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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360화 (360/373)

학사재생 360화

제 360화

바로 뒤를 두 수하가 쫓고 있지만 사실상 조율경 고수들의 싸움이 될 터이니, 그리 믿음직하지는 않다.

반면 경호의 옆에는 결코 모자라지 않은 실력을 가진 것 같은 홍산이 보였다.

“음…….”

쓴 신음을 흘리는 곽영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둘 모두를 상대해서는 승산이 없다.’

천하에 숨겨진 새로운 고수를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이제는 스스로의 목숨을 챙겨야 할 상황일지도 모른다.

그 사실이 곽영의 심장을 섬뜩하게 했다.

‘그럴 순 없지. 삼십 년 수련 끝에 간신히 하산하여 드디어 부와 명예를 쥘 수 있게 되었는데.’

전날에 당당하게 수하를 데려와도 좋다고 외쳤던 기억은 잊었다.

애초부터 멋진 강호인을 연출하기 위해 내뱉은 말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내가 오해를 조금 했을 수도 있지! 하지만 승부를 피하는 것은 결코 좋게 보이지 않는구려!”

조심스럽게 변한 말투, 심지어 목소리는 잘게 떨렸다.

세 사람은 곽영의 낯이 살짝 붉어지는 모습을 보고는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저 자식 제법 귀여운데.”

“도련님, 취향이 위험한 것 아닙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피식 웃은 황준우가 앞으로 나섰다.

“곽영이라고 했나?”

“한낱 시……!”

전날과 같이 일갈을 가하려던 곽영의 몸이 굳어졌다.

뒤에 선 경호와 홍산의 눈매와 기세가 또 한 번 변했다. 더 이상 말을 이었다가는 당장 동시에 달려들 기세였다.

침을 삼킨 곽영은 준비해두었던 말을 바꾸어 내뱉었다.

“시, 시종 놈들은 왜 이렇게 늦는 거야!”

때마침 그를 따르는 수하 둘이 정상에 도달했다.

곽영을 쫓기 위해 꽤나 애를 썼는지 표정에는 지친 기색이 가득한 채였다.

“이놈들아! 그걸 못 쫓아와서 이렇게 지치다니! 내 부하 아니, 시종이란 이름이 아깝다!”

“시종?”

“채주, 우리는…….”

“어허!”

두 사람이 무슨 말을 더 하기도 전 호통을 친 곽영이 다시 황준우를 바라보았다.

“그렇소, 이 몸이 바로 녹림왕 곽영이올시다!”

말투는 어느덧 제법 공손하게 변한 채였다.

다만 그런 와중에도 황준우와 시선을 마주치지는 않았다. 그의 입장에서는 말투를 바꾼 것만으로도 자존심이 상당히 상한 상태였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전 녹림왕은 죽었나 보지?”

“죽이진 않았소. 다만 손목을 자르고 단전을 폐하였을 뿐.”

죽이지 않았다고 하였지만, 죽인 것과 진배없는 행위다. 한때 녹림왕쯤 되었던 무인에게 있어서는 차라리 죽는 것이 편안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힘을 가졌던 자가, 힘을 잃게 되었을 때, 그것도 사도 무림에서의 결과는 결코 좋지 않았으니 말이다.

“큭큭.”

잔인하게 웃은 곽영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 썩은 동태눈깔로 고수를 알아보지 못한 탓이니 불만은 없겠지. 강호란 그런 곳 아니오?”

“흠, 맞는 말 하네.”

황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이 아니다. 강호란 곳은 언제나 비정(非情)하다. 또한 전대 녹림왕 역시 이름을 날린 악인이었으니 그리된다 한들 할 말은 없다.

“처맞는 말.”

다만 황준우의 기준에서는 곽영 역시 별다를 바 없는 인물이란 것이 문제였다.

“……?”

생각지 못한 황준우의 말에 당황한 곽영이 몸을 떨었다.

두 눈에는 감출 수 없는 분노가 치솟고 있었다.

황준우의 뒤에 선 경호와 홍산을 경계하느라 움직이지 못했을 뿐, 아니었다면 진즉 도를 뽑아 들었을 터였다.

“어떻게 하지. 되도록 이번 여정에서는 피를 안 보려고 했는데.”

황준우가 작게 고민하는 음성을 흘린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맡겨주시지요.”

경호와 홍산이 동시에 나섰다.

