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검천하-237화 (237/273)

237화 천마 (2)

음률이 형상화한 강기의 파편이 허공에 만들어진다. 음률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듯 강편 또한 사방에서 폭발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음공이 다수를 상대하기에 유리하다는 장점이 드러났다. 아무리 검공에서 정점에 올라도 검강은 한두 개가 한계다.

그런데 지금 주석하는 음공을 이용하여 무형의 단검을 수백 개, 아니 수천 개를 형상화했다. 단순한 강기의 파편이 아니다. 그 하나하나가 검강의 위력을 지닌, 그 본질이 검강과 동일한 단검 수천 개다.

고오오오-

그 단검 형상의 검강은 흑검육식의 최후 초식의 검로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누구도 구현하지 못했던 마지막 절초였다. 이를 창안했던 흑풍검신조차 이런 식으로 이 초식을 구현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파아아아-

수천 개의 단검이 일제히 움직였다. 마치 수천, 수만 마리의 철새가 떼를 지어 하늘을 나는 듯한 장엄한 광경이었다.

주석하는 허공에서 뜬 채 흑검소를 불며 이 단검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잘 훈련된 새떼처럼 음률에 맞춰 단검이 흐름을 만들었다.

그 기운이 한곳으로 집중되자 전무후무한 살기가 형성됐다.

천마는 생각지도 못한 방식의 공격에 당황했다.

이런 무공이 가능하단 말인가. 음공과 검공을 결합한 발상도 기발할뿐더러 그 움직임이 만들어낸 검초 또한 환상적이었다.

무려 검강 수천 개와 맞서야 한다니!

천마는 그동안 주석하를 얕잡아 보았음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오늘 확인한 주석하는 마교칠왕 급이 아니었고 마교수호사령 급도 아니었다. 이미 천마 그와 대등한, 어쩌면 넘어선 무위를 선보이는 자였다.

이런 경지가 어떻게 단시간에 가능한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천마 자신은 회귀를 반복하며 무공을 키워온 역천의 인물이다. 누구보다 오랜 시간을 살았고 그 시간을 무공 수련에 투자했다. 그 대가로 엄청난 무공을 익혔다.

고금제일인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그는 서슴없이 자신이라고 지목했다. 천마야말로 무림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던 규격 외의 인물이었으니까.

그런데 눈앞의 이놈은 대체 뭐란 말인가.

“으으, 괴물이다!”

역시 뇌군이었다. 사파 제일의 책사라는 뇌군이 그리 녹록할 리가 없다. 그의 음모가 평범할 리 없다.

제대로 한 방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어도 천마는 여전히 자신의 우위를 기대했다.

비록 우설금의 홍철산에 당한 충격이 그를 흔들고 있지만, 지금 상황이 패배로 몰고 가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가소로운 놈!”

천마는 입술을 깨물면서 마공을 끌어올렸다.

절대천마공(絶代天魔功)!

마공의 최고봉인 이 마공을 익히기 위해 그는 회귀를 거듭하면서 수련했다. 금천마공이나 단천마공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개세의 마공이다.

마교 역사상 그 어떤 천마도 이 마공을 완벽하게 달성하지 못했다. 절대천마공을 십이성까지 익히려면 상상할 수 없는 내공과 인고의 세월이 필요했다.

절대천마공은 마공의 원류이자 중심이다. 그 어떤 마공도 이를 능가할 수 없다.

그런 마공을 익힌 천마는 이 대결의 승리를 자신했다.

이놈만 죽이고 회귀할 것이다.

십 년 전으로 회귀해서 우설금을 더욱 확실한 노예로 만들고 이놈은 아예 싹을 잘라버릴 것이다.

천마의 몸에서 거대한 마기가 폭발적으로 발산했다.

그 마기는 천마의 일 장 앞에 거대한 검을 형성했다. 무려 그 폭이 한자를 넘고 검신이 다섯 장에 달하는 거검이었다.

마음으로 검을 형상화하는 심검(心劍)의 경지다.

“와라!”

천마가 심검을 앞세웠다.

고오오오-

수천 개의 단검이 떼를 지어 천마의 심검을 폭격했다.

콰콰쾅!

천마의 거대한 심검은 단검의 폭격에도 끄떡하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수천 개의 단검을 심검이 제대로 방어하고 있는 듯했으나 실제로는 조금 달랐다.

단검이 충격을 가할 때마다 거대한 심검은 일부가 부서졌고, 그때마다 천마는 심검 일부를 보수했다.

엄청난 내공이 뒷받침해줘야만 가능한 경지다.

