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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371화 (371/373)

학사재생 371화

제 371화

황서연은 잘생기고, 능력 좋은, 심지어 어리기까지 한 남자와 결혼을 한 것이다.

‘아닌 척 빼더니 결국 이 녀석…….’

남자 얼굴을 가리고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제 동생이지만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황준우였다.

이후 황준우와 주연하는 황지운을 데리고 다시 남경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세 사람이 손주를 좋아해 주는 덕이 컸다.

그리고 황준우는 이미 이 무렵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고.

그렇게 황준우와 주연하가 나이 오십, 지천명을 넘었을 무렵.

영왕, 주윤호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은 화려하게 치렀다.

왕의 장례식이다.

그리고 전대 황제의 아버지기도 하다.

북경에서 황제가 직접 내려와 추모하기도 했다.

장례식에서 주연하는 울지 않았다. 오히려 운 것은 황지운이었다. 외할아버지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손자는 울다 지쳐 쓰러질 정도로 크게 울었다.

그리고 주연하는, 장례식이 끝나고 방에 들어온 이후에야 황준우의 품에 안겨 펑펑 울었다.

마치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 크게 울었다.

황준우의 옷 앞섶이 축축해지다 못해 비라도 맞은 듯 젖을 정도였다.

처음이었다.

황준우의 상상 속에서도 주연하는 이토록 울지 않았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주연하는 황준우의 품에서 울고, 잠들고를 반복했다.

사실 주윤호를 살리고자 한다면 그럴 수도 있었다.

말했듯, 황준우는 신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주윤호가 그리 바랐기 때문이다.

이미 황준우는, 그와 같은 순리에 따른 죽음을 한 번 보았다.

마음의 스승.

그 때문일까.

어려운 사실이지만 힘겹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장례 일정이 완전히 끝나고, 황석후와 서시를 비롯하여 네 가족이 다 만금장으로 돌아왔다.

처음 본 매제는 듣던 것만큼이나 잘생긴 인물이었다.

그리고 인상도 좋았다.

붙임성도 말할 것 없었으며, 말까지 잘했다.

그저 완벽한 남자를 찾고 있었다는 가족들의 예상이 맞았던 것이다.

‘아무렴 상관없지.’

황서연이 행복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지냈다.

그리고 드디어, 황준우와 황서연에게도 운명의 날이 찾아왔다.

황석후와 서시.

두 사람이 마치 맞추기라도 한 듯 숨을 거둔 것이다.

나이 아흔.

백수(白壽)를 맞추지는 못하였지만, 장수(長壽)였다.

이날은 황서연이 크게 울었다.

황준우는 울지 않았지만, 하늘에서 비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소주 일대의 강물이 넘쳐 흐를 정도의 큰비였다.

이번 역시 잡을 수 없었다.

서로의 손을 꼭 맞잡은 채, 천명에 따라 살겠다는 부모님을 어찌 강제로 붙잡으려 하겠는가?

황준우는 가슴 한편이 찢어지는 고통을 품은 채로 나날을 보냈다.

그나마 두 사람의 죽음이 천명을 따른 것이었기에 견뎌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의 혼은 회색빛 하늘을 따라 허공으로 승천하여 유계로 들어갔다.

이후 윤회가 시작되었다.

장례식 이후, 그 모습까지 지켜본 황준우는 더 이상 두 사람을 바라보지 않았다.

윤회 이후로는 재생(再生)이 기다린다.

그 이후로까지 운명을 이끌고 갈 수는 없었다.

신은 무언가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이때쯤, 황준우는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괴이한 손님이 찾아왔다.

처음 보는 복장에, 괴상한 화법, 그리고 놀라운 이야기들.

숙이 말했던 큰 비밀, 그리고 대우주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황준우는 그들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적어도 아직은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많은 세월이 흘렀다.

황준우와 주연하의 얼굴에는 어느덧 깊은 주름이 새겨졌다.

어리게만 보였던 황지운은 장성하여 결혼을 한다고 하였다.

반신의 피 탓에 무공에도, 학문에도 재능을 보인 황지운은 역사 속으로 조용히 사라지기를 선택한 황준우에 이어 무신의 별호를 받았다.

손주가 생겼다. 손녀도 생겼다.

귀엽고, 너무 어여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만 같았다.

어린 손주 손녀가 어른이 되었다.

그들이 결혼을 하는 모습을, 아주 먼 발치에서 지켜보았다.

황준우와 주연하는 그 모습 속에서 묘한 괴리감과, 알 수 없는 그리움을 느꼈다.

경호와 홍산이 죽음을 택했다.

황준우는 이번에도 그들을 놓아주었다.

황서연이 신선이 되었다.

누구보다 재능이 있고, 깨달음도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황준우는 크게 안도했다.

그리고 또 세월이 흘렀다.

백수 이후로는 세지 않아,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른다.

