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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316화 (316/373)

학사재생 316화

제 316화

그러고 보니 새삼 불과 얼마 전까지 노예처럼 끌고 다녔던 요동의 얼굴이 지나갔다.

‘요동이 확실히 제법 강하긴 하네. 셋이 함께 덤벼야 해볼 만하겠는데?’

작금 황준우의 무력이 그야말로 신에 다다른 탓일 뿐이지, 뇌신의 명성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요괴왕을 눈앞에 두었다고까지 했으니 이상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쨌든 다들 이렇게 보니까 좋다.”

“솔직히 아쉽지는 않소?”

“그러게 말이에요.”

활짝 웃는 황준우의 말에 서문지언과 경호가 짓궂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서왕모 할머니한테 들었어.”

황서연이 묘하게 비스듬한 자세로 툴툴대듯 말을 내뱉었다.

“할머니가……?”

시선을 곧장 서왕모에게로 돌린다.

당당히 황준우의 눈을 마주한 그녀가 고개를 뻣뻣이 세웠다.

“뭐 숨길 이야기는 아니지 않느냐.”

“……그런 겁니까.”

이쯤 되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황녀…… 아니 황제 폐하랑은 언제부터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 거야? 짧은 건 아닌 것 같고…….”

언제 말할지 기회를 잡고 있었는지, 황서연이 물어왔다.

“사실 어린 시절부터 두 분이 범상치 않으시긴 했죠. 생각보다 오래됐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맹주가 폐하의 일로 황궁에 오랜 시간 머물러 있기도 했지.”

세 사람은 공통으로 두 사람이 상당히 오래된 연인일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정답은 아니었다.

“선계에 올라와서, 얼마 전?”

황서연이 당황한 음성을 흘린다.

“주연하가 영정한테 붙잡혀 있었거든. 구해주고, 하다 보니 이렇게 됐네.”

“맙소사…… 설마 그럼 지금까지 두 분은 계속 진짜 친구 사이였던 겁니까?”

경호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응. 진짜로.”

“우와…… 놀라우면서도 왠지 도련님이 그랬다니까 이해도 되네요. 사랑 같은 감정하고는 멀어 보이기도 하셨으니…….”

“어허허…….”

놀라면서도, 납득하는 두 사람에 비해 황서연의 표정은 더욱더 오묘해졌다.

“……아직…… 하지만 이미…….”

“서연아?”

“넌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하고 있는 거야.”

“오빠한테 심통 부릴 고민.”

“어째서?”

“말이라도 미리 해주던가.”

“얼마 안 됐다니까.”

“됐어. 그냥…… 섭섭한 거야.”

“아이고, 우리 동생. 그랬어요?”

계속해서 굳어가는 황서연을 다시 한번 품에 안은 황준우가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내렸다.

“정신이 없어서 말도 못 했네. 미안해.”

“애초에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될 기미가 있었단 것 아니야.”

“전혀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서로 고민이 많았거든.”

“치…….”

“미안해. 응?”

“뭐…… 오빠가…… 좋다니까. 상대도…… 황제 폐하고. 솔직히 예쁘니까.”

결국 표정을 풀고 만 황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소 속상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황준우가 언제까지고 혼자이길 바라는 것 또한 아니었으니 말이다.

“고마워. 이해해줘서. 내 동생.”

“됐어. 나도 시집갈 거야.”

“정말? 누구랑?”

“……생각해보고.”

내친김에 내뱉기는 했지만 사실 마음에 들어온 상대가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직 어떤 남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빠의 반 정도만 돼도 되는데…….’

슬쩍 고개를 들어, 누가 보아도 잘생긴 데다, 멋진 친오빠의 얼굴을 바라본 황서연은 내심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그렇게 어렵나?’

황서연의 고민이 더 깊어가는 것과 상관없이 웃음 지은 황준우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럼, 그럼. 우리 서연이도 시집가야지. 근데 그 전에 우리 경호부터…….”

“도련님!”

여전히 시끌벅적한 만금장 식구들이었다.

잠시 떠들썩한 재회의 시간이 지나고, 황준우는 예정대로 유계로 향할 것을 밝혔다.

아쉽게도 다른 인원들이 완시의 방에서 나올 것을 기다릴 여유는 없다.

이 시점에 세 사람의 의견이 갈렸다.

