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재생 343화
제 343화
‘맛있는 음식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지.’
사실 지금 그에게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목표로 했던 제강의 조각을 얻었으면 좋으련만…….”
다소 욕심을 부린 탓에 모든 것을 잃었다.
예전부터 그런 그의 성격은 자잘한 실수를 많이 불러오고는 했다.
“짜증이 나. 짜증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말하는 전생자의 입가 아래로 푸른 액체가 뚝뚝 떨어진다.
유계의 주민들, 타락한 영혼의 잔재다.
유계에 속하게 된 대다수 주민은 그를 피라고 표현했다. 상처 입고 다치면 흐르는 것이 푸른 잔재이니, 생전의 피와 다를 것이 없다 생각한 탓이다.
으적, 으적.
아랫입술을 마구잡이로 씹으며 느껴지는 고통은 전생자의 불쾌함을 다소 덜어주었다.
덕분에 그는 자신의 마음을 차갑게 가라앉히고, 해야 할 일을 명백히 직시할 수 있었다.
“어디 보자. 얼마나 모았더라.”
전생자는 드넓은 폐관 수련장의 벽 한편으로 다가가 매끈한 벽면의 특정 부위를 가볍게 두드렸다.
가벼운 손동작이 몇 번 이어진 끝에.
쿠구궁-!
기관이 움직이며 벽면 뒤 비밀의 방이 드러났다.
내부는 그리 화려하지 않았다.
언뜻 보자면, 어두운 공간을 비추기 위하여 천장에 박힌 야명주가 가장 화려해 보일 정도다.
그 정도로 비밀의 방에 있는 물건들은 보잘것없어 보이는 종류가 많았다.
대나무 통, 낡은 나무 낚싯대, 검은 묵 등등.
물론 다소 특이해 보이는 물건도 몇 가지 존재하기는 했다. 노란빛을 내는 기이한 구슬, 형형색색을 내는 병장기들이 바로 그런 종류였다.
하나 그 모든 것들이 잡다한 것들 사이에 쌓여 있으니 그 빛을 발하지 못한다.
너무 이것저것이 뒤섞여 있어 다소 혼란스럽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하나 실제 이 자리에 있는 것 중 그 가치가 야명주보다 못한 것은 무엇도 없다. 오히려 몇 배는 더 훌륭한 값어치를 가진 진짜 보물들이다.
낡아 보이는 나무 낚싯대는 그 유명한 태공망의 보패다.
언뜻 어디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대나무 통은 반대쪽이 막힌 어고다. 바로 장과로의 보물이었다.
노란빛을 띠는 기묘한 구슬은 강련한 뇌신이 자신의 정기를 백 년 이상 모은 결과다.
이 모든 것을 한데 모으기 위하여 전생자가 들인 노력은 결코 작지 않았다.
악의 끝을 이루고자 인내하지 못하였다면 결코 해낼 수 없던 일이었다.
“결국 파초선을 못 모은 것도 아쉽기는 하지만, 이 정도 보물이면 그를 부를 수 있겠지.”
전생자는 그를 다소 아쉬운, 하나 또 한편으로는 흡족한 시선으로 바라보고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놈이 제강의 조각을 완전히 제 것으로 만들기 전에 영멸시킨다.’
눈은 스산한 빛을 내뿜었다.
사실 그가 바라던 결과는 이 보물을 통해 부를 존재의 힘과, 제강의 조각을 동시에 얻는 것이었다. 그 힘만 있다면 누구도 자신을 막을 수 없다. 설령 숙이라고 하여도 넘어설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제강의 조각을 결국 손에 넣지 못했다. 큰 실수고,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기껏 만든 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은 그의 욕심 탓이었으니 말이다.
‘어쩔 수 없지.’
화가 났지만 참아낸다.
탐욕, 분노, 공포, 질시, 그 외의 모든 악의가 바로 전생자라는 존재 자체를 이루고 있는 본질이다. 본질을 벗어나서는 그 어떠한 무엇도 될 수 없는 법이라 믿는 그는 스스로의 실수에 분노할지언정, 되돌리고자 어리석은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세계의 끝!’
더 큰 악의.
모두가 절망하는 희열을 위해 그는 언제나 그렇듯 작은 악의를 참아내었다.
