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검천하-106화 (106/273)

106화 빙군과 염군 (4)

“저것들을!”

빙군이 분노를 불태웠다. 눈앞에서 당문오객이 우물에 독을 푸는 짓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일단 소문주를 살려놓고 볼 일이다.

“처리해야겠지?”

“우리의 대업에 방해되는 녀석을 내버려 둔 적이 있었나?”

“없지. 한방에 잿더미로 만들었지.”

“난 얼음으로 만들었다고.”

빙군과 염군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흑도팔군 앞에서 당문오객은 애송이에 불과했다. 이들을 제거하기란 어린아이의 팔을 비틀기보다 쉽다.

의기투합한 빙군과 염군은 성큼성큼 우물 앞으로 걸어갔다.

키득대면서 준비하던 당문오객은 갑자기 등장한 빙군과 염군을 발견하고 경악했다. 두 사람이 이렇게 가까이 접근할 때까지 전혀 몰라서다.

게다가 두 사람의 외모가 심상치 않았다. 뭔가 으스스한 분위기가 칠흑처럼 어두운 밤과 만나니 더 기괴해 보였다.

“네, 네놈들은 누구냐? 흑검문이냐?”

당문오객은 한곳으로 뭉치며 경계심을 높였다.

“흐흐, 당문오객? 감히 이곳에 독을 풀려 하다니!”

빙군과 염군이 떡 버티고 서는 순간 태산 같은 위압감이 당문오객을 짓눌렀다.

“으으, 흑검문 조무래기가…….”

당문오객은 재빨리 정신을 수습했다.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래 봐야 흑검문이다. 시골의 작은 문파를 감히 당문에 견줄 수는 없다. 그들은 당문에서도 손꼽히는 기재 아니던가.

빙군과 염군도 이들을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감히 자신의 목표물에 침을 바르려는 놈들이니 용서할 이유가 없다.

굳이 이런 놈들과 말로 실랑이를 벌일 필요는 없는 법. 빙군은 순식간에 양손을 뻗어 한 놈씩 멱살을 붙잡았다.

당문오객은 공격을 뻔히 보면서도 피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짓누르는 압력과 정신을 갉아먹는 공포. 도무지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멱살을 잡은 빙군의 손은 차가웠다. 순식간에 당문오객의 온기를 잡아채고 한기를 온몸에 불어넣었다.

“허억!”

두 당문오객은 몸이 동태가 되는 기분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다. 하지만 그들의 발악은 전혀 소용없었다. 마치 얼음이 어는 것처럼 그들의 신체에 하얀 서리가 피어났다. 급기야 몸 전체가 하얗게 물들고 얼음이 부서지듯 몸이 조각났다.

“크으윽!”

비명은커녕 시체마저 제대로 남기지 못하자 남은 세 당문오객이 입을 벌리고 허둥댔다. 이들은 상상 못 할 고수였다.

그 순간 이번에는 염군이 두 놈의 멱살을 잡았다. 염군의 손은 불타듯 뜨거웠다.

당문오객 둘은 전신이 불타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혔다. 환상이 아니었다. 실제로 몸이 불타고 있었다.

“으아악!”

그들의 옷가지에 먼저 불이 붙었고 곧바로 살이 익는 노린내가 진동했다. 염군이 커다란 불덩이 두 개를 손에 든 광경이 연출됐다.

순식간에 네 사람이 죽음을 맞은 충격은 컸다.

홀로 남은 최후의 당문오객 일인은 발이 떨어지지 않아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때 그가 유일하게 떠올린 것은 우물에 독을 푸는 원래의 계획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고수라도 독에 당하면 끝이다. 동료의 죽음을 복수하는 방법은 우물에 독을 풀어 흑검문 전체를 중독 시키는 것뿐이다. 눈앞의 이들이 아무리 고수일지라도 독에는 장사가 없다.

그는 정신없이 작업하던 일을 마무리 지었다. 독 분말이 담긴 주머니가 우물 아래로 떨어졌다.

그 순간 염군의 손이 그를 후려쳤다.

“크윽!”

등에 화끈한 통증이 엄습하며 열화지옥에 빠졌다.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온몸이 불타올랐다. 생각지도 못한 끔찍한 최후였다.

순식간에 당문오객을 모두 해치운 빙군과 염군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이만하면 소문주가 죽음에 빠질 일은 없으려나.

상황이 예상과 달리 흘렀으나 그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계획은 흑검문을 도와 소문주의 환심을 사는 것이었으니 나중에 당문오객을 죽였다고 소문주에게 어떤 식으로든 알리면 충분했다.