“난 그냥 오빠 따라갈래.”

우선 황서연은 계획을 바꿔 완시의 방이 아닌 유계로 향하기로 했다.

여동빈과 예 등에게서 배울 수 있는 심득은 사실 모두 익혔다. 다만 그것을 소화하기에는 아직 그녀가 가진 깊이가 부족했다. 시간을 들인다면 그 깊이를 얻을 수도 있겠지만, 황서연은 이제는 조급함을 버렸다.

“뭔가 조급한 마음으로는 오히려 멀어질 것 같은 느낌이라. 조금 여유를 둬보려고.”

황서연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꽤나 정곡을 짚고 있었다.

‘이런 것도 천재와 연관되는 건가?’

감각적으로 조이고 풀어야 할 시기를 정확히 알고 있다.

황준우 역시 본능적으로 행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황서연 또한 그를 자연스럽게 이어가고 있었다.

천재의 직감이 괜히 뛰어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아직 모자란다고 생각합니다.”

경호는 수련에 욕심을 냈다.

그에게는 많은 시간만이 답이다.

만약 경호가 따라온다 했으면 오히려 만류했을 황준우였다.

“음, 나 역시…… 맹주와 함께 가겠소. 그간 신세 진 값은 갚아야 하지 않겠소?”

서문지언은 긴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무언가 아쉽게 스쳐 가는 깨달음의 감각이 있기는 하다.

하나 언제 잡힐지 모르는 너무 먼 허상 같은 존재였다.

그것을 붙잡고자 완시의 방에서 다시 오랜 시간을 보낼 생각은 없었다.

본인 스스로도 말했듯, 서문지언은 지금 자신이 본 허상 같은 깨달음의 실마리가 한계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무렴 좋지.”

황준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실상 동료들 모두가 영정과의 싸움을 위해 수련했다.

하나 주적이었던 영정은 신격을 얻은 황준우에게 쓰러졌다.

그가 만든 다섯 인형은 애초에 황준우의 상대조차 되지 못했다.

애초부터 신격을 얻기 전과, 그 후의 괴리감이 이토록 클 줄 몰랐던 탓이 컸다.

‘그렇다고 해서 도움이 필요 없는 건 아니지.’

신격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한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에는 아직 한계가 있다.

신이라고 하여 완벽하지는 않다.

다시금 그 전제를 떠올린 황준우가 웃음을 보였다.

“그럼 일단 우리 셋인가. 왠지 마음이 든든한걸.”

“셋이 아니고 넷입니다.”

그런 황준우의 말에 부채를 펼친 백교가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절 빼놓으시면 섭섭하지요.”

“스승님도 함께 가시는 건가요?”

“예. 가서 직접적인 무력은 큰 도움이 못 되겠지만…… 안내자 정도는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후후.”

“무슨 말씀이세요. 듣는 것만으로도 든든한데.”

백교는 직접적인 무력은 아니지만 다양한 이능에 능통했다.

게다가 눈치가 빠르고 지혜롭다.

황준우의 입장에서는 이만한 동료도 드물었다.

“그러면 이제 장과로만 만나고…….”

황준우가 팔선도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릴 때였다.

“올 필요 없다. 내가 왔으니.”

“나도 왔소!”

장과로, 그리고 종리권이 함께 상청궁 안으로 들어섰다.

“하긴, 어차피 소식만 전하는 거니까. 어고 금방 찾아올게.”

“믿고 있다. 신격까지 얻어버린 놈이 못 하면 누가 할 수 있겠냐.”

피식 웃은 장과로가 품에서 손바닥보다 작은 북을 꺼내 들었다.

“이건……?”

“어고가 근처에 있으면 소리를 내서 알려줄 거다. 혹시 하는 마음에 준비해보았다.”

“오호…….”

황준우가 눈을 반짝이며 작은 북을 받아든다.

“귀엽게 생겼는데. 장난감 같아.”

“그렇다고 함부로 다루면 고장 날 수도 있으니 조심해서 보관해야 할 거다.”

“고마워. 나름 신경 써준 거네.”

“그야……. 어고를 찾지 못하면 속이 상하는 건 이 몸이니 말이다.”

“솔직하지 못하기는. 아 근데 종리권 님은 왜……?”