“후우…….”
깊은 한숨으로 다소 복잡한 생각을 덜어낸 그가 양손을 모았다.
입 바깥으로는 어느덧 주문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옴…… 사르가…… 타리아오…….”
기이하고도 음산한 목소리에는 사기(邪氣)가 가득 배어 있다. 이윽고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 손동작을 따라 그 사기는 몇 배나 더 크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주변이 삽시간에 차갑게 얼어붙는 듯했다.
그를 따라 모인 보물로부터 각각의 기운이 흘러나와 허공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시간이 더 흐른 후에는 당장에라도 터질 듯 기운의 크기가 팽창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압축된다.
작은 실수만으로도 장원 전체가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을 힘이 들쑥날쑥 하고 있는 그때, 전생자의 눈은 거대한 우주를 누비고 있었다.
죽은 자의 땅, 유계도 아닌, 또 다른 삶인 윤회조차 원하지 않아 스스로 영면을 취하며 잠이 든 별들의 세계.
그 무수히 많고 많은 별 중 몇몇이 전생자의 시선을 받을 때마다 더욱 강렬한 빛을 내뿜는다.
무언가를 원하는 듯한 의사 표현이다.
하나 전생자는 그를 외면한다.
그가 찾는 것은 그저 그런, 영웅의 별이 아니다.
‘신은 오로지 신만이 대적할 수 있다.’
그리고 아주 먼 오랜 옛날.
그런 신과 싸운 또 다른 신들이 있었다.
함께 성장하고 함께 꿈을 꾸었으나 이내 서로 갈라져 큰 싸움을 벌인 이후 모든 것에 회의를 느껴 스스로 잠든 영원의 존재들.
‘어디 있는 것이냐. 삼황오제.’
유일신 숙과 비견할 수 있었던 살아 있던 신들.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진 고대의 이름을 찾는 전생자에게로 거대한 별 하나가 접근해왔다. 그 크기와 위엄이 고작 빛을 내뿜으며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일반 별들과는 완연히 다르다.
‘왔다.’
전생자의 눈이 반짝였다.
전능한 신의 시대였던 고대의 제왕, 삼황오제!
그중에서도 그의 뜻에 가장 부합하는 존재가 왔는가?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의식으로 이어져 곧 별의 형체를 한 거대한 존재에게 전해졌다.
[그대의 이름은?]
화답하듯, 거대한 진동을 일으킨 별이 찬란한 황톳빛을 내뿜으며 화답했다.
[건방지구나. 필멸자여.]
차갑고, 무거운 음성이 전생자가 바라보는 우주를 단숨에 집어삼켰다.
결국 전생자의 눈앞에서, 우주가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새하얗다.
황준우는 이 풍경이 마치 숙의 방을 보는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따뜻하고, 포근하다.
다소 허전한 느낌도 들지만 그리 싫은 기분은 아니었다.
하나 그런 생각도 잠시.
어느새 주변은 검은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신 항우가 보여주던 먹빛보다 몇 배는 더 무거운 어둠이 가득 찬 풍경이다.
새하얀 풍경과 다르게 서늘하고, 매정하다.
우스운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풍경 또한 낯설지 않았다. 속상할 정도의 매정함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 감정이 증오를 넘어서지는 않았다.
‘어째서?’
의문이 피어올랐다.
백색과 흑색.
완전히 다른 두 세계 모두 황준우는 싫지 않다.
분명 어느 한쪽엔 거부감을 느껴야 할 텐데 그런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는 누구지?’
또 다른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여기는 어디지?’
무엇 때문에, 그는 어떠한 존재로 이 공간에 던져졌는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도 없었다.
의문은 많은데 머릿속은 텅 빈 백지장이 된 듯만 했다.
그런 황준우의 고민에 화답하듯 세계가 또 한 번 변했다.
회색빛이다.
아무런 감정도, 느낌도 없는 회색빛.
서늘하다거나 매정하다는 느낌조차 없다.
무(無).
그야말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그 공간에서 황준우는 자신조차 지워져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분명 그런 것 같았다.
‘아니.’
아직 그의 생각은 남아 있다.
