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재생 307화
제 307화
쿠구구-!
성산, 곤륜의 가장 높은 곳.
선계로 통하던 태청경의 문을 지키던 거인, 좌와 우가 피로 온몸을 칠한 채 무너져 내렸다.
“오늘 우리는 선계를 지상으로 떨어트린다. 더 이상의 규칙과 규율, 불합리한 조화는 없을 것이다.”
차가운 표정의 사내, 영정이 눈에 푸른 귀화를 흩뿌리며 태청경의 문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거대한 우주기의 파장이 순식간에 곤륜 전체를 뒤덮기 시작했다.
그그극-!
태청경의 문이 떨리며 굉음을 토한다.
어느덧 거대한 문의 주변으로는 푸른 귀화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안 돼!”
다급한 외침과 함께, 곤륜의 아래쪽에서 수염을 흩날리며 나타난 배불뚝이 중년의 주먹에서 거대한 백룡이 춤을 추듯 쏘아져 나갔다.
영정의 바로 뒤편, 그의 행동을 지켜보던 다섯 무인 중 검은 갑주로 전신을 둘러싼 인물이 창을 뽑아 들며 백룡의 앞으로 나섰다. 창끝에 어린 기운은 백룡과 상반되는 흑룡의 모습을 형상화한다.
두 개의 기운이 상충하고, 폭발하며 허공으로 치솟았다.
파바밧-!
순식간에 창과, 주먹이 빠르게 오갔다.
누구 하나 기세를 점하지 못하는 백중세다.
“빌어먹을……!”
점점 더 푸른 귀화에 물들어가는 태청경의 문을 보며 배불뚝이 중년인의 표정이 창백하게 변해갔다.
반면 그럴수록 몸에는 어떠한 기운이 넘쳐나기 시작한다.
‘선계와 지상계의 구분이 무너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두 공간의 합일(合一)이 아니었다.
균형의 붕괴이며, 조화의 파괴다.
선계와 지상의 구분이 없어지듯, 유계와, 금오도를 비롯한 모든 경계가 사라질 것이며 세상의 근본 자체가 뒤틀리게 된다.
그로 인하여 멸망이 더 앞당겨지는 것 역시 예정된 결과였다.
‘어찌 막지 못하는가.’
절로 흘러나오는 신음 속, 아찔함이란 감정이 뇌리를 휘감을 때였다.
닫혀 있던 태청경의 문이 활짝 열리며 하얀 백발을 휘날리는 노인이 나타났다.
“갈! 예가 어디라고 함부로 모습을 나타낸 게냐!”
그 일갈은 잠시 세상을 떨게 만들었다.
하늘이 울부짖듯 천둥소리를 냈으며, 땅이 진동을 일으켰다.
하나 나타난 노인, 태상노군을 바라보는 영정의 눈에는 한치 떨림이 없다.
오히려 반기는 듯한 기색마저 비쳤다.
“반갑소! 노군! 내 이리 다시 보게 되는 날이 올 줄은 몰랐소!”
뻗은 손길은 거대한 푸른 귀화로 변하여 태상노군의 머리를 잡아채려 한다.
하늘에서 떨어진 번개가 그 손길을 뿌리쳤다.
동시에 하늘을 뒤덮을 것 같은 검은 그림자가 생성되었다.
거대하게 변한 영정을 바라본 태상노군이 눈을 부릅뜨며 양손을 마구잡이로 휘젓는다.
콰과과광-!
하늘에서부터 쏟아진 번개가 거대하게 변한 영정의 정수리를 쉴 새 없이 때렸다.
하나 그 아래에 선 영정은 조금의 미동도 없이 싸늘한 미소를 보일 뿐이다.
자연스레 태상노군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찌…….”
인간의 벽을 넘어선 것은 알았지만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
또한 굳건하다.
“그깟 천둥 번개로 이 나를 어찌할 수 있을 것 같소?”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하늘 위에 생성된 푸른 귀화가 거대한 구(球)의 형태로 뭉쳐지기 시작했다.
마치 태양을 작게 축소화해놓은 것 같은 그 모습에 태상노군마저 침을 삼켰다.
“노군, 우리 지독한 악연을 이제 그만 정리하려 하오.”
