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화 마교 입성 (3)
우설금은 공중에 매달린 채 꼼짝할 수 없었다. 천마의 내력은 불가항력이었고 그녀는 저항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야 놈을 공격할 수 있는데 현실은 그마저도 어려웠다.
천마가 비웃음을 흘리며 설명을 계속했다.
“난 너를 무적의 마교 전사로 길러냈다. 물론 쉽지 않았지. 때로는 넌 강자가 되지 못했고, 때로는 마교의 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다. 나의 목표는 마교수호사령과 마교칠왕을 완벽하게 구성하는 것이었으니까. 물론 나 자신이 강해지는 것은 덤이고 말이야.”우설금은 천마가 왜 그렇게 완벽해 보였는지 그 이유를 어렴풋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몇 차례의 회귀를 거듭하면서 전생에서 잘못 흘러간 사건을 바로 잡았으니까. 그런 천마에게 누구도 대항할 수 없었던 것이 당연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지. 무한회귀공을 익혔다고 무조건 가능한 일은 아니야. 왜냐하면, 한 번 회귀할 때마다 적어도 일갑자의 내력이 소모되거든. 회귀한 후 일갑자의 내공을 다시 채우지 못하면 오히려 손해를 본다 이 말이지. 다행히 그 내공을 십년유심홍 열매가 채워줬어. 너도 알지? 천화원에서 자라는 예쁜 약초!”우설금은 천마가 애지중지하던 작은 화초를 떠올렸다. 그가 그 화초를 왜 그렇게 중요하게 여겼는지 몰랐었는데 이제는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물론 십년유심홍의 열매를 먹는다고 항상 내공이 일갑자 늘어나진 않아. 처음엔 가능하지만 계속 복용하면 다른 약초처럼 내성이 생기거든. 이를 방지하려면 여의신단을 함께 먹어야 해. 어쨌든 나는 너를 그렇게 키워냈다. 마교의 전사로서 중원에 칼을 겨누도록.”우설금은 분노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천마는 그녀가 상대하기 어려운 고수였다.
천마는 그런 우설금에게 비웃음을 터트렸다.
“가장 최근의 회귀로 이번 생은 불과 이 년 반 전에 시작했지.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내가 아닌 뇌군이 주도했다. 물론 내가 허락해주었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나는 흑도팔군을 무량뇌옥에 가두고 무한회귀공을 던져주었다. 뇌군이 무슨 짓을 하는지 지켜보는 게 재밌었거든. 놀랍게도 그놈은 자신이 회귀하지 않고 주석하를 회귀시켰어.”갑자기 주석하가 등장했다.
우설금은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쩐지 천마가 주석하에게 관심을 가지더라니. 그녀가 주석하를 만나기 전부터 천마는 이미 그를 알고 관찰하고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발생했어. 내가 회귀를 거듭하며 심혈을 기울여 키운 너와 뇌군이 회귀시킨 주석하가 가까워지더라고. 두 사람 모두 정상이 아니고 하늘의 운명을 거스른 자이니 그런 둘이 만나면 어떻게 될지 궁금했었다. 너희는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어. 너도 주석하도 놀랄 만큼 신선한 활약을 해주었으니.”우설금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석하까지 천마의 바둑돌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두 사람이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 것도 이런 운명 때문일까.
“그를…… 건드리지 마!”
우설금은 발버둥 치면서 소리쳤다.
천마가 가소롭다는 웃음을 터트렸다.
“나의 충실한 개를,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개를 내가 죽일 리가 있나? 예전에 말했을 텐데? 그가 대업에 걸리적 거리지 않는다면 문제 삼지 않는다고. 그런데 너도, 그도 걸리적 거리려고 발악을 하는데 그냥 둘 수 있겠나?”
“마교칠왕을 죽인 것은 나야.”
“흐흐, 이제 실토하는군. 하지만 이미 늦었다. 지금 그 자식이 이곳까지 쳐들어왔거든. 살려두기엔 찜찜하지 않나?”
우설금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주석하가 왔다고? 이곳 마교까지? 그가 이곳으로 올 이유는 그녀가 아니라면 있을 리 없다. 모두 그녀 때문이다.
주석하가 왔다는 말에 우설금은 절망에 사로잡혔다.
“기대되지 않나? 주석하가 과연 이곳 천마각에 도착할 수 있는지. 말했다시피 그는 뇌군에게서 임무를 부여받았을 거야. 뇌군이 전생에서 무한회귀공까지 사용해서 꾸민 계략이 어떻게 결말이 날지 나도 궁금해.”
“오면 안 돼…….”
