신이시지 않습니까. 전생에도…… 이번 생에도…….”
“…….”
말했듯, 두 사람은 모두 뇌의 이상이 굉장히 많이 사라진 상태다.
감정이 아닌 이성을 알고 있으며, 논리와 상식 또한 충분히 갖춰져 있다.
애초부터 황준우의 경우가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 기적을 누군가에게 강요할 수 있다면 무신이 아닌, 진짜 신만이 가능할 일이다.
“……미안하다.”
황준우의 짧은 사과에 흑노의 입에서 또 한 번 오열이 터져 나왔다.
죽음은 무엇으로도 돌릴 수 없다.
그 사실이 다시 한 번 황준우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남몰래 흘렸던 눈물이 코끝까지 제멋대로 차올랐으나 비치지 않을 수 있었다.
아마 누구보다 오래 사마정의 곁을 지키며 한을 묻어두지 않았다면 참지 못했을 터였다.
찍찍찍-!
주변으로 몰려든 붉은 눈을 한 쥐들을 바라보는 전왕의 눈빛은 흐리다.
장례가 끝날 때까지만 하여도 다소 멀쩡해 보이던 모습과는 많이 달라 보였다.
그런 전왕을 일깨우려는 듯 쥐들은 계속해서 울음을 흘렸다.
하나 답변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황준우가 전왕에게로 다가갔다.
“무얼 망설이고 있는 거야?”
“맹주님…….”
그때서야 전왕의 입이 무겁게 열린다.
황준우를 바라보는 두 눈에는 후회가 가득하다.
“제가 멍청하게 당하지만 않았어도…….”
“네 탓이 아니야.”
한숨을 내쉰 황준우가 전왕의 옆에 앉았다.
“진무영은 영악했고, 나는 유약했다. 문제의 원인이 있다면 바로 여기 있어야지.”
황준우가 자기 자신을 검지로 가리킨다.
“아닙니다. 제가 조금 더 방비하고, 준비했더라면…… 제 역할에 충실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전왕이 고개를 내저으며 말한다.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의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
굳이 서로의 상처를 후벼 파기 위한 행위만은 아니었다.
“그래도 언제까지 이렇게 멍청하게 있을 수는 없잖아.”
“맞는 말입니다. 다만…….”
답변을 하는 전왕의 눈빛이 흔들린다.
그 혼란을 황준우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머리가 제법 좋고, 무섭도록 영민하지만 전왕은 본래 마음이 약하다. 그 모습이 겁 많은 전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황준우와 함께하며 여러 가지 사건을 겪는 동안 제법 강해졌다고는 하나 그 본질이 어디론가 사라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마정의 죽음은 그런 전왕의 약점을 마구잡이로 끄집어내고 헤집고 있었다.
후회라는 한 단어가 머릿속을 넘어 마음까지 어지럽히고 있을 터였다.
며칠간 황준우가 그러했듯 말이다.
“지금 이해하라고 하는 말은 아니야. 그냥 들어만 둬. 사람은 누구나 후회를 해.”
“…….”
“사마정도 그랬지.”
재생 전 황준우에 대해 제법 잘 알고 있던 전왕이다.
심지어 눈치도 제법 빠른 편이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 무엇도 읽어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렇지 않은 듯 내 옆에 있어 줬어. 그 생각을 문득 해놓고 보니 말이야. 내가 멍청하게 후회만 하고 있으면 사마정 녀석이 더 실망할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
“차가운 손을 잡고 한참을 생각하고서야 그런 답이 나오더라. 보고 배워야지. 익혀야지. 마냥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인생이란 게 언제나 뜻대로만 되는 건 아니니까.”
황준우의 시선이 전왕을 보며 말없이 붉은 눈을 빛내는 적안서들을 향했다.
그가 다가오자 기다렸다는 듯 울음소리를 멈춘 채 대화에 집중한다.
‘똑똑한 녀석들이라니까.’
대체 그 정체가 뭘까.
영물이 분명한데, 근원을 알 수가 없다.
잠시 딴생각을 한 황준우가 입가로 흐린 웃음을 보이며 몸을 일으켰다.
“마음속에 남는 한의 잔재까지 털어낼 수는 없되, 무너져 있지만 말자. 강해지자. 더. 사마정처럼…….”
시선은 문득, 이제는 울음을 멈추고 당당히 서 주먹을 꼭 움켜쥐고 있는 흑백쌍노에게로 향했다.
“저 두 사람처럼.”
“…….”
전왕의 눈에 조금은 빛이 돌아온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본 황준우가 등을 돌렸다.
사람 셋이 걸어가면 그중 하나는 스승이 있다고 하였다.
그 말이 옳았다.
황준우는 죽은 사마정에게서, 전왕은 바보 같아만 보였던 흑백쌍노에게서 삶의 새로운 길을 배운다.
무공, 기술, 학문,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가르침이 그들에게 있었다.
바로 삶이다.
굳이 세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린 시절 황준우는 가족에게서, 스승인 백교에게서, 경호를 비롯한 지인들에게서 새 삶을 사는 법을 배워왔다.
인생이란 언제나 배우고 익히는 선비(學士)의 길이다.
