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화 마교로 (3)
사살과 오살은 득의양양하게 다시 몸을 돌렸다.
그들의 얼굴에는 주석하를 가엽게 보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제 네놈은 죽었다! 염라대왕 앞에서 염불이나 올려라!”
갑자기 돌변한 그들의 태도에 주석하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저놈들은 뭔가 잘못 먹은 게 확실하다.
그는 사살과 오살 뒤쪽에 갑자기 등장한 두 사람을 확인했다. 흰색과 검은색의 옷을 입은 두 사람! 어디에선가 많이 봤던 익숙한 자들이다.
흑귀와 백귀. 항상 우설금을 그림자처럼 호위하던 녀석들 아닌가.
주석하는 기감을 끌어올려 주위를 훑었다. 저들이 왔으니 우설금도 왔겠지?
그런데 전혀 그녀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실망이 어깨에 쏟아졌다.
그녀의 동정을 반드시 물어봐야 하기에 주석하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흐흐, 잘도 날뛰더니! 마교의 진정한 무서움을 보여주마!”
사살과 오살은 용기백배했다.
그들의 뒤에 버틴 흑백이귀는 무려 마교수호사령인 단천마령의 총애를 업은 자들이다. 사살이나 오살 같은 뜨내기 마교도와는 차원이 다르다.
지닌 일신상의 무위도 비교불가다. 그런 대단한 자들이 왔으니 중원의 청년 하나쯤은 충분히 해치울 것이다.
“크크크, 네놈에게 일살, 이살, 삼살을 죽인 대가를 받아내겠다!”
“무릎 꿇고 빌면…… 으악!”
위협적인 말을 내뱉던 녀석들이 갑자기 경련을 일으켰다. 사살과 오살의 육신이 정확히 둘로 쪼개졌다. 쏟아지는 빗물에 피가 흘러 냇물이 됐다.
그 장면에 정작 놀란 사람은 주석하였다. 그는 전혀 손을 쓰지 않았으니까.
사살과 오살이 통나무처럼 쓰러지자 그 뒤로 흑귀와 백귀가 보였다. 마치 전혀 손을 쓰지 않은 것처럼 두 사람은 평화로웠다.
평소처럼 흑귀와 백귀는 묵묵히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포로로 잡혔던 무림인들이 후다닥 일어났다.
그들을 이곳까지 데려오던 마교인 다섯이 모두 죽었다. 지금이야말로 도망칠 절호의 기회였다.
그들은 주석하와 흑귀, 백귀의 동정을 살폈다. 어느 쪽도 꼼짝하지 않고 마치 석상처럼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비가 오고 있어 더욱 기괴한 장면이었다.
용기를 낸 어떤 사람이 다리가 보이지 않게 도망쳤다.
흑귀, 백귀가 전혀 제지할 기색이 없자 봇물이 터지듯 한꺼번에 전염됐다. 그들 중 누구도 주석하를 향해 고맙다고 인사하는 자는 없었다.
다만 주석하와 안면이 있는 악홍아만은 조금 떨어진 곳까지 도망친 후 눈치를 봤다.
물론 주석하는 지금 악홍아의 존재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직 흑귀와 백귀뿐이었다.
그에겐 우설금의 안부만이 최대의 관심사였다. 심지어 저 둘이 왜 같은 편인 마교인을 죽였는지도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주 공자님.”
백귀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주석하는 두 사람에게 반문했다.
“우 소저는 어디 있습니까?”
“총단에 있습니다.”
“무사한가요?”
“그게…….”
백귀가 주변을 쓱 훑었다. 빗소리가 요란한 데다 인근에 사람이라곤 없었다.
포로는 모두 도망쳤고 포로를 호송하던 마교인들은 모두 죽었다. 다만 저쪽에서 한 여자가 이쪽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말해봐요. 어떤 상황인지.”
“저희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다만 아가씨께서 저희에게 덕양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곳에서 마교칠왕의 동정을 살피라고…….”
덕양 인근에 모인 마교칠왕이라면 이미 주석하가 해치운 뒤가 아닌가. 갑자기 우설금이 덕양을 언급한 것도 이상했다.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요?”
“그렇습니다. 저희도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아가씨께선 지금까지 저희를 이런 식으로 보낸 적이 없거든요. 게다가 최근 교내에 도는 소문도…….”
“무슨 소문이죠?”
