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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검천하-141화 (141/273)

141화 빙궁의 반란 (2)

막사 안으로 들어선 맹이도는 혼자였다.

물론 우설금은 막사 밖에 맹이도의 심복 두 사람이 지키고 있음을 감지하고 있었다.

맹이도가 내부를 쓱 훑어보더니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동료는 어디로 갔나?”

“밖으로 나갔어요.”

“밖에는 왜?”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

맹이도는 주석하가 다른 용병과 친분을 만들려고 돌아다닌다고 생각했다. 이런 외지에서 둘이 따로 논다는 것은 확실히 둘 사이의 관계가 아무것도 아님을 입증했다.

한층 기분이 좋아진 맹이도가 다시 물었다.

“중원을 많이 돌아다녔다고 했지? 어디 갔었나?”

“웬만한 곳은 다 다녀봤어요.”

우설금은 여전히 표정 없는 얼굴로 딱딱하게 대답했다.

“흠흠, 그렇게 경계할 필요는 없잖아? 같은 편이고 나랑 친해 두면 좋은데.”

물론 우설금은 맹이도에 대해 딱히 어떤 생각 자체가 없었다. 상대의 무공이든 지위든 행동이든 어느 것도 그녀의 관심 밖이었다. 지금 그녀는 단지 주석하 때문에 이곳에 있으니까.

게다가 그녀는 주석하를 제외하면 다른 사람을 항상 이런 무뚝뚝한 표정으로 맞이했다.

우설금의 냉랭한 분위기에 맹이도는 미간을 찌푸렸다. 눈치를 주는데도 우설금의 태도가 변하지 않자 슬슬 화가 치밀었다.

“난 이곳 북해에서 최강자다. 빙군이 없는 이곳에서 감히 나를 상대할 자는 없다. 오늘 봤지 않느냐? 소궁주도 나에게는 맥을 못 추지.”

“중원에는 널렸어요.”

우설금의 일격에 맹이도의 불쾌감은 더욱 올라갔다.

“흐흐, 중원도 별것 없다. 사부가 흑도팔군 아니었느냐. 같은 흑도팔군이라고 다 같지는 않지. 사부는 다른 이들보다 월등했어. 그 빙군의 진전을 이은 내가 평범할 수는 없잖아? 중원에 나가면 나 또한 최강으로 평가받을 거다.”맹이도의 장담에 우설금은 반박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런 대화가 익숙하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승리할 것이고 곧 빙궁의 주인이 된다. 네가 떠돌아다니면서 용병으로 벌어봐야 얼마나 벌겠어? 내 옆에서 머무는 게 어떠냐?”

우설금은 질척거리는 맹이도의 시선을 피하며 입을 다물었다. 굳이 대답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북해에서 부귀영화를 이루게 해주마. 구양상보다 더 존귀한 여인이 되게 해주겠다. 어떠냐?”

맹이도는 이 정도의 제안이면 우설금이 충분히 그를 따르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표정의 변화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싸늘한 기운이 더욱 짙어졌다.

“냉정하고 고고한 분위기의 여자가 가치 있을 때도 있지만 그것도 때를 잘 타야 한다. 이제 마음을 열고…….”

맹이도는 달콤한 말을 쏟아내며 우설금에게 다가갔다.

우설금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그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자신의 말이 먹혔다고 생각한 맹이도가 은근슬쩍 우설금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 했다.

“……나를 따르면 충분한 보상이 주어질…… 으악!”

맹이도의 몸이 강한 반탄력에 튕겨 나가며 막사를 무너트리고 내동댕이쳐졌다.

“어?”

어떻게 된 일인지 맹이도는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의 옆으로 호위 병사 둘이 붙었다.

“괜찮으십니까?”

“으, 이게 괜찮아 보이냐?”

맹이도는 주춤거리며 일어나 무너진 막사 한중간에 고고하게 서 있는 우설금을 노려봤다.

그녀가 입은 붉은 옷이 강렬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 느낌이 두려움인지 아니면 미모 때문인지 불분명했다.

“……고수였나?”

맹이도는 주춤거리며 우설금 앞으로 다시 접근했다. 자신은 빙군의 대제자로 북해 최강의 용사였다. 중원에서도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토해내며 맹이도가 음산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오늘 네년을 무릎 꿇리지 않는다면 내 성을 갈겠다!” 맹이도의 몸에서 하얀 서리가 뻗어 나왔다. 극한빙백신공이 폭죽처럼 우설금을 향해 쏘아졌다.