지워져 가고 있다는 생각 혹은 느낌을 받는 것 자체가 아직 그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문을 멈추면 안 돼.’
이유는 모른다.
따지자면 본능이 그에게 요구하고 있는 일에 불과했다.
때문에 황준우는 계속해서 스스로를 찾으려 하였다.
공허함만이 가득한 회색빛 세계에서 그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도저히 불가능하다고까지 여겨졌다. 하나 이미 그는 과거에 몇 번이고, 스스로를 찾고, 정립하였다. 배우고 익히고 따르며 황준우라는 인간을 만들었다.
‘황준우.’
이름이 머릿속에 새겨진다.
동시에 정신이 번쩍 드는 것만 같았다.
세계는 여전히 회색빛이다.
그 공간에, 홀로 떠 있는 자신을 바라보고, 느낀 황준우의 입가로 미소가 흘렀다.
“이게 바로 제강의 조각.”
밖에서 보았을 때는 그저 난폭하게만 느껴졌던 회색빛 기운의 내부 세상이다.
“이 무시무시한 공허가 고작 일부, 조각일 뿐이란 거지.”
소름이 돋아나기도 하였다.
자칫했으면 조각을 획득하기도 전에 스스로의 존재를 지워버릴 뻔했다.
끝을 알 수 없는 공허가 주는 허무함이란 말로 다할 수 없는 미지의 공포에 가까웠다.
만약 황준우가 여태껏 몇 번의 경험을 통해 배우고, 익히고, 성장하지 못했다면 꼼짝없이 공허함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스스로의 우주를 정립하지 못한 자아(自我)가 이 속에서 견뎌낼 리가 없지 않은가?
하나 결국 황준우는 자신을 찾았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허는 계속해서 그의 존재를 지우려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황준우는 스스로가 사라지는 것만 같은 느낌을 꾸준히 받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때문에 황준우는 계속해서 말을 했다.
“우선 이 기운을 안정시켜야 하나?”
스스로를 자각하고 할 일을 찾았다.
입가로는 헛웃음이 흘렀다.
나름 긴장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쉽게 생각한 듯했다. 일이 크게 꼬였다. 짧게 끝날 일일 줄로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할 듯했다.
“이렇게 힘든 일인 줄 알았다면 조금 더 멋있는 말이라도 남겨 놓는 건데.”
주연하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이야기를 해놨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다행인 점은, 그런 아쉬움이 이 회색빛 허무의 공간에서 황준우의 존재를 더욱 강하게 붙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서연이, 주연하, 달기, 스승님, 경호, 홍산, 전왕, 부맹주, 우마왕, 할머니…….”
그와 인연이 있는 수많은 이름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돈다.
때문에 결코 사라질 수 없다.
황준우는 자신의 존재를 영원이라는 이름으로 결속시키며 언령으로 선언했다.
“난 사라지지 않는다. 어떻게든, 돌아간다.”
폭발이 장원 전체를 뒤흔들었다.
몸을 움츠린 채 귀왕의 분노를 피해가기 위해 눈치를 보던 영혼들은 화들짝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마치 작은 소란으로 끝난 듯했지만, 방금 전 일시적으로 터져 나온 기운은 귀왕의 장원을 통째로 삼키고도 남을 거대한 힘의 폭발이었다.
귀왕, 전생자 본인 또한 심장이 섬뜩해지는 감정을 느꼈던 그 시점.
하나 다행히 기운은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지 않았다. 오히려 압축하고, 똘똘 뭉쳐 하나의 거대한 무언가로 형상화되어 그의 눈앞에 섰다.
“아…….”
짧은 탄식을 흘린 전생자를 내려다보는 황톳빛 신이 조소를 흘린다.
그의 뒤로는 전생자가 오랜 세월 동안 모은 수많은 보물이 가루가 되어 흩날린다.
[꽤나 훌륭한 조공(租貢)이 네 영혼을 구제하였다.]
그 외의 어떠한 단어로 달리 표현할 수 없는 무게감 섞인 음성을 흘린 황톳빛 신이 전생자를 바라보았다.
[재미있는 영혼이로구나. 악의로 뭉쳐진 신의 산물이라니…….]
음성에는 감출 수 없는 흥미가 가득 깃든 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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