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마교칠왕 (2)
주석하가 대비할 틈도 없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천력마부의 도끼가 그의 어깨를 찍어왔다.
미리 내력을 올려 대비하지 않았다면 상대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주석하는 급히 신형을 빼내며 흑검소를 도끼로 밀어 넣었다. 순전히 천력마부의 힘을 가늠하려는 대응이다.
콰직-
흑검소를 타고 어마어마한 충격이 전해졌다. 다행히 흑검소는 멀쩡했다.
‘천력(天力)이라더니…… 과연 엄청난 힘이다!’
단 일 초식만으로도 주석하는 상대의 무공 수위가 정파십존 이상임을 간파했다. 초식의 위력만이 아니다. 놈에게서 은은히 뿜어져 나와 온몸을 압박하는 가공할 마기는 몸을 쪼그라들게 한다.
“놈의 환대를 마다할 수 없지!”
이번에는 파천혈옹의 조간에 매달린 은사가 날아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는 은사(銀絲)가 공기를 갈랐다.
이런 유형의 무기는 처음이다. 주석하는 감히 대응할 수 없어 백변환영보로 공격을 피했다.
휘이익-
머리카락을 스치는 은사의 파공성이 섬뜩했다.
“오호? 마교칠왕이 잔재주를 부리네?”
“갈! 이 세상은 강자만 살아남는다!”
천력마부와 파천혈옹의 신형이 얼음 위처럼 자연스럽게 미끄러졌다. 조금도 다리를 놀리지 않고 옆으로 이동하는 기술로 무공이 놀랄 만큼 강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나도 척결 대상에 들어갔나?”
“크흐흐흐, 말이 많군. 아직은 아니다! 하지만 내버려 두기 힘든 경지까지 올라왔다.”
“칭찬인가? 고맙군.”
주석하는 말로 빈정대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를 포위한 두 사람의 흉흉한 기세가 심상찮다.
“크흐흐, 고마울 것까지야.”
다시 천력마부의 거대한 두 도끼가 시차를 두고 날아왔다. 이번에는 양방향이다. 도끼에서 뿜어지는 그 힘이 공간을 압도한다.
흑검소 하나로는 상대하기 곤란했다. 주석하는 오른쪽에서 잘라오는 도끼를 흑검소로 막으면서 그 반동을 이용해 신형을 허공으로 솟구쳤다. 순간 왼쪽의 도끼가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지나갔다.
결과적으로 주석하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허공을 밟았다. 절정에 이른 화판답공이 펼쳐졌다.
그의 이런 응수를 꿰뚫고 있었다는 듯 틈을 주지 않고 파천혈옹의 은사가 날아왔다.
화판답공으로 이동 방향을 바꾸자 목표물을 잃은 은사가 주변의 고목을 휘감았다.
서걱-
고목의 가지가 통째로 잘려나가며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주변이 초토화된 이유가 천력마부의 도끼 때문인 줄 알았더니 파천혈옹의 지분도 상당한 모양이다.
산산이 깨지는 고목을 피하면서 두 사람의 공격을 막아낸 주석하는 얼른 공세로 전환했다.
“싸움을 걸어왔으니 응하지 않으면 예가 아니지.”
주석하의 흑검소에서 검강이 뻗었다.
콰앙!
검강이 천력마부의 도끼와 충돌하면서 폭죽처럼 충격파를 뿜어냈다. 강한 반발력에 주석하의 신형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반면 천력마부는 땅에 두 다리를 굳게 디딘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역시 마교칠왕다운 극강의 괴력이다.
허공에 뜨자마자 파천혈옹의 은사가 그를 노리고 날아왔다. 허공을 자유롭게 비행하는 은빛 줄이 날카로운 파공성을 그리며 그를 휘감았다.
조간의 은사를 어떻게 상대할까. 은사는 넓은 공간에서 무적이다.
찌이잉-
검강이 은사와 부딪치며 날카로운 소음이 발생했다. 놀랍게도 은사는 끊어지지 않았다. 예상외의 강도를 지닌 이 은사는 일반 검이라면 절대로 자를 수 없다.
주석하의 이런 대응을 노리고 있었을까.
순식간에 은사가 흑검소를 휘감았다.
“엇!”
과연 허공을 제멋대로 휘감는 은사는 대응이 까다로웠다. 은사가 흑검소를 칭칭 감고 흑검소의 움직임을 제한했다.
