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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검천하-243화 (243/273)

243화 되찾은 삶 (3)

“살았어! 살았어!”

주석하는 감격의 환호성을 지르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싸늘한 시신으로 변한 우설금을 본 게 불과 얼마 전이다.

천마각에서 천마에게 일격을 가한 후 죽음을 맞이했고, 시신이 되어 점차 썩어가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를 보며 주석하의 가슴은 문드러졌었다.

영원히 보지 못할 줄 알았던 우설금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산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주석하는 가슴이 북받쳐 눈물이 터졌다.

하늘이시여! 이 여인을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시는 이 여인이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습니다!

그는 우설금을 힘주어 끌어안았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는 그녀를 이렇게 강하게 품에 안았던 적이 없었다.

지금 이 순간만은 그 어떤 남녀 간의 예의도 그를 가로막지 못했다.

그는 그녀를 안은 채 끝없이 흐느꼈다.

“……살았구나…….”

정작 우설금은 황당했다.

갑자기 그가 나타난 것도 의아했지만 자신을 ‘설금’이라 부르다니! 예전의 그는 이렇게 다정하게 부르지 않았었다.

게다가 갑자기 숨 막히게 끌어안으면……. 그녀는 좋으면서도 민망했다.

더구나 이곳은 둘만 있는 방 안도 아니고 타인이 지나다니는 앞마당이며, 그것도 경건해야 할 사찰 경내가 아닌가.

몇 번 뒤척이며 주석하를 밀어내려던 그녀는 강한 힘에 포기하고 얌전하게 품에 안겼다.

그제야 별별 생각이 났다. 주석하는 왜 그녀가 살아있다고 흐느끼는 걸까.

그녀는 단지 외가인 이가장에 다녀왔을 뿐인데.

물론 그곳에서 예기치 않게 암흑단과 조우했지만 그녀의 무공이라면 전혀 위험하지 않은 행보였다.

거듭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지금 주석하는 생이별 후 수십 년이 지나 다시 만난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지 않은가.

어쨌든 좋았다. 그를 영원히 떠나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다시 만났으니. 그것도 그의 품에 안겨있으니.

한참 후에야 우설금은 간신히 고개를 들어 주석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얼굴을 가득 덮고 있었다. 우설금은 고운 손으로 얼굴을 닦아주었다.

“왜 그래요?”

그제야 주석하는 제정신을 차렸다.

그는 다시 돌아왔다. 과거로 회귀했다. 그녀가 아직 살아있던 시간으로.

회귀 전의 그는 그녀를 영원히 떠나보냈었지만, 당연히 그녀는 그 사실을 알 수 없다.

그 일은 아직 그녀에게 일어나지 않았던 사건이니까. 그녀는 미래에 있을 본인의 죽음을 모른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석하는 감정을 추스르면서 대답을 회피했다. 조만간 그녀에게 모두 털어놓아야겠지만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는 아니다.

“뭔가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갔던 일이 잘못되었나요?”

우설금은 마교칠왕과 만났던 주석하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마교칠왕 둘이라면 결코 녹록한 상대는 아니니까.

주석하는 고개를 저으면서 다시 우설금의 얼굴에 뺨을 비볐다.

“갔던 일은 잘 되었어요.”

“그런데 왜?”

“그대가 보고 싶어서…….”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소리였으나 우설금의 볼이 발갛게 물들었다. 더는 견디지 못한 그녀는 주석하를 밀어내며 눈썹을 확 치켜떴다.

“이러지 마요! 민망하게. 바람둥이!”

주석하는 빙그레 웃으며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우설금이 화가 난 표정으로 그를 가볍게 밀었다.

“늑대처럼 굴지 말고 얼른 떨어져요!”

어쩔 수 없이 그녀를 품에서 떨구던 주석하는 그 순간 강한 진동을 느꼈다. 공간이 비틀린다.

얼마 전 회귀 때의 경험과 같은 느낌! 이것은 무한회귀공이 공능을 일으키는 조짐이었다.

그 순간 주석하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눈치 챘다.

“이놈이!”

분노를 표출하며 주석하는 그 자리에 정좌했다.

우설금에게 무슨 일인지 물을 틈을 주지 않고 주석하는 운기를 시작했다. 엄청난 내공을 모두 집중시켜 무한회귀공으로 시공간의 비틀림을 바로잡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주석하의 안면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전력을 쏟아붓는 그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우설금은 주석하가 갑자기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지금 그는 마치 내공 대결을 벌이는 상황 같았고, 건드리면 대단히 위험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녀는 운기하는 주석하 옆에서 호법을 섰다.