**

“흐음, 내상을 치료할 수 있다고요?”

구양상은 침상에 비스듬히 누운 채 주석하를 노려봤다.

사실 그녀는 주석하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호수 주변을 오가는 놈을 엄소교가 잡아서 인질로 대사형에게 넘겼다는 정도였다. 낮에는 대사형과 대립하느라 신경 쓰지 못했으니 얼굴을 제대로 확인한 것도 지금이 처음이었다.

“저도 솔직히 믿기 힘듭니다만 우리가 지금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지 않습니까?”

엄소교가 옆에서 지원사격을 했다.

“그렇긴 한데…….”

구양상이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다시 주석하를 훑었다. 미끈하게 생기긴 했지만 그게 전부인 자로 보였다. 의원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젊어 믿음이 가지 않았다.

“내상을 치료하는 단약이라도 있는 건가요?”

“아닙니다. 저의 내기로 치료할 겁니다.”

빙군의 진전을 이어 비슷한 내력을 소유한 구양상이라면 주석하가 치유하기 어렵지 않다.

“하아,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 제 내공은 좀 특이하거든요. 북해 한기의 진수가 모인 한빙담이 아니라면 치유가 힘들어요. 설사 한빙담에 몸을 담그더라도 며칠은 걸릴 내상이라…….”구양상은 ‘당신은 할 수 없다’라고 딱 잘라서 말하지 않고 적당히 돌려서 거절을 표했다.

주석하는 빙군이나 구양상, 또는 맹이도가 내공을 쌓은 장소가 한빙담이라고 알아들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한빙담에 가시는 것이…….”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한빙담에 들어가려면 북빙패가 있어야 하는데…… 아,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죠.”

구양상이 입을 닫고 물러가라고 손짓했다.

주석하는 구양상의 한쪽 팔을 힐끔 살폈다. 그러잖아도 새하얀 피부가 더 하얗게 변해 있었다. 말하는 동안 그쪽 팔을 꼼짝 못 하는 것으로 보아 이미 마비 단계에 이르렀음이 확실했다.

이래서야 구양상은 맹이도와 싸우기는커녕 제대로 몸을 보전하기도 쉽지 않을 듯했다.

구양상의 뜻을 눈치챈 엄소교가 주석하에게 말했다.

“그만 가지? 소궁주께서 싫다고 하신다. 포기해라.” 머뭇거리던 주석하는 마지막 패를 꺼냈다.

“소궁주님, 그쪽 팔 말입니다. 그대로 두면 완전히 마비됩니다. 얼른 치료하셔야 합니다. 내상 치료가 어렵다면 팔만이라도…….”

주석하의 지적에 구양상은 한쪽 팔을 이불로 쓱 덮고는 고개를 저었다.

“알아요. 하지만 지금은 치료가 어려워요. 나중에 한빙담으로 가서…….”

“내일이면 대사형이 쳐들어올 건데요?”

구양상의 눈매가 불쾌한 듯 올라갔다.

“그러니까…… 마지막 기회란 말입니다.”

주석하의 고집에 엄소교도 마지못해 지원했다.

“소궁주님, 한번 시도해보죠. 제가 보기에 내상이야 그렇다손 쳐도 팔은…… 자칫 팔이 마비라도 되면…….”

“하아! 극한빙백신공으로 입은 상처가 어떻게 되는지는 나도 잘 알아요.”

“해보고 그만두셔도 늦지 않습니다.”

주석하의 거듭된 주장에 구양상이 마지못해 수락했다.

“좋아요. 효과가 없다면 혼날 줄 아세요.”

막상 허락이 떨어지자 엄소교는 찜찜한 표정으로 주석하에게 눈짓했다.

주석하는 소궁주 옆으로 가서 팔을 살폈다. 엄소교가 옆에서 이불을 걷어내자 하얗게 변한 팔이 드러났다.

극한빅뱅신공에 당한 팔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구양상도 같은 신공을 익혔으나 맹이도에 비해 그 성취가 낮아 속수무책이었다. 내공이라도 정상이라면 운기로 해결하겠지만 지금은 내상을 입어 정상적인 운기가 불가능했다. 덕분에 팔의 부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가능하겠니?”

엄소교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물론이죠.”

자신만만한 대답과 달리 주석하는 단전에서 잠자는 빙군의 내력을 어떻게 끌어낼지 걱정했다. 물론 엄소교에게 적당히 찔러 달라고 하면 가능이야 하겠지만 이것을 설득할 방법이 모호했다.

