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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331화 (331/373)

학사재생 331화

제 331화

대군이 진군하기 시작하자 유계의 땅이 떨렸다.

우마 일족 하나가 일반적인 사람보다 머리가 둘 이상은 더 크고, 그 덩치도 배나 크다. 힘차게 내딛는 걸음에 힘이 들어가니 고작 이천이 넘는 숫자로도 칠만이나 되는 마호 일족 못지않은 무게가 지면으로 울려 퍼졌다.

“훌륭하군.”

그 모습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던 우마왕이 말했다.

“뭐가? 저 돼지같이 무거운 모습이?”

“지금 돼지라고 했어?”

달기의 물음에 고개를 돌린 우마왕의 쌍심지가 솟았다.

“쓸데없이 힘이 들어갔잖아. 적한테 우리가 간다고 다 알려주는 꼴이나 다름없는 것 아냐?”

“흥, 그게 바로 기세 싸움이란 거다. 잔머리나 굴리는 여우 요괴들이 알 리가 없는 이야기지.”

“잔머리나 굴린다고 했어? 지금 그 지혜에 힘을 빌려보기로 한 분이 누구시더라?”

“감히 우리 우마 일족을 돈귀(豚鬼) 녀석들 따위랑 비교한 네년이 먼저 잘못한 거야.”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기세를 흘리며 으르렁거리던 두 사람의 표정이 동시에 굳어졌다.

지면이 울리고 있다.

우마 일족, 마호 일족 전부를 더한 걸음 소리보다 더욱 무거운 느낌이다.

“오는군.”

“다 눈치채게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끝나지 않은 달기의 핀잔에 우마왕의 입가로 더욱 진한 미소가 번졌다.

“그러니까, 기세 싸움이라고 했지 않냐. 애송이 여우야.”

“누구보고 애송이라고…….”

“우마 일족 전군!”

달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우마왕의 목소리가 하늘이 떨릴 정도로 크게 울려 퍼졌다.

그 작은 육체에서 나왔다고는 믿기 힘든 큰 목소리다.

불린 우마 일족은 물론, 황준우를 제외한 모두의 시선이 단숨에 그녀에게로 몰려들었다.

그를 즐기듯 미소와 함께 느긋이 바라보던 우마왕이 다시 한번 입을 연다.

“전력으로 걸어라!”

이어진 명령에 우마 일족 전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소뿔이 솟은 머리 주변으로는 근육이 피어오른다. 이어서는 큰 괴성과, 목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

“전력으로!”

“힘을 내라!”

쿵. 쿵. 쿠르릉-!

천둥이라도 치는 듯한 소리가 땅에서부터 울려 퍼졌다.

두두두두-!

몰려오는 적의 군세가 가까워지며 귀를 때리는 말발굽 소리가 더욱 커진다.

“흉마(凶馬) 놈들, 가벼운 발걸음을 힘차게 키워보는구나!”

“푸하하!”

“우습구나!”

우마왕의 외침이 신호라도 되듯 우마 일족 전원이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는 적 진영의 선봉에서 발을 빠르게 굴리는 말을 닮은 요괴들, 흉마 일족의 눈에 핏발이 서는 것이 보였다.

“나의 자랑스러운 전사 모두.”

그를 차갑게 바라본 우마왕의 목소리가 다시 작아졌다.

하나 그 음성은 여전히 모두의 귓가에 선명히 파고든다.

“돌진해라.”

명령이 내려진 순간이었다.

발을 강하게 구르고 있던 우마 일족이 벼락처럼 뛰어나갔다.

콰과광-!

선봉의 흉마 일족과, 우마 일족이 부딪치며 굉음과 함께 거대한 먼지구름을 일으켰다.

“우오오오-!”

먼지구름 속 어깨를 넓게 편 우적의 울음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전쟁 끝날 때까지 구경만 할 생각으로 이 자리에 온 건 아니겠지?”

우마왕이 바로 옆,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는 달기를 향해 말했다.

“무슨…….”

어이없다는 듯 숨을 내쉰 달기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흩날리는 아홉 개의 은빛 꼬리가 아름답게 빛을 뿌린다.

모든 마호 일족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녀를 따랐다.

달기는 그들을 향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아홉 꼬리에 백화를 피어 올렸다.

뜨거운 여우불이 어두운 유계의 하늘을 밝힌다.

