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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344화 (344/373)

학사재생 344화

제 344화

“나는…… 신의 산물이 아니다.”

반발하듯 이를 악문 전생자가 답한다.

두 눈에는 붉은 핏발이 가득 일어선 채다.

모든 존재에는 이유가 있다.

그리 말하는 건 전생자답지 않은 반발이었다.

황톳빛 신은 여전히 흥미로운 눈으로 그런 전생자를 바라보았다.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신의 산물이 아니다?]

“만들었다고 하여 조물주인가?”

[당연한 말을.]

“아니다. 삶의 명확한 방향을 알려주지 못한 이상 그는 나를 완성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불완전하게 세상에 내동댕이쳐져, 스스로 완전해졌다. 하니 나는 신으로부터 시작하였으나 그의 산물은 아니다.”

[궤변이로군.]

가차 없을 정도로 전생자의 속내를 짓뭉갠 황톳빛 신의 빛이 퍼지고 뭉치며 인간의 형상을 갖춰간다. 화려한 곤룡포와, 황금의 관을 쓴 중년 사내의 모습이다. 그를 바라보는 전생자의 눈이 반짝였다.

“헌제(軒帝)로구나!”

그 외침에 황톳빛 신, 헌제의 양미간이 깊게 팼다.

[건방진.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을 꿇어라.]

말은 곧 힘이다.

언령이 바로 그 증명이다.

그리고 헌제 또한 언령을 사용할 수 있었다.

하나 그 선언을 받은 전생자는 무릎 꿇지 않았다.

시선을 떨어트리지도 않았다.

비록 떨리는 무릎이나마, 숙여지는 고개나마 높게 들어 눈앞의 헌제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필멸자 주제에, 낮은 신격을 얻었다고 같은 존재라도 된 것으로 착각하고 있구나.]

혀를 찬 헌제의 목소리에 불쾌함이 더욱 강해졌다.

[다시 말하지. 무릎 꿇어라.]

“싫다.”

[…….]

헌제의 황톳빛 기운이 거칠게 날뛰기 시작했다.

당장에라도 장원 전체를 날려버릴 것만 같은 힘의 폭주다.

하나 그를 바라보는 전생자의 눈에는 일말의 두려움도 없었다.

영멸에 대한 공포, 헌제가 이대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아쉬움, 걱정, 무엇 하나 보이지 않는다.

대신하여 두 눈에 가득 담긴 감정은 단 하나뿐이다.

[탐욕?]

미간을 찌푸린 헌제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날뛰던 기운이 가라앉는다.

두 눈에는 다시금 흥미가 깃들었다.

[영멸의 순간까지 탐욕을 누리는 사이한 눈빛이라니, 큭큭…….]

웃음을 흘린 헌원의 등 뒤로 기운으로 만들어진 의자가 생성되었다.

그 자리에 자연스럽게 몸을 기댄 그는 이제야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는 바가 무엇이냐. 필멸자여.]

“내 목표와 그대의 소원은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다.”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다?]

말하는 것 하나, 하나가 그의 신경을 건든다.

그것은 매우 자극적이면서도 신선했다.

또한 재미있었다.

[말하는 꼴을 보아하니 대충 짐작은 했다만, 숙을 죽이려 하고 있구나.]

“…….”

전생자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숙뿐만이겠는가?

이 세계를 지울 거다.

그가 품은 악의는 숙이라는 한낱 신에 국한되어 있지 않았다.

황제, 공선헌원 역시 그 사실을 어느 정도 눈치챘다.

보는 만큼이나 사이하고 악하며 간사한 자다.

숙의 죽음 이상의 무언가를 보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하나 아무렴 어떤가?

그는 헌제다.

당장은 형체 하나 없이 별빛으로 헤매는 몸이라지만 그 격과 위엄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고작 생을 이어나가는 잡술을 익힌 전생자 따위는 이 정도 힘만으로도 짓눌러 죽일 수 있을 정도다.

그것이야말로 바로 한때, 세계를 나누고 다투었던 고위 신의 힘이다.

눈앞의 전생자는 그를 짐작이나 하고 있을까?

헌제는 그를 떠보기로 했다.

[내 힘의 조각을 빌려 숙을 치겠다는 생각은 나쁘지 않다. 하나 고작 ‘조각’ 따위를 빌려 숙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가?]

조각은 곧 영혼의 일부다.

때문에 강력한 힘을 품는다.

