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재생 368화
제 368화
무한의 우주에 무한으로 부딪쳐 나아간다.
형태는 이전과 같다.
단 하나의 창과 같은 검극(劍極).
가장 날카로운 송곳의 모습으로 찔러 넣는다.
영원한 대립과 같은 무한과, 무한의 싸움을 밀어붙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심검, 무한.”
황금빛이 뇌전과 함께 폭사하며 앞으로 쏘아졌다.
찌이익-!
그 예리한 움직임에 우주가 찢어발겨지는 소리가 났다.
시간의 흐름은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저 처음과 같이 자신의 한계를 끝없이 초월할 뿐이다.
손끝이 찢어지고, 고통이 전달되기 시작하더니 전신의 살갗이 벌어지고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열기가 전신을 내달린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태워버리기 위해 활활 타오른다. 살 타는 냄새가 아주 역겹게 코안으로 파고들었다.
당연한 일이다.
무한이라는 심검이 가진 검극은 황준우 본인이다.
처음, 육체가 붕괴했을 때도 이와 같은 상황을 거쳤다. 다만 그때에는 중간부터 고통이 사라졌다. 육신이 이미 한계를 넘어서 견디지 못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등을 떠미는 새하얀 힘이, 부서지려는 육체를 끊임없이 떠받친다. 한계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으아아-!”
비명인지, 고함일지 모를 음성이 황준우의 입에서 터져 나와 거대한 제강의 우주를 쩌렁쩌렁 울렸다.
“황준우!”
응원하는 숙의 목소리가 바로 뒤편에서 들려온다.
답하고 싶었다.
걱정하지 말라고.
고통은 누구보다 익숙하다.
아픔 없이 얻은 대가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윽고는, 머리가 타들어 가다 못해 뇌가 울려오고 녹아내리는 감각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짧은 순간, 심(心)이 흩어지려고 한다.
황준우는 그 정신을 붙잡기 위해 뇌리를 비웠다.
모든 집중은 오로지 모든 것을 꿰뚫는 한 줄기 황금의 빛의 끝을 향했다.
“으아아아-!”
괴성이 다시 한번 터져 나온다.
대체 얼마나 나아갔을까?
얼마나 부서지고 돌아왔을까?
애초부터 세지 않았지만, 셌다고 하여도 더 이상 기억하지도 못할 터였다.
무한과 무한의 싸움은, 결국 끝이 없이 이어지고 있다.
때문에 무한이다.
알고 있었다. 충분히 짐작했기 때문에 심검의 형태를 송곳처럼 가다듬은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무한이라는 규격을 깰 수 없는가?
그 사실이 황준우의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이런 상태로는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
아무리 한계를 초월하고, 또 뛰어넘어도 숙이 무너지는 순간 황준우도 끝이었다.
그렇다면 답이 없는가?
‘아니!’
황준우는 이를 악물었다.
발작하듯 박동하는 심장이 두근대는 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마치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다.
이미 무한의 한계를 몇 번이고 뛰어넘은 심장이다.
지금 황준우의 심장이, 육신이, 이미 몇 번이고 무한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지 않았던가?
이것을 무엇이라 부를까?
물론 홀로는 불가능했을 일이다.
숙의 도움이 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결과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인간이든 신이든, 완전할 수는 없다.
혼자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부족함에, 또 다른 부족함을 붓고, 또 다른 부족함이 더해진다면, 결국 완전으로 다가간다.
한낱 인간이 드넓은 천하, 세계의 중심에 설 수 있던 이유다.
그리고 지금의 황준우는 감히 말해, 완전했다.
무신이라는 그의 별칭이 아깝지 않았다.
폭발하는 것 같은 심장의 박동에 따라, 그 완전의 심, 기, 체를 쏟아붓는다.
“흐아아아아-!”
우주를 때리는 것만 같은 음성이 사방에 울려 퍼질 때였다.
무한이 깨어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검은 우주의 끝, 황준우의 눈에 분명히 보였다.
끝없이 확장해나가며, 멈추지 않는 수많은 빛이 하나로 모인 혼돈의 존재.
그 중심에는 놀랍게도 검은 구멍이 있다.
세상의 모든 빛을 빨아들이고 있는 끔찍한 검은 구멍.
저것이 제강의 본질이다.
조각 따위가 아니다.
누군가가 흉내 낸 가짜도 아니다.
드디어 황준우는 그것을 볼 수 있는 시점까지 다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강은 여전히 황준우와 숙을 향해 시선 한 번 두지 않는다.
