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검천하-235화 (235/273)

235화 죽음과 삶 (3)

“지금 이곳에서 네놈이 무슨 짓을 하든 네놈의 인생은 결정되어 있다. 신인 내가 결정할 거거든. 나는 지금부터 십 년 전으로 회귀할 거야. 그때 우설금은 나를 아버지처럼 따르면서 중원 무림을 향해 분노를 불태우고 있었지. 그리고 그때의 네놈은…….”천마의 자랑이 쏟아져 나왔다.

이제 주석하도 모든 사실을 알게 됐다.

자신이 왜 회귀를 하게 되었는지, 뇌군이 어떻게 무한회귀공을 익히게 되었는지. 그와 우설금의 인생에 천마가 어떤 식으로 개입했는지.

현실은 천마가 세상의 흐름에 개입한 역천이었다.

배교의 술법을 이용해서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그게 아니었다면 어쩌면 천마는 극마서생 우청엽의 손에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

구주사은이, 특히 우청엽과 탄허가 중원의 죄인이라며 자책의 날을 보냈던 이유를 깨달았다. 그의 조부인 흑풍검신이 무림을 은거한 이유도 이해했다.

배교의 비법이 유출되고 천마가 그 비법을 습득하면서 천하의 모든 사람이 영향을 받았다. 이제는 알면서도 천마를 어떻게 제거할 수 없는 그런 시기에 접어들었다.

“그때의 네놈은…… 보잘것없는 흑검문에서 태어난 평범한 아이였을 뿐이다. 그때로 돌아가면 뇌군은 너를 키울 수 없고, 이 세상은 다시 나의 의도에 따라 질서를 되찾을 것이다. 마교칠왕도 여전히 건재할테고. 나는 이번 생의 실패를 거울삼아 정파십존과 흑도팔군을 처리할 것이다.”어마어마한 장담이 쏟아졌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개소리로 치부할 법한 그런 일이 천마의 입에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우설금뿐만 아니라 주석하도 좌절에 빠졌다. 천마의 저 장담은 진실이다. 그들이 어떻게 해도 절대 바꿀 수 없는.

“흐흐, 다음 생에서 뇌군은 비참한 삶을 살 것이다. 감히 나에게 칼을 겨눈 죄다. 물론 너희 둘도 녹록지 않은 삶을 살게 될 거야. 우설금은…… 나의 충실한 개가 되어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중원을 향해 검을 겨눌 거다. 우설금! 이가장에는 지금도 너의 외가 친척이 살아있겠지? 다음 생에는 네 손으로 네 친척의 씨를 말리게 해주마.”

“아, 안 돼!”

여전히 허공에 매달린 우설금이 버둥거렸다.

천마는 신경 쓰지 않고 주석하를 노려봤다.

“네놈은 다음 생에서 우설금의 홍철산에 찔려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 또한 흥미로운 전개 아니냐?”

으드득-

주석하는 피가 나도록 주먹을 움켜쥐었다.

천마가 무한회귀공을 익혀서 어떤 상황이라도 되돌릴 수 있다는 사실은 이해했다.

그렇다면 지금 바로 회귀하지 않는 이유는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천마의 자신감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나?

겉보기에 주석하는 흥분과 좌절을 겪고 있는 듯했지만 그의 머릿속은 점점 차가워졌다. 사태를 반전시킬, 천마를 어떻게든 처리할 길을 찾고 있었다.

자신이야 애초에 볼품없는 삼류 무사였지만 우설금이 지난 생에도, 이번 생에도, 또 다음 생에도 원수의 손바닥 안에서 장난감이 되어야 하는 꼴을 모른 척할 수는 없다.

무한회귀공을 제대로 알지 못하니 그 단점을 찾기 어렵다. 더구나 지금 천마의 무공 수준 또한 제대로 가늠되지 않는다.

그보다 강한가? 강하다면 얼마나 강한가? 그의 전신 공력을 모조리 쏟아 부어도 대적하기 힘든 상황인가? 아니면 단순히 그렇게 보이는 걸까.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했다.

“흐흐, 현실을 깨달았나? 지금부터 흥미로운 놀이를 해볼까?”

천마의 섬뜩한 시선이 우설금과 주석하를 향했다.

“자, 고통스럽지? 이제 세상을 떠나고 싶지? 내가 그 바람을 채워주마. 우설금! 네 손으로 저 녀석을 죽이겠느냐? 죽인다면 지금까지 너의 잘못을 모두 용서해주마. 네 손으로 저 녀석을 죽이고 나의 충실한 개가 되겠다고 약속한다면…… 난 회귀하지 않고 이 상황 그대로 세월의 흐름을 지속할 것이다. 하겠나?”