“천마가 총애를 거뒀다는 소문입니다. 조만간 아가씨께서 마교수호사령을 그만두리란 추측이 있습니다.”
물론 주석하는 마교의 관례에 밝지 않다. 지금 흑귀와 백귀의 말뜻을 정확히 해석하기 힘들지만 우설금의 위기만은 피부로 느껴졌다.
주석하는 심각한 표정으로 다그쳤다.
“문제가 있지? 뭔가 비정상이잖아? 우 소저의 행동이 평소와 다른 거지?”
흑귀와 백귀는 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주석하는 머릿속에서 여러 정황을 종합했다.
평소와 다른 우설금의 움직임은 그녀의 결심을 뜻한다. 원수인 천마를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다. 수하인 흑귀와 백귀를 내보낸 것은 실패했을 때 발생할 여파에서 이 둘을 보호하려는 의도다.
어쩌면 벌써 작전을 개시했으려나?
다행스럽게도 어제 만리안석으로 확인했을 때까지는 별다른 조짐이 없었다. 적어도 아직은 안전하다고 볼 수 있다.
화가 난 주석하는 그들을 나무랐다.
“당신들은 그러고도 단천마령을 수호한다고 할 수 있나?”
“저희는 아가씨의 명을 따를 뿐입니다.”
“상황이 이상하다는 정도는 당신들도 알잖아? 그런데 떠나라고 해서 무책임하게 떠난다고?”
침통한 표정으로 흑귀와 백귀가 무릎을 꿇었다.
“아가씨를 도와주십시오!”
흑귀와 백귀도 완전히 눈과 귀를 닫고 있지 않았다. 우설금의 결심을 어렴풋하게 눈치챘던 상황이다.
“당신들은 천마의 수하인가? 아니면 우 소저의 사람인가?”
“우리는…… 평생 아가씨만 모셨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두 사람이 주석하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엎드렸다. 비가 오는 중이라 바닥이 엉망임에도 그들은 거리낌이 없었다.
방금 이들이 마교인을 죽여 버린 행위만으로도 그들의 충심을 의심할 이유가 사라졌다.
이들이 정말 우설금의 편이라면 이들과 함께 움직이면 큰 도움이 된다.
마교 총단의 분위기와 지리를 확실하게 아는 자들이니까. 전생에서 칼받이가 되어 마교를 방문한 것이 유일한 경험인 그를 보완해 줄 수 있다.
“그럼 지금부터 나와 함께 움직이죠. 우 소저를 구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천마는 어떻게 합니까?”
백귀와 흑귀의 안면에 두려움이 드리워졌다. 마교인인 이들에게 천마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공포 그 자체다.
“우리가 천마를 제거할 수 있을까요?”
“어, 어렵습니다.”
백귀가 확고하게 대답했다.
주석하는 천마의 능력을 알지 못한다.
그와 우설금이 연합하면 가능성이 한층 커지겠지만 그 결과를 추정할 어떤 정보도 갖고 있지 않다. 이 점은 흑귀와 백귀도 마찬가지다.
‘아마 우 소저도 모르겠지.’
그나마 주석하는 천마가 무한회귀공을 이용해서 어쩌면 꽤 여러 번 회귀를 거듭하면서 무공을 수련했다는 사실을 안다.
그렇기에 범인이 상상하는 이상으로 강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이 작전은 최악의 경우를 고려해서 움직여야 한다.
“좋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천마가 아니라 우 소저를 살리는 겁니다. 물론 여의치 않으면 천마와 맞부딪칠 수도 있겠지만 최대한 천마의 눈에 띄지 않도록 작전을 짜보죠.”주석하의 대답에 흑귀와 백귀가 안도했다.
“그럼 바로 가실 겁니까?”
“빠를수록 좋으니까요.”
주석하는 곧장 이동을 제안했다. 어차피 포로들이 도망치고 호송인이 죽은 이곳에 오래 머물러봤자 흔적만 남기게 된다.
주석하와 흑귀, 백귀가 사라지자 뒤늦게 악홍아가 나타났다.
그녀는 주석하가 사라진 방향을 한참 쳐다보다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어차피 중원으로 돌아가도 막막해. 이렇게 된 거…… 저 사람을 따라가자. 저 사람의 무공은 무림맹주와 비견할 정도니까 위험하지는 않을 거야. 눈도장도 찍었고.”악홍아도 빗속을 저벅저벅 걷기 시작했다.