그 배움을 바탕삼아 더욱 강해지며 새로운 삶(再生)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결국 모두가 똑같구나.’
하니 전왕도 분명히 당당히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너무나도 미약해 보이지만, 무엇보다 강인한 것이 또 인간의 마음이라.
황준우 역시 친우를 떠나보내며 더욱 무겁고 강한 걸음을 뗄 수 있게 되었다.
며칠 뒤 전왕은 안정된 얼굴로 적안서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볼 때마다 죽은 천조회주가 생각나서 괴롭기도 합니다만, 이 녀석들이 저를 따르는 데에는 또 이유가 있겠지요.”
웃음을 찾은 전왕을 보며 황준우 역시 미소를 보였다.
천조회주의 이름은 흑백쌍노가 물려받았다.
전왕이 적안서의 주인이 되었지만 천조회의 사정에는 두 사람이 훨씬 더 밝았다.
무엇보다 천조회에 대한 애정 역시 컸다.
두 사람은 황준우를 찾아와 사마정이 남긴 천조회를 천하제일로 공고히 다지겠다며 약속했다.
시간이 흘러, 모든 사람들이 마음속에 슬픔과 후회의 잔재를 묻은 채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그사이 천하에는 황제의 죽음이 알려지고, 새 황제의 즉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역사상 측천무후 이후 두 번째 여황제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고, 조금은 서늘한 날씨가 찾아올 때쯤.
만금장의 연무장에서 매일 같이 땀을 흘리던 경호의 입가로 웃음이 흘렀다.
“됐어.”
“이제 완전히 회복했나 보네.”
다가온 황준우의 물음에 경호가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정말 재기할 수 없을 줄로만 알았는데…….”
눈시울은 감격으로 붉게 물든 채였다.
진무영에게 처참한 꼴을 당해 온몸의 근육이 손상되다 못해 파괴 직전까지 갔던 경호였다.
그런 그가 다시금 무인으로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된 데에는 황준우가 회복을 도운 덕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 자신의 노력이 컸다. 처음 그가 만금장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검 한 번 휘두르기도 힘들어하던 몸이었었으니 말이다.
“역시 우리 경호는 강하네.”
“천하제일의 무신께 들을 이야기는 아닐 것 같은데요.”
“그런 의미가 아니야.”
황준우가 웃음을 보이며 경호의 어깨를 두드린다.
언뜻 보면 유약한 인상에, 자기주장 없고 걱정투성이로 보이는 경호지만 그 마음만큼은 누구보다도 강하다. 엉망진창인 몸 상태의 자신을 깨달았을 때, 얼굴 한 번 구기지 않고 다시 재활하면 된다고 말할 수 있는 무인이 몇이나 있을까? 경호는 실제로 그것을 해냈다.
완전히 몸이 회복될 때까지 수련을 게을리하지도 않았다.
이런 점이야말로 경호라는 인간이 가진 강함일 터였다.
“수고했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서로를 바라보며 훈훈한 웃음을 지은 두 사람의 시선이 이제는 연무장의 또 다른 한편을 향했다.
홍산과 황서연.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한 채 검과 창을 겨누고 있다.
무공 경지와 재능, 모두 황서연 측이 압도적이지만 홍산 역시 감각이 나쁜 편은 아니다.
무엇보다 홍산은 냉철했다. 황서연이 다소 방심할 수 있는 부위를 찔러 들어가는 예리함이 뛰어나다. 덕분에 두 사람의 대련은 서로의 실력을 상승시키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무림이차대전이 있었던 때와 비교해서 두 사람 모두 두 수 이상 실력이 오른 것이 그 증거였다.
“이제 저 두 사람을 쫓아가야 하네요.”
경호가 조금은 지친 음색을 흘린다.
“금방 따라갈 거야.”
“빈말이라도 감사합니다.”
“진짜로.”
경호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지만, 큰 부상에서 회복한 그의 몸은 일전에 비해 몇 배는 더 탄탄해진 상태였다. 인간의 몸은 다소 강철과 닮은 면이 있어 부러지고, 다시 붙을수록 강해지는 탓이다. 따지자면 경호에게도 없던 무골(武骨)이란 게 생겨난 셈. 게다가 마지막 순간까지 진무영과 맞붙으며 몸에 새겨진 기억이란 것도 있을 터였다.
그런 경험들은 재능을 뛰어넘어 사람을 성장시킨다.
황준우는 경호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속도로 성장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까지 말씀해주시니, 더 열심히 해야겠네요.”
“그러든지. 무공 말고 다른 쪽도 열심히 하면 좋겠다만.”
“장가 이야기라면 이제 도련님도 함부로 말씀하실 나이가 아닐 텐데요.”
“뭐…… 난 경호랑 다르게 잘생겼잖아?”
“……가끔 보면 정말 얄밉다니까요.”
“가끔이라 다행이네.”
피식 웃은 황준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후 어딘가를 바라보는 눈이 반짝 빛난다.
“어쨌든 말한 대로 수련하고 있어. 난 찾아온 손님이 있는 것 같네.”
“손님이요?”
작금의 천하는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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