주연하가 꿈꾸던 사회는 결국 실패했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유지되는가 했지만, 제국이 무너지고 새로운 나라가 들어서니 아무 의미가 없던 정책이 되었다. 그렇다고 하여 주연하가 다시 황제가 되어 주춧돌을 다지고자 할 수는 없었다. 이미 그들은 시대에서 멀어진 방관자들이었다.

지켜볼 뿐이다.

마치 없는 것처럼, 멀리서.

황준우는 이제야 진짜 숙의 기분, 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놀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를 사랑하던 그녀에 대해, 감격하고 감동했다.

이백오십 년쯤 흘렀을까?

아마 그때쯤이었다.

유난히 힘이 빠지는 것 같던 주연하의 눈꺼풀이 무거워 보였다.

조율경의 높은 경지.

그리고 신과의 생활로 인해 넘치는 생명력 속의 축복으로 인간 이상의 삶을 살아온 그녀의 인생에도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작은 오두막.

장작으로 만든 작은 모닥불 옆.

그녀의 손을 꼭 붙잡은 주름진 노인, 황준우가 물었다.

“꼭…… 가야만 하겠소?”

“…….”

주연하는 답이 없다.

그저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이 세상에…… 나 홀로 남겨지는 것이오.”

이번에도 주연하는 답하지 않는다. 대신하여 고개를 내젓는다.

“어째서 당신까지…… 원한다면 영생을, 그리고 평생을…….”

깊은 주름 사이로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꼭 잡은 두 손에 힘이 들어간다.

주연하는 그런 황준우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는 손을 들어 눈물을 닦아준다.

그리고는 눈을 감았다.

조용한, 그리고 긴, 돌아오지 않는 침묵이었다.

황준우는 말없이, 생전 주연하가 원했던 장례를 치러주었다.

불이 타올라 영혼이 떠난 주연하를 태운다.

뼛가루조차 남김없이, 하얗게, 모두 사라져간다.

“흐어엉-!”

황준우의 울음소리가 세상을 울렸다.

가슴을 두드리는 소리는 천둥이 되어 하늘을 떨게 했다.

떠나기 며칠 전, 주연하와 나누었던 대화가 머릿속에서 쉴 새 없이 맴돌았다.

가장 아름다웠던 삶, 가장 아름다웠던 기억으로 만족하고 싶다고 하였다.

자신의 이기적인 선택을 원망하라고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녀는 불멸자가 아니었다.

필멸자로 태어나, 필멸을 택했다.

백교의 경우가 그러했듯, 부모님의 죽음이 그러했듯, 손주의 죽음이 그러했듯, 순리의 뜻을 따랐을 뿐이다. 황준우는 그를 원망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걸 뒤틀어 버리면 세계가 크게 요동치고 불안정해진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순리란 그렇게나 중요하고, 옳은 것이다.

원망해서는 안 되었다.

이기적인 선택이라고 매도하면 안 된다.

하지만 외로웠다.

그리고 화가 났다.

어째서 자신을 버린 것일까?

함께할 수 있는데 왜 거부한 것일까?

분노가 치솟았다.

번개가 지상에 수십 번 내리꽂혔다.

곧 고개를 젓는다.

불멸을 택한 것은 사실 황준우 본인이었다.

이 세계에는 더 이상 신이 없다.

황준우가 마지막이다.

때문에 죽을 수가 없었다.

윤회가 아닌 영원한 소멸이기에 더욱 불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신은 완벽하지 않다는 말은 여전히 틀리지 않았다.

‘나는 멍청이다.’

고작 이 정도도 이겨내지 못할 것이면서, 앞으로 유일신이 되어 세계를 바라보는 일을 어찌하겠는가? 이겨내야 한다. 이겨내야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여태껏 그래왔듯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스스슥-!

하얗던 황준우의 머리가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대신하여 검은 머리가 다시 솟는다.

주름진 얼굴 역시 젊은이의 그것으로 변했다.

애초부터 단 한 번도, 황준우는 늙은 적이 없었다.

불멸자의, 신의 육체란 그런 것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시간의 흐름을 따라, 어색하지 않게 억지로 꾸몄을 뿐이다. 가짜 모습으로 어색하지 않게, 주연하의 곁을 지키고자 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럴 필요는 없었다.

‘나아가자.’

얼마나 오랜 시간을 슬퍼했는지 모른다.

사실, 시간 개념이란 것을 잊은 지 오래되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분명한 건, 이제는 다시 나아갈 때다.

그래야만 한다.

숙에게 감탄했다.

그녀가 이 세계를 사랑하였던 마음에 감격했다.

그리고 황준우 역시, 지켜야 할 대다수가 사라진 이 세계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다.

여전히 가꾸고 바라보아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신의 마음은 한계를 넘고 초월하여 나아간다.

