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도망자 (3)
풍운객잔(風雲客棧).
가적성 일행이 은신한 장원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길목에 자리한 객잔이다. 덕양에서 외지로 나가는 상인들이 마지막으로 머무는 객잔이기도 했다.
밤이 이슥한 시점이라 객잔에서 요기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다만 구석진 곳에서 네 손님이 국밥을 먹고 있었다.
객잔 주인은 밤늦게 갑자기 들이닥친 이들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오랜 기간 장사했던 그는 본능적으로 이들이 위험인물임을 간파했다. 단순히 무림인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특유의 기괴한 분위기가 이들에게서 느껴진 탓이다.
“이봐, 여기 추가로 주는 건 없나?”
탁자의 한 인물이 손을 흔들었다. 겨우 국밥 네 그릇 시켜놓고 공짜를 노리다니. 다른 이들 같았으면 딱 잘라 거절했겠지만 저놈들 앞에서는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옆 동네 객잔에서 단무지를 주지 않았다고 객잔을 박살 낸 미친놈이 있었다는 소문을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 드려야죠. 무엇을 드릴깝쇼?”
주인장은 바로 허리를 숙였다.
“오리고기 있나?”
“예?”
주인장은 한 사발만큼 나왔던 입을 쑥 집어넣었다. 저들이 인상을 쓰는 모습이 팍 보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살펴봐도 저들은 이상한 조합이었다. 상인처럼 보이는 두 사람에 누가 봐도 무인인 사람 하나, 거기에 떠돌이 중까지. 특히 떠돌이 중은 거대한 체구에 살이 많이 쪘고 금빛 가사를 걸쳤다. 중이 앉은 식탁에 오리고기라니.
어쨌든 알 수 없는 공포를 느끼면서 주인장은 재빨리 오리고기를 삶으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탁자에서는 세 사람이 중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마불이시여, 여기에서 편하게 오리고기를 뜯고 계십시오. 저희가 가서 그자들을 잡아 오겠습니다.”
금빛 가사의 마불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아미타불, 그래, 그래. 너희들이 나의 손을 덜어주는구나. 그깟 쥐새끼들쯤은 굳이 내가 가지 않아도 되겠지.”
“그렇습니다. 이젠 도망치지 못할 겁니다.”
마불이 귀찮다는 듯 손을 저었다. 두 상인과 한 무인이 사라지자마자 주인장이 오리고기를 가져왔다. 목숨의 위협을 느낀 주인장이 내놓은 오리는 푸짐했다.
**
술을 찾아 밤길을 거닐던 주석하는 풍운객잔이란 현판을 발견했다. 아직 불이 켜져 있으니 영업 중이 확실했다.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도건의 성화에 제대로 술을 즐기지 못했다. 기분이 찜찜하던 차에 객잔을 접하니 술 생각에 군침이 돌았다.
“딱 한 잔만 하고 돌아가야겠어.”
그래도 일당을 받으니 경계 업무를 소홀히 할 수 없다. 후다닥 마시고 빨리 복귀하면 누가 알까.
주석하는 객잔 문을 열고 들어가 빈 탁자에 앉았다.
“죽엽청 한 병 부탁합니다.”
주문하자마자 주위를 둘러봤다. 지금 이곳에 있는 손님은 그를 제외하고는 단 한 명, 금빛 가사를 걸친 스님이었다.
스님을 살피던 그의 눈에 묘한 광경이 들어왔다.
스님이 고기를 먹다니? 그것도 푸짐하게 먹고 있다. 중이 절간에 숨어 고기를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지만 이처럼 남의 눈에 띄는 장소에서 잔치를 벌이는 광경은 도무지 적응되지 않았다.
신기한 기분에 한참 보고 있자니 스님이 눈길을 의식한 듯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미타불, 배가 고픈가?”
순간 주석하는 몸에 꽂히는 사이한 기운에 몸을 떨었다.
‘마교다…….’
전생에서 직접 마교 본산까지 가봤던 그이기에 마교인이라는 직감이 왔다. 허윤이 마교에게 쫓기고 있다고 했던가? 그 말이 사실이었나 보다.
‘한 사람이 아니랬는데…….’
주석하는 허윤에게서 들은 여러 정보를 떠올렸으나 몇 명이라고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은 확실했다. 그렇다면 이곳에 없는 사람은 장원을 습격하러 간 것일까.
‘괜히 끼어드는 게 아니었어.’