고오오오-

주석하가 일으키는 시공간의 파장이 세월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시공간이 뒤틀렸다가 펴졌다가를 반복했다.

***

사흘 동안 천마는 자신의 상태를 세밀하게 점검했었다.

몸은 이상이 없었으나 정신이 이상했다. 어딘지 모르게 기억이 뚝 끊어진 느낌이고 아련한 잔상이 머릿속에 매몰되어 혼란스러웠다.

단천마령이 그에게 대들고 주석하가 날뛰는 이상한 장면이 그려졌다. 처음에 그는 이것을 단순한 꿈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불안을 경험한 적이 없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당연히 겪는 심리적 불안의 일종이라고 치부했다.

그때까지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는 마음을 안정하고자 천화원에 들러 십년유심홍을 보살폈다. 열매가 제법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한두 달 후면 이 열매는 검게 익어 일갑자의 내공을 그에게 줄 것이다.

십년유심홍의 열매는 이미 그가 몇 차례나 복용했기에 눈앞의 십년유심홍 화초는 특별할 것도 없었다.

다만…….

십년유심홍을 보는 순간 이상한 잔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십년유심홍이 마구 짓밟혀 엉망이 되어 있었다. 당연히 열매도 사라지고 없었다.

그가 애지중지하는 십년유심홍은 절대 이렇게 될 수 없었다.

그가 이 화초를 망가트릴 일도 없고, 마교인 그 누구도 감히 이 화초를 짓밟을 수 없다. 이번에 열매를 따고도 십 년 후 또 사용할 화초니 절대 짓밟을 수 없다.

그런데 희미한 기억 속의 잔상은 완전히 망가진 십년유심홍을 보여주고 있었다. 회귀를 거듭하면서 단 한 번도 없었던 장면이고 앞으로도 없어야 할 장면이다.

“설마…….”

천마는 그때부터 자신의 기억을 의심하게 됐다. 그의 잘린 듯한 기억과 가끔 머릿속에서 이상하게 그려지는 잔상……. 그 비밀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풀렸다.

무한회귀공을 사용해 정상적으로 회귀했다면 이런 식으로 기억이 남을 리 없다.

“내가 죽었던 건가…….”

처음으로 그는 자신의 죽음을 의심했다.

무한회귀공을 익혔던 그가 죽은 후에 과거로 회귀하면 어떻게 될까.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어떤 식의 기억이 남을지 알지 못했다. 그 경우 회귀의 주체가 본인이 아니기에 온전한 기억을 모두 갖기 어렵다는 점만은 분명했다.

한번 든 의심이 점점 구체화했다.

지금 그의 무공과 능력을 보면 절대 발생하지 않을 사건이지만 우설금과 주석하의 잔상, 그리고 망가진 십년유심홍…… 그것이 알려주는 공통점은 명백했다.

만일 그가 우설금과 주석하에 의해 죽었다면, 그리고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지만, 다시 회귀해서 살아났다면 지금과 같은 형식의 기억이 남아 있지 않을까.

“설마…….”

천마는 지금까지 완벽을 추구해왔다. 조금만 계획에서 틀어져도 기억해 두었다가 회귀해서 바로잡았다.

더 완벽하게, 더 순조롭게 이 세상을 자신이 거머쥘 수 있도록, 그의 충성스러운 부하들이 더 많아지도록 세상사를 바꿔왔다. 회귀를 거듭하면서.

그렇기에 조금의 이상한 조짐도 큰 의심으로 다가왔다.

사실 일갑자의 내공을 손해 본다고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 아깝긴 하지만 그가 죽는 일보다, 무한회귀공의 주도권을 잃는 것보다는 월등히 낫다.

우설금과 주석하의 반기로 그가 죽을 사건이 있다면 미리 차단해야 한다. 꿈처럼 뇌에 새겨진 잔상은 어쩌면 그가 경험했던 회귀 전의 모습이 아닐까.

결심이 섰다.

천마는 십년유심홍을 포기하기로 했다. 정확하게는 일갑자의 내공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가 무한회귀공을 익힌 후 처음 만난 대사건이었다.

결심이 서자 천마는 천화원, 십년유심홍 앞에서 바로 정좌를 하고 내력을 운기했다.

