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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검천하-186화 (186/273)

186화 혼군과 우설금 (2)

콰앙!

우설금이 재빨리 몸을 돌리며 엄습한 강기를 후려쳤다.

예상 밖의 엄청난 충격파에 주석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런 파괴력은 정파십존이나 흑도팔군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게다가 갑작스러운 기습을 막아낸 우설금의 능력도 심상치 않았다. 그와 대화 중이라 내력을 제대로 쏟지 못했을 텐데.

충격파를 견디면서 주석하는 공격자를 찾았다.

검은 기운을 일렁이는 한 인영이 허공에서 내려섰다. 혼군이었다.

우설금은 한쪽으로 밀려난 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몸의 균형을 잡았다.

화산파의 객방이 무너진 곳에서 주석하와 우설금, 혼군이 삼각형으로 대치한 채 서로를 노려봤다.

“어떻게 된 겁니까?”

반가운 마음에 주석하는 먼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놈들의 전략에 당한 것 같다.”

“전략이라뇨?”

“껍데기뿐이었다. 이곳에 화산파, 공동파, 종남파 연합군이 주둔하고 있긴 했으나…… 모두 허접탱이뿐이었다.”

역시 주석하가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어쩐지 사상자 대부분이 정파 쪽이고 혼천교도는 보이지 않더라니. 화산파가 본산을 버리고 도망쳤을 리가…….

“자하검존은요?”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전황으로 보아 정파 연합군의 주요 인물들은 이곳에 없는 것이 확실했다. 그들은 대체 무엇을 노리는 걸까. 이렇게 순순히 본산을 열어주고 거기에 말단 제자까지 먹잇감으로 던져주었다면…….

주석하는 새삼 구대문파 수뇌부의 잔인함에 치를 떨었다. 저들은 말단 제자들의 목숨이 전혀 아깝지 않다는 건가.

“저들의 음모라면 이제 놈들이 쳐들어…….”

역사에 기록된 전쟁을 보면 성을 비우고 적이 성안으로 들어온 후 적을 섬멸하는 그런 공성지계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렇게 보기엔…….

설마? 자하검존 측은 마교의 개입을 알고 있나? 이곳에서 혼천교가 대승을 거둘수록 마교는 혼천교를 노릴 것이다. 그런 의도가 아니라면 지금 상황이 설명되지 않는다.

주석하가 혼란에 빠져있을 때 혼군의 우렁찬 목소리가 정신을 깨웠다.

“……저 여자는 대체 누구냐?”

혼군의 손가락이 우설금을 향했다.

순간 주석하는 대답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렇다고 우설금을 마교인이라고 소개할 수는 없지 않은가.

혼군은 적의를 거두지 않았다.

“방금 나의 장력을 막은 솜씨는…… 보통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 기운은!”

말을 잇는 듯하던 혼군이 벼락처럼 우설금을 덮쳐갔다.

그야말로 전광석화! 그의 손에서 혼천십팔지가 위력적으로 펼쳐졌다.

이번에는 우설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녀는 홍철산을 활짝 펴고 혼군을 맞이했다.

푸슈슉-

혼천십팔지는 홍철산을 뚫지 못했다. 홍철산은 어둠을 가르고 혼군의 눈앞에서 번쩍였다.

콰앙-

강력한 두 기운이 서로 엉켰다. 혼군의 음습한 기운과 의심할 여지없는 마기였다.

“마교!”

경악한 혼군이 거리를 좁히며 우설금에게 들러붙었다.

후우우웅-

십여 개의 권영이 우설금을 압박했다.

우설금의 현란한 몸놀림이 허공을 수놓았다. 그녀는 홍철산을 교묘하게 휘둘러 혼천십이권을 방어하고 공세를 전환했다. 어둠 속에서 모란꽃이 화려하게 피어났다.

“안 돼!”

주석하는 두 사람의 공방에 넋이 나갔다. 그가 말릴 틈도 없이 두 사람은 생사를 건 대결로 흘러가고 있었다.

콰아앙!

상대의 정체를 파악한 혼군의 공세가 격렬해졌다.

“나는 정파 놈들이 설치는 꼴도 보기 싫지만 마교가 중원에 입성하는 꼴은 더욱 볼 수 없다!”

중원의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마교에 거부감을 품고 있다. 수백 년에 걸친 중원과 마교의 대립은 피로 점철된 지옥의 역사였으니까.

혼군의 주위로 검은 기운이 뭉클 솟았다. 그 기운은 혼군의 분노만큼이나 강력했다.

