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재생 370화
제 370화
“행복하냐?”
“예. 그래도 주공께 인사는 드리러 오는 것이 맞는 것 같아, 산후조리가 끝난 이후 바로 찾아왔습니다.”
“목적이 뭐가 됐든, 그거면 됐어.”
행복하면 그만이다.
황준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그는 이 세계의 가장 높은 신이 되었다.
그리고 그 격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어, 마음먹고자 하면 세계의 정해진 율법을 바꿀 수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무엇도 억지로 건드리지 않았다.
이미 이 세계는 숙이 정해놓은, 잘 짜인 규칙에 의하여 돌아가고 있다.
그러니까 인간과 요괴가 혼인을 하여 자식을 낳는 것도 충분히 규칙 내의 일이란 뜻이다.
본인들만 행복하면 그만이었다.
“자식이 조금 더 크면, 홍산과 함께 이곳에 오기로 했다. 당신, 홍산의 군주라고 들었다.”
“그래서?”
“내가 당신 지켜 준다. 물론, 당신이 나보다 강하다면.”
괴연이 사나운 이빨을 보이며 씩 웃는다.
방 안에 누워 쉬고 있던 황준우의 얼굴에는 황당함이 어렸다.
“투견 일족이라더니…….”
“부탁드리겠습니다. 주공.”
홍산은 아마 처음부터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을 터였다.
그 때문에 괴연을 이 자리까지 데리고 온 것일 테고 말이다.
“일어나라. 홍산의 군주.”
괴연이 말했다.
황준우는 침상에 누운 채로 손짓했다.
“이 자세로도 충분해. 공격해.”
“지고 후회해도 소용없다.”
“그럴 일 없으니까 걱정 말고.”
“캬앗-!”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들던 괴연이 날아올랐다.
아주 멀리, 높이, 천장을 뚫고 하늘까지 올라갔다가 떨어진다.
의식을 잃고, 눈이 뒤집힌 그녀를 황금안으로 바라보던 황준우가 길게 하품을 하며 말했다.
“데리고 나가. 이따 저녁에 식사 때 보자.”
“예. 주공.”
여유로운 신의 나날이었다.
불혹(不惑).
적지 않은 나이다.
세월이 흐르는 것이 무상하다고 느낄 때쯤, 주연하가 황준우를 향해 말했다.
“이만 황제의 위를 물려주려고 한다.”
“응? 하지만 우린 자식이 없잖아?”
황씨 일가의 씨가 귀하다는 것 역시 세계의 율법 중 하나였던 것일까?
두 사람 사이에는 기이할 정도로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율법이 아닌 육체적 문제라면 해결할 텐데, 황금안으로 서로를 살펴보아도 두 사람의 육체에 문제는 없었다.
결국 그냥 씨의 문제인 것.
때문에 두 사람은 느긋하게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황제의 위를 물려준다고 한다.
“눈여겨 봐둔 인물이 있다. 제국은 안정되었고, 내가 보고자 하는 이상의 뿌리는 심었다.”
“이상이라…….”
작금 제국이 가진 황궁의 힘은 약해졌다.
다른 이유가 있는 탓이 아니다.
주연하 본인이 그 힘을 나누었다.
그리고 그 힘의 권한 일부를 백성들에게로 돌려주었다.
탐관오리의 부정부패를 처벌할 수는 없지만 감시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 이제 제국의 백성이라면 누구든 악행을 신고할 수 있다.
또한 등용문의 관례를 바꾸었다.
정치와 경제를 공부하지 않은 권력가의 인물들이 혈통과 인맥만으로 그 자리에 앉는 것을 두고 보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이제는 이름 높은 권력가의 자제도 정당한 시험을 치르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지만 관리가 될 수 있었다.
기회의 평등을 갖추기 위해 학교를 만들었다.
어느 하나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 기반을 모두 다졌다.
주연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그 주춧돌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히는 것은 또 거기에 어울리는 사람이 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흠…….”
