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재생-276화 (276/373)

학사재생 276화

제 276화

소주를 벗어나 곤륜으로 향하는 일행은 황준우와 백교, 신아를 포함한 셋으로 꾸려졌다.

제갈량은 다소 아쉬운 눈빛으로 작별 인사를 건넸다.

“가문을 오래 비워 두기도 뭐하고, 내 체력으로 세 사람을 쫓는 건 무리야.”

실제로 소주까지 오는 길목에도 제갈량은 몇 번이고 탈진할 뻔한 위기를 겪었다. 뛰어난 주술 실력에 대칭되듯 그녀의 체력이 상당히 저조한 탓이었다.

“기왕이면 제갈세가에 남는 인물들을 조금이라도 빼서 맹으로 보내줘. 전왕 녀석이 힘내고 있다지만 안쓰러운 것도 사실이라서.”

황준우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표정의 제갈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손이 모자란 건 마찬가지지만, 일단 내가 가문으로 돌아가면 한동안은 여유가 조금 있을 거야. 그래 볼게. 그럼, 또 보자고. 다들. 아, 신아 할멈만 빼고.”

“고얀 성격 하고는!”

콧김을 내뿜는 신아를 보며 묘한 웃음을 보인 제갈량이 손을 흔들고는 사라졌다.

이후 세 사람 역시 소주를 벗어났다.

셋 모두 여유롭게 축지를 사용하니 속도는 빠르게 이어졌다.

그렇다고는 해도 황준우의 입장에서는 다소 아쉬운 속도일 수밖에 없었다.

‘경공하고 동시에 펼친다면 더 빠르겠지.’

하나 그 과정이 쉽지가 않다.

솔직히 황준우 역시 아슬아슬하다는 느낌을 여럿 받았을 정도니 말이다.

두 사람에게 그와 같은 방법을 강요할 필요는 없었다.

실제로 축지로만 이동한다고 하여도 세 사람의 속도는 어지간한 경신술의 달인을 압도적으로 뛰어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다소 느긋한 걸음으로 강소를 지나가던 중, 다소 지루해진 황준우가 바로 옆에서 축지를 사용하고 있는 백교를 향해 말을 건넸다.

“그나저나 제갈세가는 정말 바쁜가 보네요.”

“아무래도, 금오도(金鰲島)를 직접적으로 견제하고 있으니까요.”

“그렇군요. 제갈세가가…….”

황준우가 짧게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곤륜이 신선들이 머무는 성역(聖域)이라면 금오도는 수많은 요괴들이 머무는 마지(魔地)다. 황준우가 일전에 제갈세가에 방문했을 때 싸웠던 인면지주 역시 그를 통해 튀어나왔다면 정황이 이해가 되었다.

“혹시 오해할까 하는 이야기다만, 곤륜은 마성(魔星)들이 잠든 유계의 입구를 틀어막는 중이다.”

신아가 두 사람의 대화에 빨리 끼어들었다.

황준우로서는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본래 금오도를 담당하고 있는 측이 곤륜이었거든요. 상반된 성향이기도 하고, 가끔씩 정도를 넘어서는 요선(妖仙)들이 나타나기도 하니 신선이 직접 움직일 수 있는 곤륜 측에서 상대하는 게 제격이었던 탓이죠…….”

“아하…….”

황준우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아시다시피 지금 세계가 꽤나 불안한 상태 아닙니까. 금오도뿐만이 아니라 원래 인계로는 나오지 못할 유계의 마왕들까지 꼬리를 보이고 있는 실정이니…….”

“제갈세가를 이용해 역할을 분담했다는 거죠?”

“예. 대충 맞습니다. 다행히 제갈세가의 진법 능력은 길목을 막는 데에 있어서만큼은 곤륜보다 더 뛰어나 훌륭한 성과를 보이고 있지요.”

“과연…….”

금오도의 길목을 막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면, 아무래도 실제 겪었던 것보다 제갈세가의 진법이란 더 뛰어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참고로 몇몇 금오도와 마성, 그러니까 마왕들이 머무는 유계의 길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느 한쪽이라도 뚫리면 곤란한 상황이지요.”

“그래서 곤륜이나 제갈세가나 밖에 무슨 일이 있어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는구먼.”

천하가 피눈물을 쏟는다 한들, 세상에 큰 해악을 불러올 요괴와 마왕들이 가득 풀려나는 것보다는 낫다.