“으으으.”

우설금이 버둥거리면서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언제고 넌 저 녀석을 죽여야 할 운명이야. 지금이 아니면 다음 생에서. 버티는 것보다 지금 내 명을 따르는 게 더 행복하지 않을까? 넌 마교수호사령이라는 지위를 유지할 테고 나의 오른팔이 되어 함께 중원을 정복할 것이다. 이 얼마나 바람직한 결말이냐? 네가 저놈만 죽이면 된다.”고통 속에서도 우설금은 거절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주석하는 가슴이 찢어졌다. 대체 그와 우설금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런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말인가.

“아직 제정신을 못 차렸군.”

천마의 시선이 주석하를 향했다.

“그럼 네놈이 해보겠느냐? 네놈이 우설금을 죽이면 난 너를 새로운 마교수호사령으로 임명해주겠다. 넌 마교수호사령이 되어 중원을 향해 칼을 겨누게 되지. 너를 키워준 뇌군이나 혼군, 악군, 화존 등을 직접 네 손으로 죽이게 될 것이다. 하겠느냐?”

“미친놈!”

주석하는 신음을 내뱉었다.

지금 우설금이나 그가 굴복하면 그들은 다시 천마의 바둑돌이 될 뿐이다.

그들의 인생은 천마에게 저당 잡혀 있고, 자신의 의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암울한 상황이 도래할 것이다.

주석하는 이번 생을 살면서 다짐했던 결심을 되새겼다.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되어 삶의 결정권을 가지겠다.

남의 바둑돌이 되어 남에게 휘말리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지 않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지금까지 그는 천마의 뜻대로 살아왔다. 이 모든 게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니.

넓은 관점에서 뇌군 역시 천마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가 회귀한 것마저 천마의 놀이였을 뿐이니.

“큭큭큭!”

주석하는 비웃음을 흘렸다. 인생의 허탈감 때문인지 아니면 천마를 비웃는 것인지 모호했다.

“좋아, 좋아. 그렇게 쉽게 굴복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지 두고 보겠다.”

천마가 허공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으아악!”

우설금에게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목이 졸린 듯 얼굴이 시뻘겋게 변해 고통 속에 몸부림쳤다.

아직도 우설금을 공중에 매달고서 그 움직임을 제어하는 천마의 내력은 무시무시했다.

“대답하라! 우설금! 저놈을 죽이겠다고!”

천마가 음산한 비웃음을 터트렸다.

으드드득-

주석하는 이빨이 깨지도록 악물었다.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설사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이 상태로 굴복할 수 없다.

이 자리에서 죽으면 다음 생에서도 그는 어떻게든 천마에게 저항할 것이다. 생을 거듭하면서 천마와 맞서다 보면 어떤 식으로든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을 겁내서는 안 된다. 하늘도 역천의 무공을 깨트릴 해법을 남겨두지 않았을까!

그것이 천리(天理) 아니던가.

“으아아아!”

주석하는 내공을 폭발시켰다.

그의 몸에 잠재되어 있던 흑도팔군의 내공, 무려 십 갑자를 상회하는 그 내력이 일시에 일어났다.

천마각이 흔들렸다. 바닥의 석판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폭풍을 맞은 지붕이 무너지면서 그 더미가 허공을 부유했다.

우우우웅-

주석하의 주위로 강력한 회오리가 일었다. 부서진 석판과 더미가 그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았다.

분노가 주석하의 얼굴을 덮었다. 지금까지 어떤 경우에도 이만큼 그가 분노했던 적은 없었다.

“죽여버리겠다!”

드드드득-

천마가 쳐놓았던 마기의 벽이 주석하의 기운과 충돌하면서 파공성이 터졌다. 기운이 연속으로 벽을 강타하자 마기의 벽이 출렁이면서 균열이 쩍쩍 발생했다.

이제는 천마도 여유롭게 주석하를 상대할 수 없었다.

“이, 이놈이!”

천마각이 통째로 무너지고 있는데도 천마는 손을 쓸 수 없었다.

그가 예상한 것보다 주석하의 내공은 월등했다.

어떻게 저 내공을 품게 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지금 주석하의 위세는 천마마저도 입을 다물지 못하는 엄청난 경지였다.

천마는 내력을 집중시켜 마기의 벽을 강화했다. 균열이 생겼던 벽이 다시 메워지면서 휘몰아치는 돌 조각을 튕겨냈다.

