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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330화 (330/373)

학사재생 330화

제 330화

그리고 현실적으로 보아도, 우마 일족 전사 개인 단위의 전투력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었다.

마호 일족 역시 요괴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력함을 자랑하지만, 우마 일족에 비하자면 몇 수 처지는 것이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우리도 성을 완전히 비울 수는 없으니 오백을 남기고 전원 출전이다.”

“용사는?”

우마 일족은 전사들도 강력하지만, 우적과 우타 같은 용사들의 전력 역시 막강하다.

그들 하나, 하나가 마왕과 엇비슷하거나 더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으니 말이다.

“셋이 나갈 예정이야.”

“흠…….”

달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마 일족 전사 이천 오백에, 용사 셋.

“그리고 나도 나갈 거야.”

우마왕 본인까지 참전을 선언했다.

“너도? 무리하는 것 같은데.”

황준우가 깜짝 놀라 말했다.

“전혀 문제가 없다면 틀린 말이겠지만…… 나름대로 대책은 있어.”

“나름의 대책?”

달기가 눈을 가늘게 떴다.

시선에는 불쾌함이 가득하다.

지금 그들이 가는 곳은 전장이다.

상대 적장은 무신 항우.

그리고 무수히 많은 요괴다.

아무리 전황이 유리하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싸우지 못할 부상자가 나설 자리는 아니었다.

“가서 짐이 되지는 않을 거야.”

그런 달기의 심경을 읽은 우마왕이 단호하게 말했다.

“하긴, 짐이 될 것 같으면 나서지도 않았겠지.”

달기가 짧게 숨을 내쉬며 눈에 힘을 풀었다.

우마왕의 자존심을 잘 안다.

처음에는 불편한 마음이 앞섰지만, 아무 대책도 없이 전장에 서겠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을 터였다.

“파초선은?”

“쓸 예정이다.”

당장 파초선을 맡고 있는 황준우의 질문에 우마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건 이따 돌려줄게. 그러면 이제 나도 동료들이랑 이야기해볼까.”

“출정은 마호 일족이 도착한 밤이다. 참 유계의 밤을 분간하는 법은 알고 있나?”

“아니, 난 모르지만…….”

황준우의 시선이 달기를 향했다.

“쓸데없는 걱정이었군.”

웃음을 보인 우마왕이 손을 내저었다.

“그러면 나가 보아라. 나는 전투 전까지 최대한 휴식을 취할 터이니.”

그녀의 축객령에 방을 나선 둘은 일행들을 모아 우마왕과 나눈 이야기를 전했다.

“나도 참전이지?”

“물론이야.”

“알겠어. 그럼 주제 파악하면서 열심히 싸울게.”

황서연과의 대화에 안도의 웃음을 보인 황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나이에 많은 전장을 거치고, 생각도 성숙해졌다.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전장에 나서는 여동생을 걱정 안 할 도리는 없다.

때문에 황서연이 먼저 나서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안심하라는 의미의 말을 건넨 것이다.

“부맹주는?”

“말했듯, 힘내서 맹주를 도울 생각이오. 나도 죽지 않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소.”

서문지언이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어째서인지 꽤나 피가 끓는 듯한 모습이었다.

‘전장에 자주 서니 젊을 때의 기질이 발현되는 것 같은데.’

심지어 상대 중에는 서문지언에 못지않거나, 강자인 존재가 가득하다.

아마 그에 의하여 서문지언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꽤나 자극을 받고 있는 듯했다.

‘어쩌면 벽을 넘을 수도.’

아니라면 어떠한 깨달음에 의하여 우화등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마냥 마음을 놓고 있을 때와는 다른 상태니 말이다.

“선공이라…….”

백교가 부채를 펼치며 웃음을 보였다.

“좋은 생각입니다. 다만 항우를 이끌어내는 것이 문제가 되겠네요.”

항우와 황준우.

무신의 이름을 건 두 사람의 싸움은 분명히 격이 다르다.

처음 황준우와 항우가 마주친 이후, 물러나게 된 이유도 이와 같았지 않은가?

