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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358화 (358/373)

학사재생 358화

제 358화

헛웃음을 지은 황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됐든 결국 두 사람에 관한 일은 또 한 번 밀려난 셈이다.

“꽤나 바쁜 일상이 되겠네.”

하지만 급하게 움직이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일상이란 것의 가장 훌륭한 묘미는 여유에 있다.

물론 그 여유를 즐기는 것조차 쉽지 않은 게 또 일상이 되기도 하지만, 현재 황준우 본인의 입장은 또 어찌 따지느냐에 따라 그리 촉박하지 않았다.

막말로 한걸음에 천 리를 넘게 갈 수 있는 몸이 되었지 않은가?

“최선을 다해 즐겨보자고.”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의문을 내뱉는 경호에게, 어깨동무를 한 황준우가 웃으며 말했다.

“하루, 하루, 늘 행복하게 살잔 말이야.”

“좋은 이야기네요.”

경호 역시 웃음을 보였다.

아침 식사는 가족이 함께했다.

오랜만에 네 가족의 식탁 위로 솜씨 좋은 만금장 숙수의 요리가 순차적으로 가득 올라온다. 입가심을 위한 냉채부터 시작하여 속을 달래주는 게살 죽, 뒤를 이어서 새우를 가득 채운 튀김 요리와 마파두부로 마무리한 요리를 한 점도 남기지 않고 먹은 황준우가 배를 두드렸다.

“아, 정말 맛있다.”

“역시 집밥이 최고야.”

황서연 역시 기분 좋은 표정으로 몸을 늘어트린다.

“후후, 녀석들.”

황석후가 그런 자식들을 바라보며 웃음 짓는다.

언제 이렇게 컸는지 모를 정도로 장성한 자식들이지만,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작고 귀엽던 소년, 소녀 시절의 모습이 떠오르곤 했다.

이어서 서시가 직접 탄 차가 가족들 앞에 놓였다.

“음…… 역시 어머니가 직접 탄 차는 최고예요.”

잠시 코 밑에 찻잔을 가져다 대고, 차 향을 깊게 들이킨 황준우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숙의 방에서 마신 차도 비슷한 느낌이었지.’

참으로 기묘한 기분이다.

“늘 연습하고 있단다. 우리 예쁜 아들딸한테 좋은 엄마가 되었으면 해서 말이지.”

그렇게 이야기하는 서시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본 황석후가 말을 이었다.

“요리 연습도 꾸준히 하는 중이지. 아까 나온 게살 죽은 사실 네 어머니가 한 것이란다.”

“정말요?”

놀란 황준우의 질문에 황서연조차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서시를 바라본다.

맛 자체가 숙수가 직접 했다고 하여도 믿을 수준이었던 탓이다.

“이이도 참.”

“기왕이면 본인 손으로 직접 한 음식을 너희들에게 먹이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인 것이지.”

“낯부끄러워요. 여태껏 몇 번 제대로 해준 적도 없는데.”

“그래서 요즘 더 힘내고 계신 것 아니오?”

황석후의 부드러운 음성에 서시가 얼굴을 가리고는 팔을 휘휘 젓는다.

“근데 내 아내여서 하는 말이 아니라, 어쩜 시간이 지나도 이리 아름다운 게요?”

“정말, 그만해요.”

“그렇지 않으냐? 얘들아.”

서시가 만류했지만 황석후는 조금도 멈출 생각이 없는 듯했다.

“솔직히 우리 어머니라서가 아니라, 정말 아름다우시죠.”

“내가 예쁜 것도 엄마 덕이 아닐까? 아빠 탓이라고 보기에는…….”

황준우, 황서연마저 거들고 나서자 서시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정말 민망하게…… 우리 나이가 몇인데.”

“나이가 무엇이 중요하오. 언제나 사랑하는, 어여쁜 마음이 중요하지. 허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부끄러워하는 서시의 허리에 팔을 두른 황석후가 웃음을 지으며 두 자식을 바라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아버지는 평생의 배필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겠구나.”

“여보!”

서시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지만 황석후, 황준우, 황서연 중 누구도 당황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그 풍경을 즐겁다는 듯이 바라보며 여유롭게 움직일 뿐이다.