물론 양측 다 막을 수 있다면 그편이 좋겠지만 힘이 모자란 곤륜과 제갈세가 입장에서는 애써서라도 고개를 돌려 외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천하의 안녕을 확실하게 잡아줄 훌륭한 제자님의 남천맹이 있으니 든든하지요.”

“하하, 이것 참. 쑥스럽게.”

백교의 칭찬에 황준우가 뒷머리를 가볍게 긁었다.

“아, 잠깐. 그러면 이 녀석은 어떤 경우예요?”

곤륜으로 향하기로 결정한 이후 굉장히 침울한지 질질 끌려오면서도 입도 열지 않고 있는 달기를 가리킨 황준우가 물었다.

“아까 말했죠? 유계와 금오도의 길이 연결되어 있다고. 그녀의 경우는 아주 특별한 편에 속합니다.”

“달기는 본래 금오도 소속의 요선(妖仙)이다. 실상 따지자면 요선도 못 될 수준의 한낱 여우 요괴에 불과했지.”

백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신아가 달기를 보며 무서운 시선을 보냈다.

“근데 저 녀석은 어떻게 마왕이 된 거야?”

“그녀가 요기를 쌓는 방법은 다소 특별합니다. 음…… 쉽게 말하자면 혹여 천마신교의 흡정대법에 대해 아십니까?”

“아아, 알지. 그거 천마신교 내에서도 금기(禁忌)잖아?”

과격하고 잔인하다고 소문난 마인들 사이에서도 금기는 엄연히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백교가 말한 흡정대법이었다.

상대의 내력은 물론 선천지기, 그리고 생명력 한 줌까지 모두 흡수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흡정대법은 가히 마공(魔功)이란 이름에 부족함이 없는 위력으로 한때 마인들의 크나큰 추종을 받았었다.

마중마공(魔中魔功)이라는 별명으로까지 알려졌을 정도였으니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그를 사용한 마인들이 모두 광기에 물들거나 견뎌낸다 해도 끝내는 육체가 붕괴되는 부작용을 겪는다는 사실이었다.

흡정대법은 빠른 속도로 강한 힘을 얻게 해주지만, 자신에게 맞지 않는 종류의 기운을 억지로 흡수하며 신체와 정신에 분열을 일으킨다.

그만큼이나 위험하기에 결국 흡정대법은 천마신교에서조차 금기로 지정되었다.

“그 흡정대법을 만든 게 바로 저 달기입니다.”

“에? 분명 이대천마가 만들었다고 알고 있는데.”

지금은 많이 약화되었지만, 천마신교는 대다수의 무림 역사에서 단일최강세력으로 군림해 왔다. 그중에서도 최고 전성기는 일대에서 삼대까지 이어지는 천마들이 군림하던 시절. 그야말로 천재들의 향연이던 시대다. 흡정대법 역시 바로 이 시기에 이대천마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강호 역사에 알려져 있었다.

“사실 흡정대법은 천마신교 이전에도 존재했습니다. 다소 다른 이름과 방식으로 말이지요.”

“흡기공, 탈혼기공, 연혼착취술, 뭐 말하자면 끝도 없지.”

신아가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찬다.

“저 여우 요괴 년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 힘을 이용해 상대의 생명은 물론 힘까지 모두 갈취하고 있었지. 그리고 어느 날, 그 힘을 욕심 많고 악의로 가득 찬 누군가에게 전수하기 시작했다.”

“물론 단순한 선의는 아니었습니다.”

백교가 부채를 펼쳐 달기를 가리켰다.

“단순한 여우요괴가 구미호를 거쳐 요선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쉽지가 않죠. 혼자서 모으는 힘으로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설마…….”

황준우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짐작 가는 바가 있는 탓이었다.

“흡정대법 혹은 탈혼기공 등으로 알려진 저 위험한 능력이 사용자의 정신과 육체를 파괴시키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 대상이 죽음을 맞이할 경우, 육체에 남아 있던 힘은 모두 흡정대법의 근원에게로 향하게 되어 있거든요.”

흡정대법을 익힌 이는 다른 이의 내력과 생명력을 갈취하여 힘을 키운다.

그렇게 키운 힘을 사용하다 보면 근원인 달기에게로 돌아가기 위하여 광기를 일으킨다.

결국 흡정대법의 비밀은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의 구조에 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악업을 쌓고 있던 그녀가, 강요하는 악행을 일삼아 요선이 되었습니다. 그 힘은 금오도에서도 손에 뽑을 정도로 강력하였고, 유계의 마왕들마저 긴장시킬 정도였죠.”

“몇몇 마왕은 실제로 저년에게 잡아 먹혔지.”