그를 따라 수많은 여우 요괴들이 적게는 하나, 많게는 다섯 꼬리에 검붉은 여우불을 따라 피어 올렸다.

“저 힘만 센 무식한 놈들한테 화려한 불장난을 보여주자.”

우마왕을 바라보며 코웃음을 흘린 달기의 말에, 십만이 넘는 여우불이 하늘로 떠올랐다.

유계의 밤하늘을, 별보다 반짝이게 수놓는 그 수많은 불길을 바라보는 적의 시선이 느껴졌다.

“난 이런 관심 좋더라.”

하늘에 올라, 그 시선을 모두 받은 달기가 손짓했다.

십만 개의 여우 불이 그녀의 동작을 따라 동시에 지상으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키에에엑-!

그 위용에 놀란 요괴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뒷걸음질 치려 하였지만, 여우불의 속도는 빨랐다.

콰과과광-!

거대한 폭음이 연달아 터지며 전장 곳곳에 폭죽 같은 화려한 불길이 피어오른다.

무섭게 달려 나와 기세를 잡으려던 적의 군세가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이 상태라면 너무 쉽겠는데?”

달기가 우마왕을 바라보며 코웃음을 친다.

“당연하지. 이 전투에 우리 우마 일족이 있지 않느냐.”

차갑게 말한 우마왕이 정면을 바라볼 때였다.

또다시 대지를 울리는 무거운 소리가 퍼져나갔다.

다만 그 숫자가 많지 않다.

하지만 그 기세가 유계의 하늘을 덮고 땅조차 잠식시키고 있다.

“기개세, 항우!”

우마왕이 비명을 내지르며 적진 사이를 바라보았다.

거대한 오추마를 탄 항우가 군세를 가르며 앞으로 달려 나오고 있다.

어느새 뽑아 든 대도(大刀)에는 어두운 기운이 물결처럼 넘실거린다.

“피해!”

우마왕이 다급히 소리쳤다.

“다들 물러나!”

달기도 비명을 내지르듯 외친다.

콰과과-!

그보다 더 빠르게, 흙빛 기운이 마치 거대한 파도처럼 일어나며 유계의 대지를 삼키며 다가온다.

가장 최전방에서 격전을 벌이던 우마 일족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들 모두가 직감했다.

막을 수 없다.

피하기에도 이미 늦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단 하나였다.

전멸(全滅).

감히 따르지 못할 거력이 그들의 시야를 새카맣게 물들인다.

그때, 마치 희망처럼 황금빛이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

“수왕, 처음부터 전력으로 받아친다.”

담담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온 것과 동시에, 황금빛 기운이 순식간에 증폭되었다.

이후 세상이 깨지는 것만 같은 소리가 났다.

전장에 있던 모두가, 육체 하나만큼은 감히 비견할 존재가 없다는 우마 일족조차 전원 귀를 틀어막고는 몸을 웅크렸다.

짧은 정적이 흐른다.

콰아아-!

주변을 둘러보며, 세상이 아직 멀쩡함을 확인한 모두의 눈에는 거대하게 소용돌이치며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황금과 검은빛의 향연이 펼쳐졌다.

이윽고 유계의 하늘을 부술 듯한 폭음과 두 빛이 동시에 산화하며 가루처럼 흩날렸다.

“무신, 항우!”

황준우의 외침에 화답하듯 거대한 오추마를 타고 허공으로 날아오른 후, 지면으로 떨어진 항우가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그래. 내가 바로 항우다. 새 시대의 무신이라 불리는 사내여! 이름이 무엇인가?”

“황준우.”

“무신 황준우!”

두 무신의 기세가 들끓으며 지면이 들썩였다.

검은 하늘이 더욱 어두워지는가 하면, 밝은 황금빛이 번쩍이기도 했다.

“여기는 우리한테 어울리는 무대가 아니지. 장소를 옮기자.”

이어지는 끝없는 기세 싸움에, 승자가 없음을 느낀 황준우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러면 장소를 옮겨야겠군.”

항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따라와.”

짧은 말과 함께 황준우가 등을 돌렸다.

그 뒤를 따라 오추마를 탄 항우가 무섭게 쫓는다.

멀어지는 두 무신의 모습을 보며,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못하고 있던 전장의 기운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진짜 괴물들이로군.”

믿기지 않는다는 듯, 두 무신이 사라진 흔적을 바라보던 우마왕이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분한 음성을 흘린다.

