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검천하-232화 (232/273)

232화 마교 입성 (4)

어두운 하늘에서 세 줄기의 마기가 아래로 내려앉았다.

약 십 장 앞에 착지한 세 사람은 굳은 표정으로 주석하를 노려봤다.

주석하도 눈을 부릅뜨고 그들을 관찰했다. 이들이 내뿜는 마기는 적어도 우설금보다 한 수 위였다. 묻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것 같다.

“금천마령, 은천마령, 묵천마령이군.”

두 사람은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노인이었다.

각각 금빛이 번쩍이는 옷과 은빛이 번쩍이는 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들보다 한 걸음 뒤에 그나마 젊은 중년인이 서 있었다. 시커먼 옷을 입어 달빛 속에서도 잘 보이지 않았다.

“아는구나.”

금천마령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신들을 통과하면 천마를 만날 수 있나?”

“네놈이 함부로 입에 올릴 이름이 아니다!”

은천마령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단천마령은?”

“호오, 단천마령을 찾아왔나? 지금쯤 천마와 독대하고 있을 걸?”

한편으로는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걱정이 태산처럼 내려앉았다.

적어도 죽지는 않았으니까 빨리 이들을 해치우면 그녀를 구할 기회가 있겠지? 아니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마교수호사령이 풍기는 마기는 상황이 녹록치 않다고 경고했다. 방금 그를 공격했던 일격만으로도 이들의 무공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했다.

천마가 다른 수를 부리기 전에 해치우겠다는 작전은 어쨌든 실패했다.

“흐흐, 네놈이 단천마령의 기둥서방이라는 그 자식이구나.”

기둥서방이라? 굳이 부인할 생각은 없다. 그가 이곳에 잠입한 이유가 그녀 때문이니.

“방금의 일격을 제대로 받아 내다니 네놈의 평가를 수정해야겠어.”

금천마령이 그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그 평가는 계속 수정될걸? 난 받은 것은 그대로 돌려주는 성미라서 말이야.”

주석하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폭발적인 속도로 치달렸다.

그의 저돌적인 공격에 마교수호사령이 당황하는 순간 주석하의 흑검소가 공간을 찢었다.

콰아앙!

뜨거운 붉은 기운이 마교수호사령을 휩쓸었다.

감히 받아치기 어려운 강력한 공격에 금천마령과 은천마령은 양쪽으로 몸을 피했다. 묵천마령도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그들이 있던 자리에 극양염천신공이 그대로 내리꽂혔다.

마치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빛이 작열한 것처럼 뜨거운 기운이 거대한 구멍을 움푹 패고 지면을 갈랐다.

방금 마교수호사령이 공격했던 충격에 비견되는 무지막지한 충격파가 발생했다.

“호오, 대단한데?”

금천마령은 주석하의 무공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음을 깨닫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적어도 주석하의 무공은 마교수호사령 일인보다 더 높았다. 그들은 지금까지 중원의 무공을 깔보고 있었기에 그 충격은 상당했다.

“반야불존을 능가하는구나!”

“무극천존도 상대가 안 되겠군.”

“그래서 마교칠왕이…… 죽었나?”

묵천마령의 평가가 모두의 경각심을 불러왔다.

주석하의 무공 수위가 예측되지 않는다. 천마를 제외하고 주석하는 지금까지 그들이 만나본 최강고수였다.

금천마령은 은천마령과 눈빛을 교환했다. 지금 이 사태는 연합해서 합공해야 해결할 수 있다. 의심의 여지없는 현실이었다.

주석하는 공격을 피해 뒤로 물러난 마교수호사령을 비웃으며 재차 내력을 끌어올렸다.

“클클, 몸을 사려? 또 피하면 난 천마각으로 바로 뛴다!”

“미친놈!”

마교수호사령이 반응하기도 전에 주석하는 다시 번개처럼 앞으로 폭사했다.

돌파!

주석하의 흑검소가 앞을 뚫었다.

흑검소에서 뻗은 검강이 일직선으로 쭉 뻗었다.

어둠 속에 검강이 모습을 감췄으나 마교수호사령은 무시무시한 일격을 체감했다.

푸아아악-

그렇다고 피할 수는 없었다.

일격을 피했다가 정말 주석하가 선언한 대로 앞뒤 가리지 않고, 천마각으로 돌진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낯선 침입자가 방어벽을 뚫고 천마각에 입성하면 마교의 체면은 땅에 떨어지게 된다.

