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독군 (1)
주석하는 갈림길에서 가장 오른쪽으로 난 동굴로 몸을 틀었다.
“이쪽이야?”
도수가 옆으로 따라붙었다.
“그런 것 같아. 확실하진 않지만. 조심해. 동굴 바닥과 벽에 독이 있어.”
주석하는 도수를 옆으로 당기면서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무심코 화섭자로 동굴 바닥을 비춰보던 도수가 기겁했다.
“흐악!”
습기가 많아 미끄러운 바닥에 각종 벌레가 기어 다니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전갈이나 지네처럼 독을 품은 독충으로 추정했다.
끔찍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에 주석하는 내력을 운기하여 독충의 접근을 막으면서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으아악!”
뒤에서 유비연의 비명이 들려왔다. 이제야 독충을 발견했나.
다소 곤란한 비명이 들렸으나 주석하는 깔끔하게 무시했다. 그러기에 누가 따라오랬나.
예상보다 동굴은 길었다. 독군의 무공을 얻겠다는 의지가 없었다면 일찌감치 포기했을 것이다.
동굴은 중간에 작은 광장과 연못을 지났다. 화섭자에 비친 연못물이 시커멓다. 수많은 독이 녹아 있는 독수가 분명했다.
“발 안 빠지도록 조심해. 독이야.”
그는 괜히 소리를 높여 도수에게 경고했다. 이 경고가 유비연에게도 들리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아마도 독군은 이곳에서 독공을 연성했을 것이다. 정파인들이 쳐들어온 위기의 순간 가장 자신 있는 전장이 바로 이 동굴 안이었기에 이곳에 은신한 것이다.
“석하야, 넌 어떻게 독을 잘 알아?”
“나도 몰라. 그냥 독을 접하면 느낌이 와.”
대충 적당히 대답했다. 유비연은 과거에 그가 당문과 부딪치는 장면을 목격했었지만 도수는 그렇지 않다.
피부에 느껴지는 독이 점점 강해졌다. 마치 바늘로 찌르는 듯한 충격이 왔다. 단전에서는 끊임없이 내력이 꿈틀거리고 코와 입에서는 호흡이 막혔다.
옆에서 따라붙는 도수도 피부를 자극하는 어떤 것을 느끼는 모양이다. 인상을 팍 쓰면서 행동을 더욱 조심스럽게 했다.
새삼 도수가 예전에 비해 엄청나게 무공이 늘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암군에게 사사한 후 도수는 중원사룡의 수준을 넘어섰다. 물론 흑도팔군 수준에는 아직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과거에 비하면 그야말로 괄목상대한 성장이다.
그런 도수가 힘들어하는 것으로 보아 동굴 진입은 여기가 한계인 듯했다. 아직 동굴의 끝이 멀었기에 이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스스스슥-
바닥을 기는 소음이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낀 도수가 화섭자를 아래로 비췄다. 검고 붉은 독충이 무수히 기어오고 있었다.
“허억!”
도수가 기겁해서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여기까지인가. 주석하가 느끼는 동질적인 기운이 더 강해지긴 했으나 동료를 데리고 더 들어가기는 어려웠다. 그는 뒤쪽을 힐끔 살폈다. 유비연 역시 일정 거리를 두고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결심한 주석하는 동굴 안을 향해 크게 소리를 질렀다.
“독군 어르신! 이야기 좀 합시다!” 쩌렁쩌렁 울림이 되돌아왔으나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없는 것 같은데?”
바닥을 살피던 도수가 연신 뒷걸음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바닥을 기어 다니는 독충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제는 독충을 피해 전진하기는커녕 오히려 뒤로 물러나야 할 판이었다.
“으으으.”
유비연은 완전 사색이 되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녀는 차마 그들 옆으로 가까이 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어 진퇴양난에 빠졌다.
“퇴각해야 할 것 같아.”
도수가 소매를 끄는 순간 주석하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주석하는 동굴 깊숙한 곳을 노려봤다.
움직임이 느껴진다.
엄청나고 거대한 무엇이 다가오고 있다.
스르르르-
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리고 도수가 든 화섭자의 불빛이 미치는 곳에 어른거리는 그림자가 등장했다.
“허억!”
놀란 도수가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그 와중에도 화섭자는 상대를 공격하듯 앞으로 들이댔다.
주석하도 나타난 괴물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이, 이건!”
