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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352화 (352/373)

학사재생 352화

제 352화

대체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분명 우마궁의 비밀창고를 통해 제강의 조각을 얻었는데, 실제 황준우가 있던 곳은 그와는 영 상관이 없는 유계의 외딴곳이었다.

하지만 우마궁으로 향하는 방향이 어디인지는 알 것 같다.

때문에 황준우는 망설임 없이 달릴 수 있었다.

“망령벽?”

달리는 황준우의 눈앞.

회색빛 망령이 뭉친 벽이 보였다.

처음 유계에 들어섰을 때 그를 괴롭히려 했던 존재이기도 하다.

한데 그 망령의 벽이 황준우를 보자마자 기겁하며 흩어진다.

느껴지는 감정은 공포다.

‘망령도 공포를 느끼나?’

의문을 느끼지만 해소할 방법은 없다.

오히려 그보다 생각보다 먼 우마궁까지의 거리에 답답함이 느껴졌다.

신격을 얻은 이후 거리의 제약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드넓은 유계에서는 별개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단숨에 도착하고 싶은데…….”

황준우가 읊조리며 고민하는 찰나, 심장 한편에 자리 잡은 허무가 박동했다.

눈앞에 한 일(一)자로 금이 그어지더니, 이내 벌어진다.

세계에 생겨난 기묘한 틈새.

마치 지상과 유계를 잇는 통로와 같은 공간이 크게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것이다.

‘저길 들어가라고?’

그 내부가 조금도 보이지 않는 틈새를 향한 황준우의 의문에, 심장이 답했다.

그래서일까? 두렵지는 않았다.

이미 황준우의 정신은 일천 년이란 시간을 허무와 함께 보냈다. 그 어떤 무저갱도 그보다 절망스러울 수는 없다. 그리 생각했기에 망설임 없이 세계의 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두 발자국 정도를 넘어섰을 때였다.

허무 속 세상을 닮은 회색빛 공간이 또다시 아가리를 벌렸다.

출구(出口)다.

황준우는 망설임 없이 그곳을 향해 몸을 던졌다.

그리고 눈앞에는 어느덧, 우마왕이 서 있었다.

놀란 그녀를 바라보고는, 하늘에 떠 있는 숙고 독고상완을 느낀다.

“제대로 돌아왔군.”

“정말 황준우?”

그 말에 우마왕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질문을 건넸다.

“내가 황준우가 아니면 누구겠어?”

“정말로…… 믿기지 않는군.”

우마왕의 의문에 의아함을 느낀 황준우는 시선을 하늘로 돌렸다.

회색빛 탁한 시선이 독고상완을 직시한다.

“전생자.”

직접 마주한 것은 처음이지만 알 수 있었다.

그가 바로 황준우의 대적자다.

“제강의 조각…… 그 정도였단 말인가.”

독고상완 역시 황준우를 알아보았다.

서로를 마주한 순간 느껴진 불쾌감, 양립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부정.

“죽이고 싶군.”

수많은 악의를 품고 있지만, 이토록 지독한 살의를 느껴본 적은 처음이다.

위이이잉-!

멸망환이 세차게 회전했다.

독고상완의 신형은 어느덧 황준우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굉음과 함께 황준우의 몸이 허공을 날아 지면에 떨어졌다.

자욱이 피어오르는 먼지구름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본 독고상완이 두 자루 검을 들고 보랏빛 강기를 쏟아냈다.

땅이 흔들리고 하늘이 우는 소리가 머리가 아플 정도로 울려왔다.

이윽고 하늘에서 떨어진 보랏빛 벼락이 먼지구름의 정중앙을 타격했다.

먼지구름이 유계의 하늘까지 치솟는 모습을 바라보던 독고상완의 검미가 무겁게 꿈틀거렸다.

“사라졌군.”

방금 전까지, 먼지구름 사이로 은은하게 보이던 황준우의 검은 신형이 없어졌다.

‘어디?’

위이잉-!

다채로운 빛을 내뿜는 멸망환이 독고상완의 뇌를 강렬하게 자극했다.

상단전의 저릿한 감각과 함께 세계의 틈새로까지 의식이 흐른다.

독고상완의 시선이 재빠르게 숙의 옆을 향했다.

공간의 틈새를 가르고, 우마왕을 품에 안은 황준우가 나타났다.

“황준우.”