만일 천마각에서 저놈이 단천마령과 연합하는 순간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할 가능성도 있었다.

“막아!”

다급해진 금천마령이 양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검강을 목격한 은천마령과 묵천마령도 급히 가담했다. 금천마령 혼자서 주석하를 상대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천지를 쪼개버릴 듯 거대한 힘이 실린 강기가 부딪쳐 폭발했다.

콰아아앙!

십만대산의 적막을 깨트리는 충격파가 지면을 뒤흔들고 주변의 땅거죽이 쩍쩍 갈라지면서 참상을 드러냈다.

금천마령과 은천마령은 예상을 한참 넘어서는 충격에 간신히 신형을 바로잡았다.

무공을 익힌 뒤로 이처럼 격렬한 전투는 처음이었다. 그나마 충격이 세 사람에게 분산되었기에 큰 부상을 방지할 수 있었다.

지면이 뒤틀리고 갈라진 참상에 경악하던 금천마령은 그제야 주석하의 존재를 다시 되새겼다.

“놈은 어디에?”

그 순간 머리 위에서 강력한 기운이 내리찍었다.

“으헉!”

반사적으로 금천마령은 전력을 투입하여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금빛 기운이 어둠을 밝히며 하늘로 쭉 뻗었다. 무려 십여 장에 달하는 거대한 빛무리가 공간을 장악했다.

금천마령의 머리에서 불과 서너 장 위에 주석하가 떠 있었다.

투명한 호신강기가 휘몰아치고 흑검소에서 뻗어 나온 예리한 검강이 금천마령의 금빛 기운을 깨트렸다.

콰아앙!

금천마령이 딛고 선 지면이 종잇장처럼 함몰했다.

상상치 못할 강력한 위력에 금천마령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녀석의 내공은 측량 불가였다.

인간이라면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상상불가의 경지였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저놈을 여기에서 끝내야 한다!”

금천마령은 목표를 수정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천마의 명이었다.

녀석을 시험하라고. 녀석이 단천마령과 함께할 자격이 있는지 확인하라고. 단지 그런 수준의 명령이었고 금천마령도 큰 부담을 갖지 않았다.

그런데 몇 차례 겨뤄본 이후 그는 주석하야말로 마교 대업에 가장 방해되는 인물임을 깨달았다.

절대 이자가 천마와 만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주석하는 마교의 재앙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금천마령은 전략을 바꿨다.

“무조건 막아! 마기를 합쳐서 마벽을 세워라!”

금천마령의 신형에서 금빛 마기가 폭사했다. 금빛의 찬란한 강기의 마벽(魔壁)이 금천마령의 앞에 세워졌다.

저돌적으로 뚫고 전진하는 주석하를 막을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묵천마령이 경악해서 고개를 저었다.

“그, 그건 단천마령이 없어서…….”

“한 사람 없다고 마벽이 무너질까!”

은천마령도 가세했다.

그에게서 은빛 마기가 폭사하며 은빛의 마벽이 세워졌다.

금빛과 은빛의 이중 마벽은 무려 십여 장의 높이로 구축되어 어떤 것도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듯 위용을 자랑했다.

머뭇거리던 묵천마령도 어쩔 수 없었다. 그의 몸에서 흑빛 기운이 폭사하면서 금빛, 은빛 마벽과 한 몸이 됐다.

고오오오-

지금까지와 차원이 다른 가공할 마기가 위력을 발휘하면서 삼중의 마벽이 형성되었다.

그 마벽은 단순히 주석하의 전진을 가로막는 역할만은 아니었다.

점차 마기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주석하를 포위하고 산이 무너진 듯한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심한 내공 소모에도 주석하를 막고 생포할 최강의 마공이었다.

드드드드-

주석하를 가둔 마벽이 서서히 압축하기 시작했다. 그를 중심으로 오 장이나 간격을 두었던 마벽이 반 장까지 다가왔다.

마벽에 닿은 모든 물체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나간다. 주변에 서 있던 석상과 나무, 바닥에 깔린 대리석에 이르기까지.

푸스스스-

주석하는 마기가 뒤섞여 만들어낸 거대한 마벽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다만 지금까지 그가 접했던 어떤 무공보다 위력적이고 단단했다.

그렇다고 겁낼 그가 아니다. 그가 뚫지 못할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단전에 품은 내공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흑도마군 다섯 사람의 내력을 능가할 내공과 무공은 세상에 없다. 그런 믿음이 있기에 주석하는 망설이지 않고 마교수호사령을 향해 뛰어들었다.