흑검소가 무력화되었으나 은사 또한 흑검소에 감겨 그를 공격할 수 없게 되었기에 전세는 딱히 나쁘지 않았다. 다만 적이 둘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기회를 잡은 천력마부의 도끼가 굉음을 내며 주석하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도끼에 어린 강기가 가공할 기세로 찍어오는 사이 다른 도끼가 허리를 잘라왔다. 천력마부의 도끼가 둘인 장점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흑검소가 무력화한 데다 양쪽으로 공격받자 대응하기 곤란해졌다.
임기응변이 필요한 순간 주석하는 흑검소를 잡아채고 신형을 이동했다. 아슬아슬하게 머리쪽 도끼를 흘리고 은사를 잡아채어 허리 쪽 도끼에 대응했다.
피잉-
놀랍게도 은사가 도끼를 버티며 팽팽해졌다.
도끼가 튕기는 순간 주석하는 염군의 내력을 끌어올려 은사를 잡아당겼다. 뜨거운 기운이 은사를 타고 흐르고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눈 깜짝할 사이에 좁혀졌다.
뜨거운 화염이 조간을 불태우자 파천혈옹은 당황했다. 그 순간 파천혈옹의 안면을 향해 주석하는 혼천십이권으로 결정타를 날렸다. 혼군의 내력이 아닌 염군의 내력을 운용 중이었으나 무슨 상관인가.
꽈꽝!
그의 주먹에 파천혈옹의 안면 호신강기가 박살이 났다.
퍼벅-
깨진 호신강기를 비집고 재차 파천혈옹의 안면에 일 권을 먹였다. 녀석의 얼굴이 홱 돌아갔다.
순간 등 뒤에서 천력마부의 도끼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왔다. 은사를 잡아챈 상태라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다. 은사에 걸린 불타는 조간이 오히려 그의 움직임을 제한했다.
‘쉽지 않네.’
염군의 내력은 그가 품은 다섯 내공 가운데 가장 심후하다. 그런 내력을 전력으로 쏟아 부었음에도 파천혈옹은 안면이 부풀어 오른 것 외에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다급해진 주석하는 은사에 감긴 흑검소로 도끼를 막았다.
콰앙-
흑검소를 짓누르는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주석하의 신형이 주르륵 미끄러졌다. 이 틈을 노린 파천혈옹이 조간으로 그를 후려쳐왔다.
주석하는 흑검소에 걸린 은사를 이용해서 가볍게 조간을 막으면서 공세를 빠져나왔다. 그의 눈에 코피로 범벅된 파천혈옹의 얼굴이 들어왔다.
“쥐새끼가! 제법이구나! 네놈이 죽을 이유가 생겼다!” 파천혈옹이 손으로 코를 쓱 만지며 분노를 토했다.
천력마부 또한 도끼를 겨냥하면서 살기를 드러냈다.
“놈을 죽여야겠어! 대계를 방해할 놈이다!”
“푸하하! 네놈들 따위가?”
순식간에 벌어진 몇 차례의 공방 속에서 주석하는 상대의 내력과 초식을 타진했다.
흑검소의 검강과 혼천십일권은 그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각파 장문인들이 죽은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마교칠왕은 정파십존보다 확실히 강하다!
저런 괴물이 무려 일곱이나 되니 중원 무림이 감당하기 쉽지 않다. 마교의 힘은 역시 대단했다!
이 싸움에서 빠져나가려면 다른 방법을 시도해야 한다. 악군의 음공인가? 아니면 독군의 독공인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크아아아!”
순간 천력마부의 도끼가 웅후한 강기를 뿌리며 그를 덮쳐왔다.
중후함은 속력으로 깬다! 쾌속무비의 속도를 자랑하는 암천살검이 빛살처럼 뿌려졌다.
콰직!
벼락이 치듯 검강이 도끼의 틈을 비집고 천력마부를 강타했다. 충격이 집중된 천력마부는 곰처럼 우직한 데다 호신강기로 버티기에 한두 방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런 식의 공방은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시간이 흘러도 주석하가 내력이 부족해서 쓰러질 일은 없다. 하지만 적이 둘이라 조금의 틈만으로도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먼저 한 놈을 처리한다!
주석하는 파천혈옹을 목표물로 잡았다.
“파천혈옹?”
그는 백변환영보를 이용해서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방금 천력마부와 충돌한 직후에 터진 그의 움직임은 예상 밖이었다.
미처 대응하지 못한 파천혈옹의 가슴으로 일격을 가했다.
암천살검의 오 초식. 마지막 초식이자 가장 빠르고 강한 암군의 최절정 무공!
콰아앙!
조간과 충돌하면서 터져 나온 충격파와 굉음이 주변을 흔들었다. 고목의 나뭇잎이 태풍을 맞은 것처럼 쓸려나갔다.