숙이 그런 황준우를 보며,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표정을 한다.

신비한 점은 황준우 역시 그와 비슷한 심정을 느낀단 것이었다.

검은자위 없는 새하얀 눈, 내리는 눈 같은 새하얀 머리카락.

때문에 언뜻 보면 분간하기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황준우의 눈에는 분명히 보였다.

숙에게 겹쳐지는 누군가의 모습은, 그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모를 수가 없는 인물인 탓이다.

“어머니와는…… 어떤 관계이십니까?”

황준우를 낳고 길러준 만금장의 안주인.

어째서 상위 신이라는 숙에게서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보인단 말인가?

“나는…….”

질문을 하려는 황준우의 머리 위로 초염구가 떨어져 내렸다.

그를 가볍게 손짓하여 가르자, 틈새로 달려든 독고상완이 음양검을 휘둘러 냉기와 열기를 동시에 뿌린다.

“아직 여유가 있나 보구나!”

재빠르게 그 검격을 피한 황준우가 단숨에 거리를 벌렸다.

멸망환의 도움을 받고 있는 독고상완의 공세는 세계의 흐름을 비틀 정도의 큰 충격을 발산한다. 그것을 황준우가 막기까지 하면 어쩌면 정말 눈에 보이는 균열이 발생할 수도 있다.

숙이라면 모를까, 이미 붕괴하기 직전의 육체를 가진 우마왕은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멀어지는 황준우의 뇌리로 숙의 안타까운 음성이 울려 퍼진다.

동시에 눈앞으로는 공간을 몇 번이나 도약한 검격이 떨어진다.

‘거리는 충분해.’

이번에야말로 망설임 없이 검을 뽑은 황준우의 수왕검에 회색빛 강기가 솟아났다.

자신의 기운을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여, 모르고 있던 사실에 황준우조차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동작이 느려진 것은 아니었다.

음양검과 수왕검이 부딪치며 기운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세계에 균열이 일고 메워진다.

음양검을 이루고 있던 보랏빛 강기가 흩어진 것도 순식간이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직접 찾아뵙고 듣겠습니다.”

어떤 말을 할 줄 몰라 망설이는 숙을 향해, 그렇게 이야기를 전한 황준우는 눈앞의 독고상완에게 집중했다. 점점 더 커지는 멸망환의 회전 소리, 그 빠른 속도에 따라 독고상완의 힘이 커지고 있다.

이미 적당히 무시하기에는 부담되는 수준이다.

[미안하고, 고마워. 이 일이 끝나면 꼭…… 네게 모든 것을 말해줄게.]

숙의 음성이 또다시 들려온다.

황준우는 거기에 대해서 답변하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그럴 틈이 없었다.

독고상완이 휘두르는 음양검에서부터 흘러나온 열기와 냉기가 충돌하는가 싶더니 하늘에서 보랏빛 벼락이 내리쳤다. 그 공격의 첫 시작은 황준우의 기준에서는 보잘것없는 편이었지만, 멸망환에서 흘러나온 어떠한 힘에 의하여 순식간에 증폭되었다.

수왕검을 빠르게 휘둘러 그를 연속으로 쳐낸 황준우의 눈이 예리하게 빛난다.

어느덧 코앞에서는 증폭된 초염구가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이건 위험해.’

심장이 섬뜩해지는 감정에 거리를 벌리려 할 때였다.

다시금 심장이 크게 박동했다.

검을 휘두르라고 외친다.

물러설 필요가 없다고 황준우를 설득했다.

“허무.”

그 이름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긴다.

그렇게 휘두른 검은, 이미 격(隔)이 달랐다.

삼황오제, 그중 염제라 불리던 신농의 초염구가 허망하게 사라졌다.

마치 이 세상에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흩어져 버린 것이다.

독고상완의 검미가 무겁게 떨렸다.

“이게 무슨……?”

또다시 초염구가 펼쳐졌다. 이후 순식간에 압축하고, 증폭한다.

그 거대한 기운을 양검(陽劍)에 담았다.

견디지 못하겠다는 뜻 떨리는 간장에게 ‘인내’를 강요한다.

여기까지의 작업이 찰나에 이루어졌다.

검이 휘둘러지며 세상이 뭉개지는 느낌을 받았다.

굳이 황준우를 노릴 것도 없었다.

세상 전체가 폭발할 것이다.