하지만 어떻게 할 건가. 돈을 받으면 그만큼 일해야 하는 법. 괜히 명줄을 줄였다는 생각에 주석하는 벌떡 일어났다. 자칫 허윤 등이 곤란을 당하기 전에 가봐야 할 듯했다.
“아미타불, 중생은 이리로 오게나.”
스님이 얼굴 가득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향해 손짓했다. 그 순간 주석하는 섬뜩한 기운을 느꼈다. 스님이 그에게 우호적인 태도가 아님을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하하, 괜찮습니다.”
몸을 돌리려는 순간 주석하의 얼굴 앞으로 오리 다리뼈가 휙 지나갔다.
콰직-
다리뼈는 그를 스쳐 나무 벽에 박힌 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젠장!’
주석하는 내심 욕을 하며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멈췄다.
금빛 가사가 어른거리며 눈앞에 스님의 커다란 얼굴이 나타나자 그는 기절할 뻔했다. 입술에는 고기 기름이 번지르르하고 이빨 사이에 씹다 만 오리고기가 보여 구역질이 났다.
“네놈!”
“하하, 왜 그러십니까?”
주석하는 상대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미소를 지은 채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이자는 마교 인물이고 그가 건드리면 안 될 무시무시한 자라는 신호가 왔다. 과거 오 년간 강호를 구른 경험이 위기를 경고하고 있었다.
“네놈, 여긴 왜 왔느냐?”
“보다시피…… 술 마시려고요.”
“그런데 왜 그냥 가나?”
“그게…….”
주석하는 최대한 호의적인 미소를 지으며 빠져나갈 기회를 엿봤다.
“네놈, 오늘 백화루에 간 적 있느냐?”
“헉!”
놀란 주석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음을 토해냈다. 스님의 안면에 살기가 점차 짙어졌다.
실수했다고 느낀 주석하는 재빨리 손을 저었다.
“아, 아닙니다.”
“거짓말 마라. 오늘 거기에 있었다는 놈과 인상착의가 비슷하다.”
주석하는 내심 신음을 흘렸다. 마교의 정보망도 예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그의 기억으로는 아직 마교가 중원을 활보할 시점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지금 눈앞에 있는 마교인은 뭘까. 그가 모르던 사건이 있었음이 분명했다.
‘이자가 누구지? 마교에 스님이라…….’
오 년의 기억을 떠올려보았으나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만큼 마교에 대해서는 알려진 부분이 적었다.
마치 그의 내심을 읽은 것처럼 스님이 껄껄 웃었다.
“아미타불, 나는 마불이다. 넌 누구냐?”
“소…… 소인은 이름 없는 무명 소졸이라…….”
턱-
마불의 손이 그의 어깨를 짚었다. 가벼운 손놀림이었음에도 주석하는 온몸이 휘청할 만큼의 충격을 받았다.
“흐음, 그래?”
갑자기 어깨 부근에서 뜨거운 기운이 몸 내부로 밀려들었다. 주석하는 마불이 자신의 내부를 관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내부에는 어마어마한 내력이 잠자고 있지 않던가. 이 사실을 들키면 절대 좋을 일이 없다.
마불의 눈썹이 꿈틀거리자 주석하는 간이 쪼그라들었다.
“흐음, 이상하군…….”
마불이 고개를 설레설레 젓더니 다시 그를 한참 노려보았다. 분명히 뭔가가 감지되는데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무공을 얼마나 익혔느냐? 어느 문파 소속이지? 뭔가 비싼 거 처먹은 적 있느냐?”
갑자기 질문이 마구 쏟아졌다.
당연히 주석하는 대답해줄 의무가 없었다. 그보다는 잡힌 어깨를 빼려고 몸을 비틀었다.
꽉-
“으윽!”
그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마불이 손에 힘을 가하자 주석하는 꼼짝 못 하고 신음을 토했다.
“아무래도 이놈 이상한데…….”
주석하는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애썼다.
“전 그냥 평범한…… 크윽.”
마불이 움켜쥔 어깨가 점차 뜨거워졌다. 그제야 주석하는 상대의 의도를 확실히 깨달았다. 마불이 스스로 정체를 밝힌 것은 그를 살려둘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
주석하의 안면이 하얗게 질렸다. 마불은 사천삼살과는 비교 불가한 고수였다. 게다가 마교인이니 그 잔혹함 또한 이루 말할 수 없다. 모든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주석하는 내력을 끌어올려 대항하려 했다.
