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재생 300화
제 300화
평화로운 선계 전체가 거대한 폭음과 함께 진동을 맞이했다.
자연스레 주변으로 무력을 가진 하급 신선들을 비롯하여, 상급 신선들이 몰려들었다.
선계 한복판에 신선들조차 한눈에 그 속을 꿰뚫어 보기 힘든 먼지구름이 자욱하게 피어났다.
신선들 중 하나가, 자신의 키만 한 거대한 활을 꺼내 들고 부리부리한 눈을 빛내며 호흡을 빨아들였다.
동시에 먼지구름 사이로 검은 인영 하나가 움직였다.
빛살이 예리하게 먼지구름을 파고든다.
또 한 번 거대한 폭음이 일었다.
활을 쏜 신선의 눈이 큼지막하게 커졌다.
“예의 화살을 막아내다니…….”
그의 바로 옆, 검을 뽑아 든 채 기세를 일으키던 여동빈 역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선계에서 검으로 가장 이름 높은 이가 여동빈이라면, 예는 활로서 유명하다.
그의 화살은 천리 밖의 매도 떨어트릴 정도라고 하니 그 위력이 어떠할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한데 그 화살이 막혔다.
“…….”
침묵을 지킨 예가 두 번째 화살을 꺼내 들었다.
먼지구름이 점점 더 걷혀가고 있었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겠다.’
활시위를 팽팽히 잡아당기고 있는 때였다.
“그만! 이 빌어먹을 놈들아!”
먼지구름 사이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과로?”
가장 먼저 반응한 이는 같은 팔선 중 하나인 여동빈이었다.
“다들 멈춰라! 적이 아니다!”
그 뒤를 따라, 어딘가에서 거친 바람을 일으키며 날아온 서왕모가 팔을 뻗으며 외쳤다.
시위를 메기며, 기회를 엿보던 예의 팔이 천천히 내려오며 그의 눈을 감싸던 빛이 사라진다.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인지…….”
먼지구름은 이제 완전히 옅어졌다.
그 내부, 핼쑥해진 얼굴의 장과로와 그의 당나귀, 그리고 황준우와 주연하의 모습이 보인다.
“모두 무사했구나!”
주변을 둘러싼 신선들을 지나쳐, 그들에게로 뛰어든 서왕모가 밝은 얼굴로 외쳤다.
“장과로가 또 사고를 쳤나 보군.”
“하여간에 쓸데없는 짓을 벌이는 건 제일이란 말이야.”
그 풍경에,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각자의 장기를 보일 준비를 하던 신선들이 웃음을 보이며 흩어졌다.
남은 이는 여동빈과 예, 두 신선뿐이다.
“무슨 일인지 설명해 줄 수 있습니까?”
그중 여동빈이 네 사람 사이로 떨어져 질문을 보냈다.
시선은 서왕모를 지나쳐 황준우에게까지로 향했다.
“헉, 헉…….”
장과로는 지친 표정으로 제 당나귀에 엎어져 손을 내저었다. 더 이상 말도 하기 싫다는 모습이다.
조금 전 신선들을 향해 소리를 친 것도 그야말로 젖 먹던 힘까지 다 짜낸 것이 분명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장과로는 만 리 길을 물 한 모금 없이 가도 쓰러지지 않을 정도의 체력과 도력을 가진 신선이다. 그런 그가 입 한 번 열기 힘들 정도로 지쳤다.
장과로를 제법 잘 아는 여동빈의 입장에서는 쉽게 넘어가기 힘든 상황이었다.
“영정에게 당했다.”
서왕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시황제? 그가 장과로의 술법을 깼단 말이오?”
“오랫동안 막혀 있던 벽을 넘어선 것 같다. 숙께서 직접 힘을 쓰지 않으셨다면 두 사람은 이미…….”
여동빈이 놀란 시선으로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대가 있었는데도 지키지 못할 정도였단 말이오?”
질문은 황준우에게로 이어졌다.
여동빈은 불과 얼마 전 황준우의 수련을 도운 전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가 일부의 영역에서 자신을 넘어섰음을 확신했다.
괴물 그 이상의 성장 속도.
