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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검천하-229화 (229/273)

229화 마교 입성 (1)

흑귀와 백귀를 전방으로 탐색 보낸 후 주석하는 시선을 뒤쪽으로 돌렸다.

그곳에는 악홍아가 덤불에 몸을 숨긴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주석하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나왔다.

저 여자는 왜 따라온 걸까. 오지 말라고 한차례 경고했었는데도 계속 따라왔다. 그들의 행선지가 마교란 것을 알면서도 따라왔으니 어쩌면 정신이 좀 이상할지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돌아가요.”

악홍아가 고개를 저으며 거부했다.

“앞으로는 내가 지켜주지 못해요.”

“알아요. 하지만 갈 곳도 없는걸요.”

뻔뻔한 악홍아의 대답에 주석하는 할 말을 잃었다. 하긴 그녀가 어떻게 되든 그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다.

“갈 곳이 왜 없어요? 사문인 광천곡으로…….”

“이미 망했는걸요.”

“아!”

그때 사마세가 때문에 망했다고 했었나? 그러고 보면 악홍아야말로 격동하는 무림의 피해자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하필이면 이 위험한 곳을…….”

“당신 옆에 있으면 안전하잖아요.”

그를 맹신하고 있었다. 예전에 악홍아는 그가 무림맹주인 무극천존을 상대하는 장면을 목격했었다. 아무래도 그때의 인상이 강렬했었나 보다.

주석하가 눈치를 주자 시무룩해진 악홍아가 재차 다짐했다.

“절대 당신에게 폐를 안 끼칠 테니까…….”

“알았어요. 어쨌든 몸조심해요.”

마교란 곳에서 그게 가능할 턱이 있나?

그러나 주석하는 설득을 포기했다. 어차피 이제는 돌려보내기도 늦었다. 단지 그녀가 작전에 방해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녀의 생사는…… 그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정탐을 나갔던 흑귀와 백귀가 돌아왔다.

“평소와 다른 점은 없습니다. 일단 돌파를 시도해볼까요?”

“어떻게?”

“호위병 가운데 아는 녀석이 좀 있거든요.”

달리 방법이 없는 듯하여 수락했다.

적을 속이고 들어갈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설사 막힌다고 해도 상관없다. 어떻게든 뚫고 들어가서 우설금을 만날 거니까.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시도하겠습니다.”

백귀의 대답에 주석하는 땅바닥에 편하게 앉아 쉬었다. 오늘 밤은 운명의 날이 될 것이다.

***

보름달이 떴다.

잠입할 때 가장 나쁜 조건이 바로 달 밝은 밤이다.

하필 이런 날을 선택하다니.

주석하는 떠오르는 달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아마 도수라면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그런 날이다.

어쩌면 그렇기에 적들이 방심하고 있으려나? 그렇게 정신승리를 되뇌면서 눈으로 백귀를 재촉했다.

백귀는 홀로 좁은 길을 올라가더니 호위병을 만나 열심히 대화했다. 한참 후에 백귀가 다시 되돌아왔다.

“해결했습니다.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어떻게?”

“공자가 단천마령의 친척이라고…….”

“그게 되나?”

“마교수호사령의 위세가 대단하니까요.”

태연하게 대답하는 백귀와 달리 주석하는 실소를 머금었다.

하긴 마교에서는 천마의 명이라면 못할 일이 없고, 그런 천마 다음인 마교수호사령의 권위는 어쩌면 그가 상상하던 것 이상일지도 모른다.

예상보다 순조롭게 돌아가는 듯 하여 주석하는 안심했다.

흑귀와 백귀를 앞세우고 그 뒤를 주석하와 악홍아가 따라갔다.

총단으로 향하는 석문에 가까워질수록 길이 좁아지고 양옆으로 암벽이 높아졌다. 마교를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드는 장치다.

‘하나, 둘, 셋…….’

주석하는 암벽에 숨겨진 기관과 암벽 위에서 그들을 관찰하는 여러 시선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들이 풍기는 은은한 살기가 그의 투지를 불러왔다.

이곳에 매복한 자들은 평범한 무림인에 비하면 꽤 강한 녀석들이지만 그를 위협할 수준은 아니다.

심지어 악홍아도 녀석들에 뒤처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마교인이 약한 것이 아니라 악홍아가 강한 것이다. 악홍아도 중원에서 꽤 잘나가던 사파 문파의 소문주였으니까.

‘예전에는 저런 녀석들에게 떠밀리다 절벽 아래로 떨어졌었는데…….’