이미 볼일이 끝난 존재를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무한히 확장하며, 무언가를 계속해서 집어삼키듯 빨아들이고 있다.
황준우는 그 힘에 자신의 몸을 맡겼다.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듯 만색(萬色)의 중앙에 위치한 검은 구멍으로 백색을 뒤덮은 황금빛 섬광이 들어갔다.
침묵이 흐르는 듯만 한 순간이었다.
검은 구멍의 어딘가가 깨어지는 소리와 함께 황금빛 줄기가 검은 우주를 완전히 가로질렀다.
밤을 수놓는 황금 은하수와 같은 빛이었다.
[……?]
그제야 제강의 의지가 황준우와 숙의 존재를 다시금 인지했다.
[……!!]
그리고 의지는 곧 경악했다.
무언가가 자신의 안을 헤집다 못해 부숴버렸다.
우주에 거대한 구멍이 하나 더 생겼다.
여덟 번째.
그저 마음 놓고 받아들였던 일곱 개의 구멍과는 다르다.
아니, 오히려 그래서 더 문제였다.
제강은 일곱 구멍을 통해 ‘고통’이란 것을 배웠다.
처음 겪었을 때에는 그저 놀라웠다.
신비했다.
그리고 황준우와 숙에 의하여 여덟 번째를 알게 된 순간에는 다른 감정이 몰려왔다.
고통은 괴롭다.
그리고 무섭다.
무서웠다.
거부하였음에도 자신에게 이런 고통을 안겨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믿을 수가 없이 두려웠다.
끼이이이이이익-!
우주가 비명을 내질렀다.
발버둥 치듯 날뛰며 허공으로 비산했다.
그 속에 갇힌 황준우와 숙이 어지럼증을 느낄 정도의 진동이 우주 전체를 흔들었다.
제강의 우주가 무너지고 있다.
위기를 느낀 황준우는 곧장 방향을 틀었다.
우주를 뛰어넘어, 공간을 가른다.
“더 빨리!”
숙이 재촉했다.
여태까지와 다르게, 놀란 제강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황준우와 숙이 지키고자 한 세계로부터 달아나기 위하여 필사적인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더 시간이 흐른다면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황준우는 다시 한번 황금빛 섬광이 되어야 했다.
“한 번 더…….”
거대한 섬광이 다시 한번 제강의 육체를 꿰뚫고 반대편으로 솟아 나갔다.
[……!!]
우주, 그 자체, 혼돈이 비명을 내지르며 온갖 빛을 쏟아내듯 폭발하기 시작했다.
잠시 세상이 암전된 듯하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너무나 많은 빛이 폭사하며 눈이 멀었던 듯했다.
‘죽은 건 아니고…….’
다소 부드럽게 느껴지는 모래사장 위.
쏴아아-!
몰려드는 것 같은 물결 소리와 짠내에 황준우는 자신이 살아있음을 실감했다.
또한 이곳이 어느 바닷가의 모래사장임도 알 수 있었다.
“음…….”
몸 상태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성하다고 말할 수준은 아니지만 삭신이 쑤시고 운신하기 힘들 정도고, 어딘가 부러지거나 감각이 사라진 느낌은 아니었다.
상단전, 심이 느끼는 기의 흐름도 나쁘지 않다.
오히려 이 부분은 제강과 싸우기 이전보다 예민해진 것도 같았다.
중단전과 하단전, 기와 체 역시 안정적이었다.
정말 육체의 근육이 느끼는 피로 정도 외에는 어떠한 문제도 없어 보였다.
내부의 관조를 끝내고는 눈을 뜨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예상대로 풍경은 바닷가였다.
다만 그 꼴이 제법 엉망이었다.
제강이 다가올 때의 힘을 견디지 못한 탓인지, 주변에 있던 배들이 마구 엉켜 무너져 있었고, 모래는 사방으로 비산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본래 바다에 있어야 할 물고기와 바다 생물들이 가득 모래밭으로 억지로 이끌려 와 있는 상태였다.
다만 그래도, 하늘은 맑았다.
바다는 푸르다.
세계는 아직 완전히 부서지지 않았다.
“큭…….”
황준우는 웃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 혼돈, 제강을 쫓아냈다.
죽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고작 그 정도 상처로 죽을 존재가 아니었다.
그저 놀라고, 고통스러워 도망쳤을 뿐이다.
