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화 패도사십팔마 (2)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사람들은 겁에 질렸고 입을 벌린 채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이곳까지 도망치면서 마교의 잔인함을 몸소 체험한 효과 때문이다.
“으흐흑.”
겁에 질린 대벽이 눈물을 뿌리면서 유모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유모는 급히 아이를 달래고 최대한 몸을 웅크렸다.
쿵!
요란한 소음과 함께 마교도가 이쪽으로 몰려왔다.
모두 다섯. 그들의 행색으로 보아 전형적인 마교인이다. 주석하가 보기에 이들은 마교의 말단 무사로 보였다.
그는 우설금의 눈치를 힐끔 살폈다. 그녀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사태를 주시하고 있었다.
“도망치는 놈은 죽는다!”
한 녀석이 도를 붕붕 휘두르며 위협했다.
대부분 몸이 굳어 꼼짝 못 하는 가운데 멀리 떨어진 곳에 있던 한 사람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면서 뒷걸음질 쳤다.
순간 마교도의 도가 날카로운 호선을 그렸다.
“아악!”
순식간에 도망치던 사람의 허리가 잘렸다. 이를 목격한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흐흐! 도망치지 말라고 하면 꼭 도망치는 놈들이 있지!”
대수롭지 않게 도를 거두어들인 녀석이 주위를 쭉 훑어봤다.
“튀어 봐야 손바닥 안이야. 모두 이리로 모여!”
녀석이 험상궂은 표정으로 눈을 부라리자 겁에 질린 사람들이 우르르 모였다. 모두 스무 명이 넘었다.
녀석이 그들을 쓱 훑으며 말했다.
“네놈들이 황룡방인지 뭔지 하는 곳의 정예부대냐?”
어디를 봐도 무림인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놓아두고 마교인들이 허세를 떨었다.
“아,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밥 해주던 머슴이라…….”
“처음에는 누구나 그렇게 변명하더군. 그러다가 죽을 때 되면 바른말이 나오더라고.”
“그, 그게 아닙니다…….”
사람들이 엎드려 굽신거렸다.
그들을 쓱 훑어본 녀석이 버럭 소리 질렀다.
“대표는 다 나와라! 문파의 방주, 장로, 호법, 직계 등등! 나올 때까지 한 놈씩…….”
녀석이 다시 도를 휘둘렀다.
“으악!”
옆에 있던 한 사람의 목이 바로 날아갔다. 사람들이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었다.
물론 마교인도 이들이 별 쓸모없는 머슴임을 잘 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해결해 왔다. 어차피 이들의 목숨은 중요하지 않다. 약한 자는 죽어 마땅한 자이니 어떻게 죽이든 무슨 상관인가.
마교인 다섯이 기고만장하여 대소를 터트렸다. 쭉 훑어보던 녀석들의 눈에 어린아이가 보였다. 바로 대벽이었다.
“어허, 거기 꼬맹이! 뭔가 수상쩍어. 다른 아이들은 모두 죽었는데 네놈은 아직 살아있네?”
커다란 도가 대벽을 가리키자 아이가 놀라 입을 쩍 벌렸다. 무서워서 울고 싶은데 울음조차 나오지 않는 얼굴이다.
“클클, 이리로 와봐. 너! 혹시 방주 직계냐? 얼굴 그어 줄까?”
녀석이 더욱 험상궂은 표정을 짓자 참지 못한 대벽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공포에 질려 정신없는 대벽이 갑자기 유모의 품을 벗어나 앞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정신이 아닌 대벽은 제대로 뛸 수 없었다. 몇 걸음 달리다가 풀에 걸려 앞으로 꼬꾸라졌다. 유감스럽게도 그곳은 주석하의 바로 앞이었다.
주석하는 대벽을 감싸며 달랬다.
“대벽아, 정신 차려.”
“혀, 형!”
다급한 상황에서 주석하를 알아본 대벽이 그의 품에 엉겨 붙었다.
대벽을 따라 시선을 돌리던 마교인들은 그때야 주석하와 우설금을 발견했다.
“어? 여기도 잡것들이 있었네? 모이라는 소리 못 들었어?”
콰직!
도가 날아와서 주석하 앞에 박혔다.
모두 비명을 지르는 순간이었건만 정작 주석하는 태연하게 대벽을 달랬다.
“어? 이것들이!”
