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무적멸사대 (1)
“무, 무적멸사대!”
유비연이 신음을 토했다.
무림맹에 대해서 수도 없이 들어왔던 그녀였기에 금방 포위한 자들이 누구인지 알아챘다.
무림맹주의 손과 발이 되어 모든 궂은일을 소문 없이 처리한다던 무적멸사대였다. 구대문파의 주요 요원, 십여 명으로 구성된 무적멸사대는 무림맹 내부의 배신자를 처리하거나 사파의 무림 공적을 제거하는 일을 주로 했다. 때로는 무림맹을 위해 크고 작은 음모나 공작에 관여하기도 했다.
다만 이들은 소리소문없이 일을 처리했고 구린 임무를 가리지 않았다. 이들은 무림맹주의 검이었고 칼이었다. 이들은 협의나 정의를 표방하지 않았다. 오직 무림맹, 아니 무림맹주 한 사람을 위한 결사대였다.
말로만 들었던 맹주 친위대를 직접 보게 되자 유비연은 할 말을 잃었다.
주석하가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었던가. 절대 살려둘 수 없는 천인공노할 인물이었던가. 비록 그녀도 주석하를 살인마라고 비난하며 대들었지만, 그것이 그녀의 본심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주석하가 살인에 빠져드는 것을 막으려고 했을 뿐이다.
적어도 그녀가 평소 생각했던 무림 공적은 주석하 같은 인물이 아니었다.
“아는구나. 그럼 그 무서움도 알겠지.”
무극천존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흑검서생! 순순히 항복하고 무림맹으로 가자! 어떤가?”
위세에 굴복할 주석하가 아니었다.
“오호! 나를 무림맹주로 임명하려고?”
“정신이 나갔구나!”
주석하는 흑검소를 꽉 잡았다. 적의 의도는 이미 파악했다. 저들의 뜻대로 따르면 흑검서생이 아니다.
회귀 후 이번 생을 살면서 남에게 휘둘려 살지 않으리라 결심했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 고강한 무공을 얻으려 했다. 그리고 단전의 내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지금 이제는 그를 휘두를 자는 없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무림맹이, 무림맹주가 그를 걸고넘어지고 있다. 이것들이! 무림맹주면 다인가?
“나는 말이지…… 거치적거리는 놈을 성가시게 처리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걸고 들어오는 놈을 내버려 두는 성격도 아니거든! 무림맹주? 오늘 덕양 왕초와 붙어볼래?”무극천존이 반응하기도 전에 주석하는 번개처럼 앞으로 질주했다.
양손으로 흑검소를 붙잡고 그의 신형이 허공을 날았다. 낙하하며 무극천존을 향해 일격을 날리는 순간이었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포위했던 무적멸사대는 움직이지 못했다. 감히 무림맹주에게 막무가내로 덤비는 미친놈이 누가 있을까. 무극천존의 머릿속에도 주석하가 이런 식으로 달려드는 장면이 없었다.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무림맹주다. 무극천존은 재빨리 쌍장을 앞으로 뻗어 주석하의 공격을 막았다.
흑검소에서 치솟은 검강이 무극천존을 직격했다. 그 공격은 빛처럼 빨랐고 산악처럼 중후했다.
콰아아아앙!
흑검소를 둘러싼 무시무시한 강기가 폭죽처럼 터져나갔다. 두 사람에게서 폭발한 강기의 충격파가 사방을 휩쓸었다. 이 순간, 유비연이나 도수도, 무적멸사대도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모두가 태풍에 휘말린 듯 그 여파를 막느라 급급했다.
사마륜은 완전히 얼이 빠졌다. 이것은 무신武神)들의 대결이었다. 감히 자신이 머리를 내밀 그런 동네가 아니었다.
‘아, 인간이 아니었어. 미친놈이었어!’
사돈 팔촌을 모두 뒤져도 발끝에 미칠 고수가 있을 리 없었다. 저런 고수에게 버릇없이 대들었다니!
터지듯 압박하는 반발력을 견디지 못한 주석하의 신형이 허공으로 밀려 올라갔다.
‘과연 무림맹주다!’
주석하는 내심 신음을 토했다. 방금 그는 혼군의 내력을 모두 쏟아 부었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그 누구보다도 무극천존의 내력은 강했다. 혼군의 내력이 오히려 밀렸다. 짐작했던 대로 무극천존의 무공은, 적어도 내공 면에서는 흑도팔군보다 우위에 있었다.
당연히 주석하는 다른 내력을 더 품고 있기에 이는 치명적인 열세를 의미하지 않는다. 지금은 비록 강함이 부족하지만 지구력만큼은 적보다 다섯 배는 우월한 상황이었다.