결정을 내렸으면 빠를수록 좋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고오오오-

무한회귀공을 운용했다. 주변의 시공간이 비틀리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평소와 같았다.

그런데!

“크윽!”

역시나 문제가 발생했다. 누군가가 그의 회귀를 방해했다.

이런 현상은 지금까지 발생한 적이 없었다. 무한회귀공을 익힌 자가 유일하게 그뿐이라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다.

누가 무한회귀공을 익혔단 말인가?

꿈의 잔상과 연결되면서 천마는 어렵지 않게 그 범인을 추측했다.

“주석하! 아니면 우설금이다!”

꿈의 잔상은 진실이었고 그가 경험했던 전생이었다.

고오오오-

천마는 내력을 더욱 끌어올렸다.

원인을 알았으니 이제는 목숨을 걸고 회귀를 성공해야 한다. 전생에서 우설금과 주석하는 그의 바둑돌이었다.

그 둘 중 하나가 무한회귀공을 이용해서 회귀한 이번 생은 천마인 그가 바둑돌로 전락했다.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이를 원래처럼 바로잡으려면 지금부터 십 년 전으로 회귀해서 아예 싹을 죽여야 한다.

“십 년 전이다! 십 년 전!”

천마는 입술을 꽉 깨물고 십 년 전을 떠올렸다. 그때로 회귀해서 다시 시작할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세상의 흐름을 천마의 뜻대로 바로잡을 것이다.

“크으윽!”

시공간의 비틀림이 의도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는 상대의 내공이 그의 내공에 필적하거나 오히려 압도한다는 뜻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무한회귀공으로 남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살면서, 수많은 영약을 먹어치우면서 쌓았던 내공이다.

그 내공에 필적하는 내공을 가진 자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우설금은 아니다. 그렇다면 주석하?

“이 자식이!”

천마는 분노를 터트리며 무한회귀공을 극성으로 운용했다. 지금 밀리면 바둑돌 신세를 절대 벗어날 수 없다.

천마 자신이 그렇게 다른 자를 바둑돌로 만들었기에 주도권을 잃은 무한회귀공이 얼마나 위험한지 누구보다도 잘 안다.

고오오오-

십만대산의 천마와 보은사의 주석하 사이에 전무후무한 대격돌이 벌어졌다.

시공간의 비틀림 주도권을 잡겠다는 격전이기에 사실상 두 사람의 거리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바로 앞에 마주 보면서 내공 대결을 벌이는 것처럼 서로를 인지하고 상대를 공격했다.

수십 번에 걸쳐 시공간이 왜곡되었다가 펴졌다가 비틀렸다가 엉켰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무한회귀공을 익힌 두 사람은 그 모든 것을 명확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생사를 건 대격전이었다.

“크으으윽!”

그제야 천마는 주석하의 비밀을 눈치챘다.

그놈은 내공 덩어리였다. 전전생의 회귀 때 뇌군이 무슨 짓을 했는지 추측이 가능했다. 단순히 사람을 회귀시켰다고 생각했었는데, 또는 무공 몇 초식 알려주고 회귀시켰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흑도팔군은 본인들의 모든 내공을 주석하에게 쏟아붓고 회귀시켰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 이 무지막지한 내공을 설명할 수 없다.

‘그놈부터 처리했어야 했다…….’

천마는 후회했다. 너무 자신만만했던 자만심이 문제였다.

물론 아직은 늦지 않았다. 이 무한회귀공의 대결에서 승리한다면 세상의 흐름을 되찾아올 수 있으니. 하지만…….

고오오오-

상대의 내공은 그의 예상 범주를 넘어서고 있었다.

전신에 경련이 일고 혈맥이 부풀어 터질 것 같다. 무리하게 짜낸 내공 때문에 기혈이 역류하고 있었다.

그렇더라도 무한회귀공을 손 놓을 수 없다. 이 대결에서 지면 그의 평생이 사라지는 거니까.

주화입마의 조짐이 느껴진다.

울컥!

천마는 선혈을 한 바가지나 뱉어냈다. 온몸에 경련이 일었다. 더는 무한회귀공을 운용할 수 없었다.

비틀렸던 공간이 서서히 원상으로 돌아왔다. 그의 눈에도 주변 사물이 또렷해졌다.

천마의 눈에 천화원이 들어왔다. 십년유심홍의 열매는 방금 보았던 상태와 동일했다. 바뀐 것은 없었다.

“망할 놈! 회귀에 실패하다니!”

피를 토하면서 천마는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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