주석하의 태도가 예상과 달라 마교인들은 더욱 위협적으로 발을 구르며 다가왔다.
쿵! 쿵!
일부러 발걸음 소리를 크게 내고 도를 건들거리면서 다섯 명이 주석하의 앞에 쭉 늘어섰다.
“이 잡것들이 지옥을 한번 다녀와야 제정신을…….”
버럭 소리치던 녀석의 목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의 시선은 우설금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우설금은 바위에 기대어 앉은 채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노출됐다.
“잡것이 뭐?”
“허어억!”
위협하던 녀석이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옆의 다른 네 마교인은 영문을 몰라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야! 이 자식아! 갑자기 왜…….”
남은 네 마교인도 그때야 우설금을 알아봤다.
“허어억!”
마교수호사령인 단천마령은 일반 마교인들이 감히 쳐다볼 수 없는 높은 지위의 인물이다. 사실상 천마와 동급이니 그들에게는 하늘이다.
특히 단천마령은 마교의 꽃이자 자랑이었기에 그녀를 모르는 마교인은 없다. 그녀의 잔인한 손속과 천마의 총애는 마교인들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그런 단천마령을 뜻하지 않게 이런 곳에서 만났으니 마교인들도 당황했다. 그들은 엎드린 채 고개를 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특히 방금 단천마령에게 잡것이라고 소리 질렀으니 그 불경은 목숨을 내놓아도 할 말이 없었다. 몰랐다고 용서될 과실이 아니었다.
우설금은 아무 말 없이 꿇어앉은 녀석들을 노려봤다.
주석하는 대벽을 품에 안고 그녀의 움직임을 살폈다. 이 순간 우설금이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했다.
과거라면 일상적인 마교의 행패였기에 그녀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최근 들어 마교가 이상하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한 지금은 마교인들의 이런 행동이 평범하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때 주석하의 품에서 울던 대벽이 엎드린 마교인을 발견했다.
“저, 저놈들은 원수야! 저들이 아버지를 죽였어!”
방금까지 무섭다고 도망치던 대벽이 얌전하게 엎드린 마교인을 보자 용기가 생겼는지 주석하의 품에서 발버둥 쳤다.
“흑흑, 저놈들을 죽일 거야! 죽여서 원수를 갚을 거야!”
주석하는 대벽을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나중에, 나중에 크면 원수를 갚아.”
그는 대벽을 달래며 귓속말로 속삭였다.
우설금은 충격을 받은 듯 멍한 표정이었다.
“원수라…….”
그녀는 평생 원수를 갚으려고 살았다. 지금까지는 오로지 반야불존을 죽이려고 살았고 이제는 천마를 죽이려고 산다.
저 아이도 그녀와 그 삶이 다르지 않다. 저 아이에게는 마교가 원수라는 점만 다를 뿐.
복잡한 심경 속에 우설금이 싸늘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일어나!”
“예!”
마교인 다섯이 눈치를 보며 일어났다.
“지금 어디에 있지?”
“이곳에서 서쪽으로 십 리 떨어진 야산에 있습니다.”
“그곳에서 꼼짝하지 말고 대기해. 내가 곧 갈 테니.”
우설금이 손을 휙휙 저어 귀찮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녀석들이 눈치를 살피다가 후다닥 사라졌다.
아비규환에 빠졌던 공터가 다시 원 상태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순식간에 마교인을 고양이 앞의 쥐로 만든 주석하와 우설금을 보면서 수군댔다. 무림고수라느니 마교인이라느니 별별 말이 오갔다.
유모가 다급히 달려와서 대벽을 붙잡았다.
“소, 소방주님! 어, 얼른…….”
유모가 주석하의 눈치를 봤다. 그녀는 주석하와 우설금이 누구인지 대충 눈치 챈 듯했다.
“싫어! 형아랑 함께 있을래.”
“아, 안돼요! 그 사람은…… 마교 사람이에요!”
유모의 손을 떼어내던 대벽의 움직임이 일순간 멎었다. 대벽이 주석하를 올려다보며 눈을 크게 떴다.
“마교? 원수?”
어린 대벽은 아직 마교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다. 단지 부모를 죽인 나쁜 사람이란 인식뿐이다. 크면 반드시 복수해야 할 원수란 것도.
“형…… 원수였어?”