전생과 비교하면 지금 주석하의 무공은 상전벽해라 할만 했다. 당시는 그렇게 두려웠던 마교인이 지금은 한낱 어린아이처럼 느껴진다.

앞으로 나아가던 그들 일행이 다시 걸음을 멈췄다.

백귀가 다시 경계병과 대화를 주고받았다.

잠시 주석하와 악홍아를 훑어보던 마교의 경계병이 손짓으로 통과를 지시했다. 아무래도 여자인 악홍아가 있어서 쉬워진 느낌도 든다.

마교도 중원의 다른 문파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아무리 삼엄하게 경계를 펼쳐도 사람 사는 곳인 만큼 허술한 구멍이 존재한다.

얼마나 전진했을까. 총단으로 들어가는 거대한 석문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

그때 주석하는 이상한 움직임을 감지했다.

암벽 위에 잠복해있던 녀석들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주석하는 동료들을 멈추게 하고 백귀에게 의문의 신호를 보냈다.

그 순간!

“잡아라!”

막 그가 들어왔던 통로로 마교인들 수십 명이 우르르 몰려나와 뒤를 차단했다.

주석하는 실소를 머금으며 주변을 살폈다.

그들이 지나왔던 뒤쪽은 막혔다. 그들의 앞쪽도 마교인들이 포진했다. 암벽 위에서 화살을 겨누는 놈들마저 보인다. 완전히 독 안에 든 쥐 신세로 전락했다.

“저들은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있나 봐?”

“이건…… 아가씨의 신분에 이상이 있다는 뜻입니다.”

백귀가 분노를 터트렸다.

“어쨌든 돌파한다. 너희는 악홍아를 보호해.”

사실 흑귀나 백귀가 그를 돕는다고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흑귀나 백귀의 실력으로 이 포위망을 뚫기는 불가능하니까.

시간은 없다. 이렇게 된 이상 무조건 서둘러야 한다. 주석하는 흑검소를 손에 들고 앞으로 질주했다.

“간다!”

그가 움직이자마자 화살이 비 오듯 쏟아졌다.

사실 이런 화살은 무섭지 않다. 검으로 막아내고, 설사 놓쳐도 호신강기에 막혀 최강고수에겐 위협이 되지 않는다.

앞에 포진한 마교인의 검이 그를 찔러왔다.

챙!

주석하는 흑검소로 가볍게 튕겨냈다.

이들과 싸울 마음은 없지만 통과시키지 않겠다면 그도 어쩔 도리가 없다. 그들을 죽이고 시산혈해가 무엇인지 보여줄 수밖에.

콰직!

주석하가 장내를 정리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십여 명으로는 그의 전진 속도를 늦출 수 없었다.

“으악!”

그가 지나간 자리에서 비명이 터졌다.

앞을 대충 처리한 주석하는 뒤쪽 포위망을 살폈다.

뒤에서 포위망을 형성한 무리가 멈칫거리며 그들을 따라오고 있었고 쏟아지는 화살은 이전보다 더 많아졌다. 이제는 심지어 암벽의 기관이 작동해서 화살과 암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다행히 흑귀와 백귀가 악홍아를 보호하면서 큰 위험 없이 그를 따라붙었다.

“계속 간다!”

주석하는 비릿한 미소를 머금고서 전면에 포진한 마교인들을 노려보았다. 그의 표정은 흡사 지옥의 아수라를 닮은 듯했다.

어차피 이들은 중원인이라면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는 무자비한 마교도이니 자책감을 가질 이유는 없다.

서걱-

흑검소에서 뻗은 검기가 다시 수 명의 마교인을 쓰러트렸다.

그렇게 수십 장을 나아갔을까.

주석하의 앞을 거대한 석문이 가로막았다.

천주문! 바로 세상과 마교를 분리하는 석문이자 마교 입성을 알리는 상징이다.

거대한 석문은 웅장했고 양각, 음각으로 새겨진 아수라상이 무시무시했다. 문의 좌우에 세워진 거대한 사자상도 마교의 위엄을 자랑하듯 위풍당당했다.

과거에 주석하는 이 석문을 통과한 적이 없었다. 바로 이 석문 앞에서 중원의 연합군은 말 그대로 썰려 나갔으니.

전생을 회상하던 그는 재빨리 현실을 자각했다.

“문을 열어라!”

당연히 주석하의 말을 들을 자는 없다.

전면이 막혔기에 뒤에서 포위망을 형성한 녀석들의 수가 점점 불어났다.

“아무래도 망한 것 같아요!”

악홍아가 창백하게 질린 채 주석하만 바라봤다.

주석하는 백귀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이 문은 어떻게 여는 거야?”

