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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301화 (301/373)

학사재생 301화

제 301화

“아하…… 과연, 이것 참 우리 제자님께 큰 복입니다.”

이해하지 못한 황준우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직 정확한 사실을 알려 드리지는 않은 겁니까?”

백교의 질문에 여동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원자가 원하면 절로 인연이 이끌 터인데 굳이 말해서 무엇하리오.”

“음…… 그도 옳은 말씀이십니다.”

백교가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황준우를 바라본다.

“뭐, 아직은 그리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겠죠.”

황준우가 허탈한 웃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동빈의 말처럼 때가 온다면 알아서 알게 될 일이라면 굳이 촉박할 필요는 없었지만, 궁금한 것 또한 어쩔 수 없었으니 말이다.

“하면 숙께서 방향을 제시하신 게냐?”

세 사람의 대화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서왕모가 질문을 건네 왔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중 숙과 가장 빠르게, 자유로운 대화를 할 수 있는 인물이 백교다.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음…… 다소 무리를 하신 탓에 그렇게까지는 전달하지 못하셨습니다. 모든 결정을 제게 맡기셨지요.”

“아…….”

황준우가 짧은 신음을 흘렸다.

대충 그 이유가 짐작이 간 탓이다.

“전권위임인가. 그래, 한번 네 이야기를 들어 보자꾸나.”

서왕모가 팔짱을 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제 계획 역시 서왕모님의 의견과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 제자님에게도 충분한 조력자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합니다.”

지상에서 황준우의 무력은 언제나 절대적이었다.

조력이란 것이 필요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격차를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작금 영정의 경우는 다르다.

적어도 그의 추종자들을 상대할 만한 조력자가 있다면 큰 힘이 될 터였다.

“누가 몰라서 하는 말이냐. 그에 합당한 인재가 없는 것이 문제이지.”

서왕모가 혀를 차며 말했다.

“없으면 기르면 되지 않겠습니까?”

백교는 담담한 음성으로 답했다.

“기른다고? 그만한 수준의 무인들을?”

서왕모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이미 씨앗이 보이는 이들이 몇 있습니다. 우리 제자님 근처에 말이죠.”

황준우가 검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제 주변에요?”

이후 머릿속에 몇 명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하나 당장 조금의 시간으로 크게 성장하여 황준우를 도울 법한 인물은 단 한 명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서문가주 정도 말고는 힘들 텐데…….”

서문가주는 이미 오래전에 조율의 경지에 오른 고수다.

작은 계기만 있다면 크게 성장하여 보탬이 될 것이 분명했다.

하나 그 외의 인물들 중에서는 뽑기가 어려웠다.

“잘 생각해 보시면 더 있지 않습니까?”

백교의 질문에 황준우는 또 한 번 고민에 빠졌다.

물론 없지는 않다.

“서연이가 제일 가능성이 높긴 하죠. 연하도 사실 재능이 보통이 아닌 편이고, 경호나 홍산도 언젠가는…….”

말을 이어가던 황준우는 곧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너무 오래 걸려요. 짧은 시간 내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차라리 제가 여섯 모두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는 게 빠를지도 모르죠.”

“분명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조력자의 도움은 당장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우리 제자님, 공자께서 해야 할 일을 생각하자면 더 많은 손이 있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공감이야 한다만, 방도를 가지고 있는지를 묻고 싶구나.”

서왕모가 답답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부채를 펼치고 입가를 가린 백교의 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우선 지금 언급된 인물들을 모두 선계로 불러들입시다.”

“선계로?”

백교의 말에 서왕모의 표정이 뒤틀렸다.

“농담하는 게냐?”

“진심입니다. 짧은 시간 내에 강해지기 가장 좋은 방법 아닙니까?”

시선은 이번에는 황준우를 향했다.

그 역시 선계에 들어서며 어마어마한 성장을 이뤄냈다.

뛰어난 재능 탓이 크지만 보이던 시야가 바뀌고, 겪는 것이 달라져 그 속도를 더욱 가속화시켰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아직 등선에 이르지 못한 인간을 선계로 들이는 것은 엄연한 규율 위반이다. 황준우는 애초부터 규격 외, 연하의 경우야 조금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만, 그렇게 많은 인간을 선계로 들인 적은 전례가 없다.”

“전례가 없다고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라는 뜻은 아니죠. 여기 계신 서왕모님, 그리고 태상노군의 허락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 아닙니까?”

“고약한…….”

타박하는 말과 다르게, 서왕모의 눈에는 엄연한 고민이 깃들어 있었다.

작금의 사태는 일반적이지 않다.

다소 고지식한 면을 버려야지만 돌파구가 생길 것은 분명해 보였다. 다만 그런 전례를 너무 쉽게 통과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어떠한 확신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좋다. 네 말대로 그 아이들을 선계로 불러들여 수련시킨다고 하자. 하나 아무리 그래도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내에 큰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선계의 환경이 그들의 성장을 가속화시킬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황준우와 같은 급격한 성장이 되리란 법은 없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즉각 전력으로 활용할 수 없다.

그렇다면 굳이 규율을 깰 이유도 없었다.

백교는 그에 대해선 대답 대신, 투명한 병을 꺼내 들었을 뿐이다. 신비하게도 그 내부에는 새하얀, 숙을 닮은 맑은 빛이 가득 차 있다.

“그건…….”

“숙의 영혼 일부입니다.”

서왕모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놈 설마…….”

“제가 원한 것이 아닙니다. 숙 본인께서 결정하신 일이지요.”

백교의 담담한 말에 서왕모의 입술 끝이 가파르게 떨렸다.

“이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신 겁니다. 이번 일에는 아시다시피…… 혼돈의 조각이 걸려 있으니까요.”