“아아, 됐어. 둘이 하려면 오래 걸리잖아. 시간 아깝다고.”

곽영의 심성은 그리 좋지 않지만, 실력은 진짜다. 갑작스레 저런 고수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정도였다. 만약 지금 시대가 아니었다면, 천하를 피로 물들이는 마인(魔王)이 되었을지도 모를 인물.

경호와 홍산이 싸워서 승패를 가르려면 칠 일 밤낮이 모자랄지도 몰랐다. 물론 둘이 합공한다면 조금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역시 황준우가 직접 나서는 것보다는 오래 걸릴 터였다.

“이제 그만 그대는 비키게. 나는 무신과 승부를 겨루고 천하제일을 가리기 위해 이곳으로 찾아왔소.”

“천하제일을 가린 이후에는?”

“남천맹을 복속시키고 나 곽영의 세상을 만들어야겠지. 온갖 산해진미와 보물을 쌓아두고 미녀를 가득 품을 것이오. 마음에 들지 않는 자가 있다면 죽이거나 불구로 만들고 평생을 웃으면서 사는 거지. 오롯이 천하제일만이 누릴 수 있는 진정한 강호의 자유 아니오? 천하제일쯤 되었으면서 검소하게 누구 눈치나 보고 살고, 그럴 것이면 아래에 달린 물건을 떼 버리라지. 끄허허!”

곽영의 내공에서 느껴지는 사기(邪氣)로 짐작을 했지만 역시 대마두, 혹은 마왕이라 불리게 됐을 인물이다.

“결정했어.”

황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넌 맞아야겠다.”

“뭐……?”

곽영이 미간을 깊게 찌푸릴 때였다.

황준우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

반응할 틈도 없었다. 등 아래, 척추에서부터 올라오는 짜릿한 고통의 감각에 곽영은 몸을 파르르 떨었다. 머리는 새하얗게 변했다.

두 눈이 뒤집힐 정도의 고통이었다.

“끄아아악-!”

결국 비명이 터져 나왔다.

생전 겪어본 적도 없는 고통에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괴로워하는 그를 내려다보는 황준우의 손이 두 번 더 움직였다.

타격음과 함께 놀라는 곽영의 수하 둘도 쓰러졌다.

비명은 없었다.

그들은 무엇이 일어났는지도 알기 전에 의식을 놓아버렸으니 말이다.

“네, 네놈…… 어떻게!”

그사이 곽영은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의문을 흘렸다.

눈앞의, 평범해 보이는 황준우의 움직임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탓이었다.

그도 그럴 게 그의 상식에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탓이었다.

자연의 기가 움직이지 않았다.

딱히 어떤 조율의 흔적도 없었는데 움직임을 쫓을 수조차 없었단 말이다.

조율경의 고수인 곽영으로서 그 움직임이 얼마나 대단한지 감히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어떻게는, 잘 움직인 거지. 나랑 겨뤄서 천하제일을 논하고 싶다며?”

“무, 무슨……?”

“네가 시비를 걸던 저 친구가 그 유명한 거기검이야. 옆에는 홍산, 귀창이라는 별호로 좀 알려졌다지?”

“……!!”

곽영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이제야 대충 분위기가 파악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상황이었다.

소문으로 무신은 꽤나 오만한 성격에 나서기를 좋아한다고 하였다. 한데 무신으로 짐작되었던 경호는 말없이 황준우의 뒤에만 서 있을 뿐이었다.

‘이자가 무신!’

사실을 깨닫는 순간 또 한 번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

뒤늦게야 그가 어떤 괴물에게 시비를 걸기 위해 찾아왔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처, 천하제일의 벽은 이토록이나 높구나!”

나름대로 깨달음을 읊어 보았지만 이미 때는 뒤늦은 후였다.

“여정 끝까지 피는 안 볼 예정이니까 말이지. 조금 괴로운 교육을 받자꾸나.”

황준우의 손가락 세 줄기에서 하얀빛으로 둘러싸인 밧줄이 튀어나왔다.

밧줄은 쓰러진 둘과, 곽영의 목을 휘감았고, 황준우는 밧줄을 빠르게 잡아당겼다.

“꾸엑-!”

돼지 멱따는 것 같은 비명을 내지른 곽영이 몸을 파르르 떨었다.

“썩은 눈깔로 고수를 알아보지 못한 죗값. 치를 준비되었지?”

불과 조금 전에 본인이 내뱉었던 말이다.