아무리 오랜 세월 살아온 영정이라 하여도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본래 그 자리에는 제가 없었습니다.”
황준우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숙을 만났고, 갑작스럽게 괴상한 곳으로 이동되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두 사람에게 큰 위험이 닥친 상태였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고, 장과로가 전력을 다한 술법으로 간신히 탈출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서왕모와 여동빈의 고개가 동시에 끄덕여졌다.
“시간을 되돌리다니, 과연…….”
“오로지 그분밖에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도, 영정은 정말로 강해졌습니다.”
황준우가 두 사람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직접 보았지? 대체 얼마나 강해진 것이냐?”
“그대로서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었소?”
서왕모보다는, 여동빈 측의 질문에 답하기가 훨씬 쉬웠다.
“예. 적어도 현재로써는…… 아마도 할머니 정도 하고 비슷해 보였는데…….”
이번에야말로 두 신선 모두가 깜짝 놀랐다.
말없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예마저 튕기고 있던 활시위를 놓쳤을 정도였다.
“영정이 서왕모님과 격을 같이 하였다고?”
“놈 역시 아직 인간의 육체를 가지고 있지 않나?”
여동빈, 예의 이어진 질문에 심각한 얼굴이 된 서왕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영정 그 녀석이 인간으로서는 최초로 규격을 넘었구나.”
모두 그 일은 황준우가 해낼 줄로만 알았다.
영정은 대단한 천재였지만, 인간의 육체와 영혼의 수준을 가진 채로 규격을 넘는 일이란 것이 쉽지 않은 탓이다.
한데 영정이 먼저 그 길에 올라섰다.
“아, 그리고 그 주변으로 다섯 정도 새로운 이들이 보였는데 그들 역시 만만치 않아 보였습니다.”
황준우의 기준에서 만만치 않다.
적어도 어지간한 상급 신선과 맞먹는다고 보아야 할 터였다.
“설마 혼돈의 조각 중 하나라도 발견한 것인가.”
혼잣말을 읊조린 서왕모가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지.”
어찌 됐든 현재 선계에 대항하는 가장 강력한 적대 세력에 속하는 영정의 힘이 강해졌다.
심지어 그는 선계 바깥에서도 마음껏 힘을 쓸 수 있다.
“더더욱 네게 희망을 걸 수밖에 없겠구나.”
미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서왕모의 말에 황준우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보다…… 이 두 사람 우선 쉬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황준우의 손가락이 쓰러진 장과로와 마찬가지로 거친 숨을 내뱉으면서도 버티고 선 주연하를 향했다.
“그렇지. 일단 상청궁으로 가자꾸나.”
서왕모가 고개를 끄덕이며 앞장섰다.
두 사람을 향해 도술을 부려 쉽게 이끌어주는 일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다섯이 서왕모가 머무는 상청궁을 향했다.
주연하와 장과로는 서왕모가 머무는 상청궁의 방에서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선계에서 제일가는 의선(醫仙)들이 붙었다. 두 사람의 상세는 너무 걱정 말거라.”
“천하의 화타마저 이곳에서 뵐 줄은 몰랐지만, 그 정도라면 믿음직하지.”
주연하와 장과로의 상세를 살피기 위해 왔던 인물을 떠올린 황준우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제야 정말로 마음이 편해진 탓이다.
“영정이 강해진 것은 곤란하지만, 어차피 상대해야 할 적이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어.”
“그렇기야 하다만…….”
“수련만 한다면 충분히 따라잡을 자신도 있고. 마침 비교 대상도 적절히 있잖아?”
황준우의 시선이 서왕모를 직시했다.
하나 서왕모는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마 조금은 다를 거다. 영정은 무와 술을 갈고 닦아 규격을 벗어난 존재. 기운의 양과 질이 같아도 실제 전력은 더 높다고 보아야겠지. 네가 느낀 대로라면…… 나조차 놈을 감당할 수 없다는 뜻이다.”
“괜찮아. 나도 할머니를 이길 생각으로 할 거니까.”
“게다가 놈은 혼자가 아니라고 했지 않느냐. 심지어 네가 본 것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
“음…….”
황준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확실히 영정도 문제지만, 그 주변의 다섯 인물도 까다로웠다.