“간다! 설금! 조금만 기다려! 내가 간다!”

마벽이 그의 전신을 조여왔다. 주석하의 내력이 폭발하듯 뿜어졌다.

콰아앙!

마기로 형성된 마벽에 균열이 발생했다!

***

흑귀와 백귀는 정신없이 앞으로 질주했다.

어차피 두 사람은 주석하의 안위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마교수호사령이 저지했으니 아마도 주석하는 그들을 뚫지 못할 것이다. 마교수호사령은 인간이 아니니까. 그들은 마교를 지탱하는 신이니까.

잠시 목격한 주석하의 신위가 떠올랐으나 마교수호사령을 넘을 리 없다고 그들은 전망했다.

지금은 주석하에게 기대를 걸기보다 그들 손으로 단천마령을 구해야 했다.

단천마령은 천마각에서 천마와 독대하고 있다고 했던가.

그들이 천마의 눈과 귀를 잠시라도 끌어주면 단천마령이 어떻게든 도망칠 수 있을지 모른다.

‘아가씨! 부디 무사하기를!’

흑귀와 백귀는 끊임없이 기도하며 앞으로 달렸다.

천마각이 눈앞에 들어왔다. 달빛 속에서 전각 지붕이 그림자를 드리운 풍경은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별다른 장애물이 없기에 순식간에 그들은 천마각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천마각의 한쪽 벽에 난 창을 통해 내부를 염탐했다.

“헉!”

그들의 눈에 내부의 처참한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단상에는 천마가 평소처럼 앉아 있었다.

그런 천마의 앞에 놀랍게도 우설금이 허공에 떠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우설금의 안색은 창백했고, 표정은 공포에 질려 있었으며 입에서는 끊임없이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들의 상상보다 더 나쁜 최악의 사태였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흑귀와 백귀는 결의를 다졌다.

이대로 내버려 두고 기회를 엿보기엔 상황이 너무 나빴다. 일단 되든 안 되든 우설금부터 구해야 했다.

두 사람은 생각할 것도 없이 창을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의 후속 수단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비록 천마를 무공으로 상대할 수 없을지라도 무조건 공격해서 틈을 만들어야 한다. 그 사이에 단천마령이 저 고통에서 헤어날 수 있다면.

“하압!”

그들은 기합을 지르면서 검으로 천마를 공격했다.

그들이 노린 사람이 적당한 고수였다면 모든 힘을 쏟은 두 사람의 공격은 큰 효과를 발휘했을 것이다. 상대가 마교칠왕이었다면 그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우설금에게 가한 기운을 흩트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들의 상대가 천마라는 사실이었다.

검을 앞으로 뻗는 순간 흑귀와 백귀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은 알 수 없었다. 다만 본능적으로 검을 앞으로 뻗었다. 천마가 검에 걸리기를 기원했다.

쾅!

전면에서 커다란 충격이 가해졌다.

흑귀와 백귀는 엄청난 압력에 몸을 꼼짝할 수 없었다. 앞으로 뻗은 검도 회수가 불가능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두 사람은 눈을 부릅뜨고 천마를 찾았다.

천마의 비웃음이 두 사람의 귀에 들렸다. 동시에 온몸의 기력이 빠져나가면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으아악!”

흑귀와 백귀는 고통 속에 몸부림쳤다.

그제야 자신들의 상황이 제대로 인식됐다. 그들 또한 허공에 매달려 몸을 꼼짝할 수 없었다. 단천마령과 같은 처지였다.

“안 돼! 그들은…….”

우설금은 비명을 질렀다.

“흐흐, 쥐새끼 같은 놈들! 네놈들이 감히 나 천마를 배신해?”

천마가 느긋하게 손을 저었다.

“우아악!”

흑귀와 백귀는 발버둥 치며 천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천마의 강기에 눌려 두 사람은 꼼짝할 수 없었다.

울컥!

두 사람의 입에서 선혈이 뿜어졌다.

그들은 자신들이 너무 무모하게 덤볐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단천마령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목숨이 아깝지 않으니까.

그들은 자신의 무능력을 탄식했다.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조금만 더 집중했더라면 어떻게든 그녀를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아, 아가씨……. 반드시 사, 살아야 해요!”

푸아악-

그 순간 두 사람의 몸이 육편처럼 찢겨 나갔다.

천마의 표정이 더욱 싸늘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