기본적으로 황제가 집권하는 이 시대에, 그녀가 원하는 완벽한 그림을 그리기는 힘들다.
하지만 주연하는 그 기반을 만들고자 하였고, 해내었다.
황준우는 그런 그녀를 존중했다.
설령 이 계획이 어딘가에서 또 실패하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 말 대로였다.
주연하는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쏟아부었다.
더 이상은 그녀가 붙잡고 있어 봐야 시간만 끄는 일이 된다. 때문에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기로 한 것이다.
“그러면 이후로는?”
“일단은 같이 만금장에 가서 살자꾸나.”
“우리 집?”
“내 탓에 거의 황궁에만 있어야 했지 않느냐. 나도 시부모님들을 뵙고 싶다.”
“허허…….”
거의 황궁에만 있었다고 했지만, 실제 황준우는 제법 많이 만금장을 오갔다.
애초에 그의 걸음이라면 소주와 북경을 오가는 데 반나절이 걸리지 않으니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실제로 주연하가 업무를 보는 시간에, 황준우는 집을 자주 찾아가고는 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부모님을 보는 기분은 묘했지만, 그래도 늘 곁에 있으니 나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주연하의 입장에서는 그것도 제법 신경이 쓰였나 보다.
“그건 내가 너무 미안한데…… 장인어른께서도 계시고.”
“일평생 만금장에만 있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도 간간이 남경을 향할 것이고, 네가 데려다주면 되지 않느냐?”
소주에서 남경까지는 황준우의 걸음이면 반 시진도 필요치 않다.
“가끔 여행도 떠나자고 할 것이다. 이 넓은 땅에 기껏해야 북경에서 귀로 듣는 소식뿐이니, 안타까움이 많아. 쉽게 말해 이제 우리만의 행복을 찾아 살자는 것이다.”
하긴, 그동안 주연하는 계속해서 바빴다.
이미 만들어진 세계를 그저 들여다보고 있는 황준우와 달리 주연하는 자신의 이상을 구현하고자 노력하였으니 말이다.
분명 둘만을 위한 시간도 필요했다.
“어쩌면, 마음이 편치 않아 아이가 생기지 않는 걸 수도 있고 하니…….”
주연하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나간다.
이 역시 표현하지 않았지만 꽤나 신경 쓰고 있는 듯했다.
“그건 우리 탓이 아니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조심스럽게 주연하를 품에 안은 황준우가 위로를 건넸다. 따뜻한 온기와 머릿결 사이로 흐르는 향이 너무 좋다. 주연하 역시 그런 황준우의 품이 너무 좋았기에,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이건 결정된 거로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여라. 석 달이면 대충 마무리 지을 수 있을 터이니.”
그리고 정확히 석 달 뒤, 황위 계승이 완전히 이루어졌다.
두 부부의 만금장 생활이 시작되었다.
딸린 식솔은 적지 않았다.
주연하를 따르고자 하는 이들도 있었으며, 황준우를 본래부터 쫓아다니는 이들도 있었으니 말이다.
다행히 만금장은 집이 아주 넓었다.
그 많은 새 식솔들을 포용하고도 여유가 넘쳤으니 말이다.
두 사람의 행복을 바라는 연회가 열렸다.
그리고 그때쯤, 힘이 부친다고 말한 황석후가 은퇴를 선언했다. 나이가 벌써 칠순이 되었으니 오히려 이때까지 정정하게 상단을 이끌어준 것이 고마운 일이었다.
상단은 황서연이 물려받기로 했다.
한동안 조용히 만금장에 있던 그녀는 황석후로부터 상단 운영에 대한 것들과 상인의 자세 등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하였다. 이미 알고 있던 것인지 황서연은 그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인사했다.
마찬가지로 나이가 제법 든 황서연은 어린 시절의 치기 어린 모습이 아닌, 조신한 모습을 많이 보였다.
물론 그 자리가 대외적인 장소여서 그럴 것이라는 생각은 했다.
실제로 황준우와 주연하가 만금장에 복귀한 첫날, 방방 뛰며 좋아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고도 생각했었으니 말이다.
