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검천하-223화 (223/273)

223화 우설금의 계획 (3)

“대체 왜 흑검문 따위에 관심을 가지는 거지?”

“난들 아나? 까라면 까야지.”

“천마께서 명하신 일이다. 닥치고 해!”

“금천마령의 계락 같은데?”

복잡한 대화가 오갔다.

주석하의 안면도 점점 차가워졌다. 흑검문을 노리고 이곳에 모인 것이 확실했다. 만일 그가 곧장 마교로 갔다면 흑검문은 회생불능의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애초에 흑검서생은 단천마령의 몫 아니었나?”

“천마께서 단천마령을 의심하나 봐.”

“그럴 리가? 가장 총애했는데…….”

“총애는 물 흐르듯 변하는 법이지. 충심이 변하면 믿음도 변해.”

단천마령의 신변에 변화가 생겼다는 말 같기도 하고. 주석하는 기감을 집중해서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마교칠왕 급의 고수 앞에서 이런 염탐을 지속하는 것은 실로 위험한 일이었으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무려 흑검문과 우설금이 관련된 일이니 가릴 처지가 아니다.

“단천마령의 충심이 약해졌나?”

“흑검서생과 그렇고 그런 사이란 소문이 파다해. 원래 그 나이 또래 계집은 사랑에 목매는 법이지.”

“에이, 마교에서 사랑은 무슨…….”

“흐흐, 단천마령은 계집 아니라더냐?”

이런저런 대화 속에서 주석하는 마교의 숨겨진 많은 부분을 추측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천마의 마교 장악력이었다.

지난 수십 년간 천마는 반란의 조짐이 있는 자를 살려두지 않았다. 어떻게 눈치챘는지 알 수 없으나 역심을 품기도 전에 제거했다.

덕분에 마교인들은 천마에게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남다른 능력이 있다고 믿을 정도였다.

자연스럽게 천마 곁에는 충심으로 똘똘 뭉친 자들만 남았고, 그럴수록 천마의 아성은 더욱 공고해졌다.

이들의 화제는 단천마령에 집중되어 있었다.

단천마령은 지금까지 누구보다 천마에게 충성했고, 천마 또한 아낌없이 그녀를 키웠다.

천마의 총애를 등에 업고 그녀는 어린 나이에 마교수호사령에 올랐고 누구보다 막강한 권력을 거머쥐었다. 실제로 능력 또한 대단했다.

그런 단천마령에게 나타난 변화를 마교칠왕이 화제에 올렸다.

“흐흐, 이 기회에 단천마령을 쳐볼까? 나라면 마교수호사령으로 등극할 가능성이 있겠지?”

“붕천마검! 천마의 뜻을 잘 새겨야 하네.”

“당연하지. 내가 앞장설 테니 도와줘. 나중에 확실하게 보답해주마.”

주석하의 가슴이 한바탕 요동쳤다. 감히 단천마령 자리를 넘보다니. 강자존의 마교라지만 마음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그는 붕천마검이란 이름을 곱씹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저 녀석만큼은 반드시 도륙한다.

“흐흐, 흑검문을 빨리 쓸고 총단으로 가야겠어.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주석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우설금이 지금 얼마나 곤란에 빠져 있을지 충분히 짐작됐다. 대체 천마는 미친놈인가 아니면 똑똑한 현자인가.

천마는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십만대산에 있다. 주석하는 냉철하게 상황을 받아들였다. 지금 그의 분노는 중요하지 않고 분노해봐야 아무런 이득이 없다.

‘처음의 계획대로 간다.’

이곳에 모인 마교도를 분쇄하고 십만대산에서 우설금을 도울 것이다.

저들이 마교칠왕의 누구였더라…….

마교칠왕은 모두 일곱. 그 가운데 벌써 넷을 처리했으니 저들이 남은 셋이다. 예전에 우설금에게서 지나가며 들었던 마교칠왕의 특징을 떠올렸다.

붕천마검(崩天魔劍). 마교 최강의 검사. 검법의 일인자라 했던가.

혼세섭왕(混世攝王). 섭혼술의 대가. 무공보다는 사이한 술법에 뛰어난 자.

잔백귀혼(殘魄鬼魂). 마교 내에서도 그 수법이 괴이하기로 소문난 자. 주 무공이 무엇인지조차 신비에 싸여 있다고 했었다.

저들의 무공을 알지 못하나 그렇다고 두렵지는 않다.

정면돌파!

주석하는 지붕을 날아 칠왕이 회의하던 큰 전각의 앞마당에 착지했다. 흑검소를 들고 그는 사악한 마두처럼 잔인한 웃음을 머금었다.