우설금은 신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주석하가 천마를 상대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설사 주석하가 천주문을 통과한다고 해도 그다음에는 마교수호사령 셋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곳에 금천마령과 은천마령이 없다는 사실이 이를 확신하게 한다.
주석하가 최근에 강해졌다지만 마교수호사령 셋을 한꺼번에 상대할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천마의 비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너희는 바둑돌 신세를 절대 벗어날 수 없어. 어차피 이번 회귀는 실패작이야. 마교칠왕이 죽고 마교가 망가졌으니까. 오늘 밤은 십년유심홍의 열매가 익는 날이야. 그때가 되면 나는 자유롭게 회귀할 수 있다. 오늘 네가 이곳에서 죽건 말건, 주석하가 얼마나 선전하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해. 설사 너희 둘이 함께 여기를 탈출하더라도 상황은 변하지 않아. 나는 이번에는 십 년 전으로 회귀할 테니까.”지금부터 십 년 전.
우설금이 열 살이 될 때다. 아마 주석하도 같은 나이일 것이다.
그때로 돌아가면 그녀는 다시 참담한 과거를 답습하게 된다.
반야불존을 원수로 알고 천마를 은혜로운 사람이라 여기면서 오직 중원에 복수하기 위해 무공을 수련하던 그 시절로.
진실을 전혀 모르는 그녀는 이번처럼 불존에게 원수를 갚을 것이다. 이번에 실패한 천마는 이를 거울삼아 다음 생에는 그녀가 절대 진실을 알지 못하도록 수를 쓸 것이다.
주석하는 십 년 전으로 돌아가면 흑검문의 장남으로 평범한 삶을 살겠지. 그는 앞으로 뇌군과 만날 일이 없고 지금처럼 강한 무공을 익힐 기회도 없다.
쩌면 적혈방의 침입 때 죽고 가문은 멸문지화를 맞는 그 인생을 되풀이할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천마의 뜻대로…… 무한회귀공을 익힌 천마는 시공을 초월한 절대자이니까.
“나…… 나쁜 놈…….”
우설금은 신음을 터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천마를 저지할 방법이 없었다. 그녀가 이곳에서 천마를 죽이지 않는 이상 무한회귀공을 사용하여 원하는 때로 회귀하는 천마를 막을 방법이 없다.
그녀와 주석하는 아무것도 모른 채 다시 천마의 바둑돌이 될 것이다.
상황을 명확하게 이해한 우설금의 안면은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천마가 한바탕 대소를 터트렸다.
“크하하! 다음 생을 조금 바꿔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색공을 가르쳐 너를 천하제일의 색녀로 키운다거나 아니면 주석하 그놈을 색마로 변신시킨다거나…… 아니지, 너희 둘을 철천지원수로 만들어줄까? 서로 죽이려고 아등바등하는 그런 관계 말이야.”
“원수! 너를 반드시 죽일 것이다!”
우설금의 눈에 섬뜩한 핏발이 솟구쳤다.
“크흐흐, 뜻은 가상하다만, 일단 기다려보자고. 주석하 그놈이 과연 이곳에 도착할 수 있는지.”
천마는 가소롭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허공에 매달린 우설금에게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
거대한 석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수만 근의 돌덩어리가 산산이 조각나서 파괴됐다. 천주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던, 마교를 상징하던 가장 큰 석문이었다.
“후우, 뭐…… 별것 아니군.”
손을 털면서 주석하는 주위를 둘러봤다.
석문으로 막혔던 길이 뻥 뚫려있었다. 길가로 쓰러진 마교도가 널렸다. 멀쩡한 마교도들도 감히 주석하의 앞을 가로막지 못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무위를 목격한 덕분이다.
“인간이 아니야…….”
겁에 질린 마교도들이 뒤로 물러났다.
살려면 놈에게서 멀어져야 한다. 지금 그들에게 주석하는 악마의 사신이었다. 인간이 아닌 놈을 어떻게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수북이 쌓인 돌무더기를 지나면서 백귀가 흑귀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봤냐?”
“봤지. 인간 맞냐?”
“예전에는 저 정도는 아니었잖아?”
“그냥 아가씨를 꼬시는 놈으로 생각했는데…….”
“그래도 마교칠왕 잡을 때 보면…….”
백귀와 흑귀는 주석하의 평가를 모조리 바꿔야 했다.
사실 그들은 주석하를 그리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우설금이 그를 아끼지 않았다면 사고를 위장해서 이미 죽여 버렸을지도 모른다.
오늘 주석하를 데려오면서도 큰 기대를 걸지 않았었다. 달리 마땅한 수가 없었고 가던 길에 우연히 만나서 데려온 것뿐이다.