“마왕이……?”

“뿐만인 줄 알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멍청한 몇몇 마왕들은 저년의 치맛자락에 놀아나 제 간까지 빼줄 기세로 그녀를 지키기까지 했지.”

“유계 내에서도 다소 분열이 있기는 했습니다만, 결국 그녀는 마왕의 위에도 이름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허…….”

황준우의 입에서 짧은 감탄이 스쳐 지나갔다.

“그건…… 내 탓이 아니야.”

동시에 꼬리와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힘없이 있던 달기가 입을 열었다.

“그건 그냥 힘 쓸 데 없던 마왕들끼리 서로 다투기 위한 명분을 만들어 내고 싶었던 것뿐이라고.”

살짝 입술을 내민 그녀의 얼굴에는 진심 된 억울함이 엇비쳤다.

“마왕들 사이에서도 명분이란 게 필요한가?”

“당연하지. 유계에 있는 놈들 역시 본래 살아 있던 인간들이었어. 의식이나 의지가 없는 녀석들이 대다수지만, 진짜 힘이라고 볼 수 있는 강한 놈들은 그런 것에 많이 휘둘린단 말이야.”

“신기하네.”

달기의 툴툴거리는 말에 황준우의 시선은 백교를 향했다.

“근거가 없는 이야기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본래라면 죽은 사람은 윤회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유계에 갇힌 이들에게는 대다수 사연이 있는데, 그들 중에는 성향이 맞지 않아 마왕이 되지 않았지만, 단순한 무력만으로 치면 그에 못지않은 이들도 몇몇 존재하니까요.”

“오호…….”

감탄을 토한 황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의 그림이 이제야 확실히 보이네.’

황준우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천하를 기준 삼아 위로는 신선들이 머무는 선계가 있다.

그리고 천하의 아래 또는 어딘가 연결된 통로에는 금오도와 유계가 이어져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품는 거대한 우주가 있고, 최고 신인 숙과 홀이 존재한다.

그리고 천하에서 죽은 이들은 특별한 사연이 없는 이상 대다수 윤회의 과정을 거쳐 새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윤회라…….’

황준우의 역시 새로운 삶으로 윤회했다고 볼 수 있는 셈.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대다수의 이들은 그 과정에서 기억이 소멸되거나, 어떠한 이유에 의해 사라지는데 황준우만이 여전히 영혼에 기억이 각인 되어 되살아났다.

그 원인은 원공에게 있을 확률이 크다.

“그러면 불가의 부처들은 선계와 연관된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겠네요. 금오도와 유계의 관계처럼 말이지요.”

“음, 아닙니다.”

“방금 전 공자가 머릿속에 떠올린 모습이 이 세계의 구조 전부라고 보시면 됩니다. 하나 더 비밀을 알려드리지만, 석가여래님이야 말로 숙과 가장 가까운 존재라고 생각하시라는 겁니다.”

“석가여래와 숙?

“네네.”

웃음을 지은 백교가 고개를 돌린다.

“더 이상 자세한 이야기는 비밀입니다. 라기보다는 때가 되면 알게 되실 테니 기다려 달라고 부탁드리고 싶군요.”

“음…….”

고개를 끄덕인 황준우가 생각에 잠겼다.

몇 가지 가정이 떠올랐지만 직접 듣지 않는 이상 확신할 수 있는 정답은 아니었다.

“오늘은 저 마을에서 쉬어가자꾸나.”

대화와 생각을 반복하며 축지를 펼치다 보니 어느덧 해가 졌다.

아무리 걸음이 빠른 세 사람이라지만 체력적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황준우와 백교는 아직 여유가 있었지만 신아의 얼굴에 지친 기색이 확연히 어려 있다.

백교의 시선이 황준우를 향했다.

아무래도 의견을 직접 결정하라는 뜻 같았다.

“그럼 쉬고 가죠.”

앞장서는 일에는 제법 익숙한 황준우가 고개를 끄덕였고, 세 사람의 걸음은 자연스럽게 마을 입구에 도달해 느려졌다. 축지를 끊고 마을 내부로 들어선 세 사람은 주변 풍경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룻밤 머물기는 괜찮겠네요.”

“생각보다는 크군요.”

말처럼, 마을은 그리 작지 않았다.

아직까지 불이 들어온 건물도 많았으며 객점도 여럿 보였다.

세 사람은 그중 마을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객점에 다가가 문을 열었다.

동시에 들려온 소란 소리에는 세 사람의 미간이 얕게 찌푸려졌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