황준우의 질문에 종리권이 시원한 웃음을 보이며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나 역시 완시의 방에 들어가 보려 하오. 보잘것없는 나 자신을 깨달았으니 수련을 더 깊이 해보아야 할 때가 아니겠소?”

“아하…….”

“온 김에 구원자의 얼굴을 또 이리 보게 되어서 반갑구려. 한데 말이오. 혹시 해서 묻는데 구원자께서는 검사요?”

“아. 뭐 지금은 검을 쓰고 있지만…… 딱히 무기에 구애받는다는 생각은 안 하고 있는데.”

“오호, 그러면 나중에 기회가 될 때…….”

“종리권. 완시의 방에 들어가 수련하려면 빨리 가는 게 좋을 거다. 유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거든.”

“아차. 그렇지. 그러면 나중에 또 보겠소. 구원자. 나는 가오!”

서왕모가 가볍게 혀를 차며 말하자, 시원한 웃음을 보인 종리권이 손을 흔들고는 순식간에 멀어진다.

다소 정신없는 등장과, 언행, 그리고 퇴장이다.

“저놈은 저 말 많은 성격만 고쳐도 더 나을 텐데.”

서왕모가 내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찼다.

“그래도 덕분에 많은 분을 신선의 길로 이끌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백교가 웃으며 말했다.

실제로 종리권은 팔선 중에서도 수위에 꼽히며 많은 이들을 감화시키는 일을 해냈다.

검선 여동빈조차 종리권에게 감화되어 신선이 된 인물 아니던가?

“너무 시끄러워. 목소리라도 작던가.”

백교의 말에도 여전히 퉁명스럽게 말한 서왕모가 시선을 황준우에게로 돌렸다.

“그래서, 이제는 정말 바로 출발할 거냐?”

“그래야겠지?”

굳이 더 이상 꾸물댈 이유가 없다.

서왕모의 말대로 완시의 방도 지속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경호도 빨리 수련에 들어가야 할 테고 말이다.

“뭐, 이제 와서 네놈이 어디가 다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만 몸조심해서 다녀와라.”

“물론이지.”

자신만만한 미소를 보인 황준우가 등을 돌렸다.

“자, 그럼 다들 가보자.”

결정을 내리고는 힘차게 앞으로 나가려던 황준우의 몸이 순간 멈칫했다.

문득 뒤늦게, 자신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은 탓이었다.

“……그러고 보니 유계로는 어떻게 가는 거야?”

“제가 안내하죠.”

결국 앞장은 백교의 몫이었다.

일행들은 상청궁을 벗어나, 다시 태청궁을 향했다.

태상노군이 밝게 웃는 얼굴로 그들을 반기고는 궁의 지하로 향했다.

그곳에는 거대한 문이 있었다.

불길하고 음습한 기운이 나오는 유계로 향하는 관문이다.

앞으로는 수많은 신선이 도술을 외며 방진을 펼치고 있었는데, 유계의 원혼이 조금이라도 나올 낌새를 보이면 곧장 벼락이 내리쳐 그 앞길을 막았다.

“들어가자마자 인간의 육체를 탐하는 녀석들이 몰려들게요. 주의하시오.”

태상노군이 짐짓 걱정되는 음성으로 말했다.

틈이 벌어진 관문을 바라보는 눈에는 옅지만 두려움이 어려있다.

“안전하게, 금방 다녀올게요.”

서왕모에게 했듯, 태상노군 역시 안심시킨 황준우를 비롯한 일행들이 방진 안으로 들어섰다.

신선들은 여전히 도술을 외우고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유계의 악령들에게만 큰 영향을 끼치는 도술인 듯했다.

“자, 그러면 다들 준비하고.”

악의와 살의, 그리고 기묘한 탐욕까지 느껴지는 유계의 문, 그 틈새 앞.

“진짜 가자.”

일행들을 바라보며 말한 황준우가 먼저 걸음을 내디뎠다.

시야가 단숨에 어둠으로 뒤덮인다.

그 순간 황준우는 어째서 태상노군이 다소 두려운 눈으로 관문의 틈을 바라보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건 시야가 암전된 게 아니야.’

그렇게 느낄 정도로, 검은 악령들이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이다.

[살인자!]

[천살자! 네놈이 어째서!]

[탐나는 육체다]!

악의가, 고통이, 분노가 휘몰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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