“어으어…….”

때문에 곽영은 다른 말을 하지 못한 채 눈알만을 또르르 굴렸다. 빠져나갈 궁리를 해보았지만 목에 엉킨 빛의 밧줄은 내공을 쏟아부어도 끊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더욱 탄탄하게 조여오고만 있었다.

“쓸데없는 발악하지 마. 그럴수록 더욱 괴로워지니까.”

피식 웃은 황준우가 곽영의 목을 맨 검지를 들어 올리자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단숨에 숨통이 틀어막힌 탓이다.

“켁, 켁켁!”

“조율경의 고수도 숨을 완전히 못 쉬게 만들면 괴롭지. 죽을 수도 있고 말이야. 강자의 자유란 것, 한계가 어디까지일지 잘 생각해보는 게 좋을 거야.”

피식 웃은 황준우가 그리 말하며 황산 아래를 바라보았다.

정상이었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높이다.

“가자, 경호, 홍산.”

황준우가 단숨에 그 아래로 뛰어내렸다.

슈우욱-!

“꺼어억-!”

그 엄청난 속도를 따르는 밧줄의 압력에 곽영의 비명이 뒤를 따랐다.

“흠…….”

머쓱한 표정이 된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고는 황준우의 뒤를 쫓았다.

곽영을 이끈 일행들의 여정은 합비까지 빠르게 이어졌다. 황준우는 인정사정없이, 경호와 홍산마저 지칠 정도의 속도로 계속해서 내달렸다.

덕분에 여정은 제법 소란스러워졌다.

“크에엑-!”

“꾸에엑-!”

“아아악-!”

곽영과, 중간에 다시 정신을 차린 수하 둘을 비롯한 삼중창이 이어졌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견디지 못한 수하 둘은 다시 의식을 잃고는 했다.

이 시점이 되니 오히려 곽영은 자신의 경지가 원망스러웠다.

‘나도, 나도 기절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목을 조여오는 고통에, 쉴 새 없이 지나가는 풍광, 그리고 중간중간 고의적인지, 실수인지 모르게 닥쳐오는 나무 혹은 작은 돌과의 충돌은 그의 몸을 더욱 괴롭게 했다. 문제는 곽영의 몸이 너무 튼튼하다는 것이었다.

어찌 됐든 조율경의 고수인 그는 굉장히 괴로운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의식을 잃지 않았다. 지쳐서 쓰러질 법하면 자연의 기가 그의 회복을 도와 어떻게든 육체를 유지시켰다.

‘죽고 싶어.’

차라리 그편이 편하겠다고 생각할 때쯤, 황준우 일행은 합비에 도착했다.

합비는 남천맹이 들어선 이후로 무림인들이 모여들며 더욱 번창했는지 훨씬 더 활기를 띠고 있었다.

딱히 소란스러운 점이나 어두운 부분을 찾기도 힘들었다.

도시의 상업 규모로만 보자면 지상의 천국이라는 소주와 항주 이상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 부흥을 통한 수익의 분배겠지만, 합비 일대에 영향을 미치는 영왕은 그 부분에서 굉장히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지혜로운 왕이니 도시의 어둠을 최대한 잠재우고 중산층을 키울 수 있으리라 믿었다.

‘아마 전왕도 나름대로 도울 테고.’

그것이 곧 도시와, 성을 키우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어딘가 한군데로 몰아 주기만 해서는 분명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실제로 남천맹은 도시의 부를 모두 끌어안을 수 있음에도 꽤나 분배를 잘 해내고 있는 듯했다.

그러니까 이토록 도시의 분위기가 밝은 것일 테고 말이다.

황준우는 기분 좋은 마음으로 남천맹에 입성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정문을 이용하지는 않았다.

빠르게,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몰래 들어왔다.

경호와 홍산도 이제는 그 뒤를 따를 경지가 된다. 세 악인이 내지르는 비명이야 내공으로 차단해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곧장 전왕의 집무실을 찾아갔다.

“여어-!”

“어억-!”

언제나와 같은 갑작스러운 등장에 업무에 집중하고 있던 전왕이 비명을 내질렀다.

엄청나게 놀랐는지 심장을 부여잡고는 거친 숨을 몰아 내쉬기까지 한다.

“헉, 헉, 맹, 맹주님…….”

“아, 많이 놀랐어?”

“시, 심장 떨어져서 유계로 갈 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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