***
십만대산.
고산준령이 끝없이 펼쳐진 오지.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것이라고는 산봉우리밖에 없는 첩첩산중이다.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날씨마저 서늘했다. 비까지 내리니 풍경이 을씨년스럽다.
주석하는 전생에 이곳에 왔던 기억을 떠올렸다.
지금 총단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펼쳐진 넓은 고원지대가 그가 왔던 곳이다.
그는 이곳에서 마교와 싸우다가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그 아래가 마교의 무량뇌옥일 줄은 전혀 몰랐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흑도팔군 가운데 여섯을 만났다. 물론 무량뇌옥에서의 그들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몰골이 남루한 괴인들이었다는 것뿐.
그의 추측에 따르면 뇌군이 무한회귀공을 익혀 그를 오 년 전으로 회귀시켰다.
그것이 대략 이 년 반 전의 일이니 전생에서 그가 이곳에 왔던 때는 지금부터 약 이년 반 후가 된다.
그때와 비교하면 세월의 흐름이 두 배나 빨라졌다. 그는 절반의 시간 만에 십만대산에 다시 왔다.
“여기부터는 조심해야 합니다.”
“저 멀리 보이는 석문이 바로 천주문이고 총단으로 들어가려면 저 문을 반드시 통과해야 합니다.”
흑귀와 백귀가 몸을 숨긴 상태에서 그에게 설명했다.
주석하는 멀리 보이는 거대한 석문을 확인했다.
그곳까지 이어진 천혜의 좁은 미로, 그곳에는 중원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각종 기물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게 쌓여있다.
기관과 진식이 그를 환영할 것이다.
“일단 상황을 지켜보겠습니다.”
흑귀와 백귀가 앞장서서 정탐을 계속했다.
총단을 바라보며 주석하는 생각에 잠겼다.
추측에 따르면 무량뇌옥에서 뇌군이 주석하를 회귀시킨 목적은 천마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다.
이 추측을 주석하도 동의했다. 그게 아니라면 관련 없는 그를 무리해서 과거로 보낼 이유가 없으니까.
무한회귀공을 천마도 익혔다. 그렇다면 천마는 이 사실을 사전에 알았다. 어쩌면 이 또한 천마가 기획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지금의 천마는 주석하가 회귀자임을 알고 있다. 천마와 맞서려면 가장 먼저 이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최근에 천마가 태도를 바꿨다고 봐야겠지.’
지금까지 천마는 그를 내버려 뒀다. 우설금을 보내 감시한 게 전부다. 우설금에 의하면 천마가 그렇게 관심 가진 이는 그가 유일했다. 정파의 최강고수인 반야불존이나 심지어 무림맹주인 무극천존도 이만큼 천마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것으로도 천마는 그가 회귀자임을 안다고 확신할 수 있다.
‘태도를 바꾼 이유는 세월이 천마의 의도와 다르게 흘러갔다는 뜻이겠지…….’
고민을 거듭하자 점점 상황이 명확해졌다.
지금 천마에게 가장 곤혹스러운 일은 우설금이다. 예전에는, 심지어 전생에서도, 또 이번 생의 계획에서도 우설금은 천마의 충직한 부하였어야 한다.
전생에서 주석하는 우설금과 관련한 어떤 소문도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데 지금 우설금이 천마에게 반기를 들었다. 심지어 천마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 이제 천마는 우설금을 죽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천마는 지금 바로 시간을 되돌리지 않는 걸까?’
계획이 틀어졌다면 회귀해서 모든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 적어도 우설금이 반야불존과 만나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린다면 천마의 계획대로 다시 흘러간다.
‘당장 무한회귀공을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어.’
어쩌면 그것이 무한회귀공의 약점일지도 모른다.
일반 무공처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면 무한회귀공은 역천의 무공이자 절대자의 무공이다.
그렇다면 오래전에 세상은 배교의 지배하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마교의 지배하라던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 약점이 뭐냐?’
무한회귀공에 대해 전혀 모르니 답답했다.
우설금을 구하려 해도, 설사 구하더라도 천마가 무한회귀공을 사용하는 순간 물거품이 된다.
그렇기에 언제든 그와 우설금을 해치울 수 있다고 믿게 해야 천마가 무한회귀공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천마가 방심하면 그때 한 방에 천마를 해치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