대규모 인원이 부딪치는 전장의 한복판에서, 둘의 싸움 자체가 큰 문제로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따로 불러내야죠. 전쟁이 시작되기 전, 제가 먼저 움직일 생각입니다.”

“음…….”

백교가 짧은 신음을 흘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항우는 상당히 호전적인 성격이다.

황준우와의 일전을 기대하고 있다면 자극을 피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질문 자체가 걱정이란 건 알고 있습니다만. 승률은 얼마나 보십니까?”

백교의 말에 황서연, 서문지언 역시 눈을 빛냈다.

직접 붙어본 본인이 점치는 승률이다.

황준우를 잃는다는 것은 상상도 해보지 못한 그들에게 있어 이 이야기 자체가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글쎄요…… 전투란 것에 어찌 확답을 낼 수 있을까 싶네요.”

황준우가 말끝을 흐렸다.

모든 전투에 확신이란 없다.

십 할로 승리한다고 말을 할 수는 있지만, 아주 약간의 오차로 패배를 겪기도 하는 게 또 무인의 세계인 탓이다.

다만, 황준우 스스로가 이토록 고심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실상 여태까지는 대부분 이긴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흐음…….”

백교가 그런 황준우의 심경을 읽은 듯 짧은 신음을 흘렸다.

황서연 역시 눈을 가늘게 뜬다.

“그래도 억지로 기준을 잡자면…… 정말 오 할 정도…….”

결국 그 정도 수치밖에 이야기하지 못한 황준우가 입을 닫았다.

나름의 승률을 점친 이후로, 주변의 공기는 무거워졌다.

백교와 황서연 둘 모두 눈빛에 걱정을 감추지 못했으니 말이다.

전투와, 죽음에 익숙한 서문지언조차 긴장한 것이 느껴졌다. 어찌 보자면 이번 전쟁 자체는 황준우와 항우의 싸움에 걸려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말했듯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황준우는 웃음을 보이며 저녁 전까지 최상의 몸 상태를 만들기 위하여 방으로 돌아갔다.

이후 가부좌를 틀고, 심상 속에 항우를 그리며 가상의 대련을 펼쳤다.

결과는 이야기했던 대로 반반.

한 번을 이기면 한 번을 졌다.

어떨 때는 두 번 연달아 패배하기도 했다.

덕분에 다소 숨이 가빠지고, 땀도 흘렀다.

긴장감으로 몸이 살짝 굳어진다.

‘이 정도가 딱 좋아.’

휴식으로 너무 풀어진 몸은 오히려 일생일대의 전투에 있어서는 좋지 않다.

적당한 긴장감과 고양감은 전투 직전 오히려 좋은 영양제라 볼 수 있었다.

‘어쩌면 항우도…….’

지금 황준우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 모른다.

본인이 준비한다고는 하였지만, 이쪽에서 먼저 치고 올 것이라는 생각을 못 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한때 천하를 두고 한바탕 대전을 펼쳤던 인물이기도 하지 않은가?

그리 생각하니 몸이 더욱 달아올랐다.

‘내가 항우와 싸운다.’

대륙의 역사는 많은 영웅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항우는 단일 무력으로는 제일로 손에 꼽힌다. 수많은 영웅이 탄생했다는 삼국시대의 명장들조차 그보다는 한 수 아래로 뽑힐 정도다.

영혼은 없이, 육체만 이끌려 나왔던 여포와는 비교할 수도 없다.

마왕이 되어 고작 혼령을 조금 다룰 줄 알게 된 동탁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시황제라 불리나 개인의 무력보다는 통일 전, 정치적 행보와 군략적인 면에서 칭송받는 시황제와도 달랐다.

진짜 무인의 대결이다.

그리고 실제로 만난 항우는 황준우의 기대 이상이었다.

‘무신이라는 이름.’

딱히 크게 목맨 적은 없다.

어떤 의미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황준우에게 늘 얽매여 있던 단어였으니 그 무게감조차 몰랐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다르다.