그들 모두가 힘을 합친다면 일을 수월하게 풀기가 힘들 수밖에 없었다.
황준우 역시 조력자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적어도 그들과 대등하게 무(武)로 맞설 수 있는 이들이어야 한다.
“나름대로 생각을 해보았다만…… 알다시피 우리의 힘은 의미가 없다.”
신선은 선계 외의 영역에서는 어떠한 율법에 의하여 힘이 강제된다.
가장 큰 전력이 될 수도 있는 이들이 봉인된 것과 다름이 없는 셈이다.
“백택은 뛰어난 지혜와 넓은 안목을 가졌지만 무력은 그리 뛰어나지는 않다.”
확실히, 인간 중에서는 비교할 대상이 몇 없긴 하지만 상대해야 할 적은 그보다 더욱 강했다.
“나의 삼청조, 신아 역시 공덕을 많이 사용한 탓에 한동안은 정양해야 하는 상태고…….”
“흠…… 그러면 일단 그 부분은 나중에 생각하고 우선 유계에 다녀와도 될까?”
서왕모가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꼭 가져와야 할 물건이 있는데, 누군가 눈치챌 것 같다고 빨리 챙겨 오라는데.”
“그분께서 하신 말씀이냐?”
“응. 숙이 한 이야기야.”
“혼돈의 조각 이야기 아니오?”
듣고 있던 여동빈이 재빠르게 물었다.
“유계에 혼돈의 조각이 남아 있었던가! 대체 누구에게?”
서왕모가 황준우를 향해 물었다.
“나도 몰라. 자세한 건 스승님한테 물으라던데. 그리고 유계에 가면 조력자가 나올 것이라고. 어차피 장과로의 어고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가야 할 길이었다고는 하지만…….”
“이런…….”
서왕모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근데 혼돈의 조각이란 게 대체 뭐기에 그래?”
“쉽게 생각하면 된다. 제강의 또 다른 이름이 무엇이라 했느냐?”
“아, 설마…….”
제강은 우주다.
또한 혼돈이라고도 불린다.
결국 유계 어딘가에 있다는 귀중한 물건은 그러한 제강이 남긴 무언가다.
이미 숙이라는 신을 마주하여, 그 존재에 대해 느낀 바가 있는 황준우였다.
제강은 그러한 숙조차도 뛰어넘는 거대한 규격의 존재였다.
그 일부만으로도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은 분명했다.
“대체 왜 그런 걸 유계에…….”
이제는 황준우가 의문을 표했다.
생각한다면 가장 안전한 장소는 선계로 보였으니 말이다.
“숙께서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혼돈의 조각이 선계에 들어온다면 균형이 붕괴되었을 터이니.”
혀를 찬 서왕모의 눈빛에 다급함이 어렸다.
“그러면 당장에라도 가야 하는 것 아니야?”
황준우의 목소리에도 다급함이 어렸다.
“아니. 아니다. 놈이 장과로의 술법을 헤치고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아마 선계의 움직임에 주시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서왕모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마음은 다를 것 없지만, 조급한 움직임이 오히려 화가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행동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숙께서는 아직 조금은 여유가 있다고 전하셨습니다.”
때마침, 황준우와 서왕모, 여동빈과 예가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던 방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
“스승님!”
백교였다.
“오랜만입니다. 생각보다 일찍 뵙게 되었군요.”
황준우를 향해 손을 흔든 그가 부채를 펼치고는 느긋한 걸음으로 다가와 자리에 앉았다.
“다들 오랜만에 뵙습니다. 생각 외의 분들도 계시고…….”
백교의 시선이 여동빈과 예를 향했다.
서왕모의 경우는 선계를 비롯하여 천하 전체에 관련된 일을 많이 한다.
하나 두 신선은 그야말로 무선(武仙).
직접 행동할 때가 아니라면 나서는 일이 드물었다.
“아무래도 상황이 심각한 듯하여, 직접 조금 듣고 보기로 했소. 또한 구원자와 약조의 끈이 이어져 있어서…….”
여동빈의 말에 백교의 눈이 반짝 빛났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새하얀 실선이 그의 눈에 보인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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