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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309화 (309/373)

학사재생 309화

제 309화

“크악-!”

비명을 내지른 영정이 몸을 굴렸다.

거대한 육체가 지면을 쓸어내리며 거대한 흉터를 남긴다.

‘이 상태로는 당한다.’

다소 추한 행태를 취했지만, 영정의 머리는 바쁘게 돌아갔다.

‘대체 놈은 뭐지?’

처음 만났을 때는 제법 뛰어난 인간이었다.

강하고, 놀라웠지만 고작 그 정도였다.

청묘의 말대로 언제라도 기회는 있을 것이라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만났을 때.

황준우는 상상 이상으로 강해져 있었다.

청묘를 단신으로 손쉽게 제압하고, 비밀 황궁을 빠져나갔다.

어쩌면 놈이 먼저 한계를 벗어날지도 모른다.

그 긴박함이 영정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오래전 취했으나, 망설이며 미루어두고 있던 반고의 조각을 품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인간의 규격을 벗어 신인(神人)이 되었다.

동시에 영정은 곧장 여태껏 반고의 조각을 흡수하지 않고 미루기만 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절감했다.

반고는 최고신인 숙과 홀, 제강을 제외하자면 세계의 정점에 가장 가까운 존재였다.

그 위명이 헛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전신에 힘이 넘쳤다.

영혼의 격이 달라지며 우주가 한 손에 잡힐 듯 들어왔다.

반고의 조각의 기운을 본떠 흉내 내서 만든 반고술을 다룰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인간의 형태를 가진 채로는, 아무리 뛰어난 초인이라고 해봐야 최고 신선을 뛰어넘을 수 없다.

하나 신인은 달랐다.

인간이면서도 신에 가까웠다.

대지가, 세계가 그의 몸 안에 존재했다.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더 이상 곤륜을 피해 달아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영정은 곧장 청묘의 복수를 이행했다.

이후 곤륜에 침공하기 위하여 남아 있던 반고의 조각을 모두 흡수하여 그의 혼을 온연히 품었다.

한데 세 번째 만난 황준우에게 당하고 있다.

아무리 기습이었다고는 하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믿을 수 없었다.

“내가…… 시황제다.”

태초의 황제.

그의 이름은 이 세계에 있어 곧 힘이다.

“또한…… 반고다!”

태초의 거인!

비명처럼 내지른 일갈이 대기를 떨게 만들었다.

황금빛 갑주를 두른 채 다음 일격을 가하려던 황준우의 몸이 거친 풍압에 밀려났다.

“이런…….”

황준우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바로 방금 전까지 눈앞에 있던 영정의 거체(巨體)가 사라졌다.

바람이 터지는 소리가 귓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황준우의 몸이 빛살이 되어 허공으로 치솟았다.

등 뒤를 돌아본 순간 눈에 푸른 귀화를 피운 영정의 손 위로 흙으로 빚은 거대한 검이 형성되었다.

콰과과-!

검을 휘두르자 대기가 찢어지다 못해 폭발하며 푸른 귀화를 파도처럼 쏟아 냈다.

‘직격은 위험해.’

황준우는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기동력이라면 황준우가 앞선다.

하나 순수한 파괴력이라면 영정 측이 압도적이다.

굳이 무리해서 정면 승부를 펼칠 필요는 없었다.

“또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려고!”

그 기색을 읽은 영정의 기운이 또 한 번 크게 요동쳤다.

동시에 황준우의 주변으로 거센 바람이 몰아쳤다.

화르르륵-!

영정의 시선이 닿은 허공 위로 푸른 불길이 솟아 황준우의 주변을 모두 다 휘감았다.

불의 감옥이 황준우를 가두었다.

“이런…….”

입술을 깨문 황준우의 얼굴에 난감함이 어렸다.

‘저걸 뚫을 수 있을까?’

아직 푸른 화염의 위력을 정면으로 맞이한 적은 없다.

하나 느껴지는 기운이 만만치 않은 것은 분명했다.

‘검에 직격당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입술을 깨문 황준우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황금빛이 더욱 강해졌다.

‘닿는 순간 뛰어넘는다.’

황준우의 몸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황금빛 갑주로 푸른 화염이 기다란 혓바닥처럼 눌어붙었다.

‘지금……!’

파공음과 함께 화염의 벽을 뛰어넘은 황준우의 눈앞에 영정의 얼굴이 기다렸다는 듯 나타났다.