찜찜함 속에서 그렇게 위안 삼고 있자니 멀리서 낯선 인영이 다가왔다.

“이건 또 뭐야?”

빙군은 다가오는 자를 향해 눈을 부릅떴다. 어둠 속에서도 어째 익숙한 윤곽이다.

낯선 인영은 뚜벅뚜벅 다가와서 우물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주석하였다.

**

“네놈은?”

주석하는 그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녀석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 보았던, 얼굴과 피부가 하얀 놈이다. 그날보다 흰 수염이 더 길어진 듯했다.

“서신 전한 놈인데?”

이번에 입을 연 자는 피부가 붉은 자였다. 이자도 그때 보았던 놈이다.

이 두 사람이 야밤에 우물 앞에서 뭔가 작당을 하고 있으니 이들은 당문에서 보낸 놈들이 분명했다. 당문오객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물에 독을 풀려고 온 자들이 확실했다.

“당문오객이냐?”

주석하는 싸늘한 목소리로 다그쳤다.

“당문오객?”

무슨 소리인지 영문을 모른 빙군과 염군이 대답할 말을 잊었다.

“네놈들이 감히 흑검문에 잠입해서 우물에 독을 타?”

주석하의 서릿발 날리는 지적에 빙군과 염군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기가 막혔다. 자신들은 당문오객이 아니었고 흑검문을 위해서 당문오객을 죽였다. 이런 오해는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이 뒈질 놈이…….”

빙군이 버럭 소리를 지르는 순간 염군이 얼른 눈치를 줬다.

‘우리가 여기 온 목적을 생각해라.’

‘이 나이에 욕을 처먹어야겠나?’

‘성질 죽여. 우리가 누구란 걸 들키면 안 돼.’

‘대사를 망치면 죽음이지.’

염군의 눈총에 기가 죽은 빙군이 버벅대며 수염만 쓰다듬었다.

주석하는 행동거지가 수상쩍은 이놈들을 어떻게 요리할지 고민했다. 더구나 이들이 감히 흑검문에 위해를 가했다면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비록 놈들의 무공이 대단해 보이지만 언제 그가 그런 것을 따진 적이 있던가.

“우물에 독 풀었으면 목 빼고 기다려라!”

주석하는 우물에서 한 바가지 물을 퍼서 맛을 봤다.

염군과 빙군은 마지막 당문오객이 우물에 독을 살포하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우물에 독이 없다면 바로 오해가 풀리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주석하의 안색이 싹 변했다.

물을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단전에서 바로 반응이 왔다. 독군의 기운이 반응해서 몸에 들어온 독을 치유했다. 청산에서 독을 경험했었기에 주석하는 이것이 독으로 인한 반응임을 확신했다.

그의 눈빛이 빙군과 염군을 사납게 훑었다.

“네놈들은 당문의 개로구나! 감히 우물에 독을 타다니!”

당문오객이 언제 독을 풀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염군과 빙군이 뭐라고 변명하기도 전에 주석하의 신형이 허공을 갈랐다.

“그, 그럴 리가 없다!”

“그럼 이 물 한 번 처먹어 보든가!”

대체 무슨 무공인지 불분명한 공격이 들어왔다. 대경한 빙군이 바로 응수하려는 순간 염군이 입을 뻐끔거리며 다급하게 말렸다.

‘정체를 숨겨야 해!’

그 말은 빙군의 장기인 빙공을 쓰지 말라는 뜻이다. 내공을 끌어올리려던 빙군은 황당해서 제대로 반응할 수 없었다.

뻐벅-

주석하의 주먹이 순식간에 작렬하며 빙군의 가슴을 육포로 만들었다. 혼군의 혼천십이권에 화존의 화판답공이 더해졌다.

빙군이 애초에 자신의 장기인 극한빙백신공으로 대항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정체를 숨기느라 제대로 장점을 살리지 못했고 예상보다 주석하의 무공은 너무 강했다.

퍼버버벅-

“으아악!”

빙군은 거의 혼절 직전에 이르렀다. 이게 아닌데! 그나마 그의 심후한 내공이 간신히 정신을 받쳐주고 있었다.

“다, 당신은 누구요?”

옆에 있던 염군은 미처 주석하를 말릴 생각을 못 하고 문득 든 기시감에 질문부터 던졌다.

“내가 바로 흑검문 소문주다! 네놈들이 죽이려 하는!”

“으악!”

염군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터트렸다. 이놈이 우리가 죽이려 하는지 어떻게 알았지? 계획이 완전히 틀어졌는데?

물론 주석하는 이들이 독을 풀어 그를 죽이려 한다고 생각했을 뿐 그의 내공을 훔치려 한다는 사실까지는 전혀 몰랐다.