“그러셔야죠. 응원합니다.”

“밥도 다 먹었으니 우리도 할 일 해야죠.”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하자 오히려 당황한 것은 황석후 측이었다.

“욘석들아, 뭔가 느끼는 건 없고?”

애초부터 목적성이 있던 행동이었던 것이다.

하긴 황석후의 나이도 이제 젊지만은 않다.

‘손주를 보고 싶으실 만도 하지.’

그리고 순서라는 것을 먼저 따진다면 황준우 측에서 소식이 나와야 옳았다.

다행히도, 지금의 황준우는 이 부분에서는 꽤나 자신만만하게 말할 수 있었다.

“기다려봐요. 조만간 좋은 소식 들려드릴 테니.”

“어머.”

서시가 놀란 음성을 흘린다.

황석후도 눈을 가늘게 뜨고는 황준우를 바라보았다.

“우리 아들…… 결국……?”

“예. 황제 폐하랑 백년해로를 맺으려고요.”

황궁으로 돌아간 주연하는 정식으로 황제의 위를 계승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던 황석후가 큰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 이것 참, 내 평생 황제 폐하를 며느리로 맞이할 줄이야.”

“어머, 어머. 진짜예요? 그때 말했던 게 사실이었던 거야?”

서시도 깜짝 놀랐는지 부끄러웠던 과거는 잊고 호들갑을 떤다.

“황제 폐하라니…… 정말…….”

황서연은 여전히 마음에 안 드는 표정이었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안 듯 다소 수긍한 모습이었다.

“자자, 이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나누시고…….”

황준우는 끝나가던 자리가 다소 열기를 띠는 것에 당황하며 재빨리 손을 내저었다.

마음은 결정했다지만 아직 모든 것을 이야기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느낀 탓이었다.

적어도 주연하까지 함께한 자리에서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럼 너도 궁으로 들어가야 하는 거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진 서시의 질문에 황준우의 표정에도 잠시 고민이 어렸지만, 그뿐이었다.

“대화해봐야죠.”

“직접 만나 뵙는 수밖에 없겠구나.”

그 말이 옳다.

그리 생각한 황석후와 서시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이른 아침 시간은 그렇게 다소 큰 사건을 만들어 내며 끝이 났다.

아침 이후로는 공부를 하고, 수련을 하는 시간이다.

숙은 황준우에게 굳이 수련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오히려 편안한 휴식을 취하기를 바랐다.

하나 황준우에게 있어 공부와 무공수련이 곧 일상이었다. 때문에 그를 빠뜨릴 생각은 없었다.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경호, 홍산, 황서연 등도 다를 바가 없었다.

점심을 먹은 이후의 일상도 마찬가지였다.

별다른 사건은 없었다.

편안하고, 조용하게 흘러간다.

그 모든 시간이 즐겁고 행복하다.

중간, 중간 바깥소식이 전해졌다.

괴상한 요괴들이 다시 출몰하고, 세계 곳곳에 처음 보는 자연재해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누군가는 그를 멸망의 징조라고 했다.

황준우는 누군지 모를 그 인물의 생각에 동의했다.

‘멸망이 오고 있구나.’

몸이 간질거렸다.

바깥에 나가서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

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요괴가 나타나면 남천맹과 요선사협이 움직여 사람들을 구했다. 자연재해에 괴로워하는 이들은 황궁 그리고 만금장이 나서서 물적, 인적 지원을 했다. 인간이 견디지 못할 정도의 엄청난 재해가 몰려올 듯한 불안감이 감돌 때는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사라지곤 한다고 했다.

굳이 황준우가 아니더라도, 세계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많았다.

그렇게 한 달가량이 더 흘러갈 무렵.

황준우는 다른 의미로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세계를 직접 보고 싶어.”

집에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한 시간이 짧다면 짧은 마당에 방랑벽이 도졌는지도 모른다.

주역을 공부하는 이들이 말하는 역마살(驛馬煞)이 도졌을지도 모른다.

아무렴 상관없다.

황준우는 이제 이 세계의 곳곳을 보고 싶었다.

