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화 구대문파 (3)
그 순간 태을진인의 장심이 그를 향해 날아왔다.
주석하는 반사적으로 손을 앞으로 뻗었다.
쾅!
두 사람의 손바닥이 서로 맞닿으며 내공 대결이 시작됐다.
고오오오-
태을진인의 안면에 경련이 일고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내력을 십이 성까지 최대한 끌어올리고 있다는 증거였다.
주석하는 여유롭게 상대의 내력을 받아냈다.
두 사람이 서로 손바닥을 맞부딪힌 채 상대를 노려보면서 내력 대결에 들어가자 그 주위로 기파가 폭발했다. 무림 최강고수의 대결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태을진인은 무극천존에게 주석하의 무공 수준에 대해 들었었다.
하지만 아무리 무공이 뛰어날지라도 나이가 어리면 초식의 숙련도와 내공에서 처지기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공 대결에 들어가자마자 자신이 상대할 수준이 아님을 깨닫고 경악했다.
“과연 대단하구나!”
태을진인이 신음을 터트리며 내공에 집중했다. 이미 시작한 대결을 그만둘 방법도 없었다.
“죽을 줄 알면서 덤비는 당신이야말로 대단하지!”
“이 무례한 놈이!”
당연히 태을진인도 이런 상황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는 동료에게 눈짓으로 구원을 요청했다.
그러자 태을진인 옆에서 상황을 관망하던 소림사 방장 구천신승이 태을진인의 등에 장심을 밀착했다.
고오오오-
태을진인과 구천신승의 내공이 합쳐져 주석하를 압박했다.
쿵!
“오호! 노리던 게 바로 이것이었군!”
주석하는 그들의 계략에 감탄했다. 혼자서 안 되니 둘이 힘을 합쳐 덤비는 작전이다. 역시 구파의 장문인다운 계략이었다.
물론 주석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한순간 편안해졌던 태을진인의 안면에 다시 경련이 일었다.
“서, 설마…….”
무당과 소림 장문인의 합력을 주석하가 버티다니! 그것도 오히려 압박하다니! 예상치 못한 결과에 사람들은 입을 쩍 벌렸다.
두 사람의 내력을 합하면 당대 최고였던 반야불존의 내공을 상회한다. 그런데도 주석하 한 사람을 제압하지 못하고 오히려 밀리고 있었다.
“이, 이게 말이 되는 건가…….”
태을진인이 신음을 토하자 주석하가 여유롭게 빈정댔다.
“한 사람을 둘이서 핍박하는 건 말이 되고?”
“이, 이놈이!”
태을진인이 화가 나서 장심을 밀어붙였다.
그 순간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판단한 곤륜파 장문인 천뢰신검이 구천신승의 뒤에서 장심을 등에 붙였다.
고오오오-
이제 세 사람의 합력이 주석하를 압박하는 상황이 됐다.
그제야 주석하는 내공 대결을 벌이고 있다는 감을 받았다. 얼핏 느껴지는 내공의 합력은 무려 육갑자! 전무후무한 내공의 압박이었다.
이제는 그라도 감히 경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주석하도 발맞춰 내력을 올렸다. 전신에 경련이 일면서 무지막지한 내력이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허억! 괴, 괴물이다!”
애초에는 구파 장문인들은 둘이면 충분히 내력 대결에서 승리하리라 예상했었다.
그런데 셋인데도 상대를 압박할 수 없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지금은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내력 대결을 시작한 이상 무조건 이기고 봐야 한다. 내력 대결에서 지면 그 피해는 엄청나다.
내상을 크게 입어 적어도 일 년 이상 요양하며 회복해야 한다.
“더 붙어!”
태을진인이 부들부들 떨면서 소리쳤다. 그의 뒤에도 두 장문인이 전신에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구경하던 무극천존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괴물이었다. 저런 괴물이 사파에서 자라고 있었다니!
“오늘 저놈을 죽이지 않으면 정파의 미래는 없다!”
과감히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무극천존은 주먹을 불끈 쥐며 남은 두 장문인에게 눈치를 줬다.
점창파 장문인인 낙월우사가 천뢰신검 뒤에 붙었다. 그 뒤에서 마지막 남은 아미파 장문인 금정사태가 손을 뻗었다.
고오오오-
무려 다섯이나 되는 구파 장문인들이 일직선으로 서서 앞사람에게 내력을 전달하는 진기한 장면이 연출됐다. 그 누가 상상이나 해봤을까? 구파의 장문인들이 단 한 사람을 상대하려고 내력을 합치는 장면을.