“빌어먹을…….”

욕설을 내뱉은 서왕모가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백교를 타박할 일이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는 탓이다.

“그 영혼의 일부란 건…… 숙의 생명과도 관련이 있겠네요?”

황준우가 질문을 하였고, 백교가 이번 역시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한 번 봤을 뿐인데…….’

어째서인지 유달리 신경 쓰인다.

“돌려줄 수는 없죠?”

“불가능합니다. 가능하다 한들 받지 않으실 테고요.”

예상은 했던 이야기였다.

황준우의 얼굴에도 짙은 안타까움이 어렸다.

“어쨌든 현재로써는 최선입니다. 숙은 창조자이자, 모든 시간 규율의 지배자. 이 영혼을 이용한다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크게 활용할 수 있겠지요.”

그러고 보니 숙은 이미 한 번, 시간을 되돌린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황준우는 곧장 그녀의 영혼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을 떠올릴 수 있었다.

“설마 시간 흐름을 조절할 수 있는 건가요?”

“몇 가지 술법적 처리와, 한정된 공간, 주어진 시간의 배경이라면 숙의 영혼 일부를 통해 시간 배율을 조정할 수 있다.”

답은 서왕모에게서 대신 나왔다.

지친 표정에는 어째서인지 자괴감이 깊게 느껴졌다.

“그래, 좋은 이야기다. 현재로써는 최선이지. 나와 장과로가 힘을 합쳐 최대의 결과를 이루어보마. 그 공간 안에서라면 네가 말한 조력자들 외에 황준우 이 녀석도 꽤나 성장할 수 있겠지.”

숙의 희생을 통해 만들어 내는 시간이다.

결코 헛되게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황준우의 눈에서도 더욱 큰 의지가 불타올랐다.

“하면 서왕모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천리행을 사용해 조력자분들을 모셔오지요.”

천리행은 술법이 아닌 일종의 권능이다.

세계에서 백교에게만 허락된 능력.

때문에 영정조차 함부로 간섭할 수 없다.

무엇보다 어지간한 술법 못지않게 빠르다.

많이 사용할 수 없는 만큼 백교에게 큰 무리가 되기도 하지만, 한동안 자제해왔던 만큼 지금이라면 문제없을 터였다.

“하면 난 태상노군과 만나 네가 읊은 조력자들의 선계 입성을 통과시켜 놓고 있겠다.”

서왕모도 결국 백교의 의견에 동의했다.

어찌할 수 없는 최선이란 괴롭지만, 선택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움직이도록 하죠. 공자, 서왕모께 받은 반도는 가지고 계시지요?”

“아, 물론이지.”

황준우가 품 안에 조심스럽게 보관하고 있는 작은 상자를 꺼내 들었다.

볼품없어 보이는 모습이지만, 내부에 든 것은 세상에서 손에 꼽히는 진귀한 보물인 반도다.

“이참에 언령에 관한 부분도 정리하고 오지요.”

백교의 말에 황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석후의 수명 보존과, 언령에 관한 것이 이번 선계행의 첫 목표였다.

물론 단순히 그 외의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지만 황준우의 입장에서는 이 일 역시 손에 꼽을 정도로 중요했다.

자그마치 아버지의 생명이 걸린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면 바로 출발할까요?”

백교가 황준우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시간이 조급하다고 한 만큼 다소 빠르게 움직일수록 좋을 것이다.

‘연하가 조금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황궁에 돌아가지도 못한 채 영정에게 습격당해 죽음의 위기를 맞았다.

간신히 다시 선계로 복귀했지만 체력이 많이 떨어졌는지 상청궁에 도착하기도 전에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화타 등 뛰어난 의선들이 돌보고 있으니 곧 깨어나겠지만, 정신적인 타격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걱정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잘 이겨내겠지.’

위로는 돌아와서 해주어도 충분하다.

지금은 정말 한 시가 바쁜 상황.

황준우는 망설이던 마음을 접고 백교의 손을 잡았다.

“돌아오면…….”

그렇게 다시 지상으로 떠나기 전.

묵묵히 이야기만을 듣고 있던 예가 입을 열었다.

황준우를 향한 눈빛에는 열기가 가득하다.

“나 역시 그대의 수련을 돕고 싶군.”

말은 그리 하였지만, 의지에는 감출 수 없는 호승심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이 말을 하기 위해, 이 자리를 끝까지 지킨 것이리라.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 황준우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역시 활의 고수께 한 수 배울 수 있다면 영광일 듯합니다.”

황준우의 대답에 예의 얼굴에 작은 웃음이 번졌다.

신선들 중에서도 표정 변화가 드문 그에게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공자, 손 꼭 잡으셔야 합니다.”

백교가 다소 마음 놓고 있는 듯한 황준우를 향해 짧은 권고를 건넸다.

고개를 끄덕인 황준우의 눈에는 이채가 어렸다.

이름만 듣고 단 한 번도 겪거나 보지 못한 최상급의 이동술.

훔칠 수 있다면 그러고 싶은 심정이었다.

빠른 이동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겪어본 바가 많은 만큼 더욱 그랬다.

“갑니다.”

그런 황준우를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바라본 백교의 몸이 상청궁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바쁘겠군.”

남은 이들 중, 서왕모가 먼저 몸을 일으키며 한숨을 토했다.

천리행은 정말 빨랐다.

축지법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다.

황준우가 나름 최고의 이동술로 개방한 축지경공으로도 따를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힘의 논리와 규율이 제멋대로 움직이며 한걸음에 천 리를 넘는 거리를 단숨에 주파해버린다.

그야말로 신의 권능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종류였다.

아무리 황준우라고 해도 천리행을 훔쳐올 방법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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