‘가장 나약한 육신으로 태어나, 가장 강한 무신이 될 것이라 했던가.’

언젠가 새하얗기만 한 백색의 신, 숙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린 우마왕은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정말 재수 없는 이야기로군.”

너무나 분하고 속상하다.

하나 당장은 그런 마음을 표출할 상황조차 되지 않는 것이 솔직한 현실이었다.

“우마 일족은 유계 최강이다!”

이어진 거친 우마왕의 외침은 다소 정적이 가득하던 전장의 분위기를 일깨웠다.

“우마 일족이 최강이다!”

이어진 우적의 후창은 전장의 기세를 만들어냈다.

요괴 하나가 터지듯 죽어 나가며 피 분수를 쏟았다.

전장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소 징그럽기까지 한 그 모습에 계속해서 넋을 놓고 있을 얼간이는 몇 없었다.

“다 물어뜯고, 태워 죽여 버려라!”

달기 역시 마호 일족을 지휘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두 눈에는 잠시 황준우에 대한 걱정이 스쳐 지나갔으나 짧은 감정이라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절대 지지 마.’

마음속으로 응원을 남긴 그녀의 시선이 전장 건너편을 향했다.

적진 사이에서 튀어나오는 뇌신과, 요괴왕들이 보였다.

그들 역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생각했는지 기운을 크게 일으키고 있다.

이윽고 전장에는 우마 일족보다 머리 다섯은 더 큰 지네 요괴가 나타났다. 수많은 발로 전장을 순식간에 휩쓸며 우마 일족의 전사 다섯을 동시에 죽여 버린다.

요괴왕이다.

‘이름이 귀효라고 했던가?’

약 이백 년 전, 요괴왕의 지위에 올랐다며 그녀에게 인사를 올렸던 징그러운 얼굴이 떠올랐다.

꽈르릉-!

하늘에서는 뇌신들이 일으킨 진짜 번개가 내리쳐 마호 일족을 새카맣게 태워버린다.

우마 일족에 이어, 유계 이인자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이들인 만큼 하나, 하나가 위협적이다.

‘감히…….’

하나 그 모든 것이 달기의 몸을 움츠리게 하기에는 부족했다.

오히려 그녀의 분노는 더 커져만 갔다.

‘차라리 잘됐어.’

황준우가 이 자리에 없어서 다행이다.

그에게만큼은 잔인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두 눈에 붉은 기운을 피어 올리고, 짐승 울음소리를 낸 달기가 전장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이내 주변을 뒤덮는 밝은 은빛과 함께 전장을 휩쓰는 지네 요괴왕 따위, 한 발로 짓눌러 버릴 만큼의 거대한 형체가 나타났다.

키에에엑-!

“크르르…….”

짐승의 울음소리를 내며 사나운 이빨로 괴로워하는 지네 요괴왕의 목줄을 잡아 뜯은 붉은 눈이 전장을 훑었다. 그 압도적 위용에, 기세를 일으키던 요괴왕들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마왕들조차 침을 삼켰다.

가장 오랜 요괴 중 하나이자, 요괴왕과 마왕의 지위를 동시에 갖춘 몇 안 되는 진짜 왕 중 하나.

[여유 부릴 것 없이 동시에 와라. 다 씹어 먹어 줄 테니.]

달기가 전장에 강림하여 선언한다.

천천히 움직이는 아홉 개의 꼬리에서는 훨씬 더 거대한 여우 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여우 요괴 녀석 아주 힘이 바짝 들어갔네. 저 모습은 정말 오랜만인걸.”

헛웃음을 짓는 우마왕이 침을 꿀꺽 삼켰다.

‘저년, 그새 더 강해졌잖아.’

처음 보았을 때는 정확하지 않아 외면했는데, 본신이 된 달기를 보니 확신할 수 있었다.

어째서인지 유계를 떠났던 순간보다 훨씬 더 강해져서 돌아왔다.

“그래도 나보단 못하지만. 재수 없게.”

질투심 가득한 음성을 내뱉으며 혀를 찬 우마왕이 양 주먹에 힘을 쥐었다.

말아쥔 손에 모이는 힘이 적지 않다.

당장에라도 그를 쏟아내고 싶다.

달기처럼 전장의 한가운데에 서서 포효하고 싶다.

그것이 본래 우마왕의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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