수만 근은 됨직한 무거운 석문이 단순히 힘으로 민다고 열릴 리 없다.

“보통 아가씨랑 함께 움직일 때는 옥패가 있어서…….”

“다른 방법은?”

“안에서 열어줘야 합니다.”

백귀의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주석하는 석문을 올려다봤다. 육중한 석문이 코앞에서 그를 압박하고 있었다.

물론 그 혼자라면 어렵지 않다. 그에게는 절정의 화판답공이 있으니까. 물론 허공에 떴을 때 화살이 쏟아지면 조금 위험하기는 하겠지만 호신강기로 어떻게든 처리한다고 보면.

“아무래도 주 공자께서 석문을 타고 넘어가서 해결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대로는…….”

점점 좁혀오는 포위망에 흑귀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흑귀와 백귀의 도움은 여기까지인 듯하다. 예상했지만 길잡이 외에는 그리 쓸모가 없다.

“흐흐, 흑귀! 백귀! 항복하라! 목숨은 살려주마!”

한 놈이 튀어나와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무시무시한 마기를 흘리는 것을 보니 제법 힘을 쓰는 놈이 분명했다.

“저놈은 누구지?”

“금천마령 밑에 있는…… 적광(赤狂)이라는 놈입니다.”

“적광? 제대로 미쳤나 보군.”

금천마령은 마교수호사령의 일인자이고, 그런 자의 부하가 이곳을 지휘한다는 것은 나쁜 조짐이었다.

사실상 그가 침입한 것을 금천마령을 포함한 마교 수뇌부가 이미 안다고 봐야 한다.

“이젠 네놈들이 용을 빼는 재주가 있어도 꼼짝할 수 없다. 좋은 말할 때 검을 버리고 항복하라!”

적광이 가소롭다는 듯 실실 웃으며 재차 항복을 권유했다.

“그리고 너희 둘! 중원에서 온 네놈들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어라!”

포위망이 완성되고 빠져나갈 틈이 없으니 누가 봐도 진입은 실패로 끝났다.

“어떻게 하죠? 일단 항복하고 훗날을 기약해요?”

악홍아가 덜덜 떨면서 주석하의 눈치를 살폈다.

주석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하늘을 쳐다봤다. 이제는 제법 높이 떠오른 보름달이 세상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달을 보자니 우설금과 함께 달을 보던 그때가 떠올랐다. 지금도 달 속에서 우설금이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살아있어야 해…….’

주석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마교로 가겠다고 결심했을 때 쉬우리란 생각은 버린 지 오래다. 어차피 하나하나 따져가며 도전한 인생은 아니지 않나?

회귀한 이후로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렸다.

앞으로는 남의 바둑돌이 되어 꼭두각시 인생을 살지 않고 내 뜻대로 목을 세우고, 가슴을 펴고 살겠다는 바람으로 전진했다.

누가 앞을 가로막든 겁낸 적이 있었던가? 그의 생은 이미 과거에 끝났고 지금은 덤으로 주어진 것이니 무서울 게 무엇인가.

으드득-

주석하는 소리 나게 이빨을 깨물었다.

“막히면 뚫는다!”

그의 중얼거림에 악홍아가 화들짝 놀라 만류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걸 뚫기엔…….”

엄청난 두께의 석문. 수십 명이 도끼를 들고 내리쳐도 절대 부서지지 않을 육중한 석문을 확인한 악홍아가 고개를 저었다. 이 세상에서 이런 석문은 파괴할 수 없다. 설사 괴물이 등장한다 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으아아아!”

주석하는 우설금을 떠올리며 내력을 끌어올렸다.

그의 몸에서 무지막지한 기운이 피어올랐다. 악홍아를 비롯하여 흑귀 백귀는 고개를 저으며 기대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끌끌, 저놈 뭐 하는 거야?”

“미친놈 아냐?”

도리어 적광이 미친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놈을 따라 그 부하들 또한 한바탕 비웃음을 흘렸다.

그들이 볼 때 저놈은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이라면 저런 무식한 행동을 할 수 없으니까.

고오오오-

주석하의 몸에서 강기의 폭풍이 뿜어졌다.

그가 앞으로 양손을 쭉 뻗는 순간 하얀 한기가 빛처럼 뻗어 나왔다. 극에 달한 극음빙백신공이었다.

콰아아아아앙!

천지가 개벽하고 폭풍에 휘말렸다.

모두의 입이 쩍 벌어져 턱이 빠진 가운데 천주문에 금이 쭉쭉 그어졌다.

하나, 둘, 셋…….

열을 세기도 전에 석문이 무너져 내렸다.

인간이 아니었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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