어떤 식으로 판을 짜나가야 할지 명백했다. 무극천존의 내력을 소모하게 해야 한다. 그 경우 무극천존을 호위하는 자들이 문제였다. 무극천존 하나라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지만 옆의 이대 호법과 무적멸사대까지 모두 상대하기는 쉽지 않다.
무릎까지 지면에 박힌 발을 빼내며 무극천존은 혀를 내둘렀다. 주석하를 얕본 적은 없다. 그런데 방금의 공격은 상상치 못할 빠름과 무게를 품고 있었다. 게다가 상대의 내력은 거의 자신의 내공에 육박했다.
십존 셋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 우연이 아니었다. 제갈휘도 그를 잘못 평가하고 있었다.
“방금 공격은…… 암천살검?”
“흐흐, 그렇다!”
단 일검으로 승부한다면 암군의 암천살검 만한 무공은 없기에 주석하는 암천살검에 모든 것을 걸었었다. 결과는 무극천존의 무공을 가늠한 것뿐이었지만.
“암천살검의 제자였나?”
무극천존이 도수와 주석하를 번갈아 살폈다.
“제자? 단지 무공을 사사했을 뿐.”
무극천존은 그동안 모았던 정보를 떠올렸다. 주석하의 무공은 흑도팔군 무공의 집결체다. 원래 무공이란 아무에게나 전수하지 않는다. 동일 문파 내에서도 스승과 제자를 따지는 법이다.
그런데 흑도팔군은 제자도 아닌 주석하에게 무공을 전했다. 만일 훌륭한 무재를 지닌 기재가 있어 정파십존에게 각자의 무공을 전하라고 한다면? 아마도 욕을 바가지로 먹을 것이다.
‘어떻게 가능했던 거지?’
당연히 무극천존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럴수록 주석하를 죽이겠다는 사심이 굳어졌다. 녀석을 살려두면 앞으로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녀석은 흑도팔군의 공동전인이니까. 어쩌면 오늘이 녀석을 제거할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무극천존은 전의를 불살랐다.
방금 겨루었던 일합으로 주석하와 단둘이 겨루면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단 녀석의 힘이 빠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무극천존은 양쪽에 선 이대 호법에게 눈짓했다.
그가 한 발 뒤로 물러서자 불호와 도호가 앞으로 나서 주석하의 시선을 차단했다.
주석하는 금방 상대의 작전을 눈치 챘다.
“큭큭! 꼬리를 내리나?”
“네 상대는 따로 있다.”
“맹주? 허접한 새끼!”
누가 무림맹주에게 이런 욕을 할 수 있을까. 무림맹주는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했다.
“허어, 입이 독사로군.”
“네놈은 가슴에 독을 품었어!”독설을 내뱉음과 동시에 주석하는 순식간에 무극천존과 거리를 좁혔다. 이번에는 화판답공까지 써서 이대호법을 넘어 무극천존을 공격하려 했다.
흑검소가 허공에서 춤을 추고 검강이 앞으로 쭉쭉 밀려갔다.
불호와 도호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들은 무극천존에게로 쏟아지는 검강을 적극적으로 차단했다. 불호의 선장과 도호의 불진이 검강과 맞물리며 화려한 폭죽을 터트렸다.
콰아앙-
그 순간 무극천존은 재빨리 뒤로 물러나 무적멸사대의 포위망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대 호법 또한 더는 주석하와 실랑이를 벌이지 않고 맹주를 호위했다. 그들은 마치 맹주와 한 몸인 것처럼 잠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그 빈자리를 무적멸사대가 메웠다.
무극천존을 포기하고 몸을 돌린 주석하에게 무적멸사대가 달려들었다.
‘모두 열여섯!’
그 하나하나가 무적고수다. 비록 그들 개인의 능력은 정파십존에 미치지 못할지라도 그들의 연합 공격은 십존을 아득히 추월한다.
주석하는 사방에서 억누르는 가공할 압박감에 공세를 전환해야 했다.
휘익-
숨을 쉴 틈도 없이 무적멸사대가 검진을 가동했다. 사방에서 요혈을 노리고 검을 찔렀다.
주석하는 주저 없이 백변환영보를 밟았다. 만일 그가 화존으로부터 이 보법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이들을 상대하기가 백배는 더 힘들었을 것이다.
휙-
휘익-
마치 톱니바퀴가 맞물린 기계처럼 무적멸사대의 검진이 돌아갔다. 그 중심에 선 주석하는 점점 가중되는 압력에 시달려야 했다.
