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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336화 (336/373)

학사재생 336화

제 336화

다리는 불만 가득한 모습으로 떨리고 윗니는 아랫입술을 강하게 깨문다.

두 눈에는 분노를 넘어선 흉포한 감정이 매섭게 소용돌이쳤다.

“놈을 죽이려면 지금이 기회인데, 벌레 같은 것들은 자꾸 신경 쓰이고, 쳐내려니 더 꼬이고…….”

지면을 신발 바닥으로 때리는 전생자의 주변으로 기운이 마구잡이로 얽히고설키기 시작한다.

언뜻 보자면 스스로의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여 심마에라도 들 것만 같은 모습이다.

하나 그 본질은 다르다.

우마왕은 이미 한 번 그와 같은 상태를 겪은 적이 있었다.

“놈의 심검이다! 막아야 해!”

심검(心劍).

전설 속 고수들조차 단지 언급하는 것으로 그쳤던 궁극의 무(武).

스스로를 하나의 세계라는 기반으로 만들어 그것을 현실로 발현하여 구현시키는 이 힘은 사용하는 이에 따라 효과가 천차만별이다.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그러한 사실을 아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심검을 겪을 상황이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니 당연한 일일 터였다.

다만 그 위력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쯤은 짐작할 수 있었다.

마구잡이로 얽힌 기운이 당장에라도 찢어질 듯 팽팽하게 당겨지며 무시무시한 살의를 뿜어내고 있다.

무서운 것은 그 대상이 어떠한 존재로 특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그야말로 세계 자체를 죽이려는 듯 광범위하다.

주변 곳곳을 둘러보아도 어디 하나 피할 곳이 보이지 않았다.

“놈-!”

일갈을 내지른 여동빈의 검이 전생자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 순간 세계의 일부가 폭발하며 여동빈의 몸을 강하게 내리쳤다.

“쿨럭-!”

거친 기침과 함께 핏물을 토한 여동빈이 제자리에서 무너졌다.

엄청난 충격이 그의 전신을 휘감다 못해 잡아먹고 있었다.

마치 치명적인 독에 중독된 것만 같은 모습이다.

“저게…… 심검…….”

황서연의 음성이 떨렸다.

그녀는 분명히 보았다.

짧은 틈새였지만, 세계의 일부가 폭발하여 사라졌었다.

그 뒤로 나타난 것은 검고, 끝이 없어 보이는 허무한 무(無)의 공간이다.

바라본 것만으로 온몸이 떨리고 식은땀이 흘렀다.

잠시지만 그런 세계와 직면한 여동빈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하여 버린 것이 단숨에 이해가 되었다.

“미천하게 밟혀 죽어라. 어리석은 벌레들아.”

얼굴을 흉신악살처럼 일그러트린 전생자의 선언과 함께 마구잡이로 뒤엉킨 기운이 충돌하려 할 때였다.

“네놈이나 죽어라! 이 미친 자식아!”

갑자기 정면으로 뛰어든 우마왕이 한 손에 들고 있던 파초선을 거칠게 휘둘렀다.

“……!?”

놀란 전생자가 손을 내뻗어 세계의 일부를 폭발시킨다.

얼굴 정면으로 그 힘을 받은 우마왕의 눈에서 의식이 사라졌다.

하나 휘두르던 파초선은 멈추지 못했다.

콰아아-!

붉어진 팔에서 쏟아져 나온 거력의 힘으로 휘둘러진 파초선에서부터 쏟아져 나온 돌풍이 단숨에 전생자의 몸을 허공으로 날려버린다.

“……!!”

다급하게 준비한 만큼 그 위력이 엄청나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전생자는 분노의 집중을 놓쳤다. 당황이라는 감정이 그의 뇌리에 차올랐다.

동시에 마구잡이로 엉켜있던 세계의 기운이 순식간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우마왕이 몸을 날려 만들어준 짧은 틈이었다.

그를 놓치지 않은 일행들이 허공에 뜬 전생자를 향해 각자의 병장기를 날렸다.

쐐에엑-!

화살처럼 날아간 검과 창이 돌풍을 지나쳐 전생자의 몸을 꿰뚫으려 한다.

돌풍에 휘말려 허공에 떠오르며, 그를 두 눈으로 확인한 전생자의 입가로 헛웃음이 흘렀다.

“이것들이 정말 감히 대 스승을 뭘로 보고!”

분노가 다시 차올랐다.

세계를 다시 부수고자 악의의 마음을 펼치려 한다.

