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재생-306화 (306/373)

학사재생 306화

제 306화

아마 주연하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꽤나 많은 힘을 썼을 터였다.

완시의 방을 만들기 위한 시간까지 생각한다면 본인이 이야기한 대로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수밖에 없는 일정이었다.

“다행이다.”

절로 나온 안도의 미소에 주연하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했다.

“무엇이 말이냐?”

“걱정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말이지. 할머니가 곁에 있어 줘서 다행이라고.”

“부정은 할 수 없겠구나.”

주연하가 활짝 미소 지었다.

아름답지만, 그 안에 감춰진 걱정이 하나도 없지는 않았다.

‘역시 황궁이 신경 쓰이겠지.’

다만 마음에 묻어놓았을 뿐이다.

황준우는 굳이 그 점을 파고들지 않았다.

당장은 억지로라도 걱정을 잊어야 할 때다.

“그러고 보니 처음으로, 진정 같은 적을 눈앞에 두었구나.”

“그러네.”

황준우와 주연하.

두 사람이 바라보는 방향은 언제나 닮아 있으면서도, 한 걸음씩 떨어져 있었다.

하나 이번만큼은 진정으로 완전히 같다.

진시황 영정.

괴물같이 강대한 적을 생각한 주연하의 눈이 더욱더 단단하게 굳어졌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어서 우리도 완시의 방으로 가자꾸나.”

결정을 내린 주연하가 앞장서 걸어나가려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고는 손을 내밀었다.

“우리…… 연인이지 않느냐. 목표도 같고. 이번에야말로 함께 나아가자꾸나.”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말하는 주연하를 향해, 피식 웃음을 흘린 황준우가 그 손을 맞잡는다.

서로의 체온이 전해지는 그 느낌에 미소를 지은 두 사람은 방 안을 벗어났다.

“생각보다 빨리 왔구나? 그리고…….”

완시의 방, 그렇게 이름 지어진 공간으로 향하는 백색의 문 앞에 서 있던 서왕모가 놀란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서로 맞잡고 있는 두 사람의 손을 보는 두 눈은 가늘게 뜬 채다.

“아주 꼴불견이야.”

“하하…….”

어색한 웃음을 지은 황준우가 뒷머리를 긁적인다.

하나 맞잡은 손을 놓을 생각은 조금도 없어 보였다.

주연하 역시 웃음을 보이며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도착한 녀석들은 안으로 들어가 수련을 시작한 지 제법 되었다. 아마 녀석들에게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겠지.”

“그 정도인가요?”

“그분의 권능과 바람이 절실하게 담긴 조각으로 만든 공간이다. 직접 들어가 보지 않는 한 알 수 없다만, 실질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시간의 차이는 결코 짧지 않다. 예측하기로는 최소 천 배 이상은 차이가 날 것이라고 본다.”

“천 배……?”

황준우가 놀란 신음을 흘렸다.

주연하는 말 없이 눈을 반짝 빛낸다.

천 배면 바깥에서의 반 시진으로 완시의 방 내에서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시간 비율이다.

서왕모가 왜 이리 자신만만한지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예측일 뿐이다. 실제로는 더 차이가 날 수도 있지.”

“조금이라도 빨리 들어가야겠군요.”

주연하가 급한 걸음으로 앞으로 나섰다.

강해지겠다는 열망이 누구보다 큰 그녀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서왕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들어간 직후에는 큰 괴리감이 잇따를 것이다. 그를 감안하고 입장하도록 해라.”

“연하야, 늘 응원하고 있단다.”

따뜻한 목소리에, 편안한 웃음을 보인 주연하가 몸을 돌려 그녀를 끌어안았다.

“다녀올게요. 할머니. 고마워요.”

이후 주연하가 먼저 완시의 방 안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저도 다녀올게요.”

뒤를 이어 황준우 역시 방문을 열어젖혔다.

“주의사항은 이미 말해두었으니 의미 없을 테고, 네게 할 말은 하나뿐이로구나. 강해져라. 누구보다. 신선들조차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단순히 영정과의 싸움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황준우가 해야 할 일은 아직 너무나 많다.

그 모든 것을 위해서는 그야말로 압도적일 필요가 있었다.

