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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373화 (완결) (373/373)

학사재생 373화 (완결)

제 373화

실제로 그 권리가 상당한 듯했다.

이제 막 대신이 된 황준우에게 행성계의 이름을 바꿀 정도의 권한까지 주었으니 말이다.

“생각대로이십니다. 모든 대신은 특별합니다. 특히, 이 세계는 그렇지 않더라도 굉장하지요. 대우주의 영원한 확장을 담당하는 지고신의 재앙을 정면으로 맞이하고 살아남은 세계니까요. 장담하건대, 최초입니다. 긴 우주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지요.”

“운이 좋았지.”

다시 생각해도, 제강을 물러서게 한 것은 정말 운이 좋았다. 일시적이지만 대신에 가까운 힘을 폭발시킬 수 있었고, 단지 그것만으로 제강이 놀라주었다.

제강이 마음먹고 힘을 썼다면 불가능했을 일.

그 역시 어디까지나 제강이 황준우의 힘에 무관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운도 실력입니다. 저는 이 말을 상당히 좋아합니다. 호호.”

가볍게 웃은 세르게이가 검지와 중지를 펼쳤다.

“아 그리고 두 가지 더, 이야기 드릴 것이 있습니다.”

“말해 봐.”

황준우는 느긋하게 말했다.

오래전에는 이런 세르게이의 이야기를 들을 여력이 없었다.

사실 깊게 듣고 싶지도 않았던 때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우주는 생각보다 더욱 거대하고, 또 어떠한 큰 틀에 의하여 움직이고 있다.

세계의 신으로서 충분히 알아두어야 할 필요가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첫째는 이 세계에서 실종된 멸망환의 이야기입니다.”

“멸망환…….”

황준우는 그 괴상하고도 강력한 물품을 떠올리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미 상위 신일 당시, 완전히 부수고자 전력을 쏟아부었는데도 결국 망가트리지 못했다.

멸망환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달아났으며, 오히려 제강의 부활을 앞당기기까지 했다.

좋지 않은 기억이었다.

“사실 전 우주적 관점에서도 아주 위험한 물건이란 말입니다. 어떻게든 회수하려 했는데…… 놓쳤습니다. 에고…… 에, 그러니까 무슨 자아를 가진 건지 잽싸게도 도망 다니더군요. 강력한 종류는 아닌 듯했지만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본능이 강한 듯했습니다.”

“살아 있는 생물과 같다는 건가.”

“같지는 않아도 비슷하지요. 대신께서도 신경 쓰고 계실 것 같아 협의회 내에서도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회수에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마치 보고를 하는 듯한 세르게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황준우의 입가로 미소가 떠올랐다. 그 속셈이 너무 훤히 보이는 탓이다.

“장난을 치고 싶은 건 아닐 테고, 그래서 원하는 바는?”

“호호, 그게 말이지요. 그 멸망환을 찾아도 우주협의회 내에서 함부로 처리하기 힘들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워낙 가진바 힘이 강력하기도 하고, 자칫 잘못 다루려 했다가는 또 놓칠 위험이 있어서. 만약 우리가 찾아내면 그것을 직접 처리해주실 수 있습니까?”

결국 우주협의회 내에서도 자체적으로 멸망환을 부수는 것은 포기했다는 뜻이다.

황준우의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안 그래도 신경 쓰이던 문제였으니 말이다.

“좋아.”

“감사합니다. 그러면 찾는 대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 세계의 또 다른 신이었던 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래전 제강을 죽였던 신.

그중 홀은 세계를 책임지기를 피하고 도주했다.

“원하신다면 그분 역시 찾아드릴 수 있습니다.”

세르게이의 눈이 차가운 빛을 비춘다.

두 번째 일, 홀의 행방에 대한 것은 따지자면 첫 번째 일을 수락한 데에 대한 보상이다.

이 세계를 버린 신에 대한 징벌.

대신인 황준우가 하고자 한다며 언젠가 이루어질 일이다.

그의 인지 영역이 넓어지고, 대우주의 곳곳을 살필 수 있게 되면 언젠가 홀의 모습도 드러날 것이고, 마음먹은 대신을 우주협의회는 막을 수 없다. 그들은 우주협의회의 도움 없이도 다른 항성계로 도약할 수 있는 초월적인 존재였으니 말이다. 때문에 우주협의회 입장에서는 대신을 존중하고, 조심스럽게 다룰 수밖에 없었다.

“홀이라…….”

황준우는 고민했다.

세르게이가 그를 찾아준다면, 황준우가 벌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일 터였다.

상위 신과 대신.

고작 한 계단으로 보이지만, 이 차이는 적지 않다.

마치 조화경과 조율경의 차이와 같다.

홀은 무슨 수를 써도 황준우에게 상해 하나 입힐 수 없을 터였다.