날아오는 병장기 정도는 맞받아치면 된다.

그리 생각하던 전생자의 몸이 짧게 굳어졌다.

‘숙의 전서구!’

분노에 집중한 나머지 그의 존재를 잠깐 잊었다.

그 방심은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왔다.

푸부북-!

세 자루 검과, 한 자루 창에 전신 곳곳을 관통당한 전생자의 얼굴이 새까맣게 변했다.

전신 곳곳에서 퍼지는 차가운 한기와, 뜨거운 고통이 그의 뇌리를 새하얗게 물들였다.

“끄아악-!”

비명을 내지르는 그의 앞으로 돌풍을 헤치며, 전신 곳곳 상처를 입고 뛰어오른 인물이 있었다.

“이 나이 먹고 후대들한테 밀리기만 할 수는 없지.”

믿기지 않는 정황 속, 들려온 목소리에 전생자의 눈에 불신이 가득 찼다.

저도 모르게 고개가 좌우로 내저어진다.

“이럴 리가…… 이럴 리가 없다. 이…… 내가…… 고작 이런 하찮은 것들한테!”

말아 쥔 주먹에 우윳빛의 기운을 가득 모은 서문지언이 무서운 표정으로 일권(一拳)을 내질렀다.

“패천권(覇天拳).”

강기가 가득 모인 주먹은 왼쪽 가슴에 정확하게 직격한다.

콰드득-!

가슴과 함께 갈비뼈가 함몰되며 끔찍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끄아아악-!”

고통에 비명을 내지른 전생자의 눈에서 생기(生氣)가 꺼져갔다.

이윽고 허공으로 치솟던 돌풍 역시 그쳤다.

그를 따라 먼지처럼 화한 전생자의 육신이 사라졌다.

승리했다.

그 사실을 체감하기까지는 꽤나 긴 시간이 필요했다.

“우리가 정말……?”

먼저 입을 연 측은 황서연이었다.

“아무래도 이긴 것 같군.”

주연하가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드디어 도련님을 볼 면목이…….”

경호가 주먹을 움켜쥐며 말한다.

홍산은 아무런 말이 없었지만 온몸에 힘이 가득 들어간 게 보였다.

그 무시무시하던 전생자를 영멸시킨 것이다.

“우선…… 치료를…….”

지친 얼굴의 백교가 가장 위급한 달기를 시작으로 백색의 기운을 흩뿌렸다.

그 역시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지만 가만히 놔두면 영멸할 이들을 보고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놈…… 은?”

놀랍게도 의식을 가장 먼저 차린 이는 얼굴이 새카맣게 물들 정도로 전생자의 심검을 직격으로 맞은 우마왕 측이었다.

“영멸했어요.”

답은 황서연에게서 돌아왔다.

그 신이 난 표정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는 않았다.

“영멸…….”

하지만 이미 몇 번이고 그를 제 손으로 영멸시켰다고 자부한 적이 있던 우마왕의 생각은 회의적이었다.

시선은 백교를 향했다.

“저도 분명 그리 확인했습니다만…… 뭔가 느낌이 좋지만은 않네요.”

그 말에 승리의 향연에 빠져 있던 일행들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했다.

당연하지만 그들이 이 기분 좋은 승리에 괜한 찬물을 끼얹는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말로 하기는 뭐했지만, 그들 역시 승리한 이후로도 마음 한편 어딘가에 서늘한 감정이 남아 있는 탓일지도 몰랐다.

“후우…….”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제자리에 간신히 앉은 우마왕이 입을 열었다.

“말했듯, 놈은 전생자야. 그리고 내 생각에 이렇게 쉽게 영멸할 녀석도 아니고 말이지.”

“그렇다면……?”

황서연의 물음에, 무거운 얼굴이 된 우마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돌아온다. 놈은 아직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어.”

무거운 침묵이 단숨에 장내를 휘감았다.

“그렇다고 해도 금방 돌아오기는 힘들 거야. 이렇게 눈에 보일 정도로 소멸하였을 때는 언제나 오랜 시간이 걸렸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그전에 놈을 찾아서 죽이거나 봉인하는 방법도 있겠지.”

영멸이 힘들다면 봉인이라는 방법도 있다.

서늘한 눈빛으로 생각을 읊은 우마왕의 시선이 전장을 향했다.

“우선은, 전쟁부터 끝내자고.”

맞는 말이었다.

다소 불안한 느낌이 남아 있더라도 그들은 큰 싸움에서 승리했다.