우우우웅-

흑검소에서 검강이 뻗어 나왔다. 그 검강은 맑고 투명했다. 그 길이 또한 무려 삼 장에 달할 만큼 엄청나게 길었다. 적을 상대할 때라면 비효율적이지만 지금은 적이 아닌 전각을 부술 목적이다.

주석하는 흑검소를 하늘 높이 들었다가 힘껏 일격을 가했다. 검강이 전면으로 폭풍처럼 쭉 뻗어 나갔다.

콰아아앙!

정확하게 마교칠왕이 모여 있던 대청을 반으로 갈랐다.

“커윽! 이게 뭐냐?”

“벼락이 쳤나?”

“하늘이 쪼개졌다! 네놈 허튼소리에 하늘이 노했다!”

마교칠왕 셋이 무너진 전각을 뚫고 튀어나왔다.

순식간에 밖으로 나온 세 사람은 낯선 불청객을 발견하고 주석하를 포위했다.

“네놈은…….”

붕천마검이 주석하의 흑검소에 시선을 고정했다. 현 무림에서 퉁소를 들고 다니는 유명인은 오직 한 사람뿐이다.

“흑검서생!”

다른 두 사람도 시선을 흑검소에 집중했다. 마침 흑검문 멸문을 논의하고 있었기에 그 당사자의 등장은 충격적이었다.

무엇보다 마교칠왕이 셋이나 포진한 이곳에 단신으로 쳐들어올 담력을 지닌 자가 존재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마교칠왕이 찜찜한 눈초리로 주석하를 살폈다.

전각을 통째로 날리는 무공은 마교칠왕도 어렵지 않다. 그렇기에 방금 벌어진 사건에 혼비백산할 정도는 아니다.

다만 그들을 엄습했던 무시무시한 검강은 가짜가 아니었다.

붕천마검도 검을 다루기에 그 검강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실감한다.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심후한 내력으로 날을 세운 검강이었으니까. 그도 할 수 있을까?

섬뜩한 공포와 압박감에 휩싸인 붕천마검이 두 명의 동료에게 눈짓했다.

혼세섭왕과 잔백귀혼도 비슷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럴 때는 속전속결이 답이다.

어차피 상대는 하나이고 그들은 마교 최강인 마교칠왕 셋이다. 두려워할 사람은 그들이 아닌 상대방이다.

가장 선봉에 나선 자는 잔백귀혼. 때로는 급한 성격이 명을 재촉하는 법이다.

“네 녀석이 감히 마교칠왕을 상대할 자격이 있는지 확인해보겠다!”

잔백귀혼의 손에서 시퍼런 귀기가 피어올랐다. 장력도 아니고 호신강기도 아닌 이상한 기운이 확 퍼지면서 주석하를 감쌌다.

주석하의 짙은 검미가 꿈틀거렸다. 이런 무공을 이미 경험한 적이 있다. 귀군이 내력을 흩트리는 기이한 무공을 사용했었다.

그렇기에 주석하는 당황하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은 잔백귀혼과 그의 내력이 하늘과 땅 차이다. 잔백귀혼이 술법으로 어찌해 볼 상대가 아니다.

푸른 귀기에 휩싸인 주석하를 살피면서 잔백귀혼이 호탕한 대소를 터트렸다.

“크하하! 몸이 이상하지? 내력이 사라지고 힘이 쭉 빠지지? 그게 모두 본좌의 신공이니라! 네놈은 목만 쭉 빼고 기다려라!”

주석하는 상대를 노려보면서 앞으로 한발씩 이동했다. 그 모습은 흡사 내력을 잃고 흐느적거리면서 상대를 증오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술법이 먹혔다고 생각한 잔백귀혼이 다시 귀기를 뿜었다.

“쓰러져라!”

주석하의 몸을 둘러싼 귀기가 활활 타올랐다.

전신으로 으스스한 오한이 일었다. 마치 물에 빠진 솜처럼 전신이 축 처지는 기분이다. 잔백귀혼의 귀기가 무공이 약한 자에게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 알 것 같다.

상대가 저항할 수 없도록 무력화시킨 다음에 일격필살의 방식으로 끝내려는 모양이다.

순간 날카로운 강기가 주석하를 향해 날아왔다.

조공(爪功)!

시퍼렇게 변한 잔백귀혼의 손톱이 확 길어지면서 날카로운 강기를 뿜어냈다.

가슴으로 공격해 들어오는 조공은 몸이 무력화된 상태에서는 대응하기 쉽지 않았다. 물론 지금의 주석하에게 해당하는 사항은 아니다.

턱!

주석하는 상체를 틀면서 반대로 잔백귀혼의 오른손을 순식간에 낚아챘다.

“어?”

뜻밖의 사태에 당황한 잔백귀혼이 주석하를 둘러싼 귀기의 효과를 확인하려 했다.