주석하는 그 기세만으로도 지금 혼군이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상대를 죽일 생각이 아니라면 저런 모습을 보일 수 없으니까.

우설금은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는 가볍게 혼군의 압박을 받아넘겼다. 오히려 그녀는 혼군을 향해 빛살처럼 신형을 날리며 살기를 뿜어냈다.

파파파팟-

회오리치는 마기가 점차 붉은빛을 띠기 시작했다.

단천마공!

마교에서도 손꼽히는 가공할 마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홍철산이 회전하며 날카로운 살기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붉은 산강傘罡)이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서걱- 서걱-

반쯤 무너진 객방의 벽이 통째로 날아갔다. 주변에 아름드리 서 있던 고목이 토막 나며 무너졌다. 홍철산의 산강 위력은 거침없이 혼군의 권강을 부쉈다.

콰아앙-

충격파가 터지면서 혼군은 수십 보나 뒤로 주르륵 밀렸다. 그는 아연실색하여 상대를 노려봤다. 나이 어린 여인의 내력이 예상치 못할 만큼 심후했다.

“넌 누구냐!”평범한 마교의 고수라면 이토록 강할 리 없으니 마교의 핵심 인물이 분명할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마교의 등장은 단순한 중원의 염탐이 아니라 본격적인 침공일지도 모른다.

혼군은 놀란 표정으로 주석하에게 의문을 표시했다. 며칠 전 주석하가 그에게 마교의 중원 입성을 경고했었던 기억 때문이다. 주석하가 어떻게 미리 알고 있었는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콰아앙!

태산처럼 밀려든 산강을 혼천십이권으로 격파하면서 혼군은 순식간에 신형을 이동했다. 회전하며 산강을 뿜어내는 홍철산을 이런 식으로는 파괴할 수 없다. 내력으로도 초식으로도 상대를 압도할 수 없으니 남은 방법은 하나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어떻게든 홍철산을 뚫고 근접전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혼천십이권의 위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려면 무조건 거리를 삭제해야 한다.

대답은커녕 표정조차 변함없는 우설금을 향해 혼군은 전력을 다해 접근했다.

혼천십이권의 보법을 활용해서 홍철산의 아래쪽을 파고들었다. 펼쳐진 우산을 뛰어넘는 공격이 보통이기에 이 한 수는 우설금의 허를 찌르기에 충분했다.

이어지는 각법이 우설금의 하체를 압박하고 우설금의 반격이 다리로 들어왔다.

혼군은 신경 쓰지 않았다. 적의 반격은 치명적이지 않다. 다리를 내주고 가슴을 취한다!

우설금의 산강이 다리의 호신강기를 깨트리는 순간 회심의 일 권이 강력한 권강을 동반하여 우설금의 가슴팍을 강타했다.

빡!

‘걸렸다!’

혼군의 만족은 순식간에 혼란으로 뒤엉켰다.

천근의 위력을 가진 그의 주먹이 분명히 가슴을 강타했다고 생각했건만 놀랍게도 우설금의 호신강기를 깨지 못했다.

권강과 호신강기가 부딪치며 거대한 충격이 전신을 엄습했다. 주먹이 바스러지는 듯한 고통이 팔을 타고 올라왔다.

혼군은 이를 악물었다. 거리를 지우기 위해 위험을 무릅썼다. 이 기회를 한 번의 실패한 공격으로 마무리할 수는 없었다. 산강이 관통한 다리의 충격이 보법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짧은 순간에도 혼군은 상체를 비틀며 재차 혼천십이권의 절초를 구현했다. 육중한 힘을 동반한 권강이 우설금의 가녀린 몸에 쏟아졌다.

퍼버버벅-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권강을 퍼부었다. 아무리 강력한 호신강기라도 절대 버틸 수 없을 만큼 혼군은 내력 전부를 쏟아냈다. 그 위력은 태산을 무너뜨릴 폭풍과 같았다.

순간 우설금의 호신강기가 조각조각 깨져나갔다.

그 순간 그녀의 한쪽 손이 벼락처럼 혼군의 권강을 후려쳤다.

고운 손에서 뻗은 수강手罡)이 권강과 뒤엉키면서 충격파가 터졌다.

쿠쿠쿠쿵-

마치 바늘이 찌르는 듯한 살기에 혼군은 다급하게 뒷걸음질 쳤다.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권강이 깨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우설금이 펼치는 무공은 얼핏 보면 평범한 듯하면서도 그 위력은 기상천외했다. 과연 마공은 남달랐다.