그런데 천주문을 붕괴시킨 압도적인 무력이 그들의 생각을 바꾸게 했다.
어쩌면 우설금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비록 천마와 맞설 수는 없겠지만, 어떻게든 천마만 피한다면 우설금을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
악홍아는 주석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녀는 넋이 나간 채 눈동자를 반짝였다.
물러났던 마교도들은 전열을 유지한 채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주석하는 마교도의 행동에 짜증이 팍팍 났다.
한 번 더 보여줘야 하나?
주변을 쓱 둘러본 그는 힘껏 진각을 밟았다.
콰아아앙!
석판과 땅거죽에 균열이 쫙 생기는가 싶더니 바닥이 함몰하고 땅거죽이 터져나갔다.
무너진 흙더미가 반동으로 치솟았다. 허공에 솟구쳐 순간 정지한 흙더미가 한 폭의 그림처럼 시선을 끌었다. 일대가 마치 지진이 발생한 것처럼 무너져 내렸다.
인간이라고 상상할 수 없는 괴력이었다.
“허억!”
그의 괴력에 혼비백산한 마교도들이 우르르 뒤로 물러났다.
마교는 강자존의 세계다. 때로는 이것이 오히려 약점으로 작용한다. 그들은 압도적인 힘을 보여준 주석하에게 경의를 표하며 감히 덤빌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짜식들! 별것 아닌 놈들이…….”
주석하는 마교 총단까지 쭉 뻗은 대로를 의기양양하게 전진했다.
달빛이 교교히 비치는 곳곳에 기관 진식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 방어벽이 제대로 작동을 시작했다.
천주문 밖도 기관이 넘쳐나더니 이곳도 다르지 않다.
다만 그의 눈에 기관의 핵심장치들이 어렴풋하게 눈에 들어왔다. 뇌군에게 받은 ‘천하무적 기관진법’ 서적 덕분이다.
“내가 제갈세가도 작살냈었는데 이런 조잡한 기관쯤이야 가소롭지.”
주석하는 양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고오오오-
그의 손에서 강력한 기운이 일었다.
놀랍게도 바닥에 놓여있던 돌조각들이 떠올랐다. 무려 수백 개에 달하는 돌덩이가 허공에 떠서 맴도는 광경은 실로 장관이었다.
백귀와 흑귀는 그 장면에 눈만 껌벅였다. 대체 무엇을 하려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그 순간 주석하가 손을 가볍게 휘저었다.
파파파팍-
수백 개의 돌조각이 사방으로 날아가며 양옆의 석벽에 박혔다.
콰아앙!
놀랍게도 사방의 석벽과 바닥판이 들썩였다.
단 일격에 대부분의 기관진식이 엉망으로 망가졌다. 침입자를 막아야 할 기관들이 돌조각에 작동해서 그 소임을 다한 것이다.
순식간에 죽음의 기관진식이 쓰레기더미로 변했다.
얼이 빠진 백귀와 흑귀에게 주석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남은 건 거의 없을 걸? 이제 가볼까?”
주석하가 앞장서서 총단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달빛을 뚫고 마기가 짙어졌다.
이 사실을 흑귀와 백귀 이전에 주석하가 가장 먼저 눈치챘다. 뭔가 엄청난 녀석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설사 마교칠왕이라도 이처럼 위압적이진 않을 것이다.
“뭔가 온다……. 엄청난 것이…….”
주석하는 걸음을 멈추고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를 뒤따르던 흑귀와 백귀가 다급하게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총단에 들어왔으니 이제부터는 각자의 목숨은 스스로 챙겨라. 얼른 떠나! 위험하다!”
주석하의 경고에 흑귀와 백귀는 반신반의했다.
길목의 기관이 부서졌으니 위험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주석하가 위험하다고 경고할 정도라면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벼락처럼 떠오르는 생각에 흑귀와 백귀는 몸이 굳었다. 주석하가 저렇게 경계할 대상이라면 그것은…….
“얼른 피해!”
흑귀와 백귀가 악홍아에게 소리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악홍아는 영문을 모르고 그들을 따라 마구 달렸다.
그 순간, 하늘에서 거대한 마기가 내리꽂혔다.
콰아앙!
그 기운은 단 일격으로 주석하의 주변을 쑥밭으로 만들었다. 주석하에 의해 파괴되었던 기관진식이 재차 박살 나고 돌더미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사방으로 퍼지는 충격파에 일대가 태풍을 맞은 것처럼 난장판이 됐다.
자욱하게 낀 먼지 속에서 주석하가 낄낄거리며 포효했다.
“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