빡!

혼천십이권이 때맞추어 터졌다.

잔백귀혼의 얼굴이 휙 돌아갔다. 그의 한쪽 뺨이 찢어져 피범벅이 됐다.

내력이 그대로 실린 일 권에 잔백귀혼은 혼비백산했다.

“이놈이! 나를 속여!”

퍼버벅!

다시 주석하의 연타가 터졌다.

“넌 좀 맞아야겠다!”

“크헉! 으으, 왜 귀기의 효과가 없지?”

“그깟 귀신 놀이를 누가 겁내겠냐?”

백변환영보로 만들어진 환영이 주위를 장악하고 혼천십이권을 퍼부었다. 장기가 막힌 잔백귀혼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압도적으로 내력 차이가 나는 주석하에게 어설픈 술법을 쓴 것이 실수였다.

“으아악!”

잔백귀혼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된 채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놓아줄 주석하가 아니었다. 그의 오른손이 안타깝게도 여전히 주석하에게 잡혀 있었다.

상대를 거의 녹초로 만들었을 때 등 뒤에서 강력한 예기가 날아왔다. 검강이다!

주석하는 잔백귀혼을 내팽개치고 흑검소로 검강을 막았다.

콰앙!

충격이 만만찮다. 공격한 자는 붕천마검! 마교에서 검법의 일인자라더니 과연 대단했다. 단 일 초식만으로도 붕천마검의 무공은 잔백귀혼을 한참 능가하며 적어도 천력마부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넌 칼잡이냐?”

“흑검서생! 상대는 나다!”

“큭큭, 네놈이 감히 단천마령에게 대들어 보겠다고 한 놈이지?”

주석하는 염탐했던 대화 내용을 기억해냈다. 적어도 이놈만은 반드시 죽이겠다고 명심했었다.

방금 모의했던 내용을 주석하가 발설하자 붕천마검은 당황했다.

지금 이곳에는 소란을 듣고 뛰쳐나온 일반 마교도도 다수 모여들고 있었다. 그들이 붕천마검의 이 말을 단천마령에게 전한다면 대단히 곤란해진다.

“뭔 헛소리!”

“남아일언 중천금! 사내가 한번 뱉은 말은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야 하는 법이다!”

“내, 내가 언제…….”

“나를 봐라! 마교칠왕의 귀싸대기를 날린다고 장담하는 바람에 지금 고생하잖아!”

“귀싸대기?”

붕천마검은 그제야 주석하가 진짜 헛소리하고 있음을 간파했다.

미친놈에겐 몽둥이가 약이라 했다. 붕천마검은 검을 휘두르며 주석하를 압박했다.

날카로운 검강이 쭉쭉 뻗어 주석하의 사혈을 위협했다.

주석하는 흑검육식으로 대응했다. 검에는 검으로! 마교 최강 검수에 비해 그의 검법이 부족할 리 없다.

챙! 채챙!

흑검육식의 초반 두 개 초식을 연달아 펼친 후에야 주석하는 붕천마검과 평수를 이룰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예행연습, 본 대결은 지금부터다.

흑검육식의 네 번째 초식이 펼쳐지자 붕천마검도 당황했다. 흑검육식의 창시자인 흑풍검신은 마교와 숱하게 싸웠던 이력을 갖고 있다. 자연스럽게 검법에 마교의 무공에 대응하기 위한 기법이 녹아들었었다.

덕분에 흑검육식의 후반부 초식은 붕천마검에게 의외로 잘 먹혔다.

초식으로 대응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붕천마검이 내력을 끌어올려 검강을 키웠다. 무시무시한 검강이 거의 일 장이 넘게 뻗었다.

“하룻강아지 같은 놈! 네놈을 반 토막 내주마!”

붕천마검은 자신의 무공에 자부심이 강했다. 검공의 끝판왕이라 할 검강이라면 상대를 주눅 들게 하기 충분할 것이다.

검법을 수련하더라도 검강의 경지에 이르기 쉽지 않을 뿐더러, 이만한 길이로 뻗을 수 있는 자는 무림에 거의 없을 것이다.

주석하의 대응에 붕천마검의 두 눈이 확 뒤집혔다.

“뭘 놀래?”

놀랍게도 흑검소의 끝으로 검강이 이 장이나 뻗어 있었다.

검강이 길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주석하 또한 검법에서 뒤지지 않음을 증명했다.

“으으윽!”

붕천마검은 분노를 터트리며 주석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아니 시작하려 했다. 검이란 중후해지면 그만큼 속도가 느려지는 법이다.

그 순간 빛의 속도로 암천살검이 번쩍였다. 그 일 초는 일순간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붕천마검의 틈을 정확히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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