주석하가 구양상의 팔로 손을 가져가자 엄소교가 경고했다.

“그 팔엔 지금 한기가 맺혀 있어서 함부로 만지면 안 돼. 자칫 한기에 중독되면 당신 팔을 잘라야 할지도 몰라.”

“나도 알아요.”

빙군의 극한빙백신공을 경험해봤기에 지금 구양상의 부상이, 또 그 부상을 만지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지 그도 잘 안다. 그렇기에 만지려는 것이다. 그녀의 팔을 건드리는 순간 한기가 그를 공격하면 빙군의 내력이 깨어나지 않을까.

주석하는 엄소교에게 미소로 응답한 다음 조심스럽게 구양상의 팔에 손을 댔다.

차갑다. 손가락으로 뼈를 시릴 듯한 한기가 순식간에 전달됐다. 지금은 일반 사람과 마찬가지인 주석하의 손에 얼어붙은 듯 마비 증상이 일어났다. 과연 대단한 극한빙백신공이었다.

“괘, 괜찮아?”

놀란 엄소교가 다급하게 물었다.

괜찮지 않다. 하지만 곧 괜찮아질 것이다.

손가락으로 넘어온 한기에 단전의 내공이 금방 반응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다섯 내력이 모두 반응했지만 곧 빙군의 내공이 독자적으로 움직였다. 빙군의 내력은 혈맥을 돌며 손가락으로 침범한 한기를 치유했다. 당연하게도 맹이도의 극한빙백신공 성취는 빙군에 미칠 리가 없어 치유가 어렵지 않았다.

주석하가 구양상의 팔을 붙잡고 놓지 않자 빙군의 내력이 그의 손으로 몰려가서 한기의 근원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점차 주석하와 구양상의 주변에 한기가 내렸다.

엄소교는 돌변한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주석하에게 문제가 생긴 것인지 아닌지 판별하기 힘들었다. 한기에 당한 것이라 보기엔 주석하의 표정이 너무 평온했다.

구양상는 내심 놀라고 있었다. 사실 주석하가 치료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처음에 치료를 허락하지 않은 이유는 주석하가 다칠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팔을 잡고도 주석하는 당연히 있어야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극한빙백신공에 마비되어 손을 움직이기 힘들어야 하는데 그런 기미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주석하의 손으로부터 알 수 없는 기운이 그녀의 팔을 감쌌다.

그 기운은 매우 부드러워 그녀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차가운 성질의 내력이면서도 어쩐지 그녀의 내력과 조화를 이뤘다. 한빙담에서 내공을 연마하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외부에서 온 주석하가 한빙담에서 무공을 연마했을 리가 없으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아.”

점점 편안한 기분이 들자 구양상은 나지막이 신음을 냈다.

엄소교의 눈이 동그래졌다. 뭔가 제대로 진행되는 기분이었다.

단전을 뛰쳐나온 빙군의 내력은 금방 사라지지 않고 구양상의 팔에서 한기가 사라질 때까지 유지됐다. 덕분에 주석하는 팔이 완치될 때까지 빙군의 내력을 운용할 수 있었다.

점차 빙군의 내력이 단전으로 돌아갔다.

주석하는 잡았던 그녀의 팔을 놓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음…….”

묵직한 신음을 터트리며 구양상은 팔을 놀려봤다. 놀랍게도 팔을 마비시켰던 한기가 깨끗하게 사라졌다.

구양상이 팔을 자유롭게 움직이자 엄소교가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소궁주님! 팔이, 팔이 움직여요!”

“팔이 당연히 움직이지, 그럼 안 움직이겠니?”

핀잔이 섞여 있었으나 구양상의 목소리에도 기쁨이 서려 있었다.

엄소교가 흥분해서 주석하의 머리를 툭 때렸다.

“잘했어. 정말 치유가 가능하네. 그럼 내상도 되겠지?”

“당연히 내상 치료도 가능하죠.”

주석하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구양상을 바라봤다.

그와 시선을 마주친 구양상이 고민하더니 침상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이름이 뭐라고 했죠?”

“주석하입니다.”

“네, 주 소협, 좋아요. 덕분에 몸이 많이 좋아졌어요. 가능하다면 내상 치료도 부탁하고 싶어요. 그런데…… 이렇게 도와주는 이유가 있겠죠? 원하는 게 뭔가요?”드디어 협상까지 왔다.

주석하는 본심을 드러냈다.

“극한빙백신공을 익히고 싶습니다.”

구양상과 엄소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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