대벽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주석하를 노려봤다. 아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하아!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렇다고 마교가 아니라고 하기에는 방금 벌였던 일이 너무 명확하다.
주석하는 다정하게 대벽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형은 원수 아니야.”
“거봐, 아니라잖아.”
대벽이 반항하다가 유모에게 끌려갔다.
갑자기 주변이 싸늘해졌다. 그러잖아도 밤이 깊어 기온이 떨어진 데다 분위기마저 차가워지니 더 추워졌다.
저녁을 먹을 때 살갑게 굴던 사람들이 그들을 힐끔힐끔 보면서 자리를 멀리했다. 대부분 얼른 도망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듯했다.
주석하는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는 저런 시선을 무시할 만큼 덤덤하지만 우설금이 충격을 받을 것 같아 불안했다.
고민하는 사이 우설금이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주석하에게 눈짓했다. 주석하도 따라서 일어났다.
별다른 말없이 저쪽으로 사라지는 우설금을 바라보다 주석하는 자신을 주시하는 공터의 사람들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여러분들은 멀리 가지 않으셔도 됩니다. 며칠 후에 집으로 모두 돌아가세요. 앞으로 마교의 위협은 없을 겁니다.”
사람들의 반응은 없었다. 환호성이 들릴 줄 알았는데 그럴 기미마저 없다. 그만큼 마교는 못 믿을 존재였나, 아니면 두려움 때문인가.
그들이 믿든 믿지 않던 어차피 상관할 일은 아니다. 오래지 않아 직접 경험하게 될 테니.
주석하는 씁쓸한 기분 속에 우설금을 따라갔다.
우설금을 도와 마교를 새롭게 만들 작정이다. 어쩌면 그것이 천마에게 가장 큰 복수가 될지도 모른다.
***
패도사십팔마.
사십팔 명의 거마가 숲속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섬서로 진격한 마교 주력부대 내에서도 최정예다. 주력부대에는 그들 외에도 이백여 명의 마교인이 있지만 진정한 무력은 패도사십팔마에 집중되어 있다.
마교에서 마교칠왕 다음으로 위세를 떨치는 자들이 바로 패도사십팔마였다. 이들이 무서운 이유는 개인이 아닌 조직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연합진은 소림이나 무당의 연합진에 비견할 정도였고, 그 잔인함만 따지면 무림에서 따를 자가 없었다.
설사 정파십존이나 흑도팔군이라도 그들의 연합진에서 절대 빠져나올 수 없다. 그들은 마교의 자랑이었다.
그런 사십팔 명의 마교도가 빙 둘러앉아 심각한 난상토론에 빠졌다. 그들이 풍겨내는 마기가 산속의 밤을 얼어붙게 했다.
“단천마령이 정말 그렇게 말했다는 거지?”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장한은 패도사십팔마의 우두머리인 패도통령이라 불리는 자였다.
명실상부 패도사십팔마를 지휘하는 수뇌이자 마교에서는 마교칠왕에 버금가는 권세와 무공을 소유한 최강고수였다.
“그렇습니다. 멸문한 문파를 추격하던 교인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보고했습니다.”
패도사십팔마는 방금 단천마령을 만나고 돌아온 마교인에게 보고를 받고 회의에 들어갔다.
단천마령의 등장이 의외이긴 하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그녀가 전한 명령이 그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꼼짝하지 말고 대기하라? 대체 무슨 뜻이지? 그때 그녀의 표정은?”
“단천마령 특유의 표정 있잖습니까? 얼음이 따로 없는…… 그냥 그랬다고 하던데요?”
“그래도 꼼짝하지 말라니? 이 급한 시국에…….”
그들 주력부대는 천마의 명을 받아 섬서를 휩쓸었다.
이제 옆 동네인 하남으로 넘어갈 계획이다. 예상보다 강한 중원의 저항에 본래의 예정보다 다소 지체된 국면이다. 급히 서둘러도 부족할 판에 꼼짝하지 말라니.
패도통령은 천마와 단천마령의 명령이 서로 충돌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구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걸까.
“어떻게 해야 하지?”
“그래도 천마의 명령을 따라야 하지 않습니까?”
“단천마령이 천마의 복심임을 모르느냐?”
“작전 변화가 있었으면 연락이 왔을 텐데요?”
그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주변을 경계하던 부하가 다급하게 달려왔다.
“다, 단천마령께서 오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