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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검천하-248화 (248/273)

248화 패도사십팔마 (3)

주석하는 우설금의 뒤에 서 있었다.

그의 옆에는 흑귀와 백귀가 호위하듯 포진해 있었다. 그들과 함께하다 보니 그도 우설금의 호위가 된 기분이다.

시끄럽던 일대가 우설금이 등장하자 침묵이 내려앉았다. 둥글게 큰 원을 그리고 앉은 채 토론을 벌이던 패도사십팔마만 그런 게 아니다.

지위가 낮아 이 자리에 끼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만 보는 마교도들도 모두 입을 닫고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의 분위기에서 주석하는 단천마령이 마교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실감했다. 그녀는 지위로나 위세로나 인기로나 모든 방면에서 천마에 이은 실질적인 이인자였다.

그렇다고 감히 천마의 위세에 비빌 수준은 아니지만, 어쨌든 천마를 향한 복수 가능성이 높아진 것만은 확실했다.

원을 그리고 앉은 패도사십팔마의 한 가운데로 들어간 우설금이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마교도를 노려봤다.

“패도통령은 어디 있나?”

그녀의 눈앞에 패도통령이 앉아 있었다. 당연히 그녀도 그 사실을 안다. 그런데도 소리를 지른 것은 이들의 기세를 꺾기 위함이다.

약간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패도통령이 느긋하게 일어났다.

“단천마령께 인사드리오.”

패도통령이 양손을 모으고 읍했다.

“명을 들었나?”

“들었습니다. 단천마령께서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말투는 공손했으나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다른 자들과 달리 마교칠왕에 근접한 패도통령은 단천마령이 무섭지 않았다. 물론 일대일이라면 상대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는 무려 사십팔 명의 정예부대를 데리고 있다. 단 두 명의 호위만 데리고 돌아다니는 단천마령에 비하면 그의 위세가 훨씬 세다.

패도통령의 계산은 단순했다. 패도사십팔마라면 단천마령도 절대 함부로 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이만한 전력이면 마교칠왕 전부와 맞먹는 전력 아닌가. 하물며 마교수호사령 끝자락에 있는 단천마령 쯤이야.

패도통령이 두려워하는 것은 단천마령을 지원하는 천마의 총애이지 단천마령 본인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은 그녀를 마교의 꽃이라며 숭상한다.

그러나 마교 최상층을 노리는 그에게는 단천마령은 지위 상승을 가로막는 걸림돌이자 별것 아닌 어린 계집으로 보일 뿐이다.

우설금이 거두절미하고 명령을 내렸다.

“우리는 총단으로 돌아간다.”

“네?”

여기저기에서 파문이 일었다. 생각지도 않은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그동안 총단으로부터 받았던 여러 지시와 우설금의 명령을 머릿속에서 비교한 패도통령이 음산한 비웃음을 머금었다.

“단천마령! 총단의 지시와 다릅니다.”

“그래서?”

우설금의 섬뜩한 시선이 패도통령을 향했다.

순간 비수가 심장에 박히는 기분을 느낀 패도통령은 간신히 떨리는 몸을 잡았다. 별것 아닌 계집이라 여겼더니 내뿜는 기세가 매섭다. 하지만 단천마령이 마교칠왕 이상의 무공을 소유하고 있더라도 패도사십팔마를 모두 상대할 수는 없다.

패도통령은 금세 자신감을 회복했다.

“중원 침공은 수십 년에 걸친 마교의 대계! 이대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

우설금의 안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우, 우리는 천마의 명만 따르기 때문입니다.”

패도통령이 재차 설명했다.

우설금은 곧바로 반박했다.

“이곳에서는 내가 바로 천마다! 총단으로 돌아가라! 그곳에서 나의 명을 기다려라!”

우설금의 명이 떨어지는 순간 마교인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감히 단천마령이 스스로를 천마라 칭했다. 충분히 반역이라 의심할 여지가 발생했다.

패도통령은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마교는 강자존의 세계 아니던가. 이곳에서 단천마령을 꺾는다면 그녀를 끌어내릴 수 있다. 아무리 천마의 총애를 받는다지만 그에게 패하고도 빳빳하게 고개를 세울 상황은 아니니까.

그는 빙 둘러앉은 동료들의 눈치를 봤다. 모두가 비슷한 생각인 듯 눈빛이 초롱초롱했다.

‘오늘 패도사십팔마가 단천마령보다 우위에 있음을 보여주겠다!’