“잡았다.”

진한 웃음을 보인 영정이 입을 크게 벌렸다.

거대한 푸른 화염이 그의 목구멍 아래에서 넘실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아…… 멈춰라!”

짧은 신음을 흘린 황준우가 다급히 외쳤다.

백색의 기운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영정의 몸을 옭아매려 한다.

하나 그 힘은 너무나도 맥없이 흩어진다.

영정의 몸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검푸른 기운이 그를 거부하듯 밀어내버린 것이다.

‘언령이…….’

콰과과과-!

푸른 화염이 당황하는 황준우의 눈앞으로 쏟아져 나왔다.

찬란하던 황금빛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황…… 준우.”

“맙소사!”

서왕모의 치료를 행하며 사태를 지켜보고 있던 태상노군과, 종리권의 입에서 경악이 쏟아져 나왔다.

짧은 시간 그들은 희망을 보았다.

그리고 방금 전.

“너희들의 희망은 졌다! 이 내가 승리하였도다!”

영정이 쏟아 내던 불길을 멈추고는 거친 외침을 토했다.

푸른 귀화가 여전히 머물러 있는 두 눈에는 자신감이 가득 차올랐다.

더 이상 어디에서도 황준우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놈이 어찌 신인의 벽을 허물었는지 모르겠으나, 그래 봐야 격이 다르다.’

영정이 오래도록 반고의 조각을 흡수하기 전 망설였던 이유다.

신인에도 격이 있다.

기왕이면 숙 또는 홀 가능하다면 제강의 조각을 얻기를 원했던 탓이다.

한편으로는 가슴 한쪽이 섬뜩하기도 했다.

‘어찌 됐든 놈은 결국 스스로 신인이 되었다.’

아직은 격을 높이지 못하여 쓰러트릴 수 있었으나, 시간이 더 주어졌다면 어찌 됐을까?

‘놈이 신이 되었겠지.’

영정이 그토록 꿈꾸던 영역이다.

한없이 높은 그 격에 달하지 않는 한 정해진 세계의 틀을 벗어날 수 없다.

“나 역시 할 수 있다. 나 또한 신이 되겠다.”

주먹을 움켜쥔 영정의 마음에 야망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반고 또한 고대의 신이었던 존재.

아직 영정조차 그 힘을 모두 얻었다고는 볼 수 없었다.

‘선계를 떨어트리고, 군림하여 신이 된다. 이후 숙을 죽이고 세계의 지배자가 되는 것이다.’

계획은 완벽했다.

방해가 있겠지만, 더 이상의 위협은 없을 터였다.

큰 걸음을 옮겨 선계의 추락을 이어가려던 영정의 몸이 삽시간에 굳었다.

등 뒤, 대기의 일부가 갈라지며 익숙한 기운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후…… 방금 건 진짜 위험했어.”

이어서 들려온 목소리에 몸이 저절로 크게 회전했다.

콰과광-!

휘두른 대검은 주변으로 비추는 황금빛을 단숨에 짓뭉개 버릴 것만 같다.

하나 느리다.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한 황금빛은 태양이라도 되려는 듯 빠르게 허공 높이 치솟았다.

영정은 눈을 부릅뜨고 그 움직임을 쫓았다.

“크아아-!”

괴성을 쏟아 낸, 벌어진 입에 푸른 화염이 넘실거리며 머금어질 때였다.

태양 빛 뒤, 은빛의 검이 무섭게 쏘아져 벌어진 입 안으로 파고들었다.

영정의 눈이 부릅뜨였다.

목덜미 아래에서 추켜 올라오려던 푸른 화염이 역류하며 몸속 내부로 들이닥친다.

‘안 돼……!’

영정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푸른 화염은 반고의 혼을 머금은 이후 유계 가장 밑바닥에 있는 불꽃과 같은 위력을 지니게 되었다.

아무리 반고의 혼을 가진 영정이라고 하여도 육체 내부에서 터지는 폭발을 막을 수는 없다.

단숨에 온갖 정신을 집중하여 푸른 화염을 다시금 갈무리했다.

‘놈이 온다.’

영정은 황준우를 보지 못했다.

하나 본능적으로 상대가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다는 사실은 잘 알았다.

주변의 중력이 순식간에 수 배 이상으로 부풀었다.

쿠구궁-!

그 압력이 어찌나 강력한지 대지가 짓뭉개질 정도였다.

최선을 다한 우주의 조율이다.