이성적으로 이번에 걸린 무신이라는 이름이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떠한 직감이, 그 무게를 깊게 더하고 있었다.

‘과해. 조금은 가라앉히자.’

그 고양감으로 점점 뜨거워지는 몸의 열기에 황준우가 깊은숨을 몇 번이고 내뱉은 후였다.

“황준우, 우린 모두 준비됐어.”

문밖, 달기의 조심스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번쩍 눈을 뜬 황준우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눈빛은 매섭다.

문을 열고 나가자, 놀란 달기가 그런 황준우를 바라보았다.

“황준우?”

평소와 달리 무서울 만큼 차가워 보이면서도, 몸에서 아른거리는 열기가 주변까지 전해지고 있다.

“가자.”

긴말 대신, 짧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한 황준우가 앞장섰다.

달기는 그에게 더 이상 말을 걸어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두 눈에는 항우의 그림자만이 맺혀 있는 것 같다.

‘걱정…… 소용없겠지.’

아랫입술을 꼭 깨물며 고개를 저은 달기가 황준우의 뒤를 따랐다.

하늘이 검은 유계의 밤과 낮은 큰 차이가 없다.

그를 분간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하늘에 별이 뜰 때였다.

유계에도 별은 뜬다.

다만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고, 흐릿할 뿐이다.

하늘을 들어 그를 확인한 우마왕이 깊은숨을 내쉬었다.

전방, 마호 일족과 우마 일족의 전사들이 모여 기운을 일으키고 있다.

날카롭게 벼려진 검과 같다.

그들 중 이번 전투를 우습게 여기는 이는 누구도 없었다.

우마왕 역시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전장에 섰다.

‘더 이상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놈들이 생기지 않게 철저히 짓밟는다.’

저도 모르게 거친 숨결이 뿜어져 나왔다.

하나 그런 그녀조차도, 곁에 선 황준우에 비하자면 적은 열기를 내뿜고 있을 뿐이었다.

“오빠.”

“…….”

황서연의 부름에도 대답이 없이, 정면만을 바라보는 황준우의 표정은 주변조차 긴장하게 만든다.

그 누구도, 단 한 번도 황준우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약속 하나만 해줘. 절대 죽지 않는다고.”

황서연이, 그런 황준우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으며 말한다.

어쩌면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하고 싶은 말일지도 모른다.

그 온기와, 목소리에 그제야 얼굴을 움직인 황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야.”

“……이길 거지?”

간결한 답변에, 꼭 잡고 있던 손을 놓은 황서연이 한걸음 물러났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끝났다.

“후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우마왕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입을 열고는 말했다.

“전군…….”

작은 목소리는, 진영 곳곳에 크게 울려 퍼졌다.

“진군한다.”

한 몸이라도 된 듯, 칠만이 넘는 대군이 동시에 무거운 걸음을 떼었다.

그 기세가 하늘의 별마저 찌르고 있음을 느낀 우마왕이 입가로 미소를 지으며 준비해 두었던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목표는 적의 멸살이다.”

어두운 숲속.

눈을 감은 채 홀로 조용히 명상에 빠져 있던 거대한 사내의 몸이 조금씩 깨어나듯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눈을 뜬 순간에는 광망이 어둠을 물릴 정도로 크게 터져 나온다.

“오는군. 생각보다 성격이 급한가 보지.”

미소를 지으며 흘리는 목소리에는 기대감이 가득 어려 있다.

저 먼 곳에 시야를 둔 눈에는 열기가 흘러넘쳤다.

“둘 중 하나, 무신의 이름이 오늘 또 사라진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그가 옆으로 손을 내뻗자, 검은 형상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나타났다.

그 존재는 말이었다.

백색과 흑색의 털이 조화롭게 어울린 거마(巨馬).

오추마(烏?馬)다.

죽음 이후로도 그의 영혼을 따라 유계까지 온 동반자는 붉은 눈을 빛내며 거친 콧김을 내뿜었다.

“가자.”

몸을 날려, 그 위로 올라탄 항우가 외치자 지면을 박찬 흑빛의 말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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