거대한 영정의 손짓에, 작고 푸른 태양이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거기서 느껴지는 힘과, 중압감은 감히 태상노군으로서도 어찌 따를 방법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였다.
절망적이고 막대하다.
마치 오래전 종적을 감춘 고대의 존재들을 다시 보는 것만 같은 충격이었다.
‘설마…… 영정이!’
그때가 돼서야, 영정의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한 태상노군이 몸을 떨었다.
인간의 규격을 벗어난 성장, 압도적인 거인의 형태.
단순한 술법의 힘이 아니다.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중압감이 진실을 전하고 있었다.
‘반고(盤古)의 영혼을 얻었구나!’
태초의 거인!
세계의 시작이라 불리는 고대 존재의 힘을 영정은 오랜 시간 찾아 헤맸다. 신에게 다가가기 위한 조용하고 오랜 노력은 무의미하게 흘러만 가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절망적인 상황이다.
하나 여기서 물러난다면 그야말로 최악이다.
태상노군은 입술을 깨물었다.
양팔을 펼치고는 급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종리권!”
벌컥 열린 선계의 문에서부터 거대한 선기가 해일이 일듯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태상노군의 머리가 하늘 높이 솟아오르며 두 눈매 역시 바짝 솟아났다.
굉음과 함께 접전을 펼치는 것만 같던 검은 갑주의 무인이 핏물을 토하며 쓰러졌다.
그 앞, 작은 백룡을 전신의 갑주처럼 두른 배불뚝이 중년이 허공을 날았다.
“늦어서 미안하오. 노군! 천하도산한종리권(天下都散漢鍾離權)이 왔소!”
“전력을 다해 막아야 하오!”
“이 보잘것없는 영혼을 걸어보지요!”
태상노군과 종리권.
무수한 선인들 중 가장 정점에선 두 인물이 힘을 합친 일격이 터져 나왔다.
푸른 벼락을 전신에 휘감은 하얀 백룡이 하늘 높이 솟아올라 작고 푸른 태양을 향해 아가리를 벌린다.
거대한 충돌이 일었다.
깊은 명상에 빠져 있던 황준우가 굉음에 눈을 떴다.
“모두 다 벽을 넘었구나.”
경호를 시작으로 황서연, 서문지언에 이어 조금 더딘 듯하던 홍산과 주연하마저 우주기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다섯 사람에게 있어서는 이제야 본격적인 수련이 시작된 셈이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어.’
완시의 방에서 약 보름의 시간.
여동빈과 예가 쉴 새 없이 기운을 쏟아내며 몰아친 덕에 모두가 짧은 시간 내에 우주기의 존재를 깨달았다.
하나 그를 사용할 수 있게 되는 일은 별개다.
아마 말로 다 할 수 없는 시간이 필요할 터였다.
때문에 완시의 방이 필요한 것이고 말이다.
‘다들 잘해내겠지. 나도 뒤처지지 않게 힘내볼까.’
황준우 또한 지난 보름간, 인간의 육체 소우주에 대한 고심으로 명상의 시간을 보냈다.
첫 시작은 여포의 움직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극한의 효율이라 믿었던 삼국의 무신의 무위.
하나 지상에 내려갔을 때 새로이 깨닫게 된 것은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리하여 남은 의문은 인간의 육체가 가진 한계다.
‘과연 한계가 존재할까?’
과거에 이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육체가 견뎌낼 수 있는 최대한의 한도가 정해져 있기에, 인간은 기(氣)라는 특별한 존재를 통해 무위를 갈고 닦고 성장해 나간다.
중원강호의 역사 전체를 다 뒤져도 순수한 외공만으로 이름을 날린 고수가 손에 꼽는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했다.
심지어 그 외공의 고수들은 모두 오랜 과거의 인물들.
내가기공이 더욱더 발달한 근대를 지나서는 단 한 명도 외공의 고수가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삼국의 무신, 여포가 보여 준 무위는 순수한 외공만으로도 압도적이었다.
현대의 내가기공을 오히려 뛰어넘어 있었다.
‘강호는 과거의 무인들이 지금보다 약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세월이 흘러, 더욱 발전한 것이 현재의 무공이라고만 믿었으니 말이다.
하나 그 모든 것은 착각이었다.
삼국의 무신, 여포의 외공이 증명했다.
소수마녀, 청묘의 무공 역시 현대의 어떠한 무인도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었다.