염군의 생각은 이어질 수 없었다. 주석하의 혼천십이권이 이번에는 염군에게 쏟아졌기 때문이다.

빠빡!

“으아악!”

염군도 자신의 장기인 극양염천신공을 전혀 사용할 수 없었다. 지금은 자신이 염군이란 사실을 숨겨야 하는 데다 빙군에게 당부한 전적이 있어서다.

얼굴이 부어 밤탱이가 될 정도로 두들겨 맞은 염군과 빙군은 마침내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대로는 맞아 죽을 수는 없지 않나? 어쩔 수 없이 그들은 내력을 끌어올렸다. 차갑고 뜨거운 기운이 두 사람의 몸을 감쌌다.

그 순간 주석하는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놀랍게도 이들의 기운이 그를 편안하게 해주었다.

“에라이, 이것들이! 아직 정신 못 차렸나? 감히 내공을 끌어올려?”

빠바박!

주석하의 손이 다시 그들의 가슴을 한 바퀴 선회했다. 빙군와 염군은 가슴이 찢어질 듯한 충격 속에서 우물 벽을 붙잡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주석하는 씩씩대면서 그제야 손을 멈췄다.

“이것들이 별것도 아니면서……. 네놈들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렸어!”

그를 죽이려 한 것까지는 용서할 수 있었다. 강호는 적자생존의 정글이니까. 하지만 그의 가족까지 죽이려고 우물에 독을 푸는 행위를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주석하가 다시 손을 들자 염군이 두 손을 싹싹 빌며 말했다.

“소, 소협! 우, 우리는 당문 사람이 아니오.”

“뭔 소리야? 네놈이 우물에 독을 풀었잖아?”

“그건…… 우리가 아니라 당문오객이 풀었소. 우리는 소협을 도와주려고 왔소. 오늘 우물에 독을 푼 당문오객을 우리가 죽였다오.”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주석하의 미간이 왕창 일그러졌다.

“당문 소속이 아니야?”

“절대 아니오. 우리가 당문 소속이라면 하늘이 노해서 벌을 내리실 거요.”

두 사람의 표정이 정말 진지해서 거짓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하늘을 올려 봐도 벼락 칠 기미도 없고. 주석하는 들었던 손을 슬그머니 내리고 우물 주위를 살피며 다시 물었다.

“그럼 당문오객의 시신은 어디 있어?”

“시신?”

빙군과 염군은 당황했다. 빙군이 죽인 시신은 얼음이 되어 조각으로 완전히 부수어졌다. 마치 눈처럼 조각조각 나버렸기에 사실상 그 흔적을 찾기 쉽지 않았다. 염군이 죽인 시신은 이미 불에 타서 잿더미가 되어 바람에 날려갔다.

“시신이 없잖아? 어딜 사기 쳐?”

주석하가 손을 들어 올리자 화들짝 놀란 빙군과 염군이 재빨리 땅바닥에 엎드렸다.

“저, 정말 당문 아니오. 우리말을 믿어주시오.”

빙군와 염군은 머리끝까지 치솟는 화를 간신히 억눌렀다. 지금은 정체를 숨기느라 무공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지만 나중에는 오늘 받은 수모를 백 배로 이자까지 쳐서 갚아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들은 머리를 조아리며 아래로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지금은 참아. 다음에 이 자식을 요절내자.’

‘이놈 무공이 예상을 넘지만 그래도 감당할 수준이야. 다음에…….’

‘그래 오늘은 수모를 참고.’

‘절대 정체를 들키면 안 돼.’

‘맛있는 내공이 저기 있어.’

‘천하제일인이 보이는구나!’

엎드린 채 고개를 살짝 돌려 서로 눈빛을 맞추고 있을 때 주석하가 그들의 머리를 눌러 바닥에 쿡쿡 찍었다.

“이것들이! 지금 내 욕하고 있었지?”

“아, 아닙니다.”

생각해보니 이들처럼 특별하게 생긴 자가 당문에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 당문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 조금은 타당성이 있었다.

“흠, 그래? 그럼 증명할 수 있어?”

뭔가 이 굴욕을 벗어날 가능성이 보이자 염군과 빙군은 바로 수락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무, 물론이죠. 당문이 아님을 증명하겠습니다.”

잠시 고민에 잠겼던 주석하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좋아, 믿어주지. 내일 나와 함께 당문을 치러 간다면.”

주석하는 감히 우물에 하독한 당문을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그는 계략을 떠올리며 내심 크게 웃었다.

‘이게 바로 차도살인지계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