주석하는 천무태평악에 홀린 듯 연주를 계속했다.

수천 개의 단검이 그의 심경에 따라 춤을 췄다. 그와 천마 사이를 어지러이 날면서 앞을 가로막는 심검에 충격을 가했다.

거대한 충격파가 주위를 뒤흔들고 굉음이 귀를 막았다. 십만대산의 정적을 깨는 기파가 봉우리를 강타했다.

주석하는 점점 다급해졌다. 그가 천무태평악과 흑검육식의 조합을 선택한 이유는 시간 때문이었다.

최단의 시간으로 천마를 제거해야 한다. 지금 우설금이 죽어가고 있기에 빨리 돌아가서 그녀를 치료해야 한다.

그렇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상대의 무공을 탐색하고 적절한 조합과 상성을 연구하여 최적의 초식을 고를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주석하는 모든 내력을 천무태평악에 쏟아부었다. 흑검육식의 최후 초식이 더욱 정교해졌다. 이렇게 쏟아붓고도 천마를 어떻게 할 수 없다면 이는 하늘의 뜻이다.

‘하늘은 나를 버리지 않는다!’

그 또한 믿음이 확고했다.

역천의 무공으로 규격 외의 존재가 된 천마를 하늘이 내버려 둘 리가 없다는 믿음이다.

삘리리리-

수천 개의 단검이 떼를 지어 천마에게 몰려갔다.

투명한 검강으로 형상화한 단검이 또다시 거대한 심검을 폭격했다.

콰콰콰쾅!

정좌한 천마의 신형이 격렬하게 들썩였다.

우설금에게 일격을 당한 충격이 계속 부담스럽게 내기의 흐름을 방해했다.

게다가 이 충격의 외상 또한 만만찮다. 안타깝게도 주석하의 공세에 휘말려 내외상을 치료할 시간이 없다.

“개 같은 놈!”

천마는 욕설을 내뱉으며 심검을 주석하에게 정조준했다.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는 하룻강아지를 빨리 단죄하고 싶었다.

주석하는 천마의 태세전환을 눈치 챘다.

당연히 환영하는 바다. 얼른 해치우고 우설금을 치유하러 가야 하니까.

고오오오-

주석하와 천마의 주위를 수천 개의 단검이 떠다니고 있다.

그 하나하나의 단검이 흑검 육식의 검로를 따라 상대의 심검을 폭격하고 있다. 지금 상황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상대를 압도하고 있지도 않다.

지금 천마가 전세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당연히 그도 대처해야 할 상황이다.

심검의 형태와 움직임으로 보아 천마의 작전이 눈에 보인다.

저 거대한 심검이 그에게 일격을 가할 것이다. 저 심검을 막을 수 있나? 작은 단검 수천 개로 거대한 심검 하나를 막을 수 있을까.

그 순간 주석하는 천마의 공격에 내재한 약점을 꿰뚫었다. 저 심검이 그를 향해 날아오는 순간 천마는 무방비 상태가 된다. 어떤 무공이든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이다.

“와라!”

주석하는 결심을 굳히고 젖 먹던 힘까지 끌어올렸다.

최후의 승부가 도래했다.

푸아아악-

공간을 찢으면서 심검이 그를 향해 날아왔다. 순식간에 거리가 지워지고 호신강기가 깨져나간다.

무려 폭이 한 자나 되는 거검이기에 검이 노리는 지점이 사혈이 아니라 그의 몸 전체인 것처럼 느껴진다.

어디건 저 검에 걸리면 형체를 남기기 어렵다. 전신이 육편이 되어 갈가리 찢길 것이다.

주석하는 음률을 조종하여 수천 개의 단검을 자신의 전면으로 배치했다. 그의 앞에 단검의 벽이 형성됐다. 다만 남은 일부를 허공으로 들어올렸다.

쐐애애액-

빛의 속도로 허공으로 치솟았던 단검이 방향을 전환하여 천마에게 날아갔다.

“양패구상?”

예상치 않은 허점을 찔린 듯 천마는 경악했다. 주석하가 목숨을 도외시하고 공격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콰아아앙!

심검이 수천 개 단검으로 형성한 벽에 충돌했다.

콰지지직-

거대한 심검이 부서진다. 수천 개의 단검이 심검에 충돌하면서 그 파장이 천하를 뒤흔들었다.

심검이 주석하의 육신에 닿을 때까지 버텨준다면 천마의 승리다. 하지만 심검이 그 전에 박살난다면 천마의 패배다.

아니 이미 천마는 패배했는지도 모른다. 주석하가 우회시킨 단검 수백 개가 무방비 상태의 천마를 향해 몰려가고 있었다.

