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검천하-166화 (166/273)

166화 독군 (2)

독군의 무공은 정교함이 부족했다.

둔해 보이는 육체만큼이나 움직임이 느렸다. 반면 그 단점을 몸에서 피어나는 독기가 상쇄했다.

뭉클뭉클-

시커먼 독기가 독군을 감쌌다. 이제는 독무에 가려 몸의 윤곽이 흐릿하게 보일 정도다.

물론 상대하기 쉽다는 뜻은 아니다. 그만큼 더 어려웠다. 게다가 주석하는 독군과 싸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떻게든 설득해서 독군의 무공을 얻어야 하는 처지다.

당연히 주석하는 무공에 살의를 담기 어려웠다.

“으하하! 겁먹었냐?”

주석하가 연신 피하기만 하자 독군이 더욱 기세를 올리며 그를 압박했다.

다시 독군의 쌍장이 그를 노렸다. 독이 어린 쌍장에 그대로 몸을 내줄 수는 없기에 주석하는 뒤로 물러나며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절정의 화판답공이 이 순간 위력을 발휘했다.

“으응?”

허공을 자유롭게 떠다니는 주석하의 무공에 독군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네놈! 화군의 제자냐?”

“제자는 아닙니다만 무공을 사사했습니다.”

“이놈! 역시 거짓말했구나! 정파의 끄나풀이었어! 그것도 왕끄나풀!”

화군이 정파십존이다 보니 오해를 풀 길이 더 사라졌다. 답답해진 주석하는 극양염천신공으로 응수했다.

양쪽의 장력이 만나면서 격렬한 충격파가 터졌다.

과연 독군이었다. 몇 차례의 접전만으로도 독군의 심후한 공력이 다른 흑도팔군과 차이 없음을 확인했다.

“크아아! 그러잖아도 놈들 때문에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네놈을 죽여 화풀이해야겠다!”

독군의 공세가 점점 강해졌다. 공세가 거칠어지면서 독기 또한 더욱 끈적끈적하게 그를 위협했다.

주석하는 계속 대응하면서 독군의 독기를 극양염천신공으로 태웠다.

싸움이 길어지고 격화되자 주석하는 당황했다. 언제 자하검존을 비롯한 정파에서 들이닥칠지 몰랐다.

독군도 곤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동굴 밖에 화산파와 점창파가 주둔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주석하와 그 동료를 정파에서 탐색 차 진입시킨 선발대로 간주했다.

자하검존이나 낙월우사도 아닌 일개 젊은이와 동수를 이루다 보니 독군은 점점 화가 났다.

“으하하! 쥐새끼 같은 놈! 남자라면 제대로 붙자!”

생각만큼 화끈한 공세가 이어지지 않자 독군은 조바심을 드러냈다. 시간이 부족함을 점점 강하게 느낀 탓이다.

화판답공으로 요리조리 피하다가 간간이 장력으로 대응하는 주석하를 독군은 잡기가 쉽지 않았다. 장기인 독이라도 통하면 간단하겠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독마저 무용지물이었다.

“좋아! 쌍두야! 저놈들부터 죽여라!”

독군은 공격 목표를 전환했다. 주석하를 처리하는 대신에 그 동료를 잡는다.

지금까지 천년쌍두사는 도수와 유비연을 위협하면서 독군의 싸움에 개입하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독군의 명령이 떨어지자 순식간에 공세를 전환했다. 이제는 단순한 위협이 아니라 목숨을 뺏으려는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쾅!

천년쌍두사는 꼬리로 도수와 유비연의 퇴로를 차단하고 머리에서 가공할 독기를 뿜어냈다.

도수는 검으로 뱀의 머리를 찌르고 유비연도 마찬가지로 검을 휘둘러 몸통을 자르려 했다.

깡!

그들의 공격은 둔탁한 금속성만 울렸을 뿐 천년쌍두사에게 전혀 타격을 주지 못했다. 천년쌍두사의 피부는 강철보다 단단하여 도검이 불침했다. 유비연의 공격은 기별도 주지 못했고 도수의 전력을 다한 공세도 천년쌍두사를 움찔하게 했을 뿐이다.

반면 천년쌍두사의 콧김과 타액은 닿는 곳마다 독으로 물들이며 시커먼 연기를 피워 올렸다. 순식간에 주변이 독무로 가득 찼다.

“으으으!”

도수는 신음을 터트리며 검을 꽉 쥐었다. 사람이 아닌 괴물과 싸우는 것은 처음이었다.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검이 먹히지 않으니 암습에 특화된 검법을 사용하는 그로서는 모든 무공이 무용지물이다.

유비연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무공으로는 천년쌍두사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징그러워서 눈을 뜨기도 어려웠다.

치이이익-

독기에 닿은 의복이 시커멓게 변색했다.