그리고 전쟁의 끝이라는 마지막 종착역을 눈앞에 둔 채였다.

“어쨌든, 모두 무사하니까 다들 힘을 내자고요!”

황서연의 외침에 굳어졌던 얼굴에 미소를 그린 일행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장에 나와 무사하게 살아남았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기쁜 일임이 분명했으니 말이다.

포달랍궁.

사막의 패주라고도 불리는 거대한 사원의 지하에는 금역(禁域)이 존재했다.

그 내부는 드넓은 지하 광장이었다.

어지간한 궁궐 못지않은, 거대한 크기에 화려한 야명주를 가득 박아 놓은 그 공간은 오롯이 대 스승만의 공간이다. 그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포달랍궁의 제자도, 스승도 입장을 불허(不許)한다. 짧지 않은 포달랍궁의 역사상 그를 어긴 이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입장한 금역에서 살아 돌아온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포달랍궁의 스승들은 그를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금역은 신성한 땅이니 인정된 존재가 아니라면 모든 것을 소멸시킨다.

오롯이 영생하며, 끝없는 가르침을 이어가는 대 스승만이 신들의 인정을 받아 그 공간에 존재할 수 있다.

모두가 그리 믿는 공간에는 놀랍게도, 가부좌를 틀고 앉은 인물이 일곱이나 있었다.

각기 다른 얼굴에 다른 연령대를 한 그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뿐이었다.

마치 죽은 듯, 숨을 쉬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거대한 광장에는 정적 외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작은 헛기침 소리, 들숨소리 무엇도 들어설 자리가 없어만 보였다.

“음……!”

그때 눈을 감고 있던 인물들 중 미색(美色)이 뛰어난 청년이 신음을 흘렸다.

적당한 구릿빛 피부를 한 그는 포달랍궁이 위치한 서장의 인물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오히려 중원인에 가까운 골격과 생김새를 가졌다.

다른 자리에 앉아 있는 서장인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

곧, 그가 눈을 부릅뜨며 안광을 토했다.

몸을 부르르 떨며 고통에 겨운 눈을 한 그는 자신의 양팔을 감싸고는 이를 악물었다.

“끄으윽-!”

이윽고는 뇌리를 휩싸는 고통에 신음을 흘린다.

그러길 반 시진.

“헉…… 헉…….”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그가 거친 숨을 내쉬며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그렇게 숨이 안정되기도 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사내의 눈에 분노가 치솟았다.

“감히…… 벌레 같은 것들이……!”

방금 전 보았던 자신의 죽음.

그 경험을 모두 머릿속에 담은 그는 이내 헛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신격을 얻은 무인도 아니고, 고작 그런 존재들 따위에게 당할 줄이야.”

화가 나다 못해 어이가 없어 스스로의 육신을 부수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정신을 연결하여 기억을 이전하는 다른 육체들과 다르게 지금 그가 눈을 뜬 이 몸은 그의 본신(本身)이자 영혼의 그릇이었다.

그것이 바로 사내, 전생자의 정체였다.

“후…….”

깊은 한숨을 내쉰 사내가 다른 육체 중 제법 건장한 체격을 한 사내 앞으로 다가가 손을 내뻗었다.

곧 보랏빛 기운이 흘러나와 그와 건장한 체격의 사내 사이를 연결한다.

[제, 제발…… 대 스승이시여!]

그런 전생자의 뇌리에 어떠한 영혼의 외침이 들려왔다.

육신이 아닌 영혼까지 묶여, 이 자리에 앉아 있으며 그간 다른 대 스승의 인형이 되었던 존재들이 어떠한 삶을 사는지 지켜보았다.

그 끔찍하고도 괴로운 모습은 한때 누구보다 건강하고 정진하였던 사내에게조차 두려운 모습이었다.

“겁내지 마라. 나의 인형이 되는 것이 너의 숙명이니, 그저 존재의 의미를 따를 뿐이다.”

미소 지은 전생자의 손에서 흘러나온 보랏빛 실이 영혼을 휘감고 목을 죄어버린다.

[꺼어억-!]

신음을 토하고 의식을 잃어가는 그의 혼 속에 자신의 정신을 연결하기 시작한 전생자는 제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숨은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한다.

그리고 잠시 후, 건장한 육체의 사내가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한때 서장제일고수의 육신답게 훌륭하군.”

포달랍궁의 수호자.

대 무인이라고도 불렸던 청년의 육체에 깃든 전생자의 입가로 만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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