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화 패도사십팔마 (1)
마교는 우설금에게 매우 특이한 감정을 안겨주는 곳이다.
지금까지 모든 세월을 마교에서 살았기에 그녀의 사고방식은 마교로 제한되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원을 자주 출입했고 천마가 원수로 변화면서 그녀의 관념은 한차례 격랑에 휘말렸다.
특히 중원 무림인이 마교를 어떤 시각으로 보는지 알게 되면서 그녀는 큰 타격을 받았다. 그녀가 옳다고 생각했던 많은 부분이 중원에서는 거부되었다.
지금도 그녀는 사상의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럼 우리는 천마가 아닌, 마교와도 싸워야 하나요?”
우설금의 걱정을 주석하도 안다. 유감스럽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
“아직은 두고 봐야죠. 천마가 어떻게 나오는지. 천마가 마교를 앞세우면…….”
주석하는 말을 아꼈다. 그 뒷말이 우설금에게 좋게 들릴 리가 없다.
우설금의 표정이 굳어졌다.
“난…… 마교가 휘둘리게 내버려 둘 수 없어요.”
“그, 그렇긴 하죠.”
주석하는 떨떠름한 음성으로 동의했다.
천마는 마교의 절대자이고 사실상 마교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자다. 그러니 천마와 마교를 구분하는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그이기에 우설금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우설금이 커다란 눈으로 그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주 공자!”
“네, 말씀하시죠.”
“천마는 원수니까 당연히 죽이고 싶어요. 하지만 마교를 없애고 싶진 않아요. 그러니까…….”
우설금의 부탁을 알 것 같다. 하지만 주석하는 난감했다.
그는 천마를 죽일 생각이었으나 마교의 존립을 고민한 적이 없었다. 어쩌면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전생에서는 그가 천마를 죽인 후에도 마교는 정상적으로 돌아갔다. 묵천마령의 손에 의해서.
“주 공자, 마교를……. 전 어떻게 해요?”
주석하가 느끼는 감정과 달리 우설금의 질문이 매우 진지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녀는 진심으로 자신의 고향인 마교를 없애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녀의 부탁을 못 들어줄 이유는 없다.
잠시 머리를 굴리던 주석하는 새로운 계획을 마련했다. 그녀에게 중요하니까 그도 받아들일 생각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섬서를 지나 사천으로 넘어가죠.”
“섬서요?”
“그곳에서 마교의 주력부대와 일단 만나기로 해요.”
마교의 주력부대는 중원으로 넘어오면서 두 방향으로 갈라졌다.
한 부대는 화산파가 있는 섬서를 통해 무림맹이 있는 하남으로 진격할 예정이고, 다른 부대는 곤륜파가 있는 사천을 통해 호북을 거쳐 하남으로 진격할 예정이다.
이들 부대는 현시점에서 섬서와 사천에서 머물고 있었다. 전생에서 사천에 머물던 부대는 흑검문을 노리다가 주석하에 의해 궤멸 되었었다.
이번 생에도 주석하는 사천을 통해 마교로 입성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설금의 부탁을 듣고 생각을 바꿨다.
마교의 주력부대를 우설금이 흡수해서 천마와 싸우는 방법을 고려하기로 했다.
“사천의 주력부대는 마교칠왕 셋이 주도하고 있죠? 섬서의 주력부대는 마교칠왕 둘이 있었는데 지금은 죽었으니…… 그 대표가 누구죠? 아니면 주요 인물이나…….”주석하의 질문을 알아들은 우설금이 또박또박 대답했다.
“패도사십팔마요.”
“누구요?”
주석하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패도사십팔마(覇刀四十八魔)는 마교에서 도(刀)를 쓰는 사십여덟 명의 정예를 의미했다. 소림의 십팔나한이나 무당 오행검수와 같은 존재라 볼 수 있었다.
그들 개인의 무력은 마교칠왕에 미치지 못하나, 그 연합진은 능히 마교칠왕을 상대할 위력이 있었다.
이들 사십여덟 명의 마두가 움직이면 중원 무림의 어떤 문파라도 멸문 가능하다고 장담할 정도였다. 실제로 섬서에서는 그 위명을 떨치고 있었다.
우설금의 설명을 들은 주석하는 이들의 포섭이 우설금의 뜻에 맞추어 마교를 살리는 첫발이라 판단했다.