그들이 두려움에 몸을 떠는 순간 천년쌍두사의 날쌘 공격이 재개됐다. 독군의 지시를 따르는 천년쌍두사는 지금까지와 달리 매우 위협적이었다. 머리 움직임이 훨씬 빨랐고 뿜어내는 독기 또한 더욱 짙었다.

주석하는 도수가 천년쌍두사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애초부터 눈치 챘다. 검으로 해결할 수 없고 독기에도 면역이 없어 속수무책이란 것까지.

어쩔 수 없이 주석하는 도수를 돕지 않을 수 없었다.

휘몰아치는 독군의 쌍장을 피하고 잠시 틈이 생긴 상황에서 주석하는 흑검소로 천년쌍두사의 몸통을 가격했다.

콰앙-

벨 수 없으니 충격을 가하는 방법뿐이다. 내력이 담긴 흑검소는 태산 같은 충격을 천년쌍두사에 가했다.

도수를 물려던 천년쌍두사는 때 아닌 주석하의 급습에 미처 대응하지 못했다.

“끄아악!”

고통스러운 울음을 터트리며 천년쌍두사가 몸부림쳤다. 그 덕에 도수와 유비연은 간신히 위기에서 빠져나왔다.

“이놈이 감히 쌍두를!”

독군의 분노가 폭발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천년쌍두사가 두드려 맞았으니 주석하를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았다.

독기 가득한 쌍장을 앞세우고 천년쌍두사에게 정신이 팔린 주석하를 공격했다.

콰아앙!

쌍장이 주석하의 등에 찍혔다.

푸시시시-

옷이 타들어 가고 피부에 선명한 손자국이 새겨졌다. 단전에서 독군의 내력이 미친 듯 용솟음쳤다.

등에 충격을 받는 순간 주석하는 앞으로 꼬꾸라졌다. 잠시 한눈을 판 대가는 컸다.

정신을 수습할 틈도 없이 기회를 잡은 독군이 그를 덮쳤다. 온몸을 독으로 무장한 독군이기에 근접전일수록 더 큰 위력을 발휘했다.

독군의 두 손이 주석하의 어깨를 뒤에서 짓눌렀다. 강한 압력에 주석하는 바닥에 엎어졌다.

치이이익-

강한 독기가 독군의 손에서 흘러나왔고 주석하의 의복에 구멍이 뚫렸다. 그 과정에서 독이 전신에 충격을 가하면서 침입했다.

고오오오-

놀란 것은 독군이었다. 만물을 중독 시키는 그의 독공이 주석하의 몸속에서는 마치 대해에 빠진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기에 독군은 얼이 빠졌다.

주석하 또한 바로 대응하기 쉽지 않았다. 내기가 몸에 침입한 독기를 제거하느라 격동을 일으키자 다른 내력을 제대로 운용하기 힘들었다.

두 사람이 서로 뒤엉켜 독군은 하독하고 주석하는 해독하는 사이 도수와 유비연은 더욱 위험에 빠졌다.

그들을 해치우기로 작정한 천년쌍두사는 더욱 흉포해졌고 독에 영향을 받은 그들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검으로 놈을 후려쳤으나 그 효과는 잠시뿐이었다.

“으아악!”

순식간에 천년쌍두사가 유비연의 몸을 휘감고 머리로는 도수를 공격했다. 도수는 유비연을 구하려 했으나 방법이 없었다.

깡!

검의 위력도 현저하게 떨어졌다. 중독된 그는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으며 천년쌍두사의 공격을 피했다. 머리 위로 천년쌍두사의 타액이 스쳐 지나갔다.

유비연은 사실상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몸에 침습한 독기는 두 번째 문제였다. 그보다 그녀의 몸을 감은 미끈미끈한 뱀의 비늘에 미칠 것 같았다. 가장 싫어하는 뱀에 감겨 죽을 운명이라니!

푸시시식-

독기가 옷을 태우고 피부가 검게 변하기 시작했다. 강하게 몸을 죄는 뱀의 몸통을 빠져나갈 수 없자 그녀는 넋이 나갔다.

절명의 순간 그녀는 동굴 천장에서 쏟아지는 하얀 빛을 발견했다. 그 빛은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다. 그 빛이 시야를 꽉 채우는 순간 그녀는 정신을 잃었다.

콰아아앙-

날카로운 검강이 독군의 등을 직격했다.

기습!

그 검강은 독군의 호신강기를 깨트리고 등을 깊이 벴다. 붉은 피가 허공에 흩날리는 순간 독군은 경악해서 몸을 일으켰다.

콰앙-

상대가 있다고 예상되는 곳을 향해 독군은 쌍장을 뿌렸으나 흰 검강에 여지없이 쌍장이 부서져 나갔다.

상대는 그의 무공을 능히 파괴하는 최강자였다.