이 일격이면 유계 자체가 지워질 터였다.

황준우는 그 일격을 또다시 허무로 맞섰다.

그뿐이었다.

별 대단한 소란도 없이 그런 엄청난 힘이 지워졌다.

“말도 안 되는……!”

독고상완이 발악하듯 외쳤다.

말로만 듣던 제강을 상징하는 힘.

허무, 혼돈, 멸망.

그중 허무만이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한데 삼황오제 대다수의 힘을 담은 일격이 사라진다고?

“조금 더…….”

입술을 깨문 독고상완이 멸망환에게 강요했다.

우주에서부터 내려온 흑요석으로 만들어진 멸망환에는 한계가 없다.

키이이이-!

회전하는 속도가 이제 대기를 찢기 시작했다.

이를 버텨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면 이용자인 독고상완에게 존재할 터였다.

실제로 독고상완의 뇌가 울리다 못해 온몸의 세포가 파괴될 듯 울렸다.

허무의 놀라운 힘에 감탄하던 황준우가 놀랄 정도의 힘이 사방으로 증폭되었다.

동시에 독고상완이 사라졌다.

그렇게 느낀 순간, 황준우의 등 뒤에 커다란 충격이 울려 퍼졌다.

“……!”

정말 찰나, 그리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순간에 허무의 강기로 등을 보호하였음에도 적지 않은 충격이 황준우의 전신에 번져나갔다.

모든 것을 흩어버리는 허무가 뚫렸다.

보다 직관적인 독고상완의 공격은 쉴 틈 없이 이어졌다.

‘너무 빨라.’

황준우는 그를 쫓을 수가 없다 생각했다.

황금의(黃金衣).

지금 황준우가 두르고 있는 허무의 힘이 아닌, 황준우의 본질이라 볼 수 있는 그 힘을 이끌어내면 쫓을 수 있을까?

황준우는 고개를 내저었다.

멸망환으로 가속하고 있는 독고상완의 움직임은 공간을 뛰어넘는 시간조차 찰나다.

아무리 황금의라고 하여도 그를 쫓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계속 허무로?’

현재 황준우가 가진 신격 중 가장 급이 높다.

실제로 단 하나의 힘으로 방금 전까지 독고상완을 압도하고, 놀라게 하였다.

가히 대신(大神)의 힘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

멸망환을 휘두르고 있는 독고상완은 몇 개의 신격을 응집하여 자신의 소우주를 증폭시키고 있었다. 그 위력은 단순히 하나에, 하나를 더한 느낌이 아니었다. 하나에, 하나가 겹쳐졌을 때는 큰 문제가 아닌 듯했다. 문제는 그 뒤에 또 다른 신격이 뒤덮일 때였다.

순식간에 배수로 뛴다.

그 뒤를 이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신격이 지금 독고상완의 몸에서 최소 일곱 이상 움직이고 있었다.

때문에 말도 안 되게 빠르고, 허무를 꿰뚫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한 것이다.

‘나도…….’

신격을 겹칠 수 있을까?

독고상완에게는 멸망환이 있다.

처음 보았지만, 바로 알 수 있었다.

두 개의 팔찌로 이루어진 멸망환은 무한의 가능성을 품은 무시무시한 병기다. 대체 어떤 방식으로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사용자가 원한다면 그야말로 최강(最强)이라는 이름에 어울릴 법한 힘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죽어라, 죽어!”

음성이 귓가를 때린다.

들리는 것은 하나이지만, 퍼지는 것은 수천, 수만이다.

황준우의 허무를 꿰뚫기 위해 쏟아진 공격 역시 순식간에 십만을 넘어섰다.

‘이대로는 안 돼.’

방어에 몰입하고 있기에 버티고 있지만 상황이 좋지 않은 것만은 분명했다.

‘겹친다라는 개념은 내게 불가능해.’

황준우는 침착하게 생각을 정리했다.

애초에 멸망환과 같은, 힘을 겹쳐도 버텨줄 수 있는 특수한 도구가 없는 한 신이라 한들 그 위엄 어린 격을 견뎌내지 못한다. 가능했다면 숙은 이미 홀로 제강을 막을 수 있는 대신이 되었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방법이 없을까?

그건 아니다.

오히려 가능성은 크게 열려 있다.

특히, 황준우의 내부에는 아직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깨우지 않은 힘이 몇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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