“좋습니다. 그럼 패도사십팔마부터 굴복시키기로 하죠.”
그들의 행선지가 사천에서 섬서로 바뀌었다. 목적도 바뀌었다. 마교 접수로!
***
천마가 곧바로 무한회귀공으로 회귀할 위험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시간적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천마의 반격을 막으려면 빨리 십만대산으로 가야 한다. 기한은 천년유심홍 열매가 성숙하기 전까지. 그렇기에 주석하와 우설금은 발걸음을 늦출 수 없었다.
섬서에 들어선 이후 두 사람은 마교의 소식을 풍문으로 들어야 했다.
평소에 흑귀와 백귀를 통해 내려오던 천마의 지령이 그날 이후부터 뚝 끊어졌다. 이것은 우설금이 마교에서 완전히 배제되었음을 뜻했다.
천마도 우설금 옆에 주석하가 있는 현실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동하는 동안 흑귀와 백귀는 그들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따라왔다.
주석하는 흑귀와 백귀의 충성심을 확인하였기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 둘은 마교 내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우설금의 부하다.
한바탕 비가 쏟아지고 날이 개었을 때 주석하는 산길을 지나고 있었다.
관도나 험한 계곡을 피하고 나지막한 구릉을 넘어가는 길을 선택했는데도 제법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만 대부분은 그들이 가는 방향과 반대였고 난민처럼 보였다.
“뭔가 일이 있는 것 같죠?”
우설금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피며 물었다.
“그런 것 같아요. 흡사 전쟁이 일어나 피난 가는 사람들처럼 보이네요.”
예전에도 주석하는 비슷한 장면을 하남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때 주막에서 본 사람들은 멸문당한 후 고향을 떠나 숭산 소림사로 이동하던 정파인들이었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지금 그의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은 무림인이 아니라 평범한 민간인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거슬러 올라가려니 어딘지 어색했다.
제법 넓은 공터에서 쉬는 사람들을 발견한 주석하는 우설금과 함께 자리를 잡았다.
때마침 저녁밥을 먹을 시간이 되자 사람들은 밥을 하면서 오늘 밤을 이곳에서 지낼 모양인 듯 여기저기 천막을 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두 사람도 다른 사람들 틈에 섞여 들어갔다.
물론 달리 요기할 것이 없어 주석하는 우설금과 둘이서 건량으로 가져온 육포를 뜯었다.
여기저기에서 불을 피우고 죽을 끓이는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배고파요?”
“아뇨.”
물론 주석하도 딱히 대답을 기대하고 묻진 않았다. 무공이 고강한 그라도 이곳에서 밥을 만들어낼 재주는 없으니까.
다만 맛있는 냄새가 코로 들어와 그를 괴롭혔다. 말린 육포보다 방금 끓인 죽이 더 맛있는 법이다. 우설금도 그렇겠지?
멍하니 다른 사람들의 식사 장면을 구경하고 있자니 여덟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쪼르르 달려왔다.
“형, 배고파?”
아이가 그와 우설금을 힐끔거리더니 말을 걸었다.
“응? 아니.”
“엄마가 물어보래. 배고프면 같이 먹자는데?”
난민들의 어려움을 알기에 차마 얻어먹기 민망해서 주석하는 우설금을 힐끔 살폈다.
우설금이 먹고 싶은 듯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제대로 밥을 먹은 지 며칠 지났다.
“생각 있어요?”
우설금이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석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고마워. 이름이 뭐니?”
“대벽이요.”
“그래 대벽아, 그럼 조금만 줄래?”
주석하와 우설금은 한 무리의 사람들에 섞여 죽을 먹었다. 제대로 든 것이 없는 피죽이었으나 맛이 나쁘지 않다.
그들과 섞여 밥을 먹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들의 대화를 듣게 됐다.
“어휴 세상이 어떻게 되려는지…….”
“나쁜 놈들이 거의 다 쫓아왔나 봐요.”
“이제 더 도망갈 힘도 없네.”
“죽으면 운명인 거지.”
역시 난민이 확실했다.
주석하는 죽을 끓여준 대벽의 어머니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우리는 섬서의 칠성방이란 문파에서 막일하던 사람이라오. 칠성방에 마교가 들이닥쳐 하룻밤 사이에 모두 몰살당했지 뭐요. 그때 방주님이 목숨을 걸고 우리에게 살길을 내어주셨다오. 우리는 소방주님을 모시고 죽자살자 도망쳤지. 여기 여덟 명이 우리 일행이고 저쪽은 황룡방이라든가…… 하여튼 우리랑 비슷한 신세요.”알고 보니 이 여인은 대벽의 어머니가 아니었다.