검진이 갖춰지자 무적멸사대의 위력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무적멸사대를 깨고 나면 이대 호법을 상대해야 하고 마지막으로 무극천존과 만난다. 이런 방식은 최악이다!’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그의 마음을 읽은 걸까. 도수와 유비연이 끼어들었다. 비록 도수와 유비연은 무적멸사대를 상대할 만큼 강하지 않다. 도수 개인의 능력은 무적멸사대 셋을 상대하는 게 한계이고 유비연은 하나를 간신히 막을 수 있을까.
그렇더라도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다.
그들 두 사람이 참전하면서 주석하는 한결 여유를 찾았다.
도수와 유비연이 제 몫을 하려면 검진의 압박을 이겨내야 한다. 주석하는 흑검소를 이용해서 검진의 압력을 무력화시키며 허점을 노렸다. 덕분에 무적멸사대는 애초의 계획과 상당히 다른 양상의 전투를 벌여야 했다.
점점 격해지는 싸움판을 무극천존이 예리한 눈길로 분석했다.
“과연 흑검서생답군. 무적멸사대 열여섯으로도 압도하지 못하고 있어.”
무극천존이 주석하를 잡겠다고 나섰을 때 제갈휘는 무적멸사대를 데리고 가라고 조언했다. 무극천존은 이대 호법이면 충분하다고 거절했었다. 여럿이 움직일수록 느려지고 정보 또한 새나가기 쉬운 법이다.
그런데도 제갈휘가 물러서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무적멸사대를 대동했다.
만일 혼자서 왔었다면? 무극천존은 눈앞이 아찔했다. 자신이라도 무적멸사대를 와해할 수 있다고 장담 못 한다. 그런데 주석하는 비교적 여유롭게 상대하고 있었다.
“괴물이군.”
“그렇습니다. 사파에서 어떻게 저런 인재가 나왔을까요?”
도호가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
“아미타불, 더 크기 전에 제거해야 합니다.”
불호도 의견이 다르지 않았다.
무적멸사대 열여섯 중에서 하나는 유비연과, 다른 셋은 도수와, 나머지는 주석하를 상대하고 있었다. 무려 열두 명이 형성한 검진 속에서 주석하는 온갖 무공을 선보이고 있었다. 하나같이 눈이 번쩍 뜨일 개세의 무공이다.
“정말 흑도팔군이 힘을 합쳐 길러냈나?”
이해할 수 없는 소리다. 아집 강하고 뭉치지 않는 그들이 무슨 재주로 제자 하나를 기른단 말인가. 그나마 정파십존은 정의라는 이상을 추구하고 있어 겉으로는 서로 협력하는 척이라도 하지만 흑도는 그것마저 안 되는 놈들 아니던가.
주석하를 관찰하면 할수록 무극천존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만약 이런 인물이 정파에서 나왔더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소림에서 기재가 나왔을 때 무당파인 자신이? 무극천존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 와중에 전투는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무적멸사대의 합공이 점점 위력을 발휘하며 주석하를 압박했다.
주석하에게 현재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처음에는 압도적인 내공으로 검진을 깨려 했다. 하지만 그의 내공이 아무리 강해도 이들 열여섯의 내공을 전부 상대할 수는 없다. 검진을 구성한 이들은 구대문파에서 손꼽히는 고수들이어서 예상외로 강했다.
주석하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운중산에서처럼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악군의 음공이다. 다만 여기에서는 그와 맞먹는 내공을 가진 무극천존이 있기에 성공 여부가 불투명했다. 자칫 오히려 내상만 입을 수 있다.
그렇다면…….
결심을 굳힌 주석하는 독군의 내력을 끌어올렸다.
전생에서 얻은 독군의 내력에 천년쌍두사의 내단이 합쳐져서 더 막강해진 상태였다.
우우우웅-
주석하의 손이 순식간에 시커멓게 물들었다. 그와 맞선 무적멸사대는 미처 눈치 챌 수 없었다. 백변환영보를 펼치며 검진 내부를 어지럽게 돌아다니는 주석하의 변화를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마치 꽃이 핀 것처럼 포위 공격 중인 검진이 촘촘하게 돌아가는 순간 주석하의 신형이 회오리처럼 솟구쳤다. 화판답공으로 허공을 밟으면서 그는 검진을 향해 백골음혼공을 뿌렸다.
백골음혼공白骨陰魂功)은 독군의 절정 신공으로 만독지체인 독인만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절정 무공이었다. 현 무림에서 독군을 제외하면 오직 주석하만이 가능했다.
주석하의 손에서 뿜어진 독기가 순식간에 주변을 사지로 만들었다. 시커먼 기운이 엄습하자 무적멸사대는 당황했다. 그들은 주석하가 독공을 사용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기에 독공 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가장 먼저 독기에 노출된 자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