일부나마 그 격이 묻어난 영혼이니 당연한 일이다.

하나 달리 말하자면 그 이상을 해내지 못한단 것이다.

조각은 고작 조각일 뿐.

완전한 형체를 넘어설 수 없다.

설령 가장 강대한 군세와 힘을 가지고 있었다던 헌제의 조각이라 한들 다를 것은 없었다.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자신을 통으로 넘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할 마음도 없고, 불가능하다.

고위 신의 영혼을 통으로 전이하여 누군가에게 전해줄 수 있었다면 숙은 지금까지 세상의 멸망을 홀로 막고자 고생을 할 필요도 없었을 터였다.

애초에 신을 통째로 누군가에게 주입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불가능의 영역인 것이다.

“개인의 영혼의 조각을 가지고는 안 되겠지. 하지만 다른 삼황오제 모두의 조각을 얻을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다르지 않을까?”

전생자의 말에 헌제의 눈이 번쩍 뜨였다.

[삼황오제 전체의 조각이라 하였느냐?]

신경이 사방으로 곤두선다.

이 보물창고의 벽 너머에 또 다른 공간이 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내부를 확인한 헌제는 소리를 지를 뻔했다.

전생자는 말없이, 숨겨놓았던 이중의 벽을 열었다.

그 안에는 서로 뒤섞이지 못한 기운 몇 가지가 어우러져 춤을 추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헌제의 눈에 가장 깊게 들어온 것은 타오르는 붉은 화염의 힘이다.

그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성화(聖火).

성영대왕이라 불리는 홍해아의 불이 우습게 느껴질 정도의 강력한 화기를 머금고 있는 이 불의 원주인은 헌제도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신농의 조각!]

염제 혹은 지황(地皇)이라 불리는 신농!

삼황오제 중 가장 인간을 아꼈다고 알려진 그의 기운이 또 다른 몇 가지의 기운을 억누르며 집어삼키고 있다.

그 억눌린 기운 모두 헌원에게는 익숙한 종류였다.

[제곡(帝?), 제요(帝堯), 제순(帝舜)!]

오제 중 셋.

후대 역사서까지 그리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삼황오제의 이름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들 하나, 하나가 한때 헌제와 함께 대륙을 호령했던 제왕이다.

“내가 잡아먹은 영혼을 제물로 바쳐 소환한 힘과, 금오도에 숨겨져 있던 조각을 훔쳐서 모은 것이지.”

전생자의 입가로 서늘한 웃음이 번졌다.

“어떠한가? 이 힘과, 그대의 조각을 합쳐, 또 다른 나머지 복희, 여와에 이어 소호와 전욱의 영혼 조각마저 규합할 수 있다면…….”

고대 시대, 서로 힘을 합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였던 고위 신들의 힘을 하나로 합친다.

비록 그 일부를 모으는 것이지만 그 위력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할 수 있다. 이 힘이라면 숙을 죽일 수 있어.]

그리고 별이 되어 잠든 자신의 육체도 다시 만들어낼 수 있다.

오랜 과거, 아쉽게 물러나야 했던 대륙 제패의 깃발을 다시 세울 수 있는 것이다.

헌제는 영혼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하나 최대한 침착하고, 이성적으로 현재 상황을 바라보았다.

거듭 말해, 그 모든 힘이 모인다면 능히 숙을 죽일 수 있다.

아니, 사실 한둘 정도는 빠져도 충분히 자신감이 피어오를 정도였다.

[하지만 모자란 이들은 어떻게 불러올 것인가?]

어디서라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눈앞의 전생자 역시 신이 되어 우주의 존재를 깨닫고 있는 이다.

헌제, 본인을 찾았듯 다시금 찾아내면 될 뿐이다.

문제는 그들을 이끌 공물이 부족하다.

이미 헌제를 소환하기 위하여 전생자가 모은 공물들은 모두 사라졌지 않은가?

“이 장원 내부에 있는 영혼들이 느껴지는가?”

눈을 감은 헌제의 기운이 다시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그리고 제법 강력한 힘도 몇 느껴진다.

[그렇군.]

헌제의 입가로 웃음이 번졌다.

큰 별을 불러오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공양이다.

그리고 공양 중 제일은 인신(人身)이다.

이중 중히 알아야 할 것은, 인신공양이 어째서 가장 효과적이냐는 것이다.

이미 죽어버린 육체 따위 고위 신에게는 하등 무용지물.