하지만 굳이 그래야 할까?

‘홀을…….’

그의 심장 한편, 잠든 숙의 기운이 떨리는 것 같다.

분노보다는 아련함, 그리고 용서하고자 하는 감정이 느껴진다. 이 역시 숙이 남긴 어떠한 잔재일까? 황준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일단 위치 정도는 전해드릴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실지에 대한 판단은 대신께서 스스로 내리실 일이지요.”

세르게이가 그런 황준우를 돕기 위해 조언을 건넸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고 생각하였기에 황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훌륭한 선택이십니다. 아, 그리고 방금 전해진 이야기입니다만.”

귓가에 꽂은, 새하얀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만지작거린 세르게이가 난감함과 기대감이 섞인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대신께서 나고 자라신 이 세계와 비슷한 또 다른 세계의 대신께서 기회가 된다면 서로 뵙고자 하십니다.”

“비슷한 세계?”

“예. 이곳과 같은 제국의 이름이 있고, 무림이란 곳이 존재하는 세계지요. 그곳의 대신께서는, 조금 특이한 일로 인해 차원을 넘어가 마계를 지배하여 신격을 이루신 덕에 마신(魔神)이라 불리십니다.”

“마신…….”

아무래도 이름이 불쾌하다.

“거절하지.”

황준우가 고개를 내저었다.

굳이 이름부터 불길한 자와 만나서 일을 만들 필요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게…… 이미 알고 계시다시피 우주협의회 내에서는 대신 분들을 어찌 통제할 수 없습니다. 의향을 전달해 드릴 수는 있지만 결과가 어찌 될지는…….”

다시금 세르게이의 얼굴에 어린 난처함을 보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쉰 황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내 의견이라고만 전달해. 나머지는 알아서 감당할 테니.”

“알겠습니다.”

세르게이의 화색이 환하게 돌아왔다.

어찌나 기뻐 보이는지 보고 있는 황준우의 입가에도 웃음이 어릴 때였다.

“마신이라…….”

“예. 예. 마신, 마현! 마찬가지로 인간에서부터 대신의 위까지 오른 굉장한 분이시지요. 참 대신께서도 신명을 달리 정하시는 게 좋으실 겁니다. 여섯 분밖에 없다고 하여도, 다시 말해 여섯 분이나 되는 거라…… 호칭을 만들어주시면 편하거든요.”

“흠…… 그러면 뭐, 무신이라고 하지. 무신, 황준우.”

황준우가 자신의 별호로 사용되었던 이름을 읊었다.

마침 적당하다고 생각한 탓이다.

“아, 다행히 아직 그 이름을 등록하신 대신 분은 안 계시군요. 그러면 그리 등록하겠습니다. 아, 이제 끝났습니다.”

끝을 논하는 세르게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웃어 보였다.

“더 이상 달리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만, 혹시 질문하시거나 필요하신 것이라도?”

“그 TV인가 하는 물건 하나만 부탁하지.”

“TV 말씀이십니까. 딱히 귀한 물건은 아니니 어렵지 않습니다. 그래도 코스모 코인이 조금 필요하긴 한데…….”

“코스모 코인?”

“예. 이곳에서 하는 말로는 업보라고 할까요. 솔직히 대다수의 신격을 갖추신 분들이 적지 않게 가지신 거라 TV 정도는 헐값입니다만. 이번 물품은 대신의 위에 오르신 기념으로 제가 사겠습니다.”

“흠…….”

이제야 처음 세르게이가 말했던, 대신들의 정복 놀이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전쟁을 벌인다는 것은 어느 쪽으로든 업보를 쌓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대우주 내의 화폐가 된다.

돈 모양을 만든 이유가 있었다.

“배송까지 한…… 일주일, 그러니까 이레 정도는 걸릴 것 같습니다. 괜찮으신가요?”

“괜찮아. 아, 혹시 말인데 색을 정할 수 있나?”

“물론이지요. 없는 색만 아니라면……”

“흰색.”

“하얀 신이 쓰던 것과 같은 물건을 찾으시는 겁니까?”

황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숙을 완전히 잊지는 못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때문에 신의 방, 하얀 방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곳을 기왕이면 완벽하게 채워보고 싶었다.

“알겠습니다. 기록을 찾아내서 구해보도록 하지요.”

웃음을 보인 세르게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달기를 바라본다.

놀랍게도 그녀는 처음 듣는, 우주의 큰 비밀을 접하고도 그리 당황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마치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는 것 같은 느낌, 물론 허장성세다. 우주의 비밀을 알기 위해서는 최소 신이 되어야 한다. 그것도 우주협의회 내에서 또 자격을 심사하고, 그에 합당하다고 판단되어야지만 이 거대한 비밀을 알려준다.