콰지직-

천마의 호신강기도 깨졌다. 검강으로 형성된 단검 수백 개를 방어하기에는 천마의 호신강기는 한계가 분명했다.

그 충격은 거대했다.

천마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는 기분이었다.

상대를 너무 경시한 걸까. 아니면 단 일갑자의 내공이 아까워서 때를 놓쳤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하늘의 뜻을 거스른 때문인가.

무한회귀공과 함께한 오랜 세월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이렇게 인생을 끝내게 될 줄은 불과 반각 전에도 상상치 못했었다.

‘주석하 이놈이!’

천마는 눈을 부릅뜨고 적을 노려봤다.

상대는 지금도 퉁소를 불면서 단검의 흐름을 조율하고 있었다. 심검을 눈앞에 두고도 변하지 않는 그 여유가 부러웠다.

‘혼자 저승으로 갈 수 없다! 가려면 함께 가야지.’

호신강기가 깨지면서 수백 개의 단검이 육신을 찌르는 순간 천마도 심검을 끝까지 밀어 넣었다.

콰아아앙-

수천 개의 단검으로 형성된 방어벽이 깨지고 심검이 주석하의 호신강기를 뚫었다.

서걱- 서걱-

그 순간 단검 수백 개가 천마의 몸을 관통했다.

무형의 검강이었기에 육신을 뚫고 들어가는 순간 단검의 형상은 사라졌다. 육신에 수많은 구멍이 뚫리고 선혈이 분수처럼 뿜어졌다.

천마의 육신이 수만 조각으로 분해되어 육편이 하나하나 허공을 날아올랐다. 수십 년간 중원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절대자의 최후였다.

죽어서 시신마저 제대로 남길 수 없었다.

콰지직-

그때 주석하 또한 생사의 기로에 처해 있었다.

천마가 날린 심검이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가 만든 수천 개의 단검은 모조리 깨졌고, 공격으로 돌렸던 수백 개의 단검은 천마의 육신을 계산대로 완벽하게 날려버렸다.

비록 그 힘이 감소한 심검이지만 아직도 그를 파고들고 있었다.

절체절명의 위기가 발생하자 주석하의 단전에서 내력이 용트림했다. 예전처럼 흑도팔군의 내력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던 때를 떠올리게 했다.

그때는 단전에 잠재되어 있던 내력은 그가 위기를 맞이할 때마다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

지금은 여의신단을 이용해서 그 내력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기에 그가 제어하지 못하는 남은 내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단전이 잠에서 깨어났다.

콰직-

파고들던 심검이 내부의 반발력에 의해 무력화됐다. 천마는 사라졌기에 심검 또한 저절로 흔적이 사라졌다.

갑자기 적막이 내려앉은 것처럼 주석하를 위협하던 모든 기운이 제거됐다.

고오오오-

주석하의 주위에는 아직 남은 단검이 떠돌았다. 그 단검은 그를 휘감다가 서서히 존재가 사라졌다. 그의 주변으로 정적이 내려앉았다.

십만대산에 다시 달빛이 내렸다.

천마가 사라진 이곳은 마기가 사라지고 평범한 세상으로 변했다.

주석하는 여전히 허공에 정좌한 채 마지막으로 잠에서 깬 기운을 제어하고 있었다.

이 기운이 대체 무엇인가. 조심스럽게 그 기운의 성질을 음미하던 주석하는 마침내 정체를 알아냈다.

천년쌍두사의 내단이었다. 운중산에서 삼켰던 천년쌍두사의 내단은 그동안 계속 융해되고 있었다.

그곳에서 내단을 먹고 운기했을 때 그는 내단 전부를 녹이고 흡수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무려 천 년 동안 키웠던 내단의 힘을 그렇게 단시일에 모두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는 없으니까.

복용한 후 절반가량이 처음에 융해되었고, 나머지는 서서히 그의 몸에 자리를 잡았다.

주석하는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의 몸에 잠재된 흑도팔군의 내력이 워낙 거대했기에 천년쌍두사의 내단은 그 존재감이 미미했었다.

그렇게 단전에 쌓였던 내단의 힘이 흑도팔군의 내력이 거의 소모되자 그제야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다.

그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마지막 심검을 방어하기에는 충분했다.

이로써 주석하는 한층 심후한 내력을 지니게 됐다. 잊고 있었던 금덩이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지금 감탄할 정신이 없었다.

“설금!”

우설금을 떠올린 주석하는 다시 천마각으로 전력을 다해 뛰어들었다.

살아만 있어! 그는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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