얼마나 오래 닫혀 있었는지, 틈새가 완전히 얼어붙어 버린 오두막 문을 조심스럽게 연 황준우가 바깥세상을 바라보았다.

하얀 눈이 가득 쌓여 있었다.

세상의 남쪽 끝.

금오도보다도 더 아래에 있는 한파의 대륙.

아무도 찾지 못하는 이곳에서 주연하는 최후를 맞이했다.

그녀는 어째서인지 이 눈 내리는 풍경을 좋아했다.

“기억해야지.”

이제는 주연하도 묻는 것이다.

사마정을 그러했듯, 숙을 그러했듯, 부모님을 보냈듯, 주연하도 마음 깊숙한 곳에 묻어 놓는 것이다. 잊을 수는 없었다. 그것이 황준우란 인간 아니, 신이 가진 약점이라고 하여도 어쩔 수 없었다.

“스읍…….”

깊게 빨아들인 찬 공기가 나쁘지 않다.

고통의 감각을 열고, 모든 기의 흐름을 차단하니 폐부가 짜릿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살결이 따가운 한기다.

살아 있다.

아직 나는,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그런 실감이 크게 났다.

문득, 그런 황준우의 눈에 새하얀 설원 너머로 다가오는 하얀색 무언가가 보였다.

작은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다시 보니 커 보이기도 한다.

아홉 꼬리.

아니, 여우 요괴다.

“황준우!”

발랄한 목소리를 뱉으며, 귀여운 여우의 모습으로 단숨에 품에 안겨드는 그녀는 못 본 지 수백 년이 넘은 인물이었다.

“달기?”

“드디어 나온 거야?”

놀라는 그를 향해 새끼 여우의 모습을 한 달기가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네가 어떻게 이곳에?”

“느껴졌거든. 네 슬픔이, 아픔이, 저 멀리 금오도에서까지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런…….”

“하루 종일 비가 내렸고, 천둥번개가 쳤어. 뇌신들이 노력하지 않았으면 사람 몇몇이 죽었을지도 몰라.”

자연재해라, 큰 실수를 할 뻔했다.

“그래서 이곳까지 찾아온 거야?”

“응. 처음부터 여기로 온 건 아니고, 세계 곳곳을 뒤졌어. 오래는 안 걸렸어. 한 십 년 찾았나?”

“오래 안 걸리긴, 십 년이나?”

황준우는 놀랐다.

십 년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대체 그는 얼마나 오래 슬퍼하고 있었단 말인가?

아픔을 이겨내지 못해 괴로워한 시기가 그리도 길었던 것일까?

“응. 신기하더라, 다행히 그 오두막이 무너질 듯, 버티고 있기에 다시 보수해놨지. 아무래도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쉴 공간이 필요해 보였거든.”

“허허…….”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이 작은 여우는 이상한 데서 사람을 감동시키는 재주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궁금한 것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나, 대체 얼마나 저 안에서 있었던 거야?”

“그것도 생각보다 짧았어. 한 삼백 년쯤?”

“삼백 년?”

삼백 년이란다.

삼십 년도 아니고, 삼백 년.

그토록 나약해졌었단 말이다.

마음이 완전히 무너지다 못해 썩어 있었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지만, 달기가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근데 그 시간조차 짧았다고 한다.

제강과의 마지막 싸움 이후, 달기를 찾아가 만났을 때에도 그녀는 밝게 웃어 보였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시선은, 떠나는 순간까지 한 번도 황준우에게서 떨어지지 않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 긴 시간이 흐른 이후까지도 함께였다.

“너…….”

마음이 찡하게 아려왔다.

여우의 모습으로, 그런 황준우의 어깨 위로 올라와 볼을 비빈 달기가 웃으며 말한다.

“참, 가끔 서연이가 찾아왔었어. 그 녀석도 제 오빠가 힘든 건 알았으니까. 나랑 마찬가지로 문을 열 생각은 못 했지만.”

“…….”

“가 보자. 서연이한테도 이 기쁜 소식을 알려줘야지.”

혼자가 아니다.

아직 그의 곁에는 많은 것이 남아 있다.

달기와의 만남을 통해, 황서연의 소식을 들으며 다시 한번 깨닫는다.

마음 한편이 크게 아려왔다.

“다시 태어나는 마음으로 힘차게 살아 보자고.”

달기가 외치는 목소리에 그런 아픔을 치유 받는다.

“다시 태어나는 마음이라…….”

황준우의 입가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신은 홀로 완벽하지 않다.

때문에 신 역시 늘 어려움을 이겨내고, 나아가야 한다.

새 마음가짐, 새 기분으로, 새 방향을 향해 가는 것이다.

재생(再生)이란, 사실 별 큰 의미가 아닐지도 모른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삶(生)’ 그 자체인 것이다.

새하얀 눈밭에 미완의 신이 남긴, 떠나는 발자국이 새겨졌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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