실제로 보이지 않던 황금빛의 꼬리가 잡혔다.

“이 노옴……!”

영정의 거대한 손이 바람처럼 뻗어졌다.

하나 잡은 것은 남은 꼬리뿐이다.

영정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주먹을 말아쥐었다.

‘뒤…….’

기척이 느껴졌다.

또 한 번 머리를 후려치는 타격이 가해졌다.

“크아아-!”

비명을 내지른 영정이 무너진다.

“진짜 단단하네.”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오고, 목덜미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검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튀어나왔다.

카드득-!

무쇠보다 단단하게 변한 입천장에는 상처 하나 남지 않았다.

하나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자칫하면 또 당한다.’

영정이 마음을 강하게 먹을 때였다.

“조율을 이용한 세계의 흐름 조종. 그게 네 권능인가?”

검을 잡은 황준우가 쓰러지는 그의 눈앞으로 나타났다.

‘기회!’

영정은 차라리 잘됐다는 심정으로 온몸에 힘을 얹었다.

무게가 더해진 힘은 작은 육체를 가진 황준우가 견딜 바가 아니다.

“확실히 내 것에 비하면 화려하잖아.”

무언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신 황준우가 검을 길게 내뻗었다.

몸 주변을 감싼 황금빛은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게 번쩍인다.

영정의 이마와 황준우의 수왕검이 맞닿았다.

그 차가운 감촉에 영정의 심장이 섬뜩해질 때였다.

인지의 영역이 무너졌다.

황금빛은 그야말로 폭발하듯 세상을 뒤덮었다.

아니, 그렇게 착각할 만큼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압도적이다 못해 초월의 영역에 들어선 움직임이다.

고작 눈 한 번 깜빡일 만한 찰나.

‘몇 번이나 벤 거지?’

육체에 느껴지는 고통만 일천?

‘아니…… 일만…….’

콰드드득-!

괴이한 괴음과 함께 무엇에도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거인의 육체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인지와 의식이 돌아올 무렵에는 거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에 검으로 난자당한 흔적이 자욱한 상태였다.

‘착각이었군.’

온몸이 부서지는 것만 같은 통증 후에야 깨달았다.

일만도 아득히 넘어섰다.

‘십만…….’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쿠구궁-!

더 이상 숫자를 가늠하기도 힘들 무렵 거대한 거인의 육체가 붕괴하며 왜소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끝내, 드넓게 패인 대지의 흉터 안에 나타난 것은 왜소한 인간의 육체를 한 영정이다.

“헉, 헉…….”

온몸이 붕괴되는 고통 속 무릎 꿇은 영정의 눈가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이내는 무릎으로 견디는 것조차 하지 못하고 지면으로 쓰러지고 만다.

눈앞으로 사람의 발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몸을 뒤덮던 황금빛은 사라졌으나, 그 주인조차 못 알아보지는 않았다.

“황…… 준우.”

“영정.”

“대체…… 몇 번이나 벤 거지?”

의문이 먼저 흘러나왔다.

패배한 게 분하고 억울했다.

가장 강인했다는 반고의 혼, 그런 신격조차 무너트린 황준우의 움직임을 조금도 알지 못한 채 죽기는 싫었다.

“글쎄. 나도 이렇게까지 전력으로 쏟아 내본 건 처음이라. 대충 백만쯤에서 세는 건 멈췄어.”

“백만! 푸하하…… 쿨럭!”

그 짧은 찰나의 순간 백만의 검격이 오갔다.

심지어 그 하나, 하나가 초인의 심상지기를 맞먹거나 웃도는 위력을 갖추고 있었다.

“가히 거신 신격을 무너트릴 만한 위용이로다!”

다 죽어가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외친 영정의 몸이 마치 먼짓가루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의문은 풀렸다.

시선은 더 이상 황준우를 향하지 않았다.

대신하여 바닥에 보이는 흙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이 모든 것을 내가 가지고자 하였다.’

하나 끝내 무엇 하나 얻지 못했다.

심지어 죽음마저 쓸쓸한 혼자다.

‘청묘…….’

문득 그리워진 얼굴이 흙바닥 아래에 떠올랐다.

다소 차갑게 보이지만 실상 따뜻하던 여인이다.

“큭……”

웃음과 함께, 눈물방울이 지면으로 떨어졌다.

“후회뿐인 삶이었다.”

안타까운 탄식은, 영정이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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