뱀이었다. 그것도 머리가 두 개인 거대한 뱀이었다. 몸통이 허벅지만큼이나 굵은 뱀이 혓바닥을 날름대고 있었다. 뱀의 길이는 족히 십 장은 되었고 비늘 색깔은 거무튀튀했다. 다만 두 개로 나뉜 머리는 연녹색빛깔이 감돌았다.
어둠 속에서 뱀을 만나니 그야말로 공포였다.
다행히 뱀도 화섭자의 불을 경계하는 듯 쉽게 그들을 공격하지 못했다.
뱀을 살피던 주석하는 독충이 뱀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마치 뱀을 두려워하는 듯했다.
기겁한 도수의 비명이 울렸다.
“흐으아! 이런 뱀 본 적 있어?”
“아니, 없는데.”
뱀이 두 개의 머리를 빳빳하게 세우고 다가오자 도수가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서, 석하야! 어떻게 좀 해봐!”
미간을 찌푸리던 주석하는 흑검소로 검기를 뿌리며 뱀을 공격했다.
깡-
놀랍게도 뱀을 건드리는 순간 마치 강철에 부딪힌 듯한 강한 소음이 일었다.
“천년쌍두사!” 똑똑한 유비연이 정체를 알아냈다.
천년쌍두사千年雙頭蛇)는 천년을 산다는 영물이다. 지닌 독이 매우 강하여 물리면 즉시 사망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뱀을 전문적으로 잡으러 다니는 땅꾼도 평생 보기 힘들 만큼 희귀한 놈이었다.
천년쌍두사가 갑자기 나타난 이유는 이곳에 독군이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연일까.
천년쌍두사가 쉭쉭 소리를 내면서 접근하자 주석하는 재빨리 소리쳤다.
“독군 어르신! 지금 상태로는 이 뱀의 안전을 책임질 수 없습니다!”그의 고함이 메아리가 되어 동굴 내부를 울렸다.
쿵!
동굴 안에서 둔탁한 발소리가 울렸다.
천년쌍두사의 위협을 버티며 동굴 깊은 곳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자니 거대한 체구를 지닌 한 중년인이 나타났다.
몸집이 일반인보다 두 배는 됨직한 거구였다. 팔, 다리, 배…… 할 것 없이 살이 쪄서 출렁이는 데다 둥그스름한 얼굴에는 검은 수염이 터부룩하게 나 있었다. 머리카락은 허리 아래에 이를 만큼 길었다. 게다가 입은 옷은 넝마조각이나 다름없었다.
마치 수십 년을 산에서 산 듯한 몰골이었다.
“으하하! 감히 천년쌍두사를 위협하겠다고?”
중년인이 등장하는 순간 주석하는 이자가 바로 독군임을 확신했다. 내기의 친숙함이 알려 주고 있었다.
“독군 어르신?”
“네놈은 누구냐?”
“주석하입니다. 강호에서는 흑검서생이라고…….”
“처음 듣는 놈이군.”
독군은 그의 정체에 별 관심이 없는 듯했다.
다만 독군의 부리부리한 눈이 주석하를 향했다가 도수에 머무른 후 마지막으로 멀리 떨어진 유비연을 바라보았다.
“이놈들! 네놈들도 화산과 점창파냐?”
“저, 저희는 그게 아니라…….”
“거짓말 마라! 저놈은 화산파 복장인데?”
독군이 유비연을 가리켰다.
주석하는 말문이 턱 막혔다. 독군의 말이 틀리지 않았으니까.
“어제부터 정파 놈들이 몰려와서 난리를 부리더니 결국 여기까지 쳐들어왔군. 잠자는 호랑이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
독군이 이빨을 드러냈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거구의 독군이 드러낸 누런 이빨은 실로 위협적이었다. 게다가 독군이 적의를 드러내자 천년쌍두사도 머리를 빳빳하게 세우고 독군의 옆에서 혀를 날름댔다.
기절할 것 같은 장면에 주석하는 간신히 마음을 진정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어르신! 오햅니다! 오해! 일단 말씀 좀 들어보시죠.”
“뭣이라? 오해? 네놈들이 나를 이곳까지 몰아붙일 때는 언제고? 말이 되는 소리를 씨부려야지!”
독군이 콧방귀를 푹푹 뀌면서 적의를 드러냈다.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주석하는 말문이 막혔다. 독군은 흑검서생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화산파가 아니라고 우겨도 전혀 먹히지 않았다. 해치려고 온 것이 아니란 점을 증명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었다.
“여기까지 왔을 때는 각오했을 터! 그럼 죽어라!”
독군이 앞을 가리켰다.