우우우웅-
주석하와 구파 장문인들 사이에서 생사를 건 강력한 기파의 충돌이 발생했다.
이제는 누구도 이 싸움을 말릴 수 없는 상황. 사실 개입 자체도 쉽지 않다. 양측에서 터져 나오는 강력한 기의 파동을 뚫고 접근해야 하니까.
무리하게 개입하면 양측 모두 주화입마라는 최악의 불상사를 맞이하게 된다.
“역시 구파 장문인인가!”
주석하는 신음을 내뱉으며 내력을 최고로 끌어올렸다. 내공을 융합한 후 처음으로 내력을 극한까지 사용하게 됐다.
이것은 주석하의 내공이 구파 장문인 다섯을 합친 것 이상임을 증명하는 결과였다.
“으으으.”
태을진인은 상상치도 못했던 결과와 내력 압박으로 인한 고통에 안면을 일그러트렸다. 그는 생사를 걸고 모든 내력을 쏟아냈다.
이 장면을 주시하던 무극천존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눈앞의 청년은 상대할 수 없는 괴물이었다. 이 괴물을 죽이기 위해 결국 최후의 방법을 꺼내야 하나.
무극천존은 눈을 감고 나지막이 도호를 외웠다. 점차 결단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마교의 총단 뒤에는 햇볕이 드는 자그마한 뜰이 있다.
천화원(天花園).
그 뜰 앞을 천마는 홀로 유유자적 거닐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가 땅을 내려다보았다가 정원에 핀 꽃을 둘러보았다가…….
천마는 수시로 행동을 바꿨다. 마음이 불안정하고 고민에 잠겨 있음을 누구나 쉽게 알아볼 정도였다.
적어도 수십 년간 천마가 이런 번민을 드러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지럽게 뜰을 거닐던 천마의 발걸음이 화단에 핀 붉은 빛의 꽃 앞에서 멈췄다. 꽃인지 열매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이 화초에는 앵두처럼 작은 둥근 열매가 매달려 있었다.
천마의 시선은 어찌 보면 평범하면서도 희귀한 이 열매에 고정되어 있었다.
십년유심홍(十年唯心紅).
오직 이곳 천화원에서만 자라는 희귀한 약초다.
“이제 한 달이 남았다!”
천마는 십년유심홍을 세세히 살피며 미소를 지었다.
십년유심홍은 이곳 십만대산에서 우연히 발견한 영초였다. 이 영초는 십 년에 한 번씩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빨갛게 물든 작은 열매는 십 년이 되면 그 색이 붉어지다 못해 검게 변한다. 검게 변한 열매는 불과 사나흘 후면 떨어져서 흙으로 돌아간다.
검게 변한 십년유심홍의 열매는 절세의 영약이다.
이 열매를 먹으면 무려 일갑자의 내공을 얻는다. 영약을 여러 번 복용하면 효과가 떨어지지만 여의신단이 이런 현상을 방지해 준다.
덕분에 십년유심홍의 효과는 그대로 유지된다.
육십 년의 고행 끝에 얻을 내공을 십 년마다 얻을 수 있으니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닐 희대의 영초다.
지금 그 영초의 열매가 한 달 후면 그의 손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는 순조롭게 일갑자의 내공을 추가하게 될 것이다.
“과연 기다려야 하나…….”
최근 들어 세상의 흐름이 바뀌었다. 그가 계획했던 흐름과 완전히 어긋났다. 이런 일이 왜 발생했는지 그도 알 수 없었다.
한참 십년유심홍을 들여다보던 천마는 시선을 동쪽으로 돌렸다. 저 너머에 중원이 있고 지금 그곳에는 그가 안배했던 각종 계획이 실현되고 있다. 그의 바둑돌은 마교수호사령을 비롯하여 마교칠왕, 정파십존, 흑도팔군……. 그 가운데 이번 생에서 가장 특별한 놈은 바로 주석하였다.
천마가 어렸을 때 전대 천마는 그에게 배교의 신물인 무한회귀공과 여의신단을 넘겼다. 그리고 십년유심홍까지.
그때부터 천마는 무한회귀공을 익혔다.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마도 천하였다. 마교가 무림을 지배하고 그 마교는 천마의 지배를 받는다. 천마가 모두를 지배하는 세상을 꿈꿨다.
무한회귀공은 다른 어떤 마공보다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다. 무한회귀공을 익히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역천의 무공임에도 불과 한 달 만에 완벽하게 익혔다.