무공은 발전하지 않고 있다.
‘어쩌면 퇴화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이 그것을 원하는가?
아니면 멸망으로 향하는 자연스러운 흐름인가.
황준우는 고민 속에 육체가 가진 한계를 깨고자 했다.
영정이 인간의 규격을 벗어나 강해졌다면, 분명 그러한 의문의 끝에 정답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폭음 소리를 듣게 된 명상의 끝과 함께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인간의 육체 역시 무한한 확장이 가능하다.’
괜히 작은 우주가 아니다.
그리고 우주에 끝이란 존재할 수 없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황준우의 육체의 감각이 활발하게 깨어났다.
근육에 숨은 무언가까지 자극적으로 일어난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인간의 육체인 소우주와 뇌, 상단전으로 이어진 우주의 흐름을 하나로 잇는다.
무한한 확장의 고리를 만드는 것이다.
황준우의 주변으로 일어난 황금빛이 갑주처럼 형태를 이루어 전신을 감싸온다.
의식이 아득히 멀어지는 듯한 감각과 함께, 육체의 영역이 확장되었다.
‘이 감각이야.’
확신을 가진 황준우가 걸음을 내디뎠다.
긴 금빛 꼬리와 함께 신형이 찰나도 되지 않는 순간에 백 리가 넘는 거리를 뛰어넘는다.
뻗어진 주먹은 완시의 방 전체를 뒤흔들며 대기를 떨게 만들었다.
수련에 힘쓰고 있던 여동빈과 예마저 긴장하며 움직임을 멈추는 것이 느껴졌다.
‘역시, 한계란 존재하지 않는구나.’
벽을 넘어서, 초월했다.
체감하고, 실감한 순간이었다.
육체가 공중으로 떠오르며 찬란한 황금빛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굳이 규격을 부술 필요도 없어. 본래부터 인간에게 한계란 존재하지 않았다.’
깨달음은 갈무리 되어 어떠한 형태로 이루어진 채 황준우의 몸으로 스며든다.
드넓은 완시의 방 하늘 위로, 거대한 황금빛 태양이 떠올랐다.
번개를 두른 뇌룡은 무너졌다.
작고 푸른 태양 역시 무사하지는 못했다.
그 열기가 줄어들고, 기운이 사그라졌다.
하나 이미 불이 옮겨붙은 선계의 문을 무너트리기에는 충분한 힘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허허…….”
온몸의 기운을 다 쏟아낸 탓에, 허탈한 웃음을 흘린 태상노군이 제자리에서 무너지듯 쓰러졌다.
“쿨럭-!”
거친 기침을 토한 종리권 역시 휘청이며 무너졌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작고 푸른 태양은 그들에게 끝을 알려주고 있었다.
‘소멸인가…….’
신선에게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육체의 격을 벗어나 혼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
그들에게 있어 끝이란 곧 영원한 소멸을 뜻한다.
영생과, 신선 격을 얻은 대가이기에 아쉽지는 않았다.
“다만…… 할 일이 그저 많은 것이 슬프구나.”
“아직 새로운 천하를 품지 못했거늘.”
안타까운 두 신선의 신음이 땅 밑으로 꺼질 때였다.
유난히 두텁고 거대한 검은 날개가 그들의 머리 위를 뒤덮었다.
“누가 함부로 죽음을 허락했단 말이더냐?”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기이한 음성이 두 사람의 귓가에 전해진다.
뜨겁던 열기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폭음과 함께 사방으로 번져나가는 푸른 불꽃을 보면서도 두려움은 없었다.
검은 날개의 주인.
그녀를 알고 있는 탓이다.
“서왕모.”
태상노군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평소에 걸치고 있던 하얀 의복을 대신한, 검은 옷을 걸친 서왕모의 넓게 펼쳐졌던 소매가 순식간에 쪼그라든다.
“내 오늘 죽음이라 불리던 과거의 악몽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차갑게 말한 서왕모가 아직까지 소매에 남아 있는 푸른 귀화를 입 안으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후웁.”
입 안 가득, 불길을 담은 서왕모의 시선이 굳은 표정의 영정에게로 향했다.
콰와아-!
동시에 벌어진 서왕모의 입 바깥으로 푸른 불의 파도가 높게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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