패도통령이 결심을 굳히고 그녀를 노려보았다.

우설금은 패도통령의 속셈을 읽었다.

주석하는 느긋한 미소를 띠었다. 미리 우설금과 입을 맞춘 대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는 마교가 강자를 숭상하는 관습을 이용했다. 천마와 맞서려면 마교의 주력부대를 잡아야 한다. 이들은 강자를 따른다.

이곳에서 우설금이 압도적인 무력을 보여준다면 그들은 우설금에게 무릎을 꿇을 것이다. 적어도 그녀가 천마에 대항할 때 이들이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한 패도통령이 우설금에게 소리쳤다. 물론 그의 선언은 우설금이 아닌 자신의 동료에게 한 말이다.

“우리는 천마를 사칭하는 그대를 그냥 둘 수 없다. 단천마령! 능력을 보여라! 패도사십팔마를 능가한다는! 그렇지 않으면 오늘 당신은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패도통령의 외침에 하나둘 몸을 일으켰다.

주섬주섬 무기를 잡고 그녀를 노려보는 행태가 가관이었다. 어떤 자는 기세등등했고 어떤 자는 나른해 보였으며 어떤 자는 두려움에 떨었다.

“자! 패도사십팔마의 위력을 보여주자! 우리가 누구냐? 가장 위대한 마교의 전사가 아닌가!”

패도통령이 전의를 부추겼다.

“와아!”

모두가 함성을 터트리고 각자 날카로운 도를 우설금에게 겨누면서 마기를 끌어 올렸다.

당황한 흑귀와 백귀가 우설금과 주석하의 눈치를 봤다. 두 사람은 사전 계획을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물러나 있거라.”

우설금이 나직하게 두 사람에게 권유했다.

몇 차례나 머뭇거리던 흑귀와 백귀는 패도사십팔마가 형성한 포위망 밖으로 물러났다.

주석하는 정중앙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흑검소를 입에 물었다.

오늘 천마를 쓰러트릴 연습을 할 것이다. 이미 한두 차례 우설금과 합을 맞춰 보았기에 실전에서의 위력을 확인하면 된다.

주석하가 눈짓으로 신호를 보내자 우설금이 밤의 적막을 깨트리며 시작을 알렸다.

“와라!”

우설금에게서 붉은 마기가 폭발적으로 피어났다. 단천마공이다.

주석하는 흑검소로 익숙한 천무태평악을 불기 시작했다.

회귀 직전 천마와의 결투에서 그는 천무태평악을 극한까지 밀어붙였었다. 그 천무태평악에 흑검육식의 최후 초식을 가미하여 천마를 상대했었다.

지금도 그는 천마를 상대하기 가장 좋은 방법이 이 무공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여기에 우설금의 단천마공까지 더하면 그 위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삘리리리-

퉁소 소리가 밤의 적막을 갈랐다. 음률이 강편으로 형상화하고 그 강편은 검강을 품은 단검으로 바뀌었다.

투명한 단검 수천 개가 주석하의 주변을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홍철산이 펼쳐졌다. 화려한 모란꽃이 아름답게 피었다.

홍철산이 빙글빙글 돌고 우설금은 모란꽃과 한 몸이 되어 단검에 올라탔다. 북해에서 강기가 형상화한 강편에 올라타고 춤을 출 때를 연상하는 장면이다.

주석하의 머리 위에서 무형의 단검을 밟으며 우설금이 우아하게 춤을 췄다. 홍철산이 돌아가면서 비처럼 뿌려진 산강은 천무태평악의 단검과 어울려 공간을 지배했다.

삘리리리-

죽음의 기운이 휘몰아친다.

패도통령은 우설금의 단천마공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예전에 봤던 그녀의 무공과는 차원이 다른 엄청난 무공이었다.

위력도 위력이었지만 그녀가 움직이는 팔과 몸동작이, 손끝과 눈웃음치는 미소가 모두의 정신을 빼앗았다.

패도사십팔마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사십팔 명의 마도가 뿜어내는 마기의 한 가운데에서 오히려 압도하는 마기를 뿜는 단천마령은 그들이 추측한 수준을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이미 시작한 일이다.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듯이 발동한 도진(刀陣)을 힘도 쓰지 않고 바로 거둘 수는 없다.

“시작해라! 단천마령을 베는 자에게 상을 내릴 것이다!”

패도통령의 선언이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우설금은 단검을 밟으면서 주석하의 머리 위를 맴돌았다.