주석하의 위력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파천혈옹의 피해는 컸다. 암천살검의 가공할 충격을 그대로 흡수한 조간이 부러졌다. 뒤로 날아간 파천혈옹은 고목을 부러트리며 균형을 잃었다.
주석하는 결정타를 날리려고 파천혈옹을 따라붙었다.
그때 누구도 생각지 못한, 예상 밖의 사태가 발생했다.
한 줄기 붉은빛이 파천혈옹의 등을 꿰뚫었다.
“크으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파천혈옹이 피를 뿜으며 커다란 나무 밑동에 처박혔다.
비현실적으로 흘러간 상황에 주석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만이 아니었다. 천력마부 또한 도끼를 든 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파천혈옹을 쳐다봤다. 파천혈옹은 입을 쩍 벌린 채 숨이 끊어져 있었다.
주석하와 천력마부가 놀란 것은 파천혈옹의 죽음이 아니었다. 흥건한 피를 내뿜고 바닥에 쓰러진 파천혈옹의 뒤로 아리따운 여인이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바로 우설금이다.
누구도 우설금의 등장을 예상하지 못했고 그녀가 파천혈옹을 죽이리라고는 더욱 생각지 못했다.
“다, 단천마령!”
천력마부가 눈을 크게 뜨고 더듬거리며 소리쳤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천력마부는 죽은 파천혈옹과 우설금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우설금은 홍철산을 가볍게 돌리며 앞으로 나왔다. 그녀의 무심한 시선이 주석하를 향했다가 다시 천력마부로 돌아갔다.
“서, 설마…… 배, 배신?”
천력마부는 양손의 도끼를 굳게 움켜쥐고 우설금을 향해 분노를 터트렸다. 이 순간 천력마부는 제대로 머리를 굴릴 수 없었다. 터질 듯한 분노를 폭발시키며 상대를 응징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양손의 도끼가 바람을 가르며 우설금을 노렸다.
후우우웅-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도끼에 실려 폭발하듯 우설금에게 쏟아졌다.
우설금은 감히 홍철산을 펼치지 못하고 접힌 상태로 도끼를 맞이했다. 그녀는 붉은 마기를 폭사하며 눈부신 광채를 적에게 집중시켰다.
일순간 천지가 붉은빛에 휩싸였다. 마치 천지개벽이 일어나는 듯한 거대한 빛의 폭풍이 그들의 존재를 빛의 장막에 가두었다.
콰아아앙-
전력을 다한 천력마부의 위력은 대단했다. 하지만 우설금의 공격은 그 이상이었다.
두 강기가 부딪치는 순간 천력마부는 몸의 균형을 잃었다. 충격파에 신형이 휩쓸리며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홍철산을 찍었던 두 도끼는 순간 흐름이 엉켰다. 허공에서 가까스로 공세를 취하려고 천력마부가 도끼를 꽉 잡는 순간이었다.
서걱-
천력마부의 등에 절정의 암천살검이 꽂혔다. 천력마부가 미처 중심을 잡기도 전에 주석하의 암천살검이 급소를 파고들었다. 천력마부가 예상치 못한 기습이었다.
마치 벼락이 등을 찍은 것처럼 천력마부의 신형이 휘어졌다. 우설금에게 신경 쓰다 보니 주석하를 놓친 것이 천추의 한이었다.
“크윽! 가, 감히 배, 배신을…….”
눈을 부릅뜨고 우설금을 노려보던 천력마부는 말을 끝낼 수 없었다. 그의 손에서 도끼가 떨어지는 순간 다시 흑검소의 검강이 몸을 갈랐다.
육편이 된 살과 피가 비처럼 쏟아졌다. 갈가리 찢긴 천력마부가 힘없이 무너졌다. 그 위로 검강이 다시 엄습했다.
마교칠왕 두 사람이 무참히 죽었다. 이제 이곳의 시신은 모두 다섯이었다. 천력마부, 파천혈옹을 비롯하여 북청진인과 태상노군, 멸사쌍검까지.
얼핏 보면 마교 두 괴인과 정파 세 기인이 싸워 양패구상한 것처럼 보였다.
주변은 싸움의 여파로 완전 초토화됐다.
다만 지금 주석하의 눈에는 그런 것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오직 홍의 여인, 우설금만이 뚜렷했다.
우설금이 왜 그를 도와준 걸까. 마교칠왕을 죽여도 괜찮은 걸까.
우설금도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은 무표정했으나 그 내면에는 수많은 갈등과 고민이 얽혀 있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서 있었다.
어둠을 헤치고 서서히 새벽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