숙에 못지않은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

서왕모는 그 가능성을 품고 있는 이는 오직 황준우뿐이라고 생각했다.

“물론이야.”

“안에 있는 누구도 너를 인도하지는 못하겠지. 하지만 좋은 방향을 알려줄 동료는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다녀오거라.”

처음 보는, 시원할 정도로 맑게 개인 미소를 보인 서왕모가 황준우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듬직한 미소를 보인 황준우가 완시의 방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선다.

문이 닫히고, 침묵이 내려앉았다.

서왕모는 흐뭇한 눈으로 완시의 방 입구를 바라보고는 팔짱을 꼈다.

“이제 종리권만 오면 되려나.”

일행들의 수련을 도와줄 마지막 인물.

팔선 중 최고라는 종리권을 기다리며 휴식을 취하던 서왕모의 눈썹이 미묘하게 뒤틀렸다.

‘방금…….’

선계 바로 아래, 곤륜의 지기가 틀어졌다.

곧, 거대한 기운의 충돌이 선계 전체를 뒤흔들었다.

완시의 방 내부 풍경은 선계의 모습을 쏙 닮아 있었다.

아늑하고, 넓으며, 기운이 가득하다.

처음 방에 들어선 이후 느꼈던 묘한 어지럼증을 제외하자면 시간의 배율이 다른 공간에 들어왔다는 사실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어디에 있으려나?’

먼저 들어간 주연하를 비롯하여, 그 전에 입장한 다른 일행들 누구도 보이지 않는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린 황준우의 어깨가 무겁게 짓눌릴 정도의 기운이 주변으로 번졌다.

“저쪽이군.”

걸음이 단숨에 기운의 향방을 향했다.

‘검선과 비등한 쪽은…… 예인가?’

느껴지는 기운은 둘.

누가 위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힘이다.

솔직히 황준우라고 하여도 둘이 동시에 덤벼든다면 이길 자신이 별로 없을 정도다.

아마 일행들에 대한 지도도 그들이 도맡아 하고 있을 터였다.

“어, 도련님. 오래 걸리셨네요?”

그렇게 요동치는 기운의 한복판 속.

홀로 음식을 준비하고 있던, 수염을 길게 기른 꽤나 중후한 인상의 경호가 말을 걸어왔다.

“그 수염은 뭐야…….”

“아…… 그게, 관리할 시간이 없다 보니 엄청 길었네요.”

“엄청 정도가 아니야. 진짜 늙어 보여.”

“……도련님은 언제나 그렇듯 상처를 잘 주시네요.”

“그러니까 관리 좀 하라고. 바깥에 있을 때는 잘했잖아.”

“여기서는 그럴 틈이 없어요.”

경호가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바깥에서의 시간으로 치자면 고작 반 시진이 조금 넘는 정도였다.

한데 완시의 방 내부에서는 사람의 인상 자체가 바뀔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새삼스레 완시의 방이 어떠한 효과를 발휘하는지 와 닿았다.

‘수련은…… 잘되고 있는 셈인가?’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경호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팔짱을 낀 채 서 있는 두 신선의 맞은편에 서서 얼굴을 찡그린 채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두 신선이 압도적으로 기운을 밀어붙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두 신선께서 꽤나 힘을 쓰고 계시구나.’

황준우는 한눈에 작금 수련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깨달았다.

강제적으로 자연지기와의 조화를 최대한으로 이끌어내고, 우주기와의 접점까지 만들어버린다.

이론적으로 깨닫고 이해하기보다 몸이 먼저 느끼도록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다소 거친 방식이지만 짧은 시간 내에 효율을 보기 위해서는 제법 괜찮은 수단이었다.

‘문제는 조율에 관한 수련은 되지 않는다는 건데…….’

우주기와의 조화를 통해 한계를 이끌어내는 방식은 좋지만, 조율을 이용할 줄 모르면 아무리 막대한 힘을 가지고 있어도 풀어쓰기가 어렵다.

걱정이 조금 되었지만 아마 신선들이라면 그에 대한 방법조차 어느 정도 마련했을 것이라 생각한 황준우는 관심을 거두었다. 모두가 최선을 다해 수련하고 있다. 현재로써는 믿어주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다 잘하겠지. 아, 근데 경호는 왜 여기 나와서 음식을 하고 있는 거야?”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요.”