사실 어려울 것도 없었다. 예전보다 훨씬 능숙해진 주석하는 그녀가 허공의 어디를 밟건 단검으로 그녀를 떠받쳤다.

덕분에 그녀는 마치 땅 위를 활보하듯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녀는 주석하가 사전에 요구했던 바를 정확히 되새겼다. 압도적으로, 녀석들을 한 방에 날려버려야 한다. 그렇게 녀석들을 굴복시켜야 한다.

그래서 그녀는 패도사십팔마의 도진이 무르익기를 기다렸다. 그녀의 의도대로 도진의 마기가 점점 거세졌다.

저들은 단천마령을 겁내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들의 위명을 세울 기회로 여기고 있다. 그런 놈들을 무참하게 굴복시킬 것이다.

“공격하라!”

패도통령의 명령이 떨어지고 사십팔 개의 도가 일제히 그녀를 향해 날아왔다. 도에서 발산한 도기가 빛살처럼 공간을 갈랐다.

때가 왔다!

천무태평악의 음률이 높아져 일순간 천지를 장악했다.

그 틈을 우설금 또한 놓치지 않았다. 단천마공이 폭발하고 마흔여덟 개의 모란꽃이 허공을 잠식하며 아래를 폭격했다.

패도사십팔마는 숨이 터질 듯한 압박감에 짓눌렸다. 환각처럼 보이는 모란꽃이 마치 그물망처럼 그들을 졸라맸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콰콰콰쾅!

모란꽃과 함께 수천 개의 단검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그 누구도 단검을 막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쏟아져 내리는 폭우를 그 누가 맨몸으로 피할 수 있단 말인가.

다행히 수천 개의 단검은 그들을 직접 강타하지 않았다. 각자의 주변을 정확히 둥근 원으로 포위하면서 일제히 쏟아졌다.

쿠쿠쿵!

패도사십팔마를 노린 단검이 지면과 충돌하면서 땅거죽이 지진이 난 듯 쪼개졌다. 흙더미가 치솟고 먼지가 시야를 가렸다. 누구도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그들을 옥죄던 단천마공의 마기가 더욱 강해져 이제는 태산 같은 압력으로 그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견디지 못한 이들이 바닥에 주저앉으며 도를 꺾었다. 무려 사십팔 명이나 되는 자들에게 동시에 발생한 일이었다.

패도통령은 도대체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단천마공에 짓눌리고 눈앞에 모란꽃으로 덮이는 순간 수백 수천의 단검이 주변을 폭격했으니까.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저항하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의 도는 저만치 날아가 버린 상태였다.

간신히 눈을 뜬 패도사십팔마는 눈앞을 의심했다.

그들이 딛고 있던 지면이 사라졌다. 그들의 앞에 거대한 구덩이가 패어 있었다. 정확하게는 그들이 디딘 그 지점만이 그대로 남아 있고 주위는 무려 일장에 이르는 깊이로 수십 장에 달하는 광활한 지역이 움푹 패었다.

그들은 마흔여덟 개의 우뚝 솟은 작은 기둥에 간신히 주저앉은 상황이었다.

“이. 인간이…… 아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설사 천마라도 이런 위력을 보일 수 있을까. 단천마공은 패도사십팔마의 합공을 아득히 넘어섰고, 그 위력은 마치 산을 깎아 평지로 만든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그때 우설금의 경고가 이어졌다.

“결정하라! 나를 따를 것인지 아니면 천마를 따를 것인지! 그대의 눈앞에 무덤을 파두었으니 불복종하는 자, 바로 묻어버릴 것이다!”

패도사십팔마는 눈앞의 구덩이가 자신들의 무덤임을 알아채고 전전긍긍했다. 이것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었다.

“아아! 단천마령이시여!”

사방에서 단천마령을 향해 엎드리는 자가 속출했다. 강한 자가 살아남고 숭상 받는 마교이기에 딱히 이상할 것도 없었다.

눈치를 보던 자들까지 모두가 한뜻이 되어 고개를 조아렸다.

패도통령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감히 단천마령에게 덤빌 생각을 했던 과거의 자신을 자책했다.

그와 단천마령 사이에는 절대 넘을 수 없는, 하늘과 땅 같은 격차가 존재했다. 단천마령의 무시무시한 마공을 목격하는 순간 그는 단천마령의 수족이 되기로 했다.

우설금이 마교 최강자로 마교도에게 인식되는 순간이었다. 이것은 그녀가 마교의 주력부대를 손에 쥐는 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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