다만 그들의 몸에 담겨 있는 영혼은 다르다.

그 영혼이야말로 신이 진정으로 얻고자 하는 공양.

그리고 이 장원에는 지금 엄청난 수의 영혼이 몸을 웅크리고 있다.

귀왕이라는 그늘 하에 자신을 지키기 위해 숨은 이들.

“모두 그대에게 주지.”

전생자의 시선이 헌제의 빛을 향했다.

황톳빛이 크게 일렁이고 있다.

이 많은 영혼을 토대로 한다면 그와 적지 않은 연이 있는 전욱과 소호를 단숨에 유계로 끌어낼 수 있다.

그 조각을 하나로 뭉친 힘을 통해 복희와 여와마저 불러내어 그들을 제압해 조각을 토하게 만든다면, 계획은 완성된다.

사실 이는 지상에서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래전 잠이 든 고위 신들이 지상에 강림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반발력이 생긴다.

이만한 영혼의 공물이 있다 하여도 헌제 하나를 불러내는 것이 힘들다.

하지만 이곳은 유계.

이미 죽은 자들의 땅.

[가능하다. 네 계획은 성사될 것이다. 단, 그 조각의 힘을 품을 수만 있다면…….]

헌제의 눈이 전생자를 향했다.

계획에 한 발자국 다가갔다.

하지만 아직 완성은 아니다.

그 모든 신의 조각을 한 인간의 몸에 품는 것이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분명히 소멸한다.

영혼 자체가 갈기갈기 찢겨 부서져 버릴 것이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바로 이럴 때 쓰일 이야기였다.

“굳이 육체로 감당할 필요는 없지 않겠나?”

때문에 전생자는 이 강력한 신의 조각들을 봉인해 두었던 것이다.

이 힘을 얻으면 일순간 더욱 강해질 수는 있지만, 그가 꿈꾸는 최강의 병기(兵器)는 만들 수 없다.

“나는 이 장원의 일부를 우주에서 떨어진 흑석(黑石)을 이용해 지었다.”

헌제의 눈에서도 점점 더 강한 광채가 발산되기 시작했다.

[그렇군. 우주의 흑석이라.]

오랜 세월.

전생자가 몇 번의 죽음을 거쳐 가며 모은 계획의 끝을 장식하기 위한 가장 귀한 재료들, 그를 헌제의 힘으로 빚어 다시 여덟으로 나누어 신의 조각을 담는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같은 재료인 흑석으로 빚은 도구에 그 여덟 조각을 담는 것이다.

먼 과거, 혼돈신 제강을 죽이고 소멸한 숙의 작품에 못지않은 병기가 만들어질 터였다.

“신살기(神殺器)를 만드는 것이다.”

전생자와 헌제의 입가로 비슷한 듯 다른 서늘한 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신의 영혼 조각으로 만든 신살기로 숙을 죽인다.]

말했듯, 신은 오로지 신만이 죽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신이 아닌 자가 들어도 신을 죽일 수 있게 만들어질 병기에 신살기라는 별명은 너무나 잘 어울렸다.

[드디어 내가 다시 꿈을 꿀 수 있게 되는가.]

헌제의 빛이 더욱더 찬란한 광채를 토했다.

먼 과거, 그는 대륙의 지배자가 되어 세상을 호령했다.

하지만 숙의 만류에 의하여 영생과 세계의 제패라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별로 거듭나야만 했다.

반강제적으로 이루어진 그 과정에 원한이 묻지 않았다면 거짓이다.

원한을 벗어난 목표는 여전히 그의 가슴에 살아 숨 쉰다.

이렇게까지 준비를 철저히 한 지원자가 있거늘 망설일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우선은 네 뜻에 따라 하얀 신, 숙을 죽여보지.]

서로 다른 두 악의가 각자의 목적에 따라 맞물리는 순간이었다.

황준우와 일행들이 유계에서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을 무렵, 지상의 인물들 역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 이유를 묻는다면 역시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지상에 나타나기 시작한 요괴들이 문제였다.

난생처음 보는 형태와, 힘을 가진 요괴들은 평범한 양민들은 물론 날고 긴다는 무림인들의 목숨까지 무수히 앗아갔다.

황제 대행의 자리에 오른 주고치는 그를 두고만 볼 수 없다고 생각하였는지 대대적으로 대륙 전체에 병력을 파견하여 요괴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무림제일세력 남천맹이라고 하여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니, 오히려 황궁보다 더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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