대벽은 칠성방 소방주였고 어머니라는 이 여인은 대벽을 어릴 때부터 돌본 유모였다. 단지 피난길의 편의를 위해 엄마와 아들로 위장하고 있을 뿐이다.
죽을 먹던 주석하는 우설금의 눈치를 살폈다. 마교가 대화에 등장해서다. 우설금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럼 방주님은…….”
“아버진 마교의 손에 돌아가셨어요.”
대벽이 우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아버지는 네가 살아있는 것을 아시면 기뻐하실 거다.”
“난 얼른 커서 복수할 거예요! 마교를 멸망시킬 거예요.”
대벽이 꿋꿋하게 주먹을 꽉 쥐고 분노를 터트렸다.
흔한 강호사였기에 주석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강호에서 문파의 멸문은 흔한 일이고 그때마다 은원 관계가 성립하는 법이니까.
특히 지금처럼 정사대전이나 마교와의 싸움이 벌어졌을 때는 이런 경우가 한둘이 아니었다.
대벽이 원수인 마교를 향해 결의를 다지는 것도 충분히 이해했다.
지금 마교의 주력부대가 섬서의 여러 문파를 뿌리째 뽑으면서 하남으로 이동하고 있으니 이런 문파가 한둘이 아니다.
식사를 끝내고 주석하와 우설금은 감사를 표한 후 공터의 한쪽 끝에 자리를 폈다.
“기분이 우울해 보이네요.”
우설금을 살피던 주석하가 넌지시 물었다.
우설금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후에야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예전에는 이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중원은 타도해야 할 대상이었기에 당연했었는데…… 지금 저 아이는 나와 똑같이 복수를 꿈꾸고 있어요. 아마 이 세상에는 나를 원수로 여기고 칼을 가는 사람이 정말 많을 거예요.”주석하는 우설금이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과거에 그녀는 눈 깜짝하지 않고 살상을 저지르곤 했었으니까. 약자는 당연히 죽어야 한다고 여겼으니까.
그런데 최근들어 많이 바뀌었다.
“마교가…… 마교가 당연하게 저지른 일이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이기 힘든 고통을 안겨주었다니……. 약한 문파의 멸문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들은 약하지만 똑같은 감정을 지닌 사람이었어요…….”주석하는 선천적으로 피를 보기 싫어했다. 오죽하면 강호를 떠나 백화루주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을까. 그런 그이기에 우설금의 태도 변화가 정말 반가웠다.
물론 아직 그녀는 분명하지 않다. 이십 년 동안 주입받았던 사상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힘들 테니까.
“자책하지 말아요.”
주석하는 그녀를 달랬다.
두 사람은 바위 한쪽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오늘 밤은 이렇게 노숙할 운명이다.
***
새벽이 되었을까.
갑자기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도망쳐!”
“마교다!”
주석하는 눈을 번쩍 떴다. 옆에서 기대어 자고 있던 우설금도 잠을 깼다.
마교라니? 주석하의 머리가 급하게 돌아갔다.
섬서에 진출한 마교의 주력부대와 만나려면 아직 조금의 거리가 남았다. 그들이 벌써 여기까지 진출한 걸까? 사실상 파죽지세라고 일컬을 어마어마한 속도다.
전생에서는 사천에 쳐들어온 주력부대만 상대했었기에 섬서 쪽의 주력부대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
저쪽에서 비명이 울리고 주변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보게, 청년! 얼른 도망가!”
대벽의 잠을 깨우던 유모가 그들에게 소리쳤다.
아직 잠이 덜 깨서일까. 도망치는 사람들이 낯설었다.
“으악!”
급기야 도망치던 한 사람이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모습을 본 다음에야 주석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잠을 자다 급습을 당한 사람들은 기민하게 움직이지 못했다.
펼쳐놓은 천막과 식량, 솥을 비롯한 잡다한 집기를 챙기느라 바로 도망칠 수 없었다. 대벽과 유모도 마찬가지였다.
콰직-
날카로운 도가 대벽과 유모 앞에 박혔다.
“움직이는 놈부터 죽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