놀랍게도 무한회귀공에는 원하는 시기의 과거로 회귀할 수 있는 공능이 있다. 그 시기는 어제일 수도, 한 달 전일 수도, 십 년 전일 수도……. 마음먹기에 달렸다.
다만 무한회귀공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한다.
회귀할 때마다, 즉 무한회귀공을 사용하면 내력이 일갑자 사라진다. 만일 시전자에게 일갑자의 내력이 없다면 회귀 자체가 불가하다.
다른 단점이라면 무한회귀공을 익힌 다른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도 회귀 사실을 알게 된다.
천마의 첫 번째 회귀는 이 무공을 얻은 지 무려 삼십 년이나 지난 후였다. 그 시점에야 그는 일갑자를 훨씬 상회하는 내공을 얻게 되었고 이 내력을 아낌없이 회귀에 쏟아부었다.
첫 번째 회귀의 성과는 아주 좋았다.
미래를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는 이전 생에서 고생하며 간신히 막아냈던 극마서생 우청엽의 마교 습격을 아주 손쉽게 막아냈다. 우청엽이 언제 어떤 병력으로 어느 통로로 쳐들어올지 미리 알았기에 막지 못하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간신히 살아 돌아간 우청엽은 마교 재습격을 노렸으나 그 또한 천마는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게다가 대설산에서 자라는 만년설삼을 구했다.
이전 생에서는 마교에서 기반을 잡은 후에 우연히 발견했던 만년설삼을 이번에는 위치를 알기에 바로 손에 넣고 섭취할 수 있었다.
덕분에 천마는 이전 생과 비교할 수 없는 강자로 탈바꿈했다.
이런 식으로 천마는 회귀를 거듭했다. 십년유심홍으로 얻는 내공은 그에게 내력 손실 없는 회귀를 보장했다.
회귀 때마다 일갑자의 내력을 손해 보더라도 회귀 후 얼마 되지 않아 손해 본 일갑자를 십년유심홍 덕분에 손쉽게 메웠다.
여러 번의 회귀를 반복하며 천마는 전대 천마보다 더 강자가 되었고, 정파십존이나 흑도팔군보다 더 심후한 내공과 강한 무공을 얻게 되었다.
그는 중원을 지배하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웠다.
첫 회귀 때와 달리 회귀를 거듭하면서 그는 마교수호사령을 재정립했고 마교칠왕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당연히 본인도 더 강해졌다.
회귀를 거듭하면서 지금부터 이십 년 전으로 돌아갔을 때 천마는 우설금을 마교수호사령으로 키울 생각을 하게 됐다.
뼛속까지 극마를 외쳤던 우청엽, 그의 아들 우경천과 며느리 이가흔을 생포했을 때 그들을 바로 죽였던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다른 계획을 진행했다.
마교에 잡혔을 때 이가흔은 이미 우경천의 아이를 품고 있었다. 천마는 마치 자비를 내리는 것처럼 이가흔의 출산을 허락했다.
그리고 이가흔이 딸, 우설금을 낳았을 때 그는 그녀를 잔인하게 죽였다.
우설금은 천마의 밑에서 중원을 원수로 알고 자라게 됐다.
성장하는 우설금은 천마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줬다. 천마는 우설금을 마교수호사령으로 키웠고 우설금은 완벽하게 부응했다.
지난 전생에서 천마는 사실상 중원을 함락했다.
당시 천마는 정사대전을 획책하여 양쪽의 세력을 약화했고, 정파십존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당시 중원 최강자였던 반야불존을 압도적으로 능가한 천마와 더 강력해진 마교칠왕은 중원을 도모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설사 실패하더라도 무한회귀공을 이용해서 과거로 돌아가면 되기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흑도팔군과의 전투도 나쁘지 않았다. 그는 흑도팔군 둘을 죽였고 여섯을 잡았다. 그 여섯을 십만대산 절벽 아래 무량뇌옥(無量牢獄)에 가두었다.
중원의 누구도 그에게 대항할 수 없는 완승이었다.
그때 천마는 기발한 생각을 했다.
흑도팔군에게 회생의 기회를 제공해볼까?
이대로 회귀해서 같은 역사를 반복하기는 지겨웠다. 이미 그는 누구보다도 강하기에 더 강해지려고 노력하기도 귀찮았다. 똑같은 시간이 반복되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한다.
그 변화를 다른 곳에서 구해볼까? 흑도팔군에게 무한회귀공을 던져주고 시험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