“누구냐!”

분노한 독군은 눈을 부릅뜨고 앞을 노려봤다.

흰 수염을 휘날리는 선풍도골의 노인. 그를 본 순간 독군은 쓴웃음을 삼키며 선혈을 울컥 뱉었다.

“자하검존! 네놈이 암습을!”

그 순간 자하검존은 빛살처럼 공세를 취했다. 검강이 눈부신 속도로 독군의 허리를 갈라왔다.

“미친!”

독군은 감히 상대할 생각을 못 하고 몸을 굴렸다. 주석하와 뒤엉킨 독군의 거대한 체구를 스친 검강이 바닥을 때렸다.

콰직!

동굴 바닥이 쩌적 갈라지면서 큰 진동이 엄습했다. 동굴 천장에서 흙무더기가 우수수 떨어졌다.

이 순간 독군에게 주석하는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다. 목숨을 노리는 위협은 따로 있었다.

전력을 다한 검존의 공세는 독군이라도 쉽게 막을 수 없다. 평소라면 자하검존과 평수를 이루었겠지만 지금 주석하와 싸우면서 과다하게 내력을 소모한 독군은 버티기 쉽지 않았다. 하물며 자하검존의 공세에 선공을 뺏긴 상황이었다.

콰직!

다시 검강이 독군의 다리를 노리고 일격을 가했다.

독군은 허겁지겁 피하면서 독장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자하검존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자하검존은 독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에서 교묘하게 벗어나 검강을 뿌렸다. 독군으로서는 힘겨운 싸움의 연속이었다.

간신히 독군에게서 벗어난 주석하는 그제야 무슨 상황인지 깨달았다.

자하검존이 언제 나타났는지 그도 알지 못했다. 다만 자하검존이 그를 내버려 두고 독군부터 공격했음은 확실했다. 지금도 자하검존은 그를 안중에 두지 않고 독군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당연히 자하검존의 검강이 번쩍일 때마다 독군은 생사를 오갔다.

어떻게든 독군을 죽이는 게 자하검존의 목표다.

주석하는 그 사이 도수와 유비연의 동정을 확인했다. 천년쌍두사의 공격을 받았으니 대응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인가? 독군이 생사의 기로에 처하자 영물인 천년쌍두사는 도수와 유비연을 포기했다. 천년쌍두사가 미친 듯이 용트림하며 자하검존에게 달려들었다.

콰앙!

과연 자하검존의 검강은 위력적이었다. 검강이 스치는 순간 도검불침의 천년쌍두사 비늘에 검붉은 상흔이 새겨졌다. 충격을 받은 천년쌍두사가 몸을 꿈틀거렸다. 하지만 고통을 참고 독군을 보호하고자 자하검존에게 덤벼들었다.

도수와 유비연은 동굴 바닥에 쓰러져 꼼짝도 하지 않았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불분명했다. 지금 당장에는 목숨이 붙어 있더라도 천년쌍두사의 독에 중독되었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했다.

게다가 지금 당장 급한 건…….

천년쌍두사를 해치우지 않고는 독군을 처리할 수 없다고 여긴 자하검존이 내공을 모두 집중해서 검강을 쏟아냈다.

서걱-

놀랍게도 거대한 천년쌍두사의 몸통이 잘려나갔다. 과연 자하검존이었다.

천년쌍두사가 무너졌다.

“쌍두야!”

독군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울부짖었다. 그는 제정신이 아닌 듯 마구잡이로 자하검존에게 덤벼들었다.

이를 놓칠 자하검존이 아니었다.

독군이 흥분할수록 그는 더욱 냉정해졌다. 애초에 독만 아니라면 독군은 그의 상대가 아니었다. 일정 거리를 두고 외곽에서 검강으로 공략하는 전술은 완벽하게 독군의 공세를 묶었다. 게다가 지금 독군은 이성마저 잃고 있으니.

번쩍!

흰빛이 빛살처럼 뻗었다. 동굴의 어둠을 밝힌 하얀 빛이 독군을 직격했다.

“크윽!”

이번에는 가슴에 큰 상흔이 남았다. 독군이 최강고수가 아니었다면 목숨이 끊어졌을 깊은 상처였다.

자하검존의 신형이 허공에서 방향을 전환했다.

“마지막 일격이다!”

독군이 쓰러지면 흑도팔군은 사실상 끝이다. 향후 정파십존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다. 무림의 주도권은 정파로 돌아오게 되고…….

자하검존은 찬란한 미래가 이번 한 수로 결정되리라 생각했다. 사파를 격파하고 정파의 초석을 다지는 일 검이었다.

번쩍!

하늘에서 내리치는 벼락처럼 자하검존의 검강이 독군의 머리로 쏟아졌다. 강호 정의를 앞세운 최강의 검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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