순간 천년쌍두사가 번개처럼 주석하를 향해 쏘아왔다. 가히 빛과 같은 속도에 경악한 주석하는 본능적으로 흑검소를 이용해서 덤벼드는 뱀을 막았다.
깡!
커다란 충격이 전해지며 상체가 휘청거렸다. 천년쌍두사는 괴물이었다.
놀라고만 있을 주석하는 아니었다. 그는 내력을 불어넣어 흑검소를 휘둘렀다. 검강이 천년쌍두사를 강타했다.
콰앙!
천년쌍두사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동굴 벽에 처박히고 동굴이 마치 무너질 듯 진동했다.
“이놈이!”
주석하의 가공할 무위에 놀란 독군이 분노를 폭발시켰다.
자신이 아끼는 천년쌍두사를 때렸다고 생각한 독군이 검은 쌍장을 뿜어냈다. 가공할 독이 주석하에게 몰려왔다.
독에 닿기도 전에 단전의 내공이 난리인 것을 보니 극독이 확실했다.
벽에서 튕겨 나온 천년쌍두사가 다시 주석하에게 진액을 내뱉었다.
기분 나쁜 감각이 폭증했다. 천년쌍두사의 침을 피하면서 극양염천신공을 일으켜 독군의 쌍장을 응수했다.
콰앙!
엄청난 충격파에 주석하는 동굴 뒤편으로 밀려났다. 독군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극양염천신공은 불을 기본으로 했기에 독과는 상극이어서 독의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푸스스스-
천년쌍두사의 침이 떨어진 동굴 벽면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침에 맹독이 포함되어 있음을 의미했다.
“오호! 제법 재주가 있구나! 오늘 네놈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성을 갈겠다!”독군의 분노가 더욱 커졌고 천년쌍두사도 복수를 다짐하듯 혀를 날름거렸다.
주석하는 뒤쪽의 도수와 유비연에게 피하라고 눈치를 줬다. 두 사람 모두 입을 쩍 벌린 채 넋이 나가 있었다. 다른 무공과 달리 독공은 다루기 까다로워서 독군은 두 사람이 상대할 수준이 아니었다.
“전 적군이 아니라고요! 우군입니다, 우군!”
“헛소리 말아라!”
독군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뭉클 뿜어졌다. 만독지체인 몸에서 나온 독이 주변을 중독 시키고 있었다.
“허억!”
그 모습을 본 주석하는 기겁해서 과연 독공을 배워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 순간 천년쌍두사는 주석하를 포기하고 도수에게로 접근했다.
쉭쉭쉭-
뱀의 코에서 흘러나오는 비릿한 숨소리와 바닥을 기는 소리가 공포를 자아냈다.
“으아악!”
뱀이 다가오자 유비연은 기절할 듯 놀라 도수 뒤로 숨었다. 도수도 도망치고 싶었으나 주석하만 홀로 남겨둘 수 없어 차마 몸을 돌리지 못했다.
도수는 어쩔 수 없이 검으로 천년쌍두사의 머리를 후려쳤다.
깡-
뱀이 도검불침이라니!
“으아악! 이 뱀 새끼가!”
도수가 뒤로 밀려나며 허둥대자 뒤에서 유비연이 재빨리 정정했다.
“새끼가 아니라 어미인데요?”
“어쨌든!”다시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뱀이 공격해오자 도수는 황급히 검으로 막으면서 뒤로 물러났다. 걸음이 꼬인 두 사람이 뒤엉켜 바닥을 뒹굴었다.
“으아! 난 뱀 싫어!”
“나도 싫어!”
도수는 동굴 벽에 몸을 기대며 간신히 천년쌍두사의 공격을 차단했다.
그사이 주석하는 독군과 수차례 초식을 교환했다.
단순한 싸움이라면 독군은 어려운 대상이 아니었다. 다만 독군 주변에서 맴도는 독충을 비롯한 독극물이 심히 눈과 코를 어지럽혔다. 이것은 심리적인 문제였다.
게다가 독군의 몸에서 뿜어지는 독기가 단전의 기운을 일깨웠다. 그가 현재 사용하는 내력은 염군의 것이다. 이 상태에서 독군의 내력이 제멋대로 독을 치유한답시고 몸속을 일주천하니 염군의 무공을 제대로 발휘하기 힘들었다.
독군의 독기가 큰 위협이 아니더라도 그만큼 손해였다. 주석하는 독군과의 싸움에 제대로 집중하기 쉽지 않았다.
“어쭈? 이놈이 제법 독을 버티네? 으하하! 싸울 맛이 팍팍 난다!”
독군이 독기를 더욱 강하게 뿜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