드드드득-

주석하의 의지에 따라 무수히 많은 석판과 각종 더미가 더해졌다. 이제는 그 더미 때문에 회오리의 중앙에 선 주석하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우우우웅-

휘몰아치는 주석하의 기운이 수많은 더미를 움직여 한꺼번에 마벽을 강타했다.

콰아앙!

쩌저적-

마기의 벽에 커다란 균열이 일었다.

“네놈이 그래 봐야…….”

천마의 반응이 뚝 끊어졌다.

재차 주석하의 공격이 이어지는 순간 부서진 석판과 더미가 통째로 비수가 되어 마기의 벽을 강타했다.

콰아앙!

“크윽!”

사방은 무수히 많은 돌조각으로 채워졌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회오리바람이 천마각 대전을 휩쓸었다.

천마각 지붕은 뜯겨나가고 바닥은 지진이 난 것처럼 갈라졌으며 좌우의 벽은 통째로 무너졌다. 천마각의 존재가 마교 총단에서 지워졌다.

그 중간에서 천마와 주석하의 내력이 부딪쳤다.

주석하는 전력을 쏟아부었다.

그것도 단순한 호신강기가 아니라 호신강기로 떠올린 석판 더미였다.

이것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쓸모없는 쓰레기와 마찬가지였으나, 최강고수에게는 돌 조각 하나하나가 예리한 검날과 같았다.

콰아아앙!

뒤를 생각지 않는 저돌적인 충격이 가해지자 마벽은 일순간 박살이 났다.

콰지직-

쩌저적-

그 순간 천마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일순간 내부 기혈이 역류하면서 마기를 제어하기 어려워졌다.

반면 주석하의 충격은 훨씬 작았다. 그는 전혀 내상을 입지 않았다.

“으윽!”

천마의 통제력이 약해지면서 허공에 떠 있던 우설금이 아래로 추락했다.

그녀는 바닥에 쓰러진 채 몸을 꿈틀거렸다. 한동안 허공에서 천마의 공격을 감당하면서 받았던 충격이 예상외로 치명적이었다.

“죽어!”

주석하가 두 팔을 앞으로 활짝 펼쳤다.

그를 따라 휘몰아치던 더미가 천마를 향해 몰려갔다. 그 더미는 천마의 호신강기를 깨트리면서 천마에게 재차 충격을 가했다.

콰아앙!

“무식한 놈!”

천마는 선혈을 울컥 뱉으며 주석하를 노려봤다. 이런 식으로 마기의 벽을 깨트릴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가 세웠던 마기의 벽은 마교수호사령이 세웠던 벽에 비해 훨씬 강력한 마기를 압축하여 구축한 것이었다.

순수하게 주석하가 내력이나 강기의 파편으로 깨려 했다면 쉽게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천마가 볼 때 주석하는 이상한 놈이었다. 끝을 알 수 없는 내공부터 예상과 달리 움직이는 행동까지. 아무래도 저놈을 살려두면 불리했다.

결심을 굳힌 그가 주석하를 없애려고 내력을 끌어모으는 순간!

푸아악-

엄청난 충격이 천마를 강타했다.

“끄아악!”

천마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날아갔다. 그의 몸은 반쯤 무너진 벽에 충돌한 후 바닥을 뒹굴었다. 천마로서는 실로 굴욕적인 순간이었다.

“이게 대체…….”

천마는 몸을 일으키면서 자신을 공격한 주체를 확인했다.

우설금이 바닥에 주저앉은 채 홍철산을 들고 있었다. 그녀가 남은 힘을 짜내어 홍철산으로 단천마공을 폭발시킨 것이다.

미처 경계하지 못한 데다 호신강기가 깨친 상황이었기에 그 충격은 절대 작지 않았다. 주석하를 노리다가 우설금의 존재를 간과한 실책이었다.

“젠장!”

분노가 치민 천마는 생각할 여유조차 없이 바닥을 차고 날아올랐다.

“이년이! 죽어랏!”

하늘을 뒤엎는 마기가 내리꽂혔다. 그 거대한 압력이 우설금을 그대로 찍었다.

“아악!”

주석하가 손을 쓸 틈도 없이 천마의 공세에 일격을 당한 우설금의 신형이 속수무책으로 뒤로 밀렸다.

쾅!

우설금의 몸이 천마각 입구까지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설금!”

주석하는 비명을 지르며 우설금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 순간 천마는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우설금에게 기습당한 충격이 예상외로 컸다. 게다가 내공 소모 또한 극심했다. 자칫 대계를 망칠 가능성이 커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