어찌 됐든 그렇게 별 탈 없이, 조용하게 세대의 세습이 이루어졌다.
그렇게 만금장에서 몇 년을 보낸 이후, 두 사람은 남경으로 갔다.
영왕 주윤호 역시 많이 늙었지만, 정정한 모습이었다.
남경으로는 이제 할 일이 없어진 황석후와 서시가 자주 놀러 왔다.
친구끼리 터놓고 술을 마시는 두 부모님의 모습을 볼 때마다 황준우와 주연하도 즐겁게 웃을 수 있었다. 함께 술을 마시기도 하고, 떠들기도 했다.
역시 행복한 나날이었다.
그렇게 또 몇 년.
주연하는 이제 천하를 둘러보고자 하였다.
부모님들의 건강에 문제가 있었으면 쉽게 떠나지 못했겠으나, 세 분 다 정정하니 눈치 볼 일도 없었다.
그렇게 황준우와 주연하는 천하 곳곳을 돌아다녔다.
세계가 멸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던 시점.
급하게 다니던 때와는 달랐다.
느리게 걸었고, 마차도 탔다.
배도 타고, 말을 직접 몰고 다니며 석양을 구경하기도 했다.
덕분에 몇 날 며칠 노숙을 한 적도 있지만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여행을 한 지 일 년쯤 되었을 때인가?
두 사람 사이에 드디어 자식이 생겼다.
황준우와 주연하는 여정을 멈추고 곧장 작은 시골 마을에 안착했다.
시끄러운 것 하나 없는 농경 마을은 외지인인 두 사람을 따뜻하게 받아 주었다.
황준우는 그곳에서 농사일을 돕고, 때로는 사냥에도 나서며 마을 사람들을 도왔다.
그리고 십 개월.
두 사람 사이의 첫 자식이 세상에 나왔다.
출산 경험이 많다는 마을의 노파가 크게 도와주었다.
주연하는 무사히 자식을 낳을 수 있었다.
아들이었다.
두 사람은 기쁨의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 낳은 자식을 서로 품에 안은 채 사랑한다는 말을 쉴 새 없이 속삭였다.
이런 큰 축복은 신이 내려준 것이라는 마을 사람들의 말에 황준우는 크게 웃었다.
자신은 무엇도 축복한 적이 없었다.
때문에 생명이란 더 위대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소중하고 귀중한 때.
황준우와 주연하는 그 작은 시골 마을에서 오 년을 더 머물렀다.
황준우 덕에 반신(半神)이라고도 불릴 수 있는 아들, 황지운은 탈 하나 없이 건강한 모습으로 자라났다.
그때쯤, 두 사람은 자식을 안고 남경을 찾아갔다.
여느 때와 같이 서로 간의 시간을 즐기고 있던 황석후와 주윤호, 서시는 크게 기뻐하며 황지운을 안아 들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보게 된 황지운은 당황하면서도 밝은 미소를 보였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으니 기쁨이 넘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놀라운 소식을 접했다.
“서연이가 결혼했다고요?”
황준우의 물음에 서시가 입가를 가리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놀랄 일이지? 솔직히 이 어미도 믿기 힘들었단다.”
“대체 누구예요? 설마…….”
잠시, 황서연을 향해 애달프게 구애를 하던 초호서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실제로 모든 일이 끝난 이후로도 삼 년이나 더 황서연을 쫓아다닌 전적이 있었다.
“지총이라고 해서, 이번 전시에 장원으로 합격한 인물이다.”
전시 장원이라면 관리, 그중에서도 높은 직위를 약속받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
“나이가 어렸죠? 서연이랑 열다섯 살 차이던가.”
“뭐, 아무렴 어떤가. 둘이 좋으면 그만이지.”
“잘생기기도 어찌 그리 잘생겼는지. 호호, 누가 제 오빠 얼굴 보고 자라지 않았다고 할까 봐 제대로 골랐더구나.”
결국 초호서는 패배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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