‘젠장!’
불과 한 줌밖에 되지 않는 그의 내력은 마불의 웅후한 내공에 전혀 맞서지 못하고 모래에 물이 빠지듯 사라졌다. 그의 단전에 잠재된 신비한 내력을 움직여보려 했으나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존재는 하지만 절대 어찌해볼 수 없는 내력에 그는 신음만 토해냈다.
마불이 장난치듯 서서히 내력을 주입했다. 그의 어깨로 들어온 마불의 내공이 점차 혈맥을 따라 일주천하면서 내부를 마구 헤집고 있었다. 동시에 어마어마한 고통이 밀려왔다.
“크하하, 네놈이 누구이든 어차피 상관없다. 죽여 놓으면 다른 놈들이 알려주겠지.”
“으아악!”
“무림은 강자존의 세계다. 네놈의 약함을 탓하거라! 약자는 버러지보다 못한 존재이니!”
주석하는 눈을 부릅떴다. 찢어지는 고통이 온몸을 짓누르며 혈맥이 부풀어 올랐다. 사천일살이 목을 조르던 그때와는 차원이 다른 고통이었다.
마불이 그를 장난감 다루듯 장난치고 있기에 더 고통스러웠다. 한 방에 죽여 버리지 않고 마치 간을 보듯 조금씩 생명을 앗아가고 있었다.
“흐흐! 그냥 죽이면 재미없잖아?”
주석하의 전신을 휘몰아치던 내력이 단전으로 밀려갔다.
쿵-
가볍게 단전을 툭 건드린 마불의 내력이 마치 철벽에 부딪힌 것처럼 튕겨 나왔다.
“끄악!”
동시에 주석하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으응?”
이상한 현상을 감지한 마불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녀석의 허약한 단전을 절반쯤 망가트리려고 슬쩍 건드렸었다. 그런데 강력한 반발이 일어났다.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감히 반발해?”
오히려 발끈한 마불이 재차 진기를 주입했다. 주석하의 몸을 휘저으면서 마불의 내력이 다시 주석하의 단전을 강하게 때렸다.
쿵-
“끄악!”
주석하는 기절할 것만 같은 고통에 온몸을 떨었다. 동시에 어마어마한 기운이 단전에서 꿈틀거렸다. 잠재된 내력이 다시 살아났다.
“어? 이놈 봐라?”
마불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주석하의 눈에서 광기가 뿜어졌다.
단전에서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온 가공할 내력은 순식간에 마불의 내력을 제압했다.
“헉?”
마불이 당황해서 어깨에서 손을 떼려 했다. 하지만 마치 한 몸이 되어 버린 듯 그의 손은 주석하의 어깨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고오오오-
폭발하듯 내력이 솟구치며 주석하의 몸을 맹렬하게 일주천했다. 놀랍게도 그 기운은 그동안 상했던 혈맥을 순식간에 치유하고 보호했다.
주석하의 내력에 속절없이 밀린 마불은 입을 쩍 벌렸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그의 의문에 답을 주듯 주석하가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크흐흐, 그래, 강자존의 세계지, 약자는 버러지보다 못한 존재고.”
주석하의 몸을 일주천한 내력이 이번에는 반대로 마불의 손을 타고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마불의 손바닥이 불에 타는 듯 뜨거워졌다.
“으으…….”
마불은 손으로 기이한 기운이 흘러들어오자 이를 막으려고 발악했다. 그는 전력을 다해 내력을 일으켰다. 일갑자를 훨씬 넘는 강력한 내공이 몸으로 침입하는 기운에 저항했다.
하지만 그의 저항은 너무 무기력했다. 마불의 혈맥이 서서히 부풀어 올라 그러잖아도 뚱뚱했던 그의 몸이 더욱 커졌다.
“으아아악!”
마불의 비명이 객잔을 가득 채웠다. 당연히 주석하는 끝낼 생각이 없었다. 타인의 목숨을 노렸다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생각을 해야 하는 법이다.
“크흐흐, 네놈에겐 내가 버러지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나에겐 네놈이 그렇게 보였어.”
어깨를 잡은 마물의 손을 통해 거대한 기운이 밀물처럼 밀려갔다. 마불의 몸이 점점 부풀어 오르고 뜨겁게 달구어졌다. 더는 견디지 못한 마불의 피부가 쩍쩍 갈라지며 피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참혹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