지고한 격 탓에 고통이나, 두려움을 몰랐던 덕이 컸다.
마지막 순간, 빛을 폭사하던 제강에게서 느껴지던 황준우란 존재는 ‘공포’란 단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어찌 됐든 좋았다.
이제 제강은 이 세계를 굳이 찾아오지 않을 터였다.
굳이 다른 곳으로 돌린 날갯짓을 돌릴 만큼 부지런하지도 않거니와, 황준우가 무섭기까지 할 테니 말이다.
세계를, 멸망으로부터 지킨 것이다.
믿기지 않지만 결국 해냈다.
“하하…….”
이 모든 것, 황준우의 소중한 사람들, 인연, 행복, 다 지켜낸 것이다.
“하하하!”
커다란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맑은 하늘이 이토록 기분 좋다는 사실을 오랜만에 느꼈다.
“숙은?”
직후 곧장 함께 싸운 전우를 찾았다.
분명 마지막 순간까지 힘을 함께 짜내, 제강을 관통한 것을 느꼈다.
그 이후는?
어째서인지 숙이 보이지 않는다.
느껴지지도 않았다.
“대체 어디로…….”
설마 하는 걱정이 불쑥 치밀어 오른다.
두 눈에 황금빛 안광이 어릴 때였다.
[황준……우.]
목소리가 들린다.
눈앞으로 새하얀 인영이 흐릿하게 나타났다.
명확하진 않았지만 그 존재가 숙임은 분명했다.
동시에 황준우의 볼가로 눈물이 흘렀다.
“당신…….”
사라져가고 있다.
확연히 느껴지고 있다.
그리고 그녀가 어째서 이렇게까지 흩어지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황준우의 육신, 신격이 어린 어딘가에 숙의 존재가 크게 느껴졌다.
모든 것을 준다고 하였던가?
그 말의 의미가 문득 크게 다가왔다.
어째서냐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오랜 말을 나눌 시간이 없다.
때문에 이미 이유를 알고 있는, 의미 없는 토로를 쏟을 수가 없었다.
숙에게는 어쩔 수 없던 것이다.
이 방법이 아니면 황준우가 제강을 물러나게 하지 못하였을 테니 말이다.
모든 것을 건네는 이 선택이 아니라면, 세계는 지키지 못했다.
돌이킬 수 없을 일이 벌어졌을 터였다.
때문에, 은연중에 이리될 줄 알면서도 외면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세계를 지켰다고 확신하는 순간까지 숙을 찾지 못했다.
두려웠던 탓이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마지막 한마디가 될 수도 있는 만큼 고민은 깊었다.
그런 황준우의 볼가로, 하얀빛, 손이 닿는다.
따뜻하고 포근한, 여전히 어머니를 떠올리게 만드는 그 감촉이 황준우의 눈물을 훔쳤다.
[고마워. 언제나…… 네 곁에…….]
그 말로 끝이었다.
눈앞에 남아 있던 숙의 모든 잔재가 사라졌다.
황준우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세계는 구했지만, 모든 것을 지킨 것은 아니었다.
마음이 너무나 무거웠다.
어쩌면, 정말로 숙은 어머니일지도 모른다.
황준우의 존재 한편에 묻힌 조각 자체가 숙의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때문에 이토록 아프고 무거운 것일까?
사마정이 곁을 떠났을 때에도 힘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보다도 더 가슴이 미어졌다.
“끅…….”
참지 못한 울음소리가 입가를 비집고 흘러나온다.
왼쪽 가슴에 남은 숙의 거대한 잔재를 느끼기 위해 그곳을 양손으로 강하게 움켜쥔 황준우는 그렇게 한참이나 눈물을 쏟아냈다.
그렇게 한참을 울던 황준우는 무언가에 홀린 듯 선계를 지나쳐 세상의 가장 높은 곳을 향했다.
한때 숙이었던 하얀 방은 더 이상 없다.
검은색 무(無)의 공간.
그 안으로 들어선 황준우는 또다시 숙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황준우를 반기는 이가 아무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얀 짐승.
고고히, 빛나는 털을 자랑하듯 황준우에게 다가온 둥근 눈이 웃음 짓는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지만, 그 짐승이 누구인지를 알기는 어렵지 않았다.
“스승님.”
그 음성에 하얀 짐승, 백교가 웃어 보인다.
[공자가 많이 힘들 거라고 하셨습니다.]
“전…….”
또다시 코끝이 찡하게 달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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