만들고 크게 신경 쓰지 못한 남천맹을 시작으로 하여, 동정호, 장강 등도 보는 거다. 그리고 북경으로 향하여 주연하를 만날 것이다. 해야 할 이야기를 하고, 마지막 준비를 한 이후 돌아와야겠다.

결심을 하고는, 처음에는 혼자 떠나려 했다.

하지만 경호와 홍산이 그 뒤를 따랐다.

“계속 놓고 가시는데, 이제 우리도 어디 가서 제 몫 할 정도는 됩니다.”

“주군께 고용된 몸 아닙니까.”

자신만만한 두 사람의 말에 황준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상 완시의 방 수련 이후 조율경에 들어선 두 사람이다.

세계 전체를 따진다면 모를까, 중원 무림 내에서는 손에 뽑히는 강자가 된 셈.

여러 기연이 겹친 덕이지만 분명 두 사람의 노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면 조금 힘들겠지만, 잘 쫓아와 봐.”

짧은 시간 내에 다 하기에는 벅찬 일정이었지만, 두 사람이라면 충분히 쫓아올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황석후, 서시, 황서연이 남은 만금장에 인사를 하고 바깥으로 떠났다.

아쉬운 점을 뽑자면, 여선위를 한 번도 보지 못하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대표두가 요즘 가장 바쁘다니까.’

여선위는 현재 만금장이 펼치고 있는 재해 지원의 선두에 서 있었다. 현장에서 직접 움직이고 있는 만큼 가장 바쁜 몸이 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지금 대표두가 산동 일대에 있다고 했던가?’

해안가에서 올라오는 물요괴들이 많아 가장 바쁜 지역 중 하나라고 했다.

“남천맹에 들렀다가 한번 가 보지 뭐.”

이후로는 북경을 향하여 주연하를 만나고, 다른 곳곳을 둘러볼 예정이었다.

목표는 예정된 백오십 일이 다 가기 전에 최대한 천하의 많은 곳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다.

황준우 혼자라면 정말 천하 곳곳을 모두 보았을지도 모르지만, 경호, 홍산이 함께하는 이상 그 정도까지는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두 사람이 함께하는 덕에 여정의 재미는 더욱 커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황준우가 정한 일정은 이러했다.

소주를 떠나 태호를 보고, 이후 남경으로 향하여 물길을 따라 안휘로 들어선다. 이후 황산을 보고는 일차 목적지인 합비로 향한다. 합비에서는 하루 머무르며 소호를 보기로 했다.

결정을 내린 이후 일행들은 밤낮없이 주변을 둘러보며 달렸다.

그러다 보니 황산에 도착할 때쯤, 경호와 홍산의 꼴이 마치 산적처럼 변했다.

신격을 얻었기에 먹고, 마시지 않아도 몸을 관리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황준우와 다르게 두 사람은 아직 인간이 가진 모든 불편함을 버리기에는 경지가 낮은 탓이었다.

“이것 참, 이러고 보니 내가 인간이라고 우기는 것도 이상해지네. 두 사람 다 꼴이 말이 아니잖아.”

물론 개인적으로 움직였다면 충분히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이런 모습까지는 되지 않았을 터였다.

어디까지나 문제는 황준우를 쫓았기에 벌어진 일이다.

무언가를 관리할 시간도 없이, 황준우는 바람처럼 움직였으니 말이다.

결국 두 사람은 초췌한 몰골에, 덥수룩한 수염을 한 서로를 바라보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산적이 따로 없네, 산적이 따로 없어. 거지 산적. 이러다가 우리 이상한 오해 받겠다. 황산 아래에 있는 마을에서 하루 쉬고 출발하자.”

황준우의 결정에 두 사람이 화색을 띠었다.

스스로 쫓겠다고 말했기에 불평은 내뱉지 못했지만 지친 것은 사실인 탓이었다.

그리고 황산 아래에는 꽤나 발달한 큰 마을이 있었다.

본래 남궁세가의 본거지였던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든 덕이었다.

“여전하네.”

멀지 않은 곳에 보이는 큰 마을을 확인한 황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남궁세가가 사라지며 마을에도 변화가 생겼지 않을까 싶었는데 여전히 마을은 크게 번성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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