전신 혈맥 곳곳에 타격을 받은 혼군은 울컥 핏덩이를 뱉어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우설금의 동태를 살폈다. 처음 등장할 때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조금의 표정 변화 없이 고고하게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비록 몸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진 못했을지언정 호신강기가 깨질 충격이라면 그녀도 만만치 않은 부상을 얻었을 텐데? 혼군은 혼란 속에 재차 한 모금의 선혈을 토해냈다.

‘젠장! 살을 내주었는데 뼈를 취하진 못했다!’

어쩔 수 없는 격차를 실감하면서 혼군은 상대를 죽일 방법을 고민했다.

그 순간 주석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잠시 혼군과 우설금의 대결에 심취해서 자신이 할 일을 잊어버렸었다.

그는 다급하게 두 사람 사이로 뛰어들어 양측의 공격을 방해했다.

“그만!”혼군이 격한 음성으로 그를 나무랐다.

“비켜라! 마교인을 살려둘 수 없다!”

“지금은 아닙니다!”

주석하는 반박하면서 우설금을 보호했다.

우설금은 무표정한 시선을 주석하에게 고정하고 있었다. 그녀는 혼군을 공격할 의사가 없는 듯 천천히 홍철산 접었다.

주석하는 우설금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잠시 주석하를 바라보던 우설금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마녀! 어디를 가는 거냐!”

호통을 지르던 혼군이 다시 울컥 선혈을 뱉었다.

주석하는 그를 부축하면서 물었다.

“괜찮습니까?”

“아니, 상태가 좋지 않다. 다리에 외상을 입어 보법이 쉽지 않고 가슴에도 꽤 큰 상처를 입었다. 내상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 정말 무서운 여자다!”혼군은 고통을 참느라 수시로 안면을 일그러트렸다.

“그만하길 다행입니다.”

“저 여자는…… 정파십존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하다. 방금 그 여인은…… 흑도팔군 둘이라도 상대하기 녹록치 않다. 대체 누구냐? 어떻게 알지?”우설금의 무엇을 알려주어야 할까. 이미 혼군은 그와 우설금이 남다른 사이임을 눈치 챈 것 같은데?

주석하는 제갈세가 상춘원에서 있었던 사건을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우설금이 정파십존 둘을 해치웠다는 말에 혼군이 경악했다.

“정말 마교의 수뇌부일지도…… 아니, 확실하다.”

“그럴 것 같네요.”

“너도 저 여자를 조심하거라. 저 여자는 우리 흑도에도, 나아가 중원에도 절대 이롭지 않다. 다음에는 너와 내가 연합해서 반드시 저 여자를 제거해야 한다.”주석하는 답할 수 없었다. 답답해지는 기분을 해소하고자 그는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자하검존과 각파 장문인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보지 못했다.”

주석하는 머릿속에서 뭔가 어렴풋한 실마리를 느꼈다.

본산을 비우고 사라진 자하검존과 각파 장문인의 행동과 우설금의 등장은 분명히 별개의 사건이 아니었다. 특히 우설금은 마교칠왕 둘이 출현하리라 경고하지 않았던가.

마교칠왕은 자하검존과 혼군을 노리고 있다. 그들이 양패 구상했을 때 모두를 제거할 전략일 것이다. 만일 자하검존이 마교의 공습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자하검존은 혼천교를 압도해서 대승을 거두면 오히려 위험하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것이다. 이를 피하려고 마교를 끌어들여 혼군을 상대하게 한 다음 눈치를 볼 것이다. 마교와 혼군이 양패구상하면 더없이 좋은 기회이고.

그런 결론을 내리자 우설금의 행동이 이해됐다. 오늘 우설금의 공격은 강력했지만 혼군을 죽음으로 몰아붙이지 않았다. 적어도 그가 보기에는 그러했다.

우설금은 혼군이 적당한 부상을 얻고 물러나기를 바랐다. 그녀는 그 목적을 달성했다.

‘마교칠왕 때문이다!’

주석하가 그녀의 행동을 이해했을 때 혼군이 이를 부드득 갈았다.

“놈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겠군! 이곳에서 이십 리 떨어진 화진계곡에 진을 쳤을 게 확실하다!”

“제가 확인해보겠습니다.”

“나도 같이…….”

“부상 중이시잖습니까? 저 혼자가 오히려 유리합니다.”

홀로 가겠다고 주장하는 주석하를 말리지 못한 혼군이 한숨을 쉬며 당부했다.

“무리하지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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