황준우가 알려주었을 수도 있지만,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세르게이의 등장에도 크게 놀라지 않았을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담한 모습은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대신 아니, 무신께서도 사도가 필요하신 때 아니십니까? 아무리 대신이라고 하여도 완벽하지 않은 존재. 혼자만 긴 시간을 견뎌내시기는 괴롭지 않겠습니까.”

“사도라…….”

신의 동반자와 같은 존재라고 하였던가?

과거, 세르게이가 첫 방문을 했을 때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실제 주연하와 평생을 함께하기 위해 그 방법을 택하고도 싶었다.

그녀가 거부하였기에 보내주었을 뿐.

“저는 그녀를 추천하고 싶군요. 사도가 된다고 하여도 신격을 못 얻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아이고, 제가 너무 오지랖을 부렸나요?”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인 세르게이가 다시금 중절모를 쓴다.

“어쨌든, 약속하신 TV는 일주일 내에 제가 직접 배송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다시 뵙는 거로 하지요.”

“부탁할게.”

“무신께서 굳이 부탁까지야…… 호호, 기분은 좋네요. 그러면 이만 진짜 가보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세르게이가, 다시 공간의 틈을 열고는 사라진다.

처음 보았을 때는 몰랐는데, 스스로 기를 다루는 것 외로도 어떠한 도구의 도움을 받아 그런 공간을 여는 듯했다. 때문에 황준우에게는 굳이 필요하지 않은 정제 과정이 뒤섞인다.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법 안정적인 듯하다는 것이었다.

‘우주협의회라…….’

아무래도 기관이나 도구, 보패에 대한 지식이 상당한 자들이 모인 듯했다.

“황준우.”

달기가 생각에 빠진 황준우를 부른다.

“혹시 나를 사도로 만드는 것 때문에 고민 중인 거야?”

달기는 눈치가 빠르고, 머리가 좋았다.

거대한 이야기였기에 그 전체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대다수는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중 가장 깊게 와닿은 것이 신의 사도, 신의 동반자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니었는데…….”

우주협의회에 대해 떠올렸기에 황준우는 당당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 그래?”

달기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지나간다.

황준우는 그 모습을 묘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신의 동반자라…….’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신은 영멸한다.

오랜 세월을 사는 것만 같은 신선도, 요괴도, 언젠가는 결국 죽음을 맞이할 수 있지만 신은 진정한 불멸이다. 또한 함부로 세계의 일에 간섭할 수도 없다. 신이 되어보면, 그 책임감이란 것을 느끼게 된다. 때문에 누군가와 감정을 교류하는 것도 조심스러워진다. 어쩌면, 언젠가 곁에 있던 모든 지인이 사라지면 신은 자연스럽게 무감정을 얻게 될지도 몰랐다.

그런 고난스러운 길에 함께하게 되는 일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황준우의 곁에 있던 이들은 그 일부의 무게감만을 느끼고도 떠나는 것을 택했다.

순리란 그런 것이다.

인간에게서, 존재에게서, 강제로 그를 따르게끔 만든다.

달기라고 다를까?

“너는 내 사도가 되고 싶어?”

다소 조심스럽게 건넨 질문에, 망설임 없는 대답이 돌아온다.

“힘들 수도 있는데?”

“난 황준우 네 곁에만 있을 수 있으면 아무리 힘들어도 괜찮아.”

“순리를 역행하는 일이야.”

“순리 엿 먹으라지. 내겐 황준우 네가 순리고, 진리야.”

확고하다.

흔들림 없는 여우 요괴의 눈은, 먼 과거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변함이 없었다.

“난 좋아. 누구처럼 미련, 집착 없는 그런 성격 아니거든. 오히려 질길 정도로 집착하지. 아직도 날 몰라?”

그래서 미안했고, 또 고마웠다.

“황준우. 내 소원은 하나뿐이야. 언제나, 늘, 항상 네 곁에 있고 싶어.”

황준우가 팔을 벌려 달기를 안는다.

얼굴이 붉어진, 어린 여우 귀의 소녀가 거짓된 반항을 하듯 바둥거린다.

“화, 황준우?”

“고마워.”

“으, 응?”

“너무 고마워. 달기.”

목소리가 촉촉하다.

달기의 입장에서는, 황준우로부터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목소리였다.

작은 거짓 반항은 이미 모두 사라졌다.

그대로 쉬어가듯, 품에 파묻힌 달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따뜻하고 기분 좋은 향이 그녀의 코끝을 간지럽혔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달기는 이 자리에서 평생을 함께하기로 선택했다.

그리고 황준우는, 이제는 그런 그녀에게 다가가 보자는 선택을 했다.

그렇게 삶은, 끊임없이, 마치 우주처럼 계속해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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