“그야 그렇지만…….”

두 신선과 다르게, 인간의 육체를 가진 나머지 일행들에게 식사는 필수다.

그렇지 않으면 고된 수련을 견딜 수 없는 것을 벗어나, 죽을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한데 왜 하필 경호 너냐는 거지?”

“아,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하고 있었는데 그게…….”

잠시 고민하던 경호가 음식을 만들기 위해 젓고 잇던 국자를 내려놓고는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이후 미간을 깊게 찌푸리고는 엄청난 집중을 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경호의 몸 주변으로 아지랑이와 같은 우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후아!”

아주 짧은 시간, 우주기의 일부를 보인 경호가 깊은숨을 몰아 내쉬며 비틀거렸다.

온몸은 비라도 맞은 듯 흠뻑 젖은 채다.

“대충 어떤 종류인지 정도는 알게 되었거든요.”

“굉장한데?”

황준우는 진심으로 놀란 음성을 흘렸다.

다른 사람도 아닌 경호가 가장 먼저 우주기와의 조화를 이루었다.

항상 스스로 재능이 없다며 타박하던 그였기에 더욱 감동적인 일이었다.

“그래 봐야 조금 감이나 잡은 정도인데요, 뭐. 실제로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단지 제가 알던 것보다 세계가 더 넓다는 걸 체감한 느낌? 운이 좋았죠.”

그는 이미 황준우가 예상했던 문제점이었다.

“운이 아니야. 말했잖아. 경호에게도 큰 무언가가 있다고. 축하해. 여기서 누구보다 먼저 인정받은 거 아니야.”

“감사…… 합니다. 아직 멀었지만요.”

아마 이번 수련이 끝나면 그 결과는 더 확연히 드러날 것이다.

그리 생각한 황준우가 경호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도련님은 따로 수련하실 예정인가요?”

“일단은.”

경호의 질문에 황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와, 여동빈.

두 신선 모두 뛰어난 무선이지만 황준우에게 더 이상 무언가를 가르칠 정도는 되지 못한다.

이미 여동빈과의 수련으로 신선의 무공에 대하여 제법 이해한 탓이 컸다.

길이 막혀 방향에 대한 고민이라면 함께 해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떠한 수련에 도움이 될 확률은 낮다.

다행히 지금의 황준우에게는 얼마 전 여포의 무공을 선보이며 느꼈던 감각이 남아 있었다.

일단은 그를 쫓아가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조금만 기다렸다가 식사하고 가시는 게 어떨까요? 곧 다 될 것 같은데.”

“아니 뭐…….”

괜찮다고 말을 하려던 황준우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나도 이상하네.’

어느 정도 이상 먹지 않고, 마시지 않아도 육체가 견뎌내고 있다.

물론 뛰어난 육체를 가진 무인이 일반인에 비하여 그 한계치가 높다는 것은 당연한 부분이지만 황준우의 경우는 더 이상했다.

멀리 갈 것 없이, 얼마 전 팔선도를 찾아 헤맬 때도 꽤나 오랜 시간 먹고, 마시지 못했는데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와서는 식음 전체에 정말 조금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아마 선계로 입성한 이후부터 그 격차가 더욱 심해진 듯했다.

‘뭔가 또 변하고 있는 건가.’

시선을 내려 제 양손을 바라본 황준우가 고개를 저었다.

‘쓸데없는 생각이야.’

그는 엄연한 인간이다.

“그래. 먹고 가지 뭐.”

황준우의 대답에 밝은 얼굴로 웃음 지은 경호가 바닥을 가리켰다.

“그럼 조금만 앉아서 기다리세요. 나머지는 수련이 끝나야 먹겠지만, 도련님 먼저 대접해드릴게요. 보잘것없는 죽이지만 이제는 실력이 제법 늘었답니다.”

“기대할게.”

웃으며 답한 황준우가 자리에 앉아 짧은 여유를 만끽했다.

잠